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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의장 형사처벌 주장 '근엄한 심판자들'

“한국엔 남을 단죄하는 데 취미붙인 '근엄한 심판자' 너무 많다”

조갑제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0/06/14 [07:04]
정의감은 진실과 공정성과 적정성에 기초해야 한다. 측근의 잘못은 눈 감아 주고 정적의 약점만 캐는 사람은 공정성이 없으므로 정의를 구현할 수 없다. 여당은 감싸고 야당만 조사하는 검찰은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그런 법치는 폭력이다. 
 
징역 10개월 정도이면 족할 범죄인데도 범인이 밉다고 징역 10년형을 선고하면 이 또한 정의가 없다. 가혹한 정의는 겁을 주는 것이지 인간 구제는 아니다. 형벌은 인간을 벌하는 게 아니라 그가 저지른 죄를 벌하는 것이다. 이광재 강원도 지사 당선자를 벌하는 것은 인격 자체를 말살하자는 게 아니라 그의 정치부패 혐의만큼 자유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 조갑제   
지금 천안함 사태에 초기 대응을 잘못한 이상의 합참의장(사직서 제출)을 형사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정성과 적정성과 진실의 원칙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합참과 해군은 기습을 허용하고 초기 보고는 일부 잘못하였지만, 대잠헬기 즉각 출동 등 해야 할 비상조치는 다 했고, 생존자 전원을 구조하였으며, 무엇보다도 폭침범 김정일의 지문을 현장에서 찾아내 우리가 반격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잘 한 점과 잘못 한 점을 균형있게 살피면서 처벌의 정도를 결정해야 한다. 형사처벌은 고의성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실수는 보통 처벌대상이 아니며, 중대한 과실일 경우에만 형사처벌을 한다. 합참의장의 행동에서 그런 고의성을 찾을 수 없다. 
 
합참의장은 적의 불법 기습에 의한 피해자이다. 피해자는 보호, 격려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도 처벌해야 한다면 적에 대한 응징과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북한 잠수함 기지를 폭격하자든지, 김정일을 죽이자든지, 그를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기자는 주장을 한 사람이라야 합참의장의 형사처벌을 주장을 할 자격이 있는 게 아닌가. 김정일의 범죄는 덮어주면서 합참의장을 처벌하자고 주장하면 이는 공정성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적행위이다.
 
'합참의장을 형사처벌하자'면 그 전에 '북한 개입 증거 없다'는 말을 보름 이상 한 청와대 안보-홍보 참모들도 형사처벌하자는 주장을 해야 한다. 유언비어를 유포한 정치인과 기자들을 감옥에 보내자고 한 다음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게 공정하다. 한국에는 적과 권력자에겐 굽신거리고 아군과 힘 없는 이들에겐 가혹한 사람들이 많다. 적과 악당을 응징할 용기가 부족하면 그 열등감을 만만한 집안 식구 욕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이들이 있다.
 
영국 극작가 세익스피어는 이 세상은 무대이고 인간은 연극배우라고 보았다. 인간은 일생 중 일곱 가지 배역을 한다는 것이다. 버둥대는 갓난아기, 변덕 심한 학생, 용광로 같은 연인, 겁 없는 군인, 근엄한 심판자, 축 늘어진 노인, 그리고 마지막엔 이빨 빠진 갓난아기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한국엔 남을 단죄하는 데 취미를 붙인 '근엄한 심판자'가 너무 많다. 세익스피어에 따르면 그들도 곧 축 늘어진 노인을 거쳐 '이빨 빠진 갖난 아기'로 돌아간다. 힘이 있을 때 너무 오만하지 않아야 힘이 없을 때 구박을 받지 않는다.
 
 현역 대장의 옷을 벗기는 정도는 성이 안 차니 감옥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잠시 손을 가슴에 얹고 그 기준을 자신의 평소 행동에 적용하여 나름대로 선고를 해보기를 권한다. http://www.chogabje.com
 
*이 글은 조갑제닷컴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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