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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얼과 氣가 가득담긴 김유준의 그림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소재, 현대적 시각화에 성공

문일석 기자 | 기사입력 2010/04/27 [22:37]
최근, 화가 김유준의 작업실에 초대된 적이 있다. 신철 화백의 초대로 김 화백의 스튜디오에 가게 됐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그림을 보기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신철, 금동원 등 주변 화가들끼리 저녁을 하는 자리에 요행스럽게 끼이게 된 것이다.
 
봄이지만 밤의 기온은 차가웠다. 그날 밤 그는 등 쪽으로 구멍이 뚫린 검은색 셔츠를 입었다. 그 자리의 다른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고도 춥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셔츠 차림이었다. 몸의 열이 대단한 화백임을 알게 해주었다. 그의 화실 마당에는 고기를 구워서 먹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김 화백(화실 전화 011-285-7532)의 고기 굽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불 위의 고기들이 타지 않도록, 그의 손은 바삐 움직였다.
 
보통 사람들에 비해 추위를 타지 않은 화백, 고기를 잘 굽는 화백. 그가 어떤 화가인지는 그의 작업실에 들어가서야 알 수 있었다. 집안에서 오래된 전시회 때 만든 도록을 보게 됐다.


▲ 김유준  화백   ©브레이크뉴스
▲ 김유준  작품   ©브레이크뉴스
▲ 김유준  작품   ©브레이크뉴스
김 화백의 전시회를 유치했던 화랑의 어느 관장은 김 화백에 대해 “한국적 산새와 달과 별, 우뚝 솟아있는 솟대 등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소재를 토대로 자연의 이미지를 단순화하고 현대적으로 시각화한 작품세계를 영위해가고 있는 작가”라고 표현했다.
 
그 관장은 “작가 김유준은 그가 출생한 지역, 광주. 그중에서도 지역의 유명한 산, 무등산에 대한 추억과 대자연이 가진 특별한 에너지를 작품주제의 모티브로 삼고 있다. 어린 시절 무등산을 오르내리며 느꼈던 모험심, 미래에 대한 포부를 안고 성장해오면서 성인이 된 지금. 유년기의 추억과 자연이 가지는 신화적 세계를 상호 연상하여 그려낸 화면은 서정적이면서 자연을 희구하는 그의 고유의 작품세계를 느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의 작품 화면의 주류를 이루는 푸른빛은 근원적인 세계로 이끄는 역할을 하며 이러한 색을 바탕으로 함께 공존하는 산, 해와 달, 비, 소나무 등의 요소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과 인간의 염원이 담긴 하얀 솟대가 솟아있는 형상은 자연과 인간의 상생, 신화적인 사유체계의 회복을 갈망하고 있다”면서 “작가 김유준의 이러한 화면은 유화임에도 불구하고 얼핏 한 폭의 전통 산수화의 이미지를 가지고도 있으면서도 생략과 기호적인 요소들의 조합으로 새롭게 생성되는 현대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더불어 그만의 독창적 기법(녹색과 청색의 기조위에 토담이나 회벽의 효과를 내기 위해 아크릴에 규사, 대리석 가루를 섞어 프레스코를 연상시키는 마티에르 효과를 얻어내고 그 두꺼운 표면을 긁어 생긴 가는 선들은 화면을 리드미컬하게 만들어 극적 완성도를 높여줌)으로 얻어낸 화면은 강한 한국적 정서, 한국의 얼과 기가 깃들어 있고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고 쓰고 있었다.
 
미술 평론가 김복영 교수(홍익대)의 평도 실려 있었다.
 
중언부언의 글보다는, 김 교수의 글 전체를 옮겨 주는 게 김 화백이 떤 화가인지의 이해를 돕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음은 김 교수가 쓴 김유준 화백론이다.
 
미술 평론가 김복영 교수의 평(전문)
 

▲ 김유준  작품  ©브레이크뉴스
▲ 김유준   작품   ©브레이크뉴스
▲ 김유준   작품   ©브레이크뉴스
일찍이 1990년 봄에 그는 <예술이라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시간적 한계를 넘나들 수 있는 제도적 장치임을 믿고 싶다>고 썼고 같은 해 여름에는 <꿈틀거리며 지나가던 달팽이의 하얀 흔적의 기억은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하는 나의 복합공간의 이미지 세계를 이어주는 고리가 되어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앞의 말은 <시간>에 대한 관심을, 그리고 후자의 말은 흔적에 대한 <기억>을 소중히 하고자 한다는 것을 지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장위동의 집에서 나와 신촌 작업실로 출근하면서 1990년대의 상당한 시간들을 거의 하루도 걸르지 않고 시간과 기억속의 여로를 걸어 왔다. 걸음을 걸으나 차를 타나 그의 마음은 언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달팽이의 하얀 흔적>과 같은 족적들을 생각하고 또 뒤지면서 살아왔다.

이를테면 그는 저 의식 너머에서 떠오르는 나무, 꽃, 돌, 기호나 숫자를 헤아리며 열매라든가 구름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것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추억, 기억, 예감, 기대와 같은 내면적 삶을 채우는 중요한 것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로 1990년대 초기에는 이러한 몇몇 품목들이 작품에 대거 등장하였지만 점차 해, 달, 별이 추가되었고 근자에는 지리산, 설악산, 달마산, 무등산, 월출산, 인수봉과 같은 산들에서 볼 수 있는 봉우리와 폭포 그리고 사찰이 도입되었다. 이를테면 천왕봉, 대청봉, 토왕성 폭포, 미황사(해남), 나아가서는 공룡능선이 사랑을 받고 있는가 하면 여기에도 솟대나 전통기와집, 삼각형과 원, 타원들을 겹쳐놓은 도식들이 애호되고 있다. 이 일련의 것들은 모두 그의 기억속의 사물들로 나타난다는데 전반적인 특징이 있다. 말하자면 현실적 경험의 대상들이라기보다는 그리운 먼 옛날의 추억들은 내재한 자태이거나 상당 부분이 바래지고 남은 흔적이나 기호(부호)의 자태로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빨강, 버밀리언, 불랙암바, 그레이블루, 울트라마린 등 단일색조의 넓은 색면 위에 민화나 전통산수화풍의 산과 나무, 구름, 해, 달이 그려지면 하늘과 땅 그 어디에서고 별자리를 상징하는 듯한, 점과 점을 잇는 선들이 허다하게 배치되고 이어서 하얀 솟대가 세워진다. 솟대주변에는 이를 보좌하는 삼각도식의 산이나 기와집, 아니면 지그재그선의 능선이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일체의 것들이 요약되었거나 도식적으로 전치되었으면 선과 색면으로 번안되어 나타내어졌다. 안료에 돌가루를 섞어 두툼한 질감의 벽면을 만든 후 강한 명도대비는 물론 산뜻한 보색대비를 동원함으로써 그리고 사물들을 흡사 우리의 옛 전승양식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과 도상들로 배치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용이하게 옛 추억을 반추하도록 할 뿐 아니라 사물들이 배치된 공간이나 자리에있어서 자유로운 선택을 허용함으로써 시간의 정상적 연쇄에서 해방시켜 주고 있다.

그는 벌써 십수년의 세월을 이러한 맥락을 추구해 오면서 그 자신만의 기억속의 시간여행을 즐기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한 자신의 여행에 쉽게 동참케 하고 즐거움을 더해 주기도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그가 말하고 있듯이 우리로 하여금 그의 기억여행 속에 쉽사리 이끌리도록 유인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체질적으로 제도를 싫어하며 특히 작업에 있어서 합리적인 것을 싫어한다. 이성의 잣대로 해석하고 모든 법칙을 알아냈다고 하지만 나아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 앞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달을 정복하였으나 그 순간 우리는 달에 대한 꿈과 정서를 상실해 버렸다. 자연을 정복하였으나 이제자연은 상실해 버렸다. 자연을 정복하였으나 이제자연은 우리를 저버리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자연의 일부라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가 자연의 주인임을 자처하면서도 인간화된 자연을 보고 놀라워하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노트). 이 언급은 그가 왜 시간과 기억의 여행담을 우리에게 선사하고자 하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또한 그 스스로가 어떠한 연유에서 시간과 기억을 소중히 여기고 <시간과 기억>이라는 요컨대 탈형식적 작품양식을 천착하고자 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이에 의하면 제도와 합리화가 우리로 하여금 병들게 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작품은 따라서 제도와 합리화가 시행되기 이전의 세계를 엿보게 함으로써 이처럼 합리화된 세계와 대질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이고 거의 생리적으로 그의 탈 합법적 기질성을 그림 속에 부어넣고자 하였다. 그 하나의 방법론으로 채택된 것이 바로 <시간>과 <기억> 속으로 자유롭게 여행하는 방법이었다. 마치 발가는 대로 여행하듯이 그림을 통해 초시간적으로 기억들을 합성하여 하나의 <가상적> 기호체계를 연출해 냄으로써 그 스스로가 유년시절에 경험했던 진한 추억들을 재생해 내려는 것이다. 이를 테면 그는 이러한 수법을 통해 제작한 그림 속에서<소나무와 산허리를 감싸고 불어오는 바람소리, 부엌 저편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나를 놀래고 긴장하게 하였던 번개와 천둥소리>(노트)를 듣고자한다고나 할까.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말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작업하는 방식과 방법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합리적 절차를 떠나고자 하였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여명의 공간과 색이기를 기대한다"
 
▲ 김유준  작품    ©브레이크뉴스
▲ 김유준  작품   ©브레이크뉴스
▲ 김유준  작품   ©브레이크뉴스
▲ 김유준 작품    ©브레이크뉴스

화가 김유준은 “시간과 기억”이란 제하에 자신을 담았는데, 그 작가 노트에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동심과 유년기의 추억들은 잃어버린 전설과 세계와 같이 아련히 남아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무등산의 모든 것과 함께 하였다. 국민학교 때 무등산 아랫마을로 이사를 하였다. 이때부터 무등산은 나의 놀이터요, 정원이었다. 마음껏 뛰고 뒹굴고 엎어지고 쓰러지고 하던 곳이다. 또한 나의 아픔, 불만, 동경, 희망 등에 대한 것들을 부드럽고 따스하게 답해 주던 곳이다. 그곳에는 수많은 돌, 나무, 꽃, 열매, 구름, 해, 달, 별들로 가득하였다. 마을입구에는 웅장하고 기묘하게 버티고 서 있는 당산나무를 볼 수 있다. 그곳에선 매년 대보름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이곳 저곳 전설이 얽혀있고 밤이면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에 휩싸여 나다니기가 겁이 났던 추억이 어린 곳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아랫마을 섬거리라는 마을이름도 어렴풋이 기억하기에 어떤 의로운 사람이 관가로 불려가다 은혜를 입은 개미들이 말발굽을 물고 버티는 바람에 말이 움직이지 못하였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구전되어 온 전설은 마을 사람들에게 알지 못하는 자부심으로 자리잡고, 신령스러운 산, 무등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지리적 요건은 예로부터 골짜기를 숭상하였던 사상에 근거하여 풍수적으로 매우 좋은 곳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무등산의 정기는 사방팔방으로 뻣쳐 그 힘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윗마을엔 일찍이 의제 허백련 선생이 기거하며 후학을 가르치던 춘설헌도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설레임과 모험심으로 가득 찼던 어린 시절 무등은 나의 미래를 열어 주었고 삶에 있어서의 분방한 감정을 체험하게 했던 그런 곳이다. 그곳에서의 동심은 쉼 없이 어우러지는 천변만화의 자연과 함께였다”고 회고했다.
 
이어 “길섶의 풀 한 포기, 아름드리 소나무, 산허리를 휘어 감고 피어오르는 구름, 유난히도 빛났던 밤하늘의 별들, 바위와 작은 돌들을 어루만지며 흘러가는 물… 글로서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감정은 그 후 나의 삶에 있어서 너무도 확연하게 각인 되어 불치의 병처럼 따라다녔다. 생명이 잉태되고 사라지던 기억과 추억이 닿는 곳이기에 작다기 보다는 너무도 큰 세계이다.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며 아름답고 활기차고 다채롭고 찬연하다는 사실에 사랑을 배웠고 나도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으며 세상에 죽어있고 공허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실감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작업에 있어서 나는 합리적인 것을 싫어한다. 이성의 잣대로 자연을 해석하고 모든 인과율의 법칙을 파악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나아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달을 정복하였으나 그 순간 우리는 달에 대한 꿈과 정서를 상실하여 버렸다. 자연을 정복하였으나 이제 자연은 우리를 져버리고 있다. 인간을 스스로 자연의 일부분이라 하였으나 이제 우리의 주인임을 스스로 자처하면서 인간화된 자연을 보고 소스라치고 있지 않는가. 소나무와 산허리를 감싸고 불어오는 바람소리, 부엌저편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나를 놀래고 긴장하게 하였던 번개와 천둥소리들은 지금도 나를 흥분하게 한다”고 서술했다.
 
또 이 작가노트에서는 “무엇인가를 갈구하지만 분명하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달이 기우는 어슴 프레한 여명에 인간의 염원을 담은 솟대가 어둠과 밝음을 연결하고 땅과 하늘을 안으려는 듯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밤하늘의 별들은 인간의 수 만큼이나 많고 그 별들은 산과 폭포, 바람과 구름을 벗 삼아 세상 가득히 넘친다. 흥분한 정령들을 달래고 잠재우려는 듯이 소슬대문 너머 벽들 사이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면서 “병풍에도 상보에도 그리고 조용히 잠든 어린애의 꿈속에도 그려진다. 적막의 고통이 나를 괴롭히고 희망과 실망, 그리움과 동경, 혼돈과 방황 속에 빠져있을 때 우리의 기억들은 가슴속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이름 모를 행복감으로 어루만져 준다.  인간을 제약하는 선이며 악, 제도며 규범, 윤리나 교육은 저편의 이야기이다.  그곳에는 자연과 인간의 구별이 없다. 비와 구름이 만나고, 해와 달이 함께 한다. 자연과 대상이 분별없이 어우러지는 그런 공간이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모든 것이 혼돈과 함께 하지만 그것은 질서 없는 절대적 어둠의 공간도 밝음만의 공간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가능성과 새로움을 간직한 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여명의 공간과 색이기를 기대한다. 오래된 나무에서 경외심을 느끼고, 산자락을 휘감은 구름에서 신령스러움을 느꼈던 사람들, 돌과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인간의 염원을 갈구하였던 그들은 모두가 예술가가 아니었던가, 생활 속의 모든 것들이 예술품이었던 그런 시절 예술가라는 직업은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작가 노트의 다음 대목에서 그가 지향하는 예술세계가 무엇인지를 감지케 된다.
 
“나의 그림에서는 나무, 꽃, 돌, 기호, 숫자, 인체의 부분, 열매, 구름 등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지표가 되어 준다. 또한 그것들이 보여주는 추억, 기억, 연상 그리고 예감과 기대등은 다만 나열됨으로 이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개별성을 띠고 단위적 이미지를 통하여 일상적 경험을 뛰어넘는 나의 내면적 삶의 총체를 이룩하려 한다”

시골 마당에서 고기를 잘 굽더니 그림도 잘 그려
 
다시 고기 굽던 김유준 화백을 옆에서 지켜본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김 화백이 시골이랄 수 있는 경기도 양평으로 이사를 해서 그림에만 몰두하다가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는 그야말로 담소의 자리였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는 그날 밤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했다. 매연이 전혀 없는 하늘에서는 반짝이는 별들이 금방이라도 여럿이 함께 하는 그 자리에 쏟아질듯 했다.
 
협소한 화실 속, 그의 그림은 불타고 있었다. 추위를 타지 않은 그의 뜨거움이 그림 속에 온전하게 녹아 있었다. 뜨거운 참나무 불 위에 두꺼운 돼지고기를 올려놓고 그 고기를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잘 구워내던 김유준 화백은 그림도 잘 구워냈다.
 
그의 그림은 막 구워낸 고기처럼 신선했고, 하늘의 별들처럼 아름답게 다가왔다.
 
해,달, 별, 산, 소나무, 솟대, 기와집 등이 등장하는 그의 그림은 한국의 얼과 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혼자 보기 아까워 그의 그림 몇 점을 소개해본다. moonilsu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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