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10개월 정도이면 족할 범죄인데도 범인이 밉다고 징역 10년형을 선고하면 이 또한 정의가 없다. 가혹한 정의는 겁을 주는 것이지 인간 구제는 아니다. 형벌은 인간을 벌하는 게 아니라 그가 저지른 죄를 벌하는 것이다. 이광재 강원도 지사 당선자를 벌하는 것은 인격 자체를 말살하자는 게 아니라 그의 정치부패 혐의만큼 자유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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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과 해군은 기습을 허용하고 초기 보고는 일부 잘못하였지만, 대잠헬기 즉각 출동 등 해야 할 비상조치는 다 했고, 생존자 전원을 구조하였으며, 무엇보다도 폭침범 김정일의 지문을 현장에서 찾아내 우리가 반격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잘 한 점과 잘못 한 점을 균형있게 살피면서 처벌의 정도를 결정해야 한다. 형사처벌은 고의성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실수는 보통 처벌대상이 아니며, 중대한 과실일 경우에만 형사처벌을 한다. 합참의장의 행동에서 그런 고의성을 찾을 수 없다.
합참의장은 적의 불법 기습에 의한 피해자이다. 피해자는 보호, 격려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도 처벌해야 한다면 적에 대한 응징과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북한 잠수함 기지를 폭격하자든지, 김정일을 죽이자든지, 그를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기자는 주장을 한 사람이라야 합참의장의 형사처벌을 주장을 할 자격이 있는 게 아닌가. 김정일의 범죄는 덮어주면서 합참의장을 처벌하자고 주장하면 이는 공정성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적행위이다.
'합참의장을 형사처벌하자'면 그 전에 '북한 개입 증거 없다'는 말을 보름 이상 한 청와대 안보-홍보 참모들도 형사처벌하자는 주장을 해야 한다. 유언비어를 유포한 정치인과 기자들을 감옥에 보내자고 한 다음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게 공정하다. 한국에는 적과 권력자에겐 굽신거리고 아군과 힘 없는 이들에겐 가혹한 사람들이 많다. 적과 악당을 응징할 용기가 부족하면 그 열등감을 만만한 집안 식구 욕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이들이 있다.
영국 극작가 세익스피어는 이 세상은 무대이고 인간은 연극배우라고 보았다. 인간은 일생 중 일곱 가지 배역을 한다는 것이다. 버둥대는 갓난아기, 변덕 심한 학생, 용광로 같은 연인, 겁 없는 군인, 근엄한 심판자, 축 늘어진 노인, 그리고 마지막엔 이빨 빠진 갓난아기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한국엔 남을 단죄하는 데 취미를 붙인 '근엄한 심판자'가 너무 많다. 세익스피어에 따르면 그들도 곧 축 늘어진 노인을 거쳐 '이빨 빠진 갖난 아기'로 돌아간다. 힘이 있을 때 너무 오만하지 않아야 힘이 없을 때 구박을 받지 않는다.
현역 대장의 옷을 벗기는 정도는 성이 안 차니 감옥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잠시 손을 가슴에 얹고 그 기준을 자신의 평소 행동에 적용하여 나름대로 선고를 해보기를 권한다. http://www.chogabje.com
*이 글은 조갑제닷컴에 실린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