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라!"의 리더십

[리더십 스토리-4]일본의 지도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서운 참을성

김정기 시티넷(아태지방정부네트워크) 사무국 대표 | 기사입력 2023/08/16 [09:39]

▲ 일본지도     ©브레이크뉴스

 

한 나라나 민족이 강대해지는 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은 이를테면 지리적 조건이나 기후, 문화적 배경, 신앙 등도 있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한 위대한 인간의 지도력을 배제할 수 없다. 칭기즈칸이 없었다면 초원의 몽골 민족이 아시아와 유럽을 휩쓸며 세계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오늘의 프랑스가 존재했을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없었다면 섬나라 일본의 오늘이 있었을까.

 

전쟁은 영웅을 낳고 영웅은 역사 발전의 수레바퀴를 굴린다. 굳이 전쟁 예찬론자나 영웅 숭배론자가 아니더라도 한 특출한 인간이 당대 민중의 생각과 힘을 모아 세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은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보아온 일이다.

 

그런 인간, 즉 강력한 지도자를 탄생시키는 용광로가 곧 전장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전쟁(전투) 이상으로 인간의 총체적 능력(지성과 감성, 과학 기술과 문화의 힘에 이르기까지)을 겨루는 마당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인류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는 설에 이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일본을 발전시킨 동력도 전쟁이었다. 그 결정적인 전쟁이 1600년에 벌어진 세키하가라 전투, 그리고 막부정치를 마감하는 20세기의 혼란 속에서 벌어진 보신 전쟁과 자본주의와 과학 기술 그리고 제국주의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태평양 전쟁의 세 번의 큰 전쟁을 통하여 일본은 세계적인 강국으로 성장해 왔다. 바로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에 이어 제3의 막부인 에도 막부를 개설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천하 쟁패가 그 효시를 이룬다. 그러므로 일본을 알기 위해서는 도쿠가와를 아는 것이 첫 관문이다.

 

16세기의 일본은 춘추전국시대였다. 중앙의 왕권이 허약해지면 지방의 토호들이 들고 일어나 천하 쟁패의 전쟁판을 연출하는 것은 중국이나 일본, 유럽 역사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이 때 등장하는 인물이 오다 노부나가이다.

 

 

오다는 불같은 성격의 전제군주형이었다. 지방의 여러 다이묘(大名)들이 다투어 일어나 허약해진 무로마치 막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수도를 공략했는데, 이때 앞장선 것은 이마가와라는 인물이었다. 이마가와가 2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막부를 향해 진격할 때 연도의 모든 다이묘들이 머리 숙이고 합세하였으나 ‘오와리의 개망나니’라는 별명을 지닌 오다 노부나가만 끄떡도 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인생은 덧없는 것, 생자필멸’이라는 말과 함께 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마가와의 본진에 쳐들어가 이마가와의 목을 치고 3,000명의 병사들을 전멸시켰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는 내부(가신)의 반역으로 전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 뒤 통일 사업은 오다의 가신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례가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죽은 뒤 8년 만에 전국 각지의 다이묘를 차례로 복속시키고 드디어 일본 천하를 통일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복속시킨 다이묘들의 영지를 조정하고 필요한 경우 직속의 인물을 다이묘로 내려 보내는 등 권력의 개편작업을 실시하여 통일 일본의 기초를 다진다. 화폐 제도와 도량형 제도를 통일하여 경제 통일도 이루었다.

 

일본을 통일하여 강력한 지도력을 확립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여세를 몰아 조선 침략에 나선다. 칼의 힘으로 내부 통일을 이룩한 지도자들이 통일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고 지휘력을 강화한다는 필요에 따라 걸핏하면 외침 전쟁을 시작하는 예가 많은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조선 침략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있어 스스로 판 함정이었다.

 

조선 침략에 실패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막부의 권력은 에도(江戶)에 근거를 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넘어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 이후 일본은 다시 내전의 혼란 속에 빠져들었는데, 권력의 향방을 가름하는 결정적인 전투가 세키하가라 전투였다. 일본의 무사단이 동서로 양분하여 대결전을 치른 곳이 지리적으로 동부와 서부를 가르는 경계지역인 세키하가라.

 

이곳에서의 전투에서 승리한 동부 출신의 도쿠가와는 서부 다이묘들로 이루어진 반대세력을 압도하고 다시 한 번 통일 정권을 이룩한다. 이번의 통일 권력은 오다의 미완의 통일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좌절한 권력도 아닌 튼튼한 권력이었다. 이로써 일본은 제3의 막부라 일컬어지는 도쿠가와 막부의 시대로 들어간다.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 근대화의 봉화가 오르기까지 260년 동안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의 자손들이 형성한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을 지배한다.

 

일본 전국시대 최후의 승자는 말할 필요 없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그러나 도쿠가와를 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앞의 쇼군(將軍)이었던 두 사람, 즉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거명하지 않을 수 없다. 도쿠가와 막부를 열기까지 일본 통일을 위해 벌였던 각축 전쟁의 과정을 설명하자면 이들의 이름을 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들 3인의 ‘장군’들이 마치 한 인간의 특성을 골고루 나누어 지닌 것처럼 각자 독특한 특징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대조되는 성격과 지도력의 표본을 보는 것 같은 재미와 교훈을 주는 것이 이들 3인의 개성이다. 이들이 일본 안에서는 물론이고 나라 밖에서도 가끔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런 ‘개성과 지도력’의 뚜렷한 대비현상 때문일 것이다.

 

세 사람의 성격과 이에 바탕한 지휘 스타일을 비교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새장에 있는 새가 울지 않는다. 이럴 때 3인의 쇼군들은 각각 이렇게 사태를 해결한다.

 

먼저 오다 노부나가는 ‘당장 새의 목을 쳐라.’ 하고 명령한다. 실제로 이런 일을 당하면 오다는 새의 목뿐 아니라 인간의 목도 쉽게 떼어버릴 만큼 성질이 급했다.

 

다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는 ‘새를 잘 달래고 구슬려서 울도록 해보라.’고 명령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의 가신이었을 때 주군의 신발을 가슴에 품어 따뜻하게 데운 후 내놓았다는 실화가 전한다. 그런 도요토미 히데요시였으므로 울지 않는 새를 달래고 구슬려 어떻게 하든 울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부하들이나 경쟁 상대인 다이묘들을 포섭하고 관리하는 스타일도 그와 같았다.

 

마지막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명령한다. 인내(忍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좌우명이자 체질이었다. 일본 근대화의 새벽을 열기 직전까지 일본을 지배했던 도쿠가와 막부의 탄생이 있기까지에는 강력한 힘이 받치고 있었으니 그 힘은 바로 ‘인내’라는 덕목이었다.

 

무서운 참을성으로 기회를 기다리고 일단 기회가 오면 과감하게 붙잡는 용기가 있었다. 오다의 망나니 같은 급한 성질도, 도요토미의 간교한 지략도 아닌, 인내와 용기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통일 일본의 권력을 손에 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권력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안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구축한 도요토미 체제를 계승 발전시켜 권력 구조를 공고히 하고, 밖으로는 침략 전쟁의 실패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하여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를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

 

명(明)과의 관계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였으나 조선과의 관계는 대마도 번주(다이묘)의 집요한 노력으로 정상화했고, 인도차이나 반도와 남아시아에 이르는 해상 무역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1614년과 1615년 두 차례에 걸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문의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오사카에 근거를 두고 권력 회복을 꿈꾸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오사카 전투에서 모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함으로써 도쿠가와 가문에 도전하는 세력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처럼 전국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막부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지도력과 개성은 소설적인 상상력을 가미하여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신화적 인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그의 책략과 지모는 정치는 물론이고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귀중한 교본으로 활용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서운 참을성’을 흉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내심을 비웃듯 우리 정치에서 보면 눈앞의 이익에만 탐닉하여 가볍게 처신하는 정치인들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당의 이합집산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계절이 되면 ‘참을성이 없어’ 신세를 망치는 정치인들이 너무 많다. 걸핏하면 당을 버리고 철새처럼 떠도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권력의 환상에 젖고 인기라는 덧없는 덫에 걸려 후보 경선에 불복하고 대선에 출마했다가 잊혀진 인물이 된 ‘삼류 지도자’들도 많다. 참을성도 없고 인생을 길게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릇이 되지 않았던 탓이다.

 

▲김정기 시티넷(아태지방정부네트워크) 사무국 대표. ©브레이크뉴스

☆필자  김정기 시티넷 사무국 대표 이력

 

*학력

 

△뉴욕주립대(Stony Brook) 정치학과 수석 졸업(BA-Summa Cum Laude)

△마케트대(Marquette) 로스쿨 법학박사 (Doctor of Jurisprudence)

 

*외교안보 경력

 

△제8대 주 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 (13등급 대사)

△2010 상하이엑스포 대한민국관 정부대표

△시티넷(아태지방정부네트워크) 사무국 대표

△국민대 정치대학원 동아시아국제정치 특임교수

△베이징대 외국어대학 북한학 객좌연구원

△베이징대 동방학연구원 중국학 연구교수

 

*경제경영 경력

 

△거로출판사 청년 창업자 및 회장

△한국예탁결제원 국제펀드위원회 자문위원

△법무법인 영진 중국경제금융센터 고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용인) 객원교수

△한남대 경제학부 예우교수

△난징대 국제경제연구소 객좌교수

 

*교육 경력

 

△숭실사이버대 초대 총장

△성결대 교양교직학부 석좌교수

△용인대 교양대학 특임교수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외국어학당 영어강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 이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최고위과정 이수

 

*법조법학 경력

 

△법무법인 대륙아주 중국총괄 미국변호사

△숭실사이버대 법학부 전임교수

△고려대 법학대학원 최고위과정 '고정' 강연자

△밀워키지방법원 판사시보

△미국변호사협회 ADR분과 위원

 

*뉴미디어 경력

 

△자유한국당 팟캐스트 <적반하장> 패널 및 앵커

△유튜브 채널 신의한수 <세계전망대> 정치평론가

△김정기TV <직필직설> 대표평론가

△인터넷 언론 브레이크뉴스 정치칼럼니스트

 

*정치 경력

 

△국민의힘 용인(병) 국회의원 경선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후보 정치행정분과 위원 및 선대위 정치개혁 총괄 자문위원

△자유한국당 오세훈 당대표후보 SH전략회의 총괄 및 선대위 조직본부 총괄본부장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 국제위원회 위원장 및 선대위 서울필승대회 준비위원장.

 

*저서

 

△대학생을 위한 거로영어시리즈[전10권](거로)

△나는 1%의 가능성에 도전한다(조선일보)

△한국형 협상의 법칙 (청년정신사)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하다 (도서출판 실크로드).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Leadership of Ieyasu Tokugawa "Wait Until the Bird Cries!"

[Leadership Story-4] The terrible patience of Ieyasu Tokugawa, the leader of Japan

-Kim Jeong-ki, Representative of the Secretariat of Citynet (Asia-Pacific Regional Government Network)

 

There is always a reason for a country or nation to become strong. The cause is geographical conditions, climate, cultural background, faith, etc., but one cannot rule out a great human leadership prior to all of them. Without Genghis Khan, would the Mongolian people of the steppe have been able to build a world empire by sweeping Asia and Europe? Would France exist today without Napoleon? Would the island nation of Japan exist today without Tokugawa Ieyasu?

War produces heroes, and heroes turn the wheels of historical development. Even if you are not a fan of war or a hero worshiper, you have seen many times in history that an exceptional human being led the world in a new direction by gathering the thoughts and power of the people of the time.

It is also an undeniable fact that the battlefield is the melting pot that creates such a human being, that is, a strong leader. This is because there is no field in which the total human ability (intellect and sensibility, science and technology and the power of culture) is competed more than war (combat). Ironically, therefore, it is difficult to argue the theory that war has developed human culture.

The driving force behind Japan's development was war. The decisive war was the Battle of Sekihagara in 1600, the Boshin War that took place in the turmoil of the 20th century ending the shogunate government, and the Pacific War created by the combination of capitalism, science and technology, and imperialism. has grown into a world powerhouse. The beginning of this was the success of Tokugawa Ieyasu, who established the third shogunate, the Edo Shogunate, following the Kamakura and Muromachi shogunates. Therefore, to know Japan, the first step is to know Tokugawa.

Japan in the 16th century was the era of the Warring States Period. It is also common in the history of China, Japan, and Europe that when the central royal authority weakens, local rulers rise up and stage a battle for the world. The person who appears at this time is Oda Nobunaga.

Oda was a despot with a fiery personality. Several local daimyos rose up and attacked the capital to overthrow the weakened Muromachi shogunate, but at this time, a person named Imagawa took the lead. When Imagawa led a large army of 20,000 men and advanced toward the shogunate, all the daimyo of the year bowed their heads and joined forces, but only Oda Nobunaga, nicknamed "Owari's idiot," waited unmoved and said, "Life is fleeting, the living are mortal." With the words ', he led 500 soldiers into Imagawa's headquarters, struck Imagawa's head, and annihilated 3,000 soldiers. However, Oda Nobunaga fell without accomplishing the great task of national unification due to internal (vassal) rebellion. After that, the unification project becomes the turn of Toyotomi Hideyoshi, who was a vassal of Oda. Toyotomi Hideyoshi subjugates daimyo from all over the country in turn and finally unifies Japan eight years after Nobunaga's death.

Toyotomi Hideyoshi laid the foundation for a unified Japan by reorganizing power, such as adjusting the territories of subjugated daimyo and sending down direct subordinates to daimyo if necessary. Economic unification was also achieved by unifying the monetary system and the system of weights and measures.

Toyotomi Hideyoshi, who unified Japan and established strong leadership, drives the momentum and invades Joseon. Leaders who achieved internal unification with the power of the sword often start a war of shouting in response to the need to solve problems caused by unification and strengthen command, and Toyotomi Hideyoshi was no exception. However, the invasion of Joseon was a self-made trap for Toyotomi Hideyoshi.

After the failure of the Joseon invasion and the death of Toyotomi Hideyoshi, the power of the shogunate passed to Tokugawa Ieyasu, who was based in Edo. After the death of Toyotomi Hideyoshi, Japan again fell into chaos of civil war, and the decisive battle that determined the direction of power was the Battle of Sekihagara. Sekihagara, the border area that geographically divides the east and west, is where Japan's samurai divisions divided into east and west and fought a great battle.

Victorious in the battle here, the eastern Tokugawa overwhelms the opposition of the western daimyos and once again establishes a unified government. The unified power this time was neither Oda's incomplete unification nor Toyotomi Hideyoshi's frustrated power, but solid power. With this, Japan enters the era of the Tokugawa shogunate, which is called the third shogunate. Afterwards, the Tokugawa shogunate formed by Tokugawa Ieyasu and his descendants ruled Japan for 260 years until the beacon of Japanese modernization rose with the Meiji Restoration.

Needless to say, the final winner of the Warring States Period in Japan was Tokugawa Ieyasu. However, in order to talk about Tokugawa, it is necessary to name two former shoguns, Oda Nobunaga and Toyotomi Hideyoshi. To explain the process of the wars fought for the unification of Japan until the opening of the Tokugawa shogunate, it is because their names cannot be omitted, but rather, these three 'generals' have unique characteristics, as if they equally share the characteristics of a human being. because it owns

It is the individuality of these three people that gives fun and lessons as if seeing a sample of contrasting personalities and leadership. The reason why they sometimes appear as protagonists in novels and movies, not only in Japan but also outside the country, is probably because of such a clear contrast between ‘personality and leadership’.

There is an interesting story that compares the personalities of the three people and their conducting styles based on them. The bird in the cage does not sing. At this time, the three shoguns each resolve the situation in this way.

First, Nobunaga Oda ordered, “Cut the bird’s head immediately.” In fact, when faced with such a thing, Oda was so impatient that he would easily tear off the head of a human as well as a bird.

Next is Toyotomi Hideyoshi. 'Try to calm the bird and coax it to cry,' he orders. A true story is told that when Toyotomi Hideyoshi was a vassal of Oda, he held his lord's shoes in his chest and warmed them up before bringing them out. Since it was Toyotomi Hideyoshi, he must have calmed down and coaxed the bird into crying anyway. His style of subjugating and managing his subordinates and rival daimyo was also the same.

Finally, Tokugawa Ieyasu. He commands, 'Wait for the bird to sing.' Patience (忍耐) was the motto and constitution of Tokugawa Ieyasu. Until the birth of the Tokugawa shogunate, which ruled Japan until just before the dawn of Japanese modernization, there was a strong power, and that power was the virtue of 'patience'.

He had the courage to wait for an opportunity with terrifying patience and boldly seize it once the opportunity came. It was a natural consequence that Tokugawa Ieyasu, who had patience and courage, took the power of unified Japan in his hands, not Oda's impatient temper or Toyotomi's cunning strategy.

Tokugawa Ieyasu, who seized power, internally inherited and developed the Toyotomi system established by Toyotomi Hideyoshi to consolidate the power structure, and externally focused on restoring international relations in East Asia by minimizing the aftermath of the failed war of aggression.

Relations with Ming were never recovered, but relations with Joseon were normalized through the tenacious efforts of the lord of Tsushima, and maritime trade from Indochina to South Asia was also actively developed. Twice in 1614 and 1615, Toyotomi Hideyoshi's family, Toyotomi Hideyori, based in Osaka, dreamed of restoring power, but Tokugawa Ieyasu won both battles in Osaka, so the forces challenging the Tokugawa family no longer existed. Didn't come out.

In this way, the leadership and personality of Tokugawa Ieyasu, shown in the process of ending the Warring States period and transitioning to the new shogunate era, has long been established as a mythical figure not only in Japan but also in Korea by adding a novelistic imagination. His strategy and wisdom are being used as valuable textbooks not only for politics but also for corporate managers.

However, it is not easy to imitate Tokugawa Ieyasu's 'terrible patience'. Rather, as if ridiculing the patience of Tokugawa Ieyasu, in our politics, the reality is that there are too many politicians who behave lightly by indulging in immediate profits.

There are too many politicians who ruin their lives because of their “impatientness” during the season when political parties are openly splitting up ahead of the presidential election. Not to mention those who often abandon the party and wander like migratory birds, there are also many “third-rate leaders” who have become forgotten figures after disobeying the primary and running for the presidential election, immersed in illusions of power and caught in the ephemeral trap of popularity. It's because I'm impatient and I don't see life long, but more than anything, it's because I didn't become a vessel.

☆Author Jeonggi Kim Citynet Secretariat CEO

 *Education

 △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Stony Brook) Graduated from the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BA-Summa Cum Laude)

 △Doctor of Jurisprudence, Marquette Law School

 *Diplomatic security experience

 △The 8th Consul General of the Republic of Korea in Shanghai (Level 13 Ambassador)

△ 2010 Shanghai Expo Korean Pavilion Government Representative

△ Representative of the Secretariat of CityNet (Asia Pacific Local Government Network)

△Special Professor in East Asian International Politics, Graduate School of Political Science, Kookmin University

△Visiting Researcher of North Korean Studies, College of Foreign Studies, Peking University

△ Research Professor of Chinese Studies,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Peking University

 *Economic management experience

 △ Young founder and chairman of Georo Publishing Company

△ Korea Securities Depository International Fund Committee Advisory Committee

△Advisor at Law Firm Youngjin China Economic and Financial Center

△Chair Professor, Graduate School of Business, Dongguk University

△Visiting professor at Kyunghee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Techno Business (Yongin)

△Professor Ye Woo, Department of Economics, Hannam University

△Visiting Professor at Institute of International Economics, Nanjing University

 *Education experience

 △ The first president of Soongsil Cyber University

△Chair Professor at Sungkyul University Department of Liberal Arts and Teaching

△Specially appointed professor at Yongin University College of Liberal Arts

△Seoul National University, Korea University, Yonsei University Foreign Language Institute English Instructor

△Completion of National Policy Course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Public Administration

△Completion of the highest level course at Harvard University Kennedy School

*Forensic law career

 △ Law Firm Continental Aju China General American Attorney

△ Soongsil Cyber University, Faculty of Law, full-time professor

△ Korea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Law, the highest level course 'Gojeong' lecturer

The Milwaukee District Court Judge's Times

△ American Bar Association ADR Subcommittee

 *New media career

 △ Liberty Korea Party Podcast <Red Hat> Panel and Anchor

△ Youtube channel Shin Eui Han-soo <World Observatory> Political Critic

△Kim Jeong-gi TV <Direct Directness> Chief Critic

△Internet Press Break News Political Columnist

 *Political career

 △ People's Power Yongin (Byeong) National Assembly member contest candidate

△ People's Power Yoon Seok-yeol, member of the political administration subcommittee of presidential candidate and general advisory committee for political reform

△Leader of the Liberty Korea Party Oh Se-hoon, general manager of the party representative candidate SH strategy meeting and general manager of the organization headquarters of the election committee

△ Grand National Party Presidential Candidate Lee Myung-bak, Chairman of the International Committee and Head of the Preparatory Committee for the Seoul Victory Competition.

 *Book

 △ Georo English series for college students [10 volumes in total] (Goro)

△ I challenge the 1% possibility (Chosun Ilbo)

△ Korean style negotiation law (Youth Mental History)

△ Talking about the future of Korea (Book Publishing Silk Road).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 대마 2023/08/16 [10:11] 수정 | 삭제
  • 대마도는 원래부터 한국땅이었다.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