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9월22일 오후 7시 서울고미술동우회(회장=문영식 전 언론인) 초청을 받아 이 모임의 회원을 상대로 강연을 했습니다. 이 동우회의 사무실은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아리랑 갤러리에 있습니다. 아래는 이날 강연문의 전문입니다.
서울고미술동우회(회장=문영식) 초청 강연문(전문)
저를 초청해주신 서울고미술동우회의 문영식 회장님, 손동모 총무님 감사합니다.
저는 서울누드화미술관을 설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문일석 입니다. 직업은 인터넷신문인 브레이크뉴스의 발행인, 시인, 작가입니다.
▲누드화 1,600점 소장...“누드화미술관이 만들어지기를 소원”
저는 서울누드화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누드화를 소장하느라고 16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2023년 9월22일부로 총 1,600점의 누드화를 소장하게 됐습니다. 이후, 누드화를 소장하려는 노력은 지속될 것입니다. 1,600여 작품을 소장하고 보니, 이제는 이 일을 포기하기도 어려운 지경이 됐습니다. 어쩌겠어요? 그냥, 해오던 일이니 계속 하렵니다!(하하하...)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분들은 누드화를 얕잡아 보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부부가 사는 집에 남편 되는 분이 누드화를 구입해 놨는데, 아내 되는 분이 “왜 여자가 벌거벗은 것을 그린 그림을 집안에 걸어놓느냐?”며 성화를 부리는 분들이 있답니다. 필자에게도 직접 “그런 그림들을 모아서 미술관을 만들다니...쯧쯧~”이라고, 혀를 차는 분들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누드화란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작품 중 최고의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이 생각에만 몰두하렵니다. 어느 장소에, 누드화미술관이 만들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한국을 찾아오는 세계인들이 이 미술관을 방문, 아름다운 누드화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설립자의 뛰어난 예견
이제 제가 가는 길은 어느 방향일까요? 오로지 소장 누드화 2,000점을 향하여 전진하는 길입니다. 그림 한 점에 100억 원을 호가하는 그림을 소장한 미술관들도 있다고 합니다. 저에겐 아직까지 그런 비싼 그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누드화 소장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누드화가 꼭 저와 함께 해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 중의 하나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입니다. 그 미술관의 최초 설립자는 작은 동네의 극장 주인이었는데, 어려운 환경에서 그림을 모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은 비가 오면 비가 줄줄 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분의 그림소장 정신이 오늘날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존재케 하는 동력이 됐다고 합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설립자는 “앞으로 좋은 미술관이 만들어 질수 있다”는 뛰어난 예견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분의 수집-소장 정신을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현대의 대한민국과 미켈란젤로 시대의 유럽 '비교'
이탈리아 출신의 예술가인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3.6.~1564.2.18.)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천지창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로마 바티칸 궁전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나체상이었다. 누드화였습니다.
두산백과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 그림에 대해 “이 천장화는 성서의 순서와는 반대로 노아에 관한 3가지 이야기, 즉 입구 쪽에서부터 그려졌는데, 완성까지는 4단계를 거쳤다. 첫번째 단계는 2개의 곡면 벽화에 그린 3가지의 노아에 관한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으로 1509년 9월 15일에 완성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와 낙원추방〉과 〈이브의 창조〉, 4명의 나체상, 두 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0년 8월에 완성되었다. 세 번째 단계는 〈아담의 창조〉 〈하늘과 물의 분리〉 〈달과 해의 창조〉 〈빛과 어둠의 창조>의 4가지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 5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1년 1월과 8월 사이에 완성되었다. 네 번째 단계는 나머지 모든 원형 벽화로 같은 해 10월부터 1512년 10월 사이에 완성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생애를 다룬 영화 속에서도 소개됩니다. ‘천지창조’의 원래 그림은 나체상이었습니다. “누드화 였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사회의 영향이었는지 누드화가 터부시 됐습니다. 야한 그림으로 매도됐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그렸던 ‘천지창조’가 완성됐던 해는 1511년입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요? 예술로 말하면, 암흑시대였습니다. 21세기 들어서야 한국의 예술문명이 번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근에서야 누드화를 자연스럽게 보고 감상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이젠, 누드화를 마음 놓고 감상하십시오.
▲기쁘고 슬픈 인간사...그림 속에 녹아 있다!
모든 그림에는 희극과 비극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희극(喜劇)보더 비극(悲劇)이 훨씬 더 감동적일 수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 장군이 이스라엘을 점령했을 때, 이스라엘 여인인 '유디트'가 이 장군을 찾아가 꼬드긴 다음에 장군을 술에 취하게 합니다. 장군이 깊은 잠에 빠지자, 칼로 목을 베어 보자기 싸들고 탈출합니다. 결국은 붙잡혀 극형에 처해졌을 것입니다. '유디트', 조국을 사랑한 한 여인의 비극적인 스토리가 담겨져 있는 작품입니다. 적군 장군의 목을 베는 장면은 희극이 아닌 비극입니다. 이 장면을 그린, '홀로페르네스'라는 작품(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로마 국립 고전회화관 소장)은 비극적입니다.
1593년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논개 등의 여인들이 왜병을 껴안고 진주성 아래로 낙엽처럼 떨어졌던 장면은 애국적입니다. 그러나, 하나 뿐인 목숨을 버렸다는 점에서 비극적입니다. 그때의, 여인의 누드화를, 상상해봄직 합니다. 우리나라 심청전에 나오는 심청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하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공양미와 맞바꿉니다. 심청이는 몸값을 받은 다음, 번제로 인당수 푸른 물에 빠져 죽습니다. 아마, 그때, 바닷물에 몸을 던지기 직전, 그때의 심청이는 알몸이었을 것입니다. 배위에서 몸을 투척하기 직전 장면의 누드화는 아름다운 비극입니다. 심청전은 비극의 스토리입니다. 필자가 소장한 누드화 가운데는 인당수에서의 보은을 위한 이별, 심청이의 누드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사,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입니다. 춘향전에서 과거에 합격하고 돌아온 이도령과 만나는 춘향이의 합방은 희극입니다. 합방 때, 춘향이를 그린 누드화는 환희, 즉 희극입니다.
필자가 소장한 누드화 가운데 벨기에 화가의 누드 작품이 한 점(콩고의 여인) 있습니다. 벨기에가 콩고를 식민지배 했었습니다. 그때, 벨기에 화가가 콩고를 방문, 콩고의 여인을 모델로 한 누드화를 그렸음직 합니다. 벨기에는 콩고를 75년 간 식민지배(1885-1960)했습니다. 식민지 초기 기간인 23년 간 무려 1.000만명 정도가 희생됐습니다. 벨기에는 콩고인 대부분을 콩고 일대에 널려있는 고무 채취 현장으로 내 몰았습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두 손목을 잘라, 굶겨 죽였습니다. 그렇게 살해된 사람 가운데는 어린애도 포함됐었습니다. 식민지 초기 콩고 인구는 2.000만명 정도였습니다. 식민지가 끝날 무렵의 인구는 850만 명 정도로 줄었습니다. 처참한 살육과 탄압이 이어졌습니다. 이 누드화에 이런 비극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 상상입니다. 벨기에 출신 남성 화가가 콩고의 여인을 사랑했는데, 그 여인이 고무나무 채취현장에 끌려가 두 팔을 잘린 뒤 굶어 죽게 되자, 그 여인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일 수도 있습니다. 이 누드화에서는 콩고여인의 한이 묻어나오는 듯합니다.
▲누드화란 돈오(頓悟)와 점수(漸修)를 잇는 미래종합예술
제가 지난 16년 간 누드화를 수집, 소장 작품이 1600점에 달합니다.
저는 지난 8-9월의 일요일 마다, 무더위 속에 서울 동대문구 풍물시장을 어슬렁거렸습니다. 이 더위에 왜 그랬을까요? 누드화를 매집하기 위한 탐색전이었습니다. 특히 지난 8월6일 일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쯤까지 서울시 중구 풍물시장을 돌아다녔습니다. 34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풍물시장으로 흘러나온, 누드화를 매집하기 위한 탐색전을 위해서 였습니다. 중고 그림들을 취급하시는 소상인들이 판매하는 그림들 속에 끼어있는 누드화를 매집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필자가 이런 행동을 하는 중에, 수준급의 누드화가 수집되는 행운이 있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화단의 유명한 화가이신 이우환 화가님은 "좋은 그림이 꼭 비싼 그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필자, 저 스스로, 이러한 믿음이, 내안의 어딘가에, 불씨처럼 꺼지지 않고, 늘 살아남아 있기를 소망합니다.
누드화의 대가(大家)이신 장영주 화가님은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축하드리고 꿈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K-nude(한국 누드화)는 표피만을 묘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동양의 심오한 인간관에 기반한 깨달음의 장르가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AI)이 범접할 수 없는 돈오(頓悟)와 점수(漸修)를 잇는 미래종합예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문일석님은 인공지능(AI) 너머의 인간 가치에 투자하시는 귀하디귀한 분"이라고, 칭찬해주셨습니다.
대한민국, 다가오는 미래 시대는 문화시대입니다. 저와 같이 남이 가 보지 않은 문화의 길을 가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가-작가가 화상(畵商)을 이길 수는 없다?
자본주의 시장이, 형성되어 오는 과정에서 “기술이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그림 시장에 적용하면 “화가-작가가 화상(畵商)을 이길 수는 없다”는 말로 바꿀 수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화상(畵商)님들이 참석하셨습니다. 한 분, 한 분, 위대하신 분들입니다. 화가-작가가 화상(畵商)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해도 비싼 값에 팔리지 않으면, 헐값입니다. 그 사이에 화상이 있습니다. 화상이 없으면 매매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화상(畵商) 여러분들은 스스로 지존(至尊)-자존감(自尊感)을 가지셔도 됩니다. 여러분, 존경합니다.
▲저를 이 자리에 초청해주신, 창립한지 10년이나 되는 서울고미술동우회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저는 시인입니다. 자작시 500여 편이 있습니다. 나온 김에 제 시 한 편 낭독해 드리겠습니다.
“[시]단감을 먹다가
-문일석 시인
가을 단감을 먹다가
보이지 않던, 살 속에 숨어 있던
씨를 깨물었다.
단감의 씨는 단단했고
아주 빛났다.
사람의 삶 속에도
단감 씨 같은
단단한 그 무엇 하나 있어야 하는 거지.
씨는 미래생명을 기약하는 것
사람 속에도
빛나는 그 무엇 하나쯤 있어야 하는 거지.<문일석 시 '단감을 먹다가' 전문>“
창립한지 10년이나 되는 서울고미술동우회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오늘, 유명하신 대한민국의 화상(畵商)님들 앞에서 강연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Collection of 1,600 nude paintings... “I hope that the Seoul Nude Painting Museum will be created.”
Invited lecture by Seoul Antique Art Club, “The coming future era is a cultural era... a path of culture that has not been seen before.”
-Publisher Moon Il-suk
I was invited by the Seoul Antique Art Friends Association (Chairman = former journalist Youngsik Moon) on September 22nd at 7 PM and gave a lecture to the members of this group. The office of this alumni association is located in Arirang Gallery, Sinseol-dong, Dongdaemun-gu, Seoul. Below is the full text of today’s lecture.
Seoul Antique Art Alumni Association (Chairman = Moon Young-sik) invited lecture (full text)
Thank you to President Moon Young-sik and Secretary-General Son Dong-mo of the Seoul Antique Art Friends Association for inviting me.
My name is Moon Il-seok and I am working to establish the Seoul Nude Painting Museum. His profession is publisher, poet, and writer of Break News, an Internet newspaper.
▲ Collection of 1,600 nude paintings... “I hope to create a nude painting museum.”
I spent 16 years collecting nude paintings to create the Seoul Nude Painting Museum. After these efforts, as of September 22, 2023, we now own a total of 1,600 nude paintings. From then on, efforts to collect nude paintings will continue. After owning over 1,600 works, it has become difficult to give up this work. What should I do? It's just that I've been doing it so I'll keep doing it! (Hahaha...)
Of course, this is not the case for everyone, but there are some people who look down on nude paintings. The husband bought a nude painting in the house where the couple lives, and the wife became angry, asking, “Why are you hanging a painting of a naked woman in the house?” There are people who click their tongues and say to me, “You can’t believe you collected those paintings and created an art museum... tsk tsk.”
In conclusion, I believe that “nude paintings are the best works of art that express human beauty.” I will focus only on this thought. I hope that a nude painting museum will be created in some place. In this way, we hope that people from all over the world who come to Korea will have the opportunity to visit this museum and admire the beautiful nude paintings.
▲Great foresight of the founder of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Now which direction do I go? This is the only way forward toward collecting 2,000 nude paintings. It is said that some art museums have paintings worth 10 billion won each. I don't have such an expensive painting yet. However, as long as I do not give up on the path of owning beautiful nude paintings, my strong belief that beautiful nude paintings that cannot be seen anywhere else will definitely be with me will not change in the future.
One of the most famous art museums in the United States is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The museum's original founder was a small town theater owner, who is said to have collected paintings under difficult circumstances. He said that the house he lives in leaks constantly when it rains. However, it is said that his spirit of collecting his paintings became the driving force behind the existence of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today. I believe that the founder of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had an excellent foresight that “good art museums can be created in the future.” I am someone who respects and follows this person's spirit of collecting.
▲Comparison of modern Korea and Europe during the Michelangelo era
Italian artist Michelangelo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3.6.~1564.2.18.) is famous for painting the ceiling of the Sistine Chapel. It is known under the name ‘Creation of Heaven and Earth’. This painting is kept in the Vatican Palace in Rome. The main characters in this painting were nude. It was a nude painting.
Doosan Encyclopedia said of the ‘Creation of Heaven and Earth’ painting painted by Michelangelo, “This ceiling painting was painted from the entrance side, depicting three stories about Noah, contrary to the order of the Bible, and went through four stages to completion. The first phase was completed on September 15, 1509, with three Noah stories and eight nude figures painted on two curved murals. The second phase was completed in August 1510 with the original sin of Adam and Eve and the expulsion from paradise, the creation of Eve, four nudes, two prophets, four triangular murals, and two curved murals. The third stage is the four stories of ‘Creation of Adam’, ‘Separation of Sky and Water’, ‘Creation of the Moon and Sun’, and ‘Creation of Light and Darkness’, as well as 8 nude figures, 5 prophets, 4 triangular murals, and 2 curved surfaces. The mural was completed between January and August 1511. “The fourth phase, all the remaining circular murals, was completed between October of the same year and October 1512.” This painting is also introduced in the movie about Michelangelo's life. The original painting of ‘Creation of Heaven and Earth’ was a nude figure. “It was a nude painting.”
In Korea, nude painting was taboo, perhaps due to the influence of Confucian society. It was sold as a pornographic picture. The year that Michelangelo’s ‘Creation of Heaven and Earth’ was completed was 1511. What was our country like at that time? When it came to art, it was a dark age. It is only in the 21st century that Korea's artistic civilization is flourishing. We are living in an era where we can only recently see and appreciate nude paintings naturally. Now, feel free to enjoy nude paintings.
▲The happy and sad human history...is melted into the picture!
Comedy and tragedy are inherent in every painting. In the human world, tragedy can be much more moving than comedy.
When General Holofernes conquers Israel, an Israelite woman named Judith visits the general, flirts with him, and then gets her general drunk. As the general falls into a deep sleep, he cuts off his head with his sword, wraps it in a cloth, and escapes. He would eventually be caught and put to death. 'Judith' is a work that tells the tragic story of a woman who loved her country. The scene where the enemy general is beheaded is a tragedy, not a comedy. The work called ‘Holofernes’ (Artemisia Gentileschi, owned by the National Museum of Classical Painting in Rome), which depicts this scene, is tragic.
The scene in Jinju Castl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in 1593, where women including Nongae hugged Japanese soldiers and fell like fallen leaves under Jinjuseong Castle, is patriotic. However, it is tragic that she gave away her only life. It's tempting to imagine a nude painting of a woman back then. Simcheong, who appears in the Korean War of Simcheong, exchanges her one and only life for an offering to open her father's eyes. After Simcheong receives her ransom, she is drowned in the blue water of Indangsu as a burnt offering. Perhaps, at that time, right before throwing herself into the sea, Simcheong was naked. The nude painting in the scene just before her body is thrown from her stomach is a beautiful tragedy. Simcheongjeon is a tragic story. Among the nude paintings in my collection, there may be a farewell to repay the favor at Indangsu and a nude painting of Simcheong. It's a sad, but beautiful parting in human affairs. In Chunhyangjeon, Chunhyang's reunion with Lee Doryeong, who returns after passing the civil service exam, is a comedy. The nude painting depicting Chunhyang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is a joy, a comedy.
Among the nude paintings in my collection, there is one nude work (Woman of the Congo) by a Belgian artist. Belgium colonized Congo. At that time, a Belgian artist visited Congo and painted a nude painting modeled after a Congolese woman. Belgium colonized Congo for 75 years (1885-1960). During the first 23 years of colonial rule, as many as 10 million people were sacrificed. Belgium drove most of the Congolese people to rubber mining sites throughout the Congo. If she did not obey, they cut off both her wrists and starved her to death. Among those killed was a child. In the early days of the colony, Congo's population was about 20 million. By the end of the colony, the population had fallen to around 8.5 million. Horrible massacres and oppression followed. This tragedy accompanies this nude painting. It's my imagination. A male artist from Belgium may have loved a Congolese woman, but when the woman was taken to her rubber tree extraction site and starved to death after cutting off both of her arms, the painting may have been painted while thinking of the woman. This nude painting seems to show the Congolese woman's resentment.
▲Nude painting is a future art that connects insight and score.
I have been collecting nude paintings for the past 16 years, and my collection amounts to 1,600 works.
Every Sunday last August and September, I wandered around the Pungmul Market in Dongdaemun-gu, Seoul in the sweltering heat. Why did that happen in this heat? It was a quest to acquire nude paintings. In particular, on Sunday, August 6th, I visited the Pungmul Market in Jung-gu, Seoul from 8 a.m. to 1 p.m. The scorching heat rising to 34 degrees. Sweat poured down my forehead like rain. Why did they do that? It was for an exploratory exhibition to collect nude paintings that were flowing out of the folk market. The purpose was to acquire nude paintings included among the paintings sold by small merchants who deal in used paintings.
While I was doing this, I also hoped that I would be lucky enough to collect high-quality nude paintings. Artist Lee U-hwan, a famous painter in the Korean art world, is said to have said, “A good painting is not necessarily an expensive painting.” The author, myself, hope that this faith will always survive, somewhere inside me, like an ember that does not go out.
Artist Jang Young-ju, a master of nude painting, said about what I am doing, "I sincerely congratulate you with all my heart and believe that your dream will come true. K-nude (Korean nude painting) is not just about depicting the epidermis. “It will be a genre of enlightenment based on the profound Eastern view of humanity. This is because it is a future comprehensive art that connects knowledge and knowledge that artificial intelligence (AI) cannot access,” he explained, adding, “Moon Il-seok is an artificial intelligence.” He praised me as “a precious person who invests in human values beyond intelligence (AI).”
Republic of Korea, the coming future era is a cultural era. I think there should be more people like me who take cultural paths that others have not taken before.
▲A painter-writer cannot beat a painter?
In the process of forming the capitalist market, there is a saying that “technology cannot beat the market.” If this saying is applied to the painting market, it can be changed to say, “A painter-writer cannot beat a painting dealer.” Some of the best painters in Korea attended this event. One, one, great people. A painter-writer cannot defeat a painting dealer. No matter how good a work is, if it is not sold at a high price, it is worthless. There is a burn in between. If there is no image, no sale takes place. All of the painters gathered here can feel supreme and have self-respect. Everyone, I respect you.
▲I wish the Seoul Antique Art Friends Association, which has invited me here for 10 years, great success!
I am a poet. There are over 500 self-written poems. Now that we're here, I'd like to read a poem to you.
“[Poetry] While eating sweet persimmons,
-Poet Moon Il-seok
While eating autumn sweet persimmons
Invisible, hidden in the flesh
I bit into the seed.
The sweet persimmon seeds were hard.
He was so brilliant.
Even in people's lives
like sweet persimmon seeds
There has to be something solid.
The seed is a promise of future life.
Even among people
There has to be something that shines. <Full text of Moon Il-seok’s poem ‘Eating Sweet Persimmons’>“
We wish the Seoul Antique Art Friends Association, which has been in existence for 10 years, great success. Today, it was an honor to give a lecture in front of famous Korean painters. thank you moonilsuk@naver.com
*Writer/Moon Il-suk. poet. Publisher of this magazine.
-The author was invited by the Seoul High School Art Club and is giving a lecture to its memb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