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정권, '박정희 망신 주기' 연극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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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원 박사 ©브레이크뉴스 |
20003년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은 3월, 노는 전임 dj가 추진하던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재검토 하라고 지시했다. 그 때부터 지하에 잠자던 박정희는 지면 위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식자(識者)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어 2004년 3월에는 '친일진상규명법'이라는 것을 제정, 친일파를 색출해야 역사가 바로 선다면서 나라를 벌집 쑤시 듯 어지럽히더니, 결국 이를 주도하면서 서슬이 퍼렇게 설치던 열우당의 실세가 '제가 놓은 덫'에 걸려 낙마하는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했었다.
그 해 5월에는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가 상연되면서 드디어 영상세계에까지 박정희를 끌어내 망신을 주더니, 10월에 노 정권은 박의 기념관 건립계획을 완전 백지화하기에 이르렀다. 곧 이어 열우당이 박 전 대통령의 영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정수장학회'를 비위와 부정투성이인 단체라고 본격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함으로써 '박정희 망신 주기'는 박근혜 죽이기'를 위한 탐색전에 불과했다는 것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오히려 박근혜 인기 오르자 '박정희 죽이기' 본격화
그러나 노의 '코드 세력'들은 정수장학회에 대한 비난 정도로 박근혜를 끌어내리기에는 너무 미흡하다는 인식아래 박정희를 망신 주기 단계를 벗어나 아예 부관참시(剖棺斬屍)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지기에 이르렀다. 이에 그들은 서슬이 시퍼런 칼날을 곧추세우고 '동 키호테' 처럼 막무가내로 앞으로 전진, 11월 문래공원의 박정희 흉상을 철거하는 용맹을 과시했다.
그리고 12월에는 제정된지 9개월 박에 안된 '친일진상 규명법'을 개정하여 박 전 대통령을 조사대상에 포함시켰고, 새 해 들어서는 국정원, 검찰, 경찰,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 등 국가기관이 일제히 인권 탄압 등 박정권 시절의 모든 의혹사건 조사에 착수함으로써 박의 부관참시는 시간문제로 다가왔다.
1월 중순 외교부는 한일협정에 관한 문서를 공개하여 잘못된 이 한미협정은 미국의 주도아래 맺어졌다고 밝힘으로써 박 죽이기에 곁들여 반미감정을 부추기겠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노회(老獪)한 술수를 부리기도 했다.
짐승의 발자취도 남는데 하물며 영물(靈物)인 인간이 발자취를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 18년이라는 장기 집권을 했던 박의 발자취는 이 나라 곳곳에 뿌리 깊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제 광화문에 걸린 '광화문'이라는 현판은 박의 글씨라 해서 철거될 운명에 놓였다. 따라서 현충사를 비롯한 전국에 산재해 있는 박의 체취를 풍기는 유적도 머지않아 남김 없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박정희 공포증은 박정희 보다 열등함을 인정하는 것
왜 노 정권은 이토록 집요하게 박의 흔적을 지우고 박을 부관참시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가. 한마디로 노 대통령이 박 대통령을 매우 두려워 하고 있으며, 박의 후광으로 그 딸에게 행여 대권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임기 후반에 대한 불안감과 차기에 대한 초조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박 대통령의 철저한 반공정책에 의해서 김일성의 공산주의가 이 땅에서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했던 친북세력의 책동 때문이라는 비난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간이 상대를 무서워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위력에 눌려 겁이 난다는 뜻이다. 이는 상대의 능력이나 기량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할 때 마음 속으로부터 울어나는 공포감을 일컫는다. 이렇게 인간은 기량의 차이를 알고 나면 전율하게 된다.
일본의 전국시대 '외눈박이 용'으로 알려 진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는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자기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천하제패의 야심을 접고 승복했다는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마사무네'와는 반대로 박 전 대통령이 자기보다 기량이 뛰어나다고 인정하여 공포에 떨면서도 승복하지 않고 그를 깎아 내리려고 바둥거리는 데에 노의 불행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박 전 대통령을 인권을 말살시킨 폭군이라고 저주한다. 민주주의를 짓밟은 권위주의적 독재자라고 매도한다. 이 것은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그는 대통령 될 자질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지 않았다. 그에게는 뚜렷한 목표와 비전이 있었고, 그 것을 실행할 확실한 행동지침이 있었다.
노 대통령과 그와 코드 맞춘 인사들은 박 전대통령을 비난하고 욕함으로써 그를 무서워 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서워 한다는 것은 상대보다 능력과 기량이 모자란다는 것을 나타내는 심리적 작용이다. 이리하여 노는 스스로 죽은 제갈공명(諸葛孔明)에게 쫒긴 사마중달(司馬仲達)의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늘 날 노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듣고 있는 것은 잘 못된 정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대통령 자리에 걸맞은 능력과 기량이 부족하다는 평가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앞서 예를 든 일본의 마사무네 처럼 솔직하게 자기의 열등함을 인정하고 상대의 공과(功過)의 행적 모두를 반면교사로 삼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모자란 자기를 대통령으로 뽑아 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보은의 길이다. '마당 터진 데 솔뿌리 걱정하는 식'이어서는 자기의 기량 부족과 실험정치에 대한 죄과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72년 10월 이른 바 '10월 유신'이 선포됐을 때 기자로서 필자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조종이 울렸다고 목메어 절규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그의 경제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기보다 인권 탄압, 민주주의 말살의 폭압정치를 더 비판해 왔었다.
盧와 그 추종세력, 朴의 폭정에 힘입어 오늘의 영광을 누려
그런데 오늘 날 노와 그 추종세력인 386이 박의 매장을 본격 시도하자 필자는 그들을 배은망덕 한 무리라고 보면서 박에 대해 안스러운 마음머저 갖게 되었다. 박 대통령의 폭압정치가 없었다면 오늘의 그들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감옥에 가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감옥생활의 경력이 없었다면 그들에게 오늘의 '영광의 자리' 가 절대로 주어질 수 없었을 것이기에 말이다. 이렇게 은인이 수혜자들에게 배신당하고 그 주검이 조폭들에게 난도질 당하는 것을 보고는 목석이라도 안타까움을 감추기 어려웠을 것이기에 갖는 감회다.
어떤 사람의 무의식적 행위에 의해 의도하지 않았던 영예를 얻은 사람은 반드시 그 은인을 응징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떳떳하지 못하게 태어난 모태(母胎)를 드러내기를 부끄러워 하기 때문이이라는 것이다.그들의 박 대통령 죽이기는 바로 이런 열등의식에서 비롯 된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박은 그들의 오늘이 있게 한 은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며, 박을 욕하고 저주하고 그의 흔적을 역사에서 지우려 하는 짓은 배신자만이 할 수 있는 추악한 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진리는 지우려 해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박의 공과도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요즈음 국민들의 가슴에 오히려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에 대한 향수가 깃들이기 시작하고 있느 것이 그 좋은 예다. 엊그제 여론 조사에서도 '박이 잘했다'는 긍정적인 답이 82.5%로 압도적이었다지 않는가.
'박 죽이기'는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에 대한 향수 불러
노 정권이 연출하고 있는 '박 대통령 죽이기' 는 국민의 뇌리에서 잊혀진 박의 망령을 불러내 박을 살아 숨쉬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어설픈 그 연극은 오히려 박을 경외(敬畏)의 존재로 승격시켜 버렸다. 혹 떼려다 하나 더 붙인 꼴이라고나 할까.
그리하여 박의 폭정을 비판하던국민들마저 박 전대통령과 비명에 간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에 젖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비극이라고 해야 할지 희극이라고 해야 할지 노 정권의 현 주소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산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진정으로 박 전 대통령을 경멸한다면 그를 철저하게 무시해 버리기를 바란다. 그의 망령을 불러내어 나라를 온통 시끄럽게 하는 짓거리를 당장 그만 둘 것을 당부한다. 이는 박을 죽이려다가 욕교반졸(欲巧反拙)의 결과를 가져와 도리어 노 대통령의 수명이 단축될까 저어되어 노파심에서 하는 애정어린 충고다. "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던 장자(壯子)의 충고를 새삼 가슴에 새겨야 할 때가 진정 이 때가 아닌가 싶다.
[모세원 박사 프로필]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 고대 교육대학원 석사. 단국대 대학원 정치학박사. 4.19 때'전국대학생 공명선거투쟁위원회 조직, 수석 부의장. 육군 중위 예편.조선일보 수습 10기로 사회부 기자. 동아일보 기자 역임. 국립 목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년 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