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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라는 따뜻한 섬, 그 이상향

드라마의 정형화를 깨뜨린 아일랜드

조현우 | 기사입력 2004/10/24 [03:31]

한국의 드라마는 갈수록 정형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청률을 위해서 톱탤런트를 기용해야 하고, 톱탤런트를 쓰려면 제작비가 많이 필요하게 되어 외주제작을 맡기고, ppl로 도배가 된 채 비슷한 드라마가 연속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방영 내내 시청률엔 비록 고전했지만 적어도 위에서 열거했던 드라마의 정형화에선 자유로웠던 드라마 아일랜드가 종영되었다. 정형화된 수많은 똑같은 모습들의 도시에서 조금이나마 멀리 떨어져있던 아일랜드라는 섬, 그 섬에서 8주간 보냈던 기억을 되살리고자 한다.

아일랜드가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것은 ‘네 멋대로 해라’의 인정옥 작가, 그리고 그녀의 페르소나 이나영의 캐스팅이었다. 아일랜드와 네 멋대로 해라는 접근방식의 유사한 부분이 물론 존재한다. 드라마의 단골소재인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를 풀어가며 재해석함에 있어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대사는 의미심장함으로 다가온다. 세상과는 약간 동떨어져 있는 가치관을 지니긴 했지만, 그들은 모두 우리들 안에 있는 주인공들이고 우리자신이다.

그러나 인정옥 작가는 이런 유사함이라는 수식어를 떨쳐버리고 네 멋대로 해라라는 매니아 드라마에서 보다 개념을 좁혀 과감하게 컬트 드라마로 변신을 꾀한 듯 하다. 아일랜드는 역대 어느 드라마보다 시청자와의 소통성이 부족한 드라마다. 주인공들의 대사 주고받기식과 비슷한 빈도로 시청자에게 묻는 독백식의 대사가 이렇게 많이 나온 드라마가 있었던가. 전작 네 멋대로 해라에서 물론 이런 형식이 엿보이긴 했지만 아일랜드에서는 집요할 정도이다. 이것은 일방적으로 권선징악, 해피엔딩 식으로 결말을 맺는 여타 드라마의 주입식 결론을 떠나, 하나의 이야기를 시청자의 기준에서 고를 수 있는 예의 바른 컬트 드라마로의 변신을 꾀한 것이다.

아일랜드는 시청자들에게 방영이 끝난 후에도 주인공들끼리의 연결관계가 어찌 되었는지, 대체 이 드라마가 무슨 의도를 전달하려고 했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느낌과 동시에 웃음속의 슬픔, 눈물속의 미소가 떠오르게 된다. 이것은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보여줬던 현실적인 대사와 디테일한 촬영, 대사보다 더 전달력이 강했던 음악과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움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매 회가 끝날 때 마다 다음 회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고, 이것은 그동안의 드라마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에게 하나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다음 편을 예측함을 포기하고 가볍게 브라운관에 앉은 그때서야 인정옥 작가의 이야기는 가슴으로 전해진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지는 드라마- 어떤 결론으로 정리하지 않고 마지막 회에서도 담담하게 주인공들의 살아갈 모습을 비춰준 드라마- 그것이 바로 아일랜드인 것이다.


주인공들에 관한 이야기도 드라마 방영 내내 지속되었다. 네 멋대로 해라의 전경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우려와는 달리 이나영은 같은 작가의 연속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도박성 출연으로 그녀만의 연기궤도에 올랐다고 느껴진다. 흔히들 감정연기에 있어 가장 쉬우며 어려운 것이 눈물연기라고 하는데, 유난히 우는 장면이 많았던 슬픈 중아를 아주 잘 소화해냈다. 김민준의 연기가 가장 논란에 휩싸였는데 다모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아쉽겠지만, 주머니 속의 카리스마를 잠시 놓아두고 헐렁함으로 연기한 재복역은 하나의 반전연기라고 부를 정도로 깜짝 변신이었다. 강국역의 현빈은 차세대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는데 어느 누가 맡았어도 잘 들어맞을 것이라는 주위의 말도 있지만, 선한 눈과 절제된 표정을 소화하는데 있어 또래 연기자들과는 분명 다른 행보를 보여줬음에는 이견이 없을 듯 하다.

다른 세 배우가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다고 한다면 김민정은 그야말로 완벽한 변신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시연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불안한 가정환경을 지니는 것에 비해 시연은 주어진 가정환경을 이끌어 나가는 당찬 이미지와 동시에, 에로배우라는 직업의 비애를 동시에 담아야 하는 힘든 캐릭터였다. 에로배우 역할이라는 황색적인 느낌과 현실의 무게에 짓눌림을 표현한 김민정의 연기는 네 명의 주인공 중 가장 탁월했다. 4명의 주인공 각각이 판단하는 각기 다른 두 사람에 있어 중아-재복-국-시연 어느 한 역도 소홀함이 없이 균등하게 가슴을 울리는 대사를 배치한 것도 숨쉬는 캐릭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해외입양-4각관계-혼전동거라는 식상한 소재와 모두 사회와 동떨어진 캐릭터들이라는 편견속에서 아일랜드는 삐걱거릴 법도 했다. 하지만 분명 지금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 나도 한번쯤 느껴봤었고 앞으로 느껴볼 감정의 소용돌이라는 마음의 동요는 드라마의 리얼리티도 살려줬고 그 근거는 한 회, 한 장면 마다 느껴지는 세심한 대사와 감정의 전달이었다. 그 흔한 재벌과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닌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시청률에 욕심내지 않고 작가주의라고 칭하며 출발한 드라마만큼 코드가 맞는 시청자들만 보게 된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계속해서 회자될 대사와 장면들을 다시 찾게 될 때 다시 아일랜드라는 섬으로 잠깐 들어가서 지독한 현실 속에 따뜻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평균 10%도 안 되는 시청률로 종영했지만, 그 10%를 부러워해야 할 만큼 아일랜드는 기억에 남는 섬이자, 우리들의 이상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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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 2004/10/24 [20:16] 수정 | 삭제
  • 첫 번째 이나영사진밑에 이나영:~~~ 이거 뭐냐
    애꿏은 조현우 맞춤법 틀렸다고 욕먹게 할려고 웹디들이 자나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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