박정희, 그래서 그는 '민족 반역자'다

박정희 '뒤 캐기'는 그에게 한맺힌 세력의 책동

모세원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5/02/21 [17:18]

박정희 '뒤 캐기'는 그에게 한맺힌 세력의 책동

어리석은 사람은 과거에 얽매이고, 현명한 사람은 미래를 설계한다고 한다. '과거 바로 세우기'란 미명으로 과거를 파헤치는 일은 일본의 이에야스(家康)의 말을 빌리면 "겁쟁이의 잔인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권이 굳이 박정희의 과거를 캐려는 이유는 '과거의 산물인 현상(現狀)을 타파하려는 욕구 때문인데, 이 욕구는 좌파의 이념적 핵심이다.

따라서 노정권이 출범하자 이런 사태가 오리라는 것을 식자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각한 충격은 받지 않았으나, 이렇게까지 온 나라를 들쑤시면서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 넣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래서 요즘 여항(閭巷)에서는 박정희에게 '철천의 한(徹天之恨)이 맺힌 세력의 책동일 것이라는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지 않은가.

노정권의 '박정희 죽이기' 퍼레이드는 기본적으로 박 전 대통령은 '민족반역자'라는 대전제를 바탕에 깔고 진행되고 있다.이는 박의 뒤를 캠으로써 그가 민족반역자임을 증명하고, 나아가 이를 토대로 그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려는 야심 찬 작업이다.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전력, 쿠데타 전력 때문에 '민족반역자'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 출신임은 박 자신도, 그 후손 누구도 부인 한 적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박이 일본군을 떠나 독립군에 합류하면서 장준하와의 숙명적인 대결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통설이 되어 있다.

일본군 장교 출신이라는 전력이 민족반역자임을 증명하는 증거라면, 박정희 그는 분명 민족반역자임에 틀림 없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사실 또한 국가 변란죄에 해당하므로 그는 말 할 것도 없이 반역자이다.

4.19 혁명의후유증으로 자유당 독재정권 아래서 억제되었던 자유를 갑자기 만끽(滿喫)하게 된 국민들은 욕구를 한꺼번에 분출함으로써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불러왔다. 이러한 혼란을 '남조선 해방의 호기(혁명의 滿潮期)'로 간주한 김일성은 남한 사회 각 분야에 프락치(fraktsiya)를 침투시켜 혼란을 부추기며 공산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박정희가 소수의 군대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킨 시점은, 국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사회는 혼란이 극에 달했던 때였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기아선상에서 헤매는 민생을 도탄에서 구하고자 한다"는 그의 공약은 절망에 빠져 있던 국민들에게 일말의 희망과 기대감을 준 것 또한 사실이었다.

6.25 한국전쟁을 일으키고도 실패한 '남조선 해방'을 거의 눈앞에 둔 상황에서 박정희의 쿠데타 때문에 또 다시 허망하게 '적화 통일의 꿈'을 허공에 날려버린 김일성과 그 하수인들은 절치부심(切齒腐心), 박정희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혁명의 간조기(干潮期)에 취하는 전략대로 지하에 잠복, 고양이 앞의 쥐처럼 움츠러들고 말았다.

'적화통일'기회 놓친 공산 세력, 박정희에게 철천지 원한 품어        

박정희 정권은 친 김일성 세력과 간첩의 철저한 색출, 반공교육의 강화로 집권 18년 동안에 대한민국(잃어져 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대한민국이라고 표기한다) 땅에 공산주의가 발호(跋扈)할 수 없도록 하여 이념적 혼돈을 극복하고, 우리에게 안정을 선물함으로써 김일성의 '남조선 해방'을 끝내 좌절시켜 버렸다.

그런 탓에 김정일이나 친북 세력들의 눈에 비친 박정희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열번 당해도 오히려 부족한 철천의 원수이고 따라서 '민족 반역자'의 수괴인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자원도 자본도 없는 상황에서 경제건설이라는 한 마음으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경제사절단을 보내 차관을 얻어내려고 노심초사했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공장을 세웠으며, 외화를 벌어들이는 곳이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좇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서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외화를 벌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수 없이 되풀이 하곤 했던 일화(逸話)도 있다.

그 결과 해마다 7-10%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60년대 북한과의 대등한 수준(65년도 개인 소득이 한국 622달러, 북한 603달러)이었던 대한민국의 경제를 70년대 말까지는 북한과의 격차를 두 배 이상으로 별려 놓았다.

이런 과정에서 박정권은 중화학 공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했고, '연못 이론(연못에 물을 가득 채운 후 분배하는)'을 실천에 옮기면서 재벌의 형성을 지원했다. 또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를 내세워 '새마을 운동'을 벌여 이른 바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던 것이다.

김일성도 '천리마 운동'을 펼치면서 인민을 죽도록 고생시켰으나 경제건설에 실패, 대한민국과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북한은 오늘날 인민을 굶겨 죽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로 전락한 반면,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강국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김일성, 한국전쟁 일으키고, 경제건설 실패했어도  '민족의 태양'

2백50만의 사상자를 낸 6.25라는 민족상잔(民族相殘)의 비극을 연출(북침설을 주장하며 반론을 제기할 '애국자'들도 있겠지만)했을 뿐 아니라, 경제건설에도 철저히 실패하여 인민을 기아선상에서 헤메게 했던 김일성은 '민족의 태양으로 추앙 받고 있다. 

박정권은 남북화해와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비밀리에 평양에 특사를 파견, 김일성과의 회담을 통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여 남북화해 무드를 조성하고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기도 했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점증하는 국내의 민주화 요구와 반정부 운동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강압수단으로 '10월 유신'을 선포, 헌정을 중단시키고 독재권력을 강화하는 폭거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따라서 박정희를 '헌법 파괴자', '폭압 독재자'로 매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일성도 바로 그 해(72년) 12월 27일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단행, 주석제를 신설하여 흠정헌법(欽定憲法)하의 절대군주를 능가하는 절대권력을 움켜쥠과 아울러 부자세습을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또 왕조에서 처럼 권력을 물려 받은 김정일은 주민 3백만 명 이상을 굶겨 죽이고, 1백만 명이 넘는 정치범을 지옥 같은 수용소에 가두고 인권을 철저하게 짓밟으면서 호사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호화 파티, 고급 승용차 500대, 양주 1만 병 보유 등등.) 그런 김정일은 오늘 날 '위대한 영도자' ,'천출장군'(용어의 뉴앙스에 주의)으로 우상화(偶像化)되어 있다.

박대통령, 주한 미군 철수에 대비, 핵무기 개발 시도

박대통령은 미국의 카터(carter) 행정부가 주한 미군의 철수를 결정하자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했었다. 그는 힘의 공백을 틈탄 김일성의 침략오판(6. 25 도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이 동북아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하자 힘의 공백으로 오판하여 일으켰다)에 대비하여 공산화를 저지하고, 6. 25 같은 민족적 비극을 예방하고자 핵무기 개발에 총력을 쏟아 부었다는 사실이 최근에 속속 밝혀 지고 있다.       

그는 건국 이래의 적폐(積弊)인 부정부패를 일소 하는 데 앞장 섰고,  병역기피자가 발붙일 곳이 없게 만들었다.그는 18년이라는 장기 집권을 했으면서도 부정축재 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은 유일 한 대통령이었다. 

그런 그는 이제 '민족 반역자'로 낙인 찍혀 죽백(竹帛)에서 지워질 운명에 처해 있다. 이는  '우선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인권을 짓밟았기 때문에 받게 된 징벌이 아닐 수 없다. 또 군사쿠데타로 집권했고, 유신헌법을 제정함으로써 헌정을 중단시킨 헌정 파괴자로서의 죄책도 면할 수가 없게 되었다.

김일성의 '적화통일' 저지와, 공산주의 척결로 '민족 반역자'로 찍혀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는 궁극적으로 김일성의 '적화통일'을 좌절시켰고, 그의 철저한 반공정책으로 대한민국 땅에 공산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주의가 활짝 꽃피었다는 노무현 참여정권 아래에서 박정희는 '민족반역자'가 되었고, '폭압정치의 거점(outposts of tyranny)'으로 비난 받는 김정일은 '천출장군'으로 신 처럼 추앙받고 있는 실정이다. 

입만 열면 평등과 공의를 외치며 인권을 부르짖는 노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눈에는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과 이라크, 이란 등의 인권만 보이고 정작  보호해야 할 북녘 땅의 우리 동포들의 인권은 보이지 않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박정희는 공(功)은 철저히 무시되고 과(過)만 무참히 파헤쳐져 단죄되고 있으며, 특히 공산주의를 억압한 죄과가 더욱 크게 다루어 지고 있다는 의혹을 못내 지울 수가 없다.

수양대군의 총신(寵臣) 한명회(韓明澮)는 연산군 때 부관참시되었다가 임금이 바뀌자 신원(伸寃)되었었다. 권력자의 입맛대로 죄를 재단(裁斷)하면 권력자가 바뀜에 따라 복권되어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좋은 교훈이다.

노정권의 '박정희 죽이기'를 계기로 이 땅에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공자(孔子)가 충고한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以德報怨)면 오죽이나 좋으랴.   

[모세원 박사 프로필]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 고대 교육대학원 석사. 단국대 대학원 정치학박사. 4.19 때'전국대학생 공명선거투쟁위원회 조직, 수석 부의장. 육군 중위 예편.조선일보 수습 10기로 사회부 기자. 동아일보 기자 역임. 국립 목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년 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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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쎄... 2005/02/24 [00:09] 수정 | 삭제
  • 이 글을 쓰신분....뭐하는 분? 알바? 어이없군...
  • 길모아 2005/02/22 [18:48] 수정 | 삭제
  • 검정안경끼고 시청앞에가서
    씨부리시오.
    할지랄이 없어서 염병떨지 말고.......
  • 청년 2005/02/22 [12:32] 수정 | 삭제
  • 박정희의 공과 과를 따지자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과만 따지고 있다.
    일본군 경력을 말하면서 독립군 경력은 감춘다.
    좌익 경력을 말하면서 철저한 반공 기조를 또 비판한다.
    당대 최고의 경제정책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그당시 하나같이 개판이던 정치를 잘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당시 정치가중 박정희보다 나은 인물이 있었던가?
    다행히 당시 유력 정치가 2명이 후대에 대통령에 오름으로써 우리는 세 인물을 냉정히 비교해 볼수 있게 되었다.

    국가를 가난에서 건져내고 국민의 피땀을 모아 경제건설의 밑거름으로 활용한 현명한 경제정책을 생각한다면, 후세의 두 김씨의 몰상식한 경제정책들에 탄식이 나올 뿐이다.

    고속도로를 건설한 인물과 건설반대한 인물들의 수준차이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제 꼴통수구좌파들은 정신을 차리고,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경제정책으로 이 나라를 근대화시킨 위대한 행정가를 바르게 평가하여 대한민국의 자산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 고픈 배를 채워주고 국민의 피땀을 자기 주머니가 아닌, 국민의 주머니에 돌려준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대통령을 국민은 잊지 않는다.

  • 미천넘 2005/02/22 [12:16] 수정 | 삭제
  • 미친넘들
    겨우 배워서 |쓴다는 글이 이정도니
    그리고 이런 쓰레기 같은 글을 버젓이 대문짝에 붙이고 있는 브레이크도
    정말 구토가 올라온다.

    적어도 브레이크야
    똥과 된장은 가릴줄 알아야지!!!
  • 역사 2005/02/22 [12:07] 수정 | 삭제
  • 박정희의 과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공을 평가하지 않고 과를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성장 정책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보기 힘들 만큼 훌륭한 성과를 거둔 사례이다. 간혹 무식하기 짝이 없는 좌파의 주장에, 국민이 고생한거지 박정희의 공이 아니라 한다. 이만저만 몰상식한 주장이 아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김일성은 박정희 만큼 국민을 고생시켰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결과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아프리카, 동유럽등의 빈국들도 국민들은 지금 이 순간도 그 이전 우리나라보다 힘들면 힘들었지 절대 놀지 않는다.

    정책의 공과는 국민을 고생시키되, 어떻게 그 힘을 모아서 발전적인 방향을 쏟느냐에서 결정되며, 박정희의 경제 정책은 그런 면에서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현명하고 시의 적절한 것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꼴통 좌익들은 또 말한다. 압축성장 때문에 비리,부정부패가 있다고.
    압축성장 안한 유럽, 미국등엔 비리가 없는가? 민주당 장면 정권 시절엔 비리가 없었는가? 비리 없는 세상은 없다. 압축성장 안해서 비리가 없는 나라가 있다면 한번 예라도 들면서 주장하라. 즐초딩 운운하며 자신의 무식, 몰상식을 과시하지 말고.
  • 코메디네 2005/02/22 [10:34] 수정 | 삭제
  • 내가 범죄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죽이는것이 결국은 민족과 국가를 위한 것이므로 정당하다는 말이냐?
    아니면 내가 살인을 하고 강도짓을 했어도 나라만 잘 발전시켜 놓았으면 죄가 없어진단 말이냐? 대체 뭘 말하는거냐?

    혼란스런 시기에 박정희 정권이 남침을 막아? 대체 근거가 뭐냐?
    박정희=경제발전 이란 수식어가 자꾸만 따라 다니는데,
    그로 인한 손실은? 지금의 이 부정부패와 기업비리문제가 왜 생겼는데?
    그놈의 경제성장이란 비호아래 성장한 자들이 지금에 와서 이런 문제를
    야기 시키고 그 댓가를 지금 치르는거다.어쩌면 손실이 더 크다.
    국민돈,일본돈 다 끌어다가 총칼로 눌려 정책하면 박정희가 아니라 즐초딩도 그만큼은 성장시킨다. 알간?
  • 쯧쯧 2005/02/22 [03:43] 수정 | 삭제
  • 박정희 없이도 경제개발 했다 그런식의 추측성이라면
    민주화 없이도 경제사정만 좋아졌으면 우리나라는 민주화 되었을거요라고
    나도 추측성 답을 드리고 싶소.
  • 토이 2005/02/22 [02:05] 수정 | 삭제

  • 글 잘 읽었습니다....
  • sosa 2005/02/22 [00:52] 수정 | 삭제
  • 브레이크가 사세를 확장하면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은 수구꼴통들이 점점 세를 더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만원에 세원에 기배기까지.

    2차세계대전 이후에 패배국인 독일과 일본은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며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갖는다. 승전국 미영소, 특히 유대계가 세를 잡고 있는 미국은 독일에 대해 철저한 반성과 참회의 기회를 갖도록 하였다. 특히 프랑스는 전후에 독일점령하에서 일어났던 반국가, 반민족 행위들에 대해 철저한 조사및 처벌을 함으로써 후세에 그 본이 되도록 하였다. 그래서 패망후에 경제부흥에 성공한 독일은 아직도 이스라엘에 대해 그 피해를 철저히 보상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어떤가? 소련의 동북아시아 팽창정책에 맞서고 공산화된 중국으로부터 공산화를 막고 그 전초기지로 일본을 보호하기 위해 과거사반성은 커녕 조사마저 하지 않았다. 이승만의 반국가 반민족적인 정치행위로 우리는 친일행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한 반민족 반국가적 정권이던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정권이 들어섰다.

    해방후 어수선하고 정치 경제적 토대가 미미했던 장면 정권하에서 정치적 자유가 만끽되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억압되고 억눌렸던 상태에서 풀려난 뒤의 정치상황은 다소 혼란스럽게까지 보일 정도였다. 그나마 장면정권은 경제개발을 위한 구체적 계획안을 마련하여 그 실천을 위한 방편을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장면정권이 들어선 지 겨우 1년여만에 일본군 장교출신이며 여순 반란사건에 가담했던 공산주의자 박정희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김일성의 남침에 대한 일정한 비판이 가해졌고 이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가 더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박정희의 반공교육이 옳았다는 모세원의 글을 접하면 분노하기에 앞서 가련하고 측은하기까지 하다. 나 또한 그러한 반공교육의 세대이지만, 친구들 중에는 북한군을 뿔이 달린 도깨비로 표현하는 친구들이 부지기수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웃지못할 헤프닝이다.

    박정희의 반공교육은 공산주의에 대한 그 실체적 교육이 되지 못하고, 박정희가 자신의 정당성이 결여된 정권을 이루어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그 실체적 교육의 장이 되지 못하고 오직 험담하기에만 열중한 결과로 한국에선 잘못 심어진 좌파가 생기었고, 친일파의 준동이 날로 더해 정치권력은 물론이고 경제권력까지 장악하는 기이한 현상을 낳게 하였다.

    모세원이 지적하였듯이 박정희의 유신헌법 발표가 있고나자 김일성도 북한 헌법을 수정하였다. 박정희가 진정 남북교류 및 화해를 위해 남북공동성명을 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일성과 야합했다고 해야 옳지 않겠나? 그런 박정희가 반공교육이란 모토를 내세우는 것이 역겨울 뿐만 아니라 잘못된 반공교육을 주입함으로써 더욱 가증스런 추태를 보였던 것이다.

    박정희의 반공교육으로 김일성의 공산주의를 이긴 것이 아니라 그 사생아를 낳은 결과만 빗은 것이다. 이러한 불운은 박정희의 세대에만 머문것이 아니라, 박정희가 자신의 수족에게 총살을 당한 뒤에 그 사생아인 전두환 노태우를 낳게하는 모태와도 같은 역활을 하였다.

    혹자는 박정희의 경제부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며 이로 말미암아 박정희의 군사독재에 대해 희석화시키는 반미족 반국가적 작태를 연출하지만, 그러한 정권인 박정희의 역사적 죄악으로 말미암아 지금 일제 강점기에 강제동원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의 문제가 불거지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 평가를 통한 국민적 합의로 이룩하지 못한 정치적 작태로 말미암아 고통을 격고 있는 사람들이 이제사 숨통을 트이며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경제부흥도 장면정권시절에 이미 계획했던 경제개발건을 모태로 이룩하였다는 사실도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역사에선 가정이 있을 수 없지만, 박정희가 나타나지만 않았더라면 장권정권이 그러한 경제개발 계획을 바탕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원조와 일본으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았더라면 과연 박정희보다 못했을까 하는 것이다.

    박정희가 김종필을 앞세워서 한 일본으로부터의 전후보상작업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역사적 평가를 토대로한 프랑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독일청산 작업을 할 기회를 상실하였던 것이다. 현실적으론 전국민이 희생자이긴 하나 특히 강제부역으로 인해 고통받은 수 많은 사람들의 기회마저 박정희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앞세움으로써 박탈하고 마는 철면피같은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박정희가 비록 경제적 부흥을 어느 정도 이룩하였다고는 하지만, 그 뒤안길에서 쓰러져가고 멸시 당한 수많은 국민들의 희생이 뒷받침되었던 것이다. 소위 김종필-오히라의 밀약에 의해 박정희는 일본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얼마전에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었지만, 이는 일부에 불과할 뿐이며, 김-오히라의 밀약에 관한 핵심적 내용들이 빠진 것이다. 김종필, 이후락이 한 때는 국정에 관여했고 정치에 관여한 인물들이기에 그들이 진정 민족과 국가를 위한다면 그 내막에 대해서 죽기 전에 국민들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모세원은 연못론을 내세원 박정희의 경제개발에서 발생한 모순과 비리들을 은근슬쩍 넘어가지만, 박정희의 독재정권이 국민에게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경제개발이었고,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김종필이 연관되었다는 4대의혹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삼성의 밀수를 눈감아 주고, 대일청구권으로 받은 막대한 자금과 국민의 혈세를 특정 기업에 쏟아 부으면서 이룩한 모세원이 말하는 연못론은 결국엔 누구의 배를 채워주었는가?

    박정희의 정치역정에서 더욱 용서를 받지 못할 짓은 지여감정을 조장하여 남한을 동서로 갈라놓은 것이다. 모세원이 말한 박정희의 반공교육은 김일성의 남치야욕을 막았다기 보다는 자신의 정적을 숙청하는 데에 조자룡의 헌칼마냥 전가의 보도로 사용한 것이다. 그 희생양이자 사생아가 바로 정형근이다. 유신헌법 이전에 동서가 지금과 같이 분열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박정희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들을 세뇌시켜 동서로 갈라놓은 것이다. 그래서 정치꾼들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상대지역의 국민들을 폄하하고 모략하는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 60-70대 노인들이 소위 박정희의 막걸리 세대라는 세평을 감안하면 박정희가 얼마나 저열하게 정치적 모략을 책동했는가를 알 수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남한내에서의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평가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하고 짜집기하여 곡학아세를 밥먹듯이 저지르는 모세원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시도때도 없이 준동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준동을 벌이게끔 장소를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 현재의 브레이크다.

    근래에 들어 브레이크의 칼럼을 보면 혼란스럽다. 일부 칼럼리스트나 기자들은 진보적 개혁적 성향을 보이면서도 많은 다수가 모세원, 김기백, 지x원같은 꼴통들이 준동하는 무대로 변해버렸다. 그들은 오직 하나 "우익이여 일어나라"라는 모태속에서 소위 상대적 진보세력의 영역이라는 브레이크라는 곳에서 난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브레이크는 조선과 쌍생아와도 같다. 좃선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고 뒤떨어지지 않는 수구꼴통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놈현의 실정과 식언에 대해선 일정한 비판이 가해져왔고 또한 가해져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밉기로서니 놈현정권을 저들보다도 못한 것으로 터무니없이 폄하해서는 안된다. 이는 저열하고 비겁한 행동이다. 진정 국민의 입장에서 역사의 거울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자세로 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놈현을 폄하하고 깍아내리는 것이라면 그것이 수구든 꼴통이든 가리지 않고 글을 실어주는 브레이크는 반성해야 한다.

    독자들에게 약속한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정체성마저 상실해가면서까지 사세를 확장하고 카럼리스트를 수용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제 브레이크는 좃선의 쌍생아로 자리매김을 할 것인지, 민중과 국민의 입장에서 발전하는 모습으로 나아갈 것인지 독자들에게 밝힐 때가 되었다고 본다. 좃선의 쌍생아가 아닌 국민과 역사앞에 떳떳히 자리매김을 하려고 한다면 저런 수구꽅통들이 준동할 수 있는 자리는 마련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경제실패에는 북한정권의 경제정책 실패에도 원인이 있지만, 근 30년에 가까운 미국의 대북한 경제봉쇄 때문이다. 미국이 이란의 팔레비 왕정이 무너지고 소위 신정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은 후세인의 이라크를 앞세워 대이란 대리전을 벌인다. 그런 후세인의이라크가 반미국 정치로 치닫게 되자, 제1차 걸프전쟁을 일으키고 10여년 동안의 경제봉쇄를 강행하였다. 겨우(??) 10년간의 경제봉쇄로 세계 제1일의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던 이라크도 경제적 피폐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30여년에 가까운 경제봉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현재의 경제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경이적인 일이다.

    현재 북한의 인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봉건주의적 정치상황하에서 인권이 문제라면 소위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벌어졌던 군사독재자들의 인권탄압에 대해 모세원은 열변을 토하다 자결했어야 했다. 모세원은 놈현정권의 미국의 대이라크 침공전에 참여한 것을 인권에 바탕을 둔 것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가관이다. 한 나라의 인권에 문제가 있다고 침공한다면 미국 역시 흑인이나 히스페닉들 및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때문에 침공을 당해야 한다. 인권이 문제라면 경제 정치적 행위로서 압력을 가해야 하는 것이지 이것이 그 나라를 침공해야 한다는 명분을 주는 것은 아니다.

    미국 민주당 정권시절인 카터시절에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불거진 것은 민주당 카터정권의 인권주의 정책의 산물이다. 카터의 인권주의 대외정책은 박정희의 입장에선 내정간섭으로 비추어졌으며, 정치적 갈등을 굴곡속에 주한미군 철수로이 대두되었으며 실지로 주한미군이 일정인원 감축되었었다. 그 만큼 박정희의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에 다달았다는 반증이었다. 소위 대학교수까지 역임한 정치학자인 모세원이 그러한 전후사정을 모를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를 뒤집어 말하거나 중요한 팩트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략해버리는 것은 치졸한 짓이다.


    모세원의 글에 대한 단상을 적다보니 글이 다소 두서없이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브레이크가 시대소리 이후에 확장되어 브레이크로 재탄생되면서 독자들에게 밝힌 모토가 많이 손상되었다고 봅니다. 비록 브레이크가 넷상의 언론이지만, 언론의 한 모양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기 위새어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립하여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브레이크를 보면 다소 섣부르기는 하지만 그 앞날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말고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 가관이다 2005/02/22 [00:20] 수정 | 삭제
  •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 출신임은 박 자신도, 그 후손 누구도 부인 한 적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박이 일본군을 떠나 독립군에 합류하면서 장준하와의 숙명적인 대결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통설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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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일제주구 부일민족반역도배 다카키 박정희 놈이 '독립군에 합류하면서 장준하와의 숙명적인 대결'...

    니놈 혼자의 설이지 뭐가 '통설'이냐?

    삶아놓은 소대가리가 웃을 개소리로다.
    사기를 쳐도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다카키 박가놈이 언제 독립군에 합류했는데?
    해방되고서?
    해방되고 와 합류하는데?
    다카키 박가놈이 일제군대에 있었지만 독립군 비밀당원이었다고 하는 것도 네놈들이 하는 개소리이지.

    뒤의 개소리는 더 읽어보지 않았다.

    모세원이라는 사이코 비슷한 팔푼이 놈의 글을 자꾸 실어주는 이진우는 도대체 정신이 있는 자인가 없는 자인가 도대체 뭐 하자는 짓거리인가.
  • 푸하하 2005/02/21 [23:32] 수정 | 삭제
  • 나이드신분이 긴 글 쓰시느라....수고 많으셨습니다. 동아일보기자와 국립목포대교수를 하셨다구요. 자랑이십니다. 한마디로 진정한 민족의 영도자 박정희를 비판하는 사람은 빨갱이라는 거군요. 착각은 자유지만 표현하자면 가끔은 무시받는 것도 각오하셔야 합니다.
    박정희는 김일성과 비교되어야만 비교우위가 있어요. 하지만 둘다 민족의 반역자임에는 분명합니다. 머...말해도 믿지 않으실테니....걍 잠이나 자렵니다.
  • 이금주 2005/02/21 [23:26] 수정 | 삭제
  • 모씨의 글을 보고 뭔가 착각하고 궤변을 장황하게 썻네유.
    과거사규명이 무력으로 권력을 잡고 반대파를 무지비하게 탄압한
    독재자 박정희의 못 됀 짓만 파헤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요.
    국민은 박정희의 공과죄를 명명백백 힌 다음에 박정희에 대한 판단은 모씨나 나도 아닌 국민이 하는거여/
    지금은 수구세력에 의해 박정희 일방적으로 미화되고
    영웅시 돼니까 문제지.
  • 임병현 2005/02/21 [23:14] 수정 | 삭제
  • 상기의 내용에 동의하면서 훌륭한 분석에 절대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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