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경제 개혁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출발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구도에도 변화의 물결을 선사했다. 한 시대 ‘죽(竹)의 장막’으로 불리며 굳게 문을 닫아 놓았던 그들은 1978년 덩사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이래, 문을 활짝 열고 무섭게 빠른 속도로 세계를 향해 줄기차게 뻗어나가고 있다. 개혁 초기에 덩샤오핑이 20세기말까지 중국의 국민소득을 4배 이상을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을 때 그저 단지 국민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1995년 이미 그 일정을 다 마무리할 정도가 되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용틀임하며 세계질서 중심으로 깊숙이 들어와 ‘더 이상의 굴욕은 없다’면서 우리 곁으로 다가와 있다. 정복 DNA가 꿈틀거리는 중국을 조심하라는 말까지 현실이 되고 있다. 중국이 처음 개혁 개방의 물결을 틀었을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중국의 발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변화였다. 과연 이렇게 세계를 향한 경제대국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중국은 그들이 의도하는 대로 마침내 세계질서의 중심이 될 것인가?
그렇다면 중국은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아시아의 중심 국가로 이 지역의 세계질서를 주도해 왔으며 개혁개방 정책을 추구해 왔던 것일까?
역사적으로 중국의 개방을 살펴보면 ‘팍스 시니카’의 가능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세계로 뻗어나가는 중국의 위상을 가늠해 볼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인접국가인 우리로서는 중국의 개방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전망해볼 수 있는 것이다.
<조공 무역을 통한 개방을 이루다>
중국은 한(漢), 당(唐), 원(元), 명(明), 청(淸), 5대에 걸쳐 통일왕조를 이룩하고 중국 중심의 아시아 지역의 세계질서를 이끌어 온 역사가 있다. 흔히 중국의 역사를 ‘변방의 역사’라거나 ‘비주류의 역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중국이 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이 지역의 세계질서를 주도해왔을 때부터 끊임없이 변방의 도전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초기 ‘팍스 시니카’로 볼 수 있는 ‘한당원명청’의 5대 통일왕조 가운데 원과 청은 이민족이었지만 한족 중심의 통일왕조들 역시 끊임없이 변방의 도전을 받아야 했다. 결국 항상 위협적이고 부담스런 변방을 견제하기 위해 통일왕조들이 택한 정책이 ‘조공(租貢)무역’에 의한 개방이 최초였다.
쉽게 말해서 상대의 경제를 윤택하게 해줌으로써 침략이나 약탈을 막고 이민족 통치를 용이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조공무역은 상대에게 받는 것에 비해 주는 것이 더 많은 일종의 ‘퍼주기’였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개방이라기보다는 중국 중심의 질서를 평화적으로 유지해 나가기 위해 선택했던 관용정책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조선과는 어떠했는가? 조선왕조 500년이 중국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조공과 세자책봉으로 가능했다. 명나라는 정치적으로는 조선의 세자책봉 과정을 통해서 정통성을 부여해 조선왕조의 안정을 꾀하고, 경제적으로는 조공을 통해서 퍼주기 무역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중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변방과의 관계를 보면 최근의 중국과 북한의 관계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북한이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로 권력세습과정이 순탄했던 것도 세자책봉 같은 과정을 통해 중국이 북한의 정통성을 확보해 주고 조공무역을 통한 퍼주기 식 경제지원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김정일 사후 권력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에 대해 군부나 실세들이 무력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접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계무역을 통해 비자발적인 개방의 길로 나서다>
농업시대 중국은 세계 GDP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여타 지역강국에 비해 압도적인 경제, 문화적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며 산업혁명을 성취한 서구 열강에 의해 ‘비자발적인 개방’, 이른바 ‘조계(租界)무역’을 하게 된다. 1840년 1차 ‘아편전쟁’이 일어나 1842년에 종결되면서 영국과 난징조약을 체결하고 상하이, 닝보, 푸저우, 샤먼, 광저우를 개항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어서 2차 아편전쟁을 거치면서 1856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이 북경을 손아귀에 넣어 1860년에는 베이징조약이 체결되어 톈진을 개항하게 되었다. 당시 농업대국이었던 중국은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서구 열강에 굴복해서 비자발적인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당원명청’ 시대의 중국은 그 당시 세계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세계 총 GDP의 20%를 차지하면 세계중심질서라는 차원에서 ‘팍스’라는 말을 사용했으니까 중국은 이미 5대 왕조가 모두 ‘팍스’였다. 특히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시기인 청대(淸代)의 강희제(康熙帝)부터 건륭제(乾隆帝)에 이르기까지 130여 년간(1662~1795)을 팍스 시니카를 이룩한 시기로 보기도 한다. 어느 왕조보다 드넓은 영토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다민족국가의 터전을 다졌고 가장 오랫동안 평화와 번영이 지속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청나라와 영국은 활발한 교역이 있었다. 영국은 면화가 주교역품이었고 중국은 실크, 차, 그리고 도자기였는데 무역역조가 일어났다. 영국에서 이러한 중국제품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무역 결재수단이었던 영국에서 생산된 은(銀)이란 은이 모두 중국으로 몰린 것이다. 영국은 할 수 없이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해서 중국으로 수출하였고 많은 중국인들이 아편에 중독되는 바람에 광둥성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이 아편전쟁이다.
무역마찰에서 비롯된 이 같은 중국과 영국의 충돌은 2차에 걸쳐 진행되고 1860년에 마무리되었다. 아편전쟁으로 톈진까지 개항이 되고 중국의 동부 연안도시들이 타의적으로 조계무역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면, 그 당시 개항했던 도시들이 오히려 중국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때 구축되었던 인프라가 이미 많이 사라졌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개혁개방시대의 개막과 함께 그 곳들이 중심이 되어 중국의 고속성장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가공무역으로 개혁개방 시대를 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개혁개방은 1978년부터 2000년까지로 정리할 수 있는 ‘가공무역’ 시대이다. 신해혁명을 통해 봉건왕조를 타파하고 ‘중화민국’을 건국한 국민당 정부는 공산당과의 두 차례 내전에서 패배하며 대만으로 패퇴했고, 승리한 공산당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으로 외부와 단절되었던 중국은 1972년 미국 닉슨대통령의 중국방문으로 서방에 대한 문호개방의 서막을 열었다. 이어서 마오쩌중 사후,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 1978년부터 본격적인 개혁개방시대를 맞게 된다. 이 해를 중국 개혁개방의 원년으로 보고 전국을 5대 경제권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제1차 개혁개방 1980년대 주강 삼각주(珠江三角洲) 경제권>
1차 개혁개방은 주강 삼각주(珠江三角洲)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덩샤오핑은 광저우 근처에 산업도시이자 인공도시인 선전(深圳)을 중심으로 광저우, 선전, 둥관, 주하이에 걸친 주강삼각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여 개혁개방을 시작했다. 이 지역의 도시들은 육로로 3시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각 산업분야가 골고루 편재돼 있어 동반 상승효과를 꾀하기에 유리한 지역이었다.
현재 주강삼각주 지역은 금융이나 물류 기능이 취약해서, 뒤에 형성된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장강 삼각주 지역에 밀리는 실정이다. 그래서 광둥성 정부가 홍콩과의 전략적 협정을 통한 연계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임가공업 지역인 광저우, 선전, 둥관, 주하이에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이 지역의 취약점인 금융 및 물류 기능을 인근 홍콩을 통해 보강하는 형식으로 이른바 ‘대주 삼각주(大州 三角洲)’ 형성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것이 성공할 경우, 제1차 개혁개방의 상징인 주강삼각 지역이 중국경제의 강력한 실체로 재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2차 개혁개방 1990년대 장강 삼각주(長江 三角洲) 경제권>
중국정부는 1차 개혁개방이 의도대로 추진되지 못한 점을 교훈삼아, 1992년 구정, 덩샤오핑이 우한(武漢), 상하이 등을 방문하고 개혁개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이른바 ‘남순강화(南巡講話)’를 계기로 중국의 개혁개방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다. 이 과정에서 덩샤오핑은 장쩌민을 영입해서 상하이, 장쑤성, 저장성의 ‘장강 삼각주(長江 三角洲)’지역을 중심으로 한 제2차 개혁개방을 하게 된다.
장삼각의 개발은 중국 개혁개방의 실질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장창(長江)은 우리에게 장강 또는 양자강, 서양에는 양쯔강(Yangtze River)으로 알려져 있는데,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하여 충칭과 우한을 거쳐 상하이로 이어지며 내륙 물류의 중심이었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상하이는 장쑤성의 작은 어촌에 불과했으나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문호를 개방하면서 경제적 번영과 함께 직할시로 발전했으며, 장쑤성과 저장성은 옛부터 강남지방에 속해 중국 근대 국부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풍요로운 지방이었다.
장삼각 지역의 중심인 상하이는 중국 도시의 특징인 내부의 도시와 외부의 농촌이 합쳐진 도농복합광역시로 전체 면적이 서울의 10배나 되고 인구는 2,500만 이상이다. 상하이에서도 푸둥(浦東)지역은 제2차 개혁개방의 핵심으로 금융, IT 및 R&D 분야로 특화돼 발전해 왔으며, 최근에는 인근의 구(區)를 편입해서 물류 기능을 통합했다. 그럭해서 서울 면적의 2배에 달하는 거대 푸둥이 탄생했으며 금융과 물류가 통합됨으로써 효율성이 극대화 되었다.
주 삼각에 비해 장강 삼각주(長江 三角洲)은 첨단산업을 성공적으로 유치했고, 금융, 물류 중심의 상하이와 생산기지 중심의 장쑤성, 저장성이 하나의 완벽한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제3차 개혁개방 2000년대 환발해 경제권(還渤海經濟圈)>
2000년대에 들어서며 중국은 허베이성을 중심으로 한 ‘경진기경제권(京津冀經濟圈)’을 중심으로 북방지역 개발을 착수했다. 이 지역은 2005년 이후, 랴오닝성과 산둥성을 포함하는 ‘환발해경제권(還渤海經濟圈)’으로 확대, 재조정되었다. 이 지역의 중심은 톈진의 ‘빈하이(濱海)신구’다. 빈하이 신구는 상하이의 푸둥(浦東)을 모델로 삼아 개발되었고 면적은 푸둥의 2배, 서울의 4배에 달한다. 첨단산업이 많이 진출해 있으며 산업기반이 양호해서 금융과 물류가 합쳐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푸둥과의 경쟁 상대는 아닌 것 같다.
중국정부는 산둥성, 칭다오, 다렌, 베이징, 허베이성을 잇는 환발해경제권(還渤海經濟圈)과 그 중심에 있는 빈하이 신구를 첨단 제조업을 기반으로 물류, 금융, 무역 중심으로 집중 육성할 계획이었지만 면적이 방대하고 거점도시들이 분산돼 있어서 장강삼각주 지역처럼 밀집된 산업 클러스터 형성이 어렵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제4차 개혁개방 2000년대 중서부 경제권>
중서부경제권은 청두, 충칭, 시안 등 중국의 고도(古都)를 중심으로 한 내륙개발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이 지역은 중국정부가 2008년 금융환란 이후 내수 활성화를 위해 4조 위안을 투입해서 SOC를 건설하는 등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더욱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지리적 제약으로 말미암아 아직은 발전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내륙이나 동부의 항구로 이동하기에는 물류비용이 높고 이동시간도 많이 걸리는 등 효율성이 떨어지며 서부 쪽은 아직까지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중앙아시아의 구소련 위성 독립국가들과 인접해 있어 중앙아시아 육로이용도 용이하지 못한 실정이다.
그러나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녹색산업 시대의 신에너지인 풍력, 태양광 등의 녹색성장 동력산업이 포진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췄다. 중국정부 역시 녹색산업 발전을 중시하고 있어서 앞으로 이 지역을 주목할 필요가 있지만 아직은 중앙정부의 집중투자에 비해 단기적인 효과는 미미해 보인다.
<제5차 개혁개방 2000년대, 동북경제권>
제5차 개혁개방의 중심은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의 ‘동북 3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지역은 만주사변 후 일본에 의해 산업화되어 일찍이 공업이 발전했던 전통이 있으나 그 동안 개발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 그러나 최근 장길도 개발 계획 등 의욕적인 움직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 지역은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한반도 분단 상황 아래서는 불투명하지만 북한이 개방정책을 수용하거나 한반도 분단이 극복된다면 한국, 일본 등과 육로로 연결되어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WTO 가입으로 진정한 개혁개방을 맞다>
진정한 의미에서 중국의 개혁개방은 2001년 WTO 가입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로써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서방국가들의 신뢰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물론 WTO 가입은 WTO의 규제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서방국가들의 신뢰를 얻어 거대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경제성장도 탄력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실제적인 개혁개방의 성과는 2001년 이후라고 볼 수 있으며 그야말로 자의적인 개혁개방이라고 할 수 있다.
2001년 WTO 전에도 서방의 자본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주류는 화교자본이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 범 동남아 자본 모두 애국심의 발로였다. 더구나 이들 화교자본들은 연속성을 가졌다는 데 의미가 크다. 대개 자본이란 일단 투자를 해보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되면 투자를 중지하거나 축소하기 마련인데, 애국심의 발현으로 연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조업 1단계로서 임가공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구자본이나 일본, 한국 등의 자본유입이 있기는 했지만 소극적 형태였다. 그러다가 WTO에 가입하면서 거대한 유대 기독교 자본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상하이 푸둥 신화 창조가 이루어진 것은 실제로 WTO 가입 이후이다.
<2010 상하이 엑스포로 개혁개방이 마무리되다>
엑스포는 사실상 경제 올림픽이다. 상하이 엑스포는 중국 개혁개방의 30년 역사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올림픽이 스포츠지만 다른 측면에서 정치대전으로 볼 수 있다면 엑스포는 경제대전이다. 아울러 개혁개방 30년을 마무리하면서 그 성공신화의 중심에 상하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상하이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 ‘상하이를 보면 세계가 보인다’라고 하는 것이다.
상하이 푸둥에는 200개가 넘는 현대식 고층빌딩이 있다. 미국의 시카고 수준이다. 상하이 푸시에는 구 조계지를 중심으로 런던, 뉴욕, 파리가 있다. 인구와 면적도 위에 언급한 4개 도시와 맞먹는다. 즉, 상하이 안에 과거와 현대를 대표하는 전 세계 도시가 모두 있는 것이다. 상하이의 모습을 통해 개혁개방한 중국의 모습을 실감할 수 있고, 또한 중국이 세계의 거대시장으로 변모했음을 볼 수 있다. 상하이 엑스포에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참가했고 거의 모든 나라의 국가원수나 원수급 인사들이 다녀갔다. 거대한 중국시장을 보고 간 것이다.
또한 엑스포 기간 동안 놀랄 만큼 변화한 상하이의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졌으며 중국의 눈부신 개혁개방 성과가 거침없이 전 세계 매스컴을 통해 널리 홍보되었다. 6개월 동안 지속된 이런 중국의 소개는 실로 엄청난 홍보효과가 아닐 수 없었다. 상하이 엑스포의 홍보효과는 중국이 머지않아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강력한 이미지를 전 세계에 심어주는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뿐만 아니라, 자국민인 중국인들에게 강한 자긍심을 고취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무려 7천만 명의 중국인들이 상하이 엑스포를 관람하며 중국의 발전에 대해 가슴 벅찬 자부심을 느꼈다. 중국관을 비롯하여 정보통신관, 전력관, 자동차관, 선박관, 우주 항공관 등을 보며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것을 느끼며 대단한 프라이드를 갖게 되었다.
이제 중국은 2023년 기준으로 세계 수출 1위, 외환보유 1위(약 3조 1천억 달러), 전체 GDP 2위(약 19조억 달러)로, 일본(5조 4천억 달러)보다 약 4배나 앞서 GDP 총액 세계 2위로 올라섰다.
2005년 1월 29일 스위스에서 개최된 World Economy Forum에 참석한 황쥐(黃菊)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2020년 중국의 GDP 규모는 약 4조 달러에 달해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었는데, 실제로는 예상보다 10년 빨리 중국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2023년 미국 GDP의 약 26조 달러의 4분의 3에 못 미치는 약 19조 달러 수준이지만,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으로 예상보다 빨리 미국을 제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놀라운 경제성장을 통해 개혁개방을 이룬 중국과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상호 순기능을 해왔다.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는 한국 기업들의 투자에 적지 않은 힘을 입었으며, 우리나라는 중국의 고성장으로 시장이 열리면서 1997년과 2008년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두 나라는 어려운 시기에 상부상조해 왔으며 짧은 국교수립 역사에도 불구하고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 왔다.
이와 같이 살펴본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을 통해 중국시장은 이미 천문학적으로 커졌다. 이에 맞추어 우리도 중국 내수시장을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영토를 확장해야 한다는 인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스마트폰, 자동차, 가전 등 제조업 영역에서 시장 점유율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의 더욱 도전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기업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도 빠른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며, 그들의 성장을 우리의 발판으로 삼아 대한민국도 21세기의 도약을 준비할 때이다. 개혁개방으로 부흥하는 중국의 성장은 곧 우리에게도 희망의 미래를 담보시켜줄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앞으로 중국은 우리와 공존해야 할 경제적 공동체 운명이다.
☆필자 김정기 시티넷 사무국 대표 이력☆
*학력
△뉴욕주립대(Stony Brook) 정치학과 수석 졸업
(Summa Cum Laude)
△마케트대(Marquette) 로스쿨 법학박사
(Doctor of Jurisprudence)
*외교안보 경력
△제8대 주 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 (13등급 대사)
△2010 상하이엑스포 대한민국관 정부대표
△시티넷(아태지방정부네트워크) 사무국 대표
△국민대 정치대학원 동아시아국제정치 특임교수
△베이징대 외국어대학 북한학 객좌연구원
△베이징대 동방학연구원 중국학 연구교수
*경제경영 경력
△거로출판사 청년 창업자 및 회장
△한국예탁결제원 국제펀드위원회 자문위원
△법무법인 영진 중국경제금융센터 고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용인) 객원교수
△한남대 경제학부 예우교수
△난징대 국제경제연구소 객좌교수
*교육 경력
△숭실사이버대 초대 총장
△성결대 교양교직학부 석좌교수
△용인대 교양대학 특임교수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외국어학당 영어강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 이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최고위과정 이수
*법조법학 경력
△법무법인 대륙아주 중국총괄 미국변호사
△숭실사이버대 법학부 전임교수
△고려대 법학대학원 최고위과정 '고정' 강연자
△밀워키지방법원 판사시보
△미국변호사협회 ADR분과 위원
*뉴미디어 경력
△자유한국당 팟캐스트 <적반하장> 패널 및 앵커
△유튜브 채널 신의한수 <세계전망대> 정치평론가
△김정기TV <직필직설> 대표평론가
△인터넷 언론 브레이크뉴스 정치칼럼니스트
*정치 경력
△국민의힘 용인(병) 국회의원 경선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후보 정치행정분과
위원 및 선대위 정치개혁 총괄 자문위원
△자유한국당 오세훈 당대표후보 SH전략회의
총괄 및 선대위 조직본부 총괄본부장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 국제위원회
위원장 및 선대위 서울필승대회 준비위원장
*저서
△대학생을 위한 거로영어시리즈[전10권](거로)
△나는 1%의 가능성에 도전한다(조선일보)
△한국형 협상의 법칙 (청년정신사)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하다 (도서출판 실크로드)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In the future, China is destined to coexist with Korea as an economic community.
[World Story-4] China's Era of Opening: To the World, to the World!!
Jeonggi Kim, Representative of the Secretariat of Citynet (Association of Asia-Pacific Local Governments)
China's economic reforms, which began in 1978, not only marked the beginning of a new era, but also brought a wave of change to the world economy. They were called the ‘curtain of bamboo’ for an era and kept their doors firmly closed. Since Deng Shaoping’s reform and opening policy in 1978, they have opened wide and are steadily reaching out to the world at a frighteningly fast pace. In the early days of reform, when Deng Xiaoping announced that he would increase China's national income by more than four times by the end of the 20th century, it was only thought of as a message of hope to the people, but in 1995, it was already to the extent of completing the schedule.
The world is changing, and at the center of it, a huge country called China rises up and comes deep into the center of the world order, saying, “There is no more humiliation.” Even the words to beware of China, where the DNA of conquest is wriggling, are becoming a reality. When China first started the wave of reform and opening up, China's current development was a change that no one could have imagined. Will China, which is solidifying its position as an economic powerhouse toward the world, finally become the center of the world order as they intended?
Then, through what process did China, as a central country in Asia, lead the world order in the region through historical processes and pursue reform and opening policies?
Looking at China's opening historically, it will help us understand the potential of 'Pax Sinica', and we will gauge China's status as it expands to the world. Therefore, as a neighboring country to China, we can predict our future by looking at the history of China's opening.
<Achieving Openness through Tribute Trade>
China has a history of establishing unified dynasties over five generations, Han, Tang, Yuan, Ming, and Qing, and leading the world order in the Asian region centered on China. China's history is often referred to as the 'history of the periphery' or the 'history of the non-mainstream,' because China has been constantly challenged by the periphery ever since it led the world order in the region as a central country in Asia.
Among the five unified dynasties of the ‘Handang, Yuan, Ming and Qing’, which can be seen as the so-called early ‘Pax Sinica’, the Yuan and Qing were heterogeneous, but the unified dynasties centered on the Han Chinese also had to constantly be challenged by the periphery. In the end, the policy adopted by the unified dynasties in order to check the always threatening and burdensome frontier was the opening by 'tribute trade' for the first time.
To put it simply, by enriching the economy of the other party, it prevented invasion or plunder and facilitated the rule of foreign peoples.
However, from China's point of view, the tributary trade was a kind of 'giving away', giving more to the other party than receiving it. Therefore, rather than openness in the true sense, it should be seen as a tolerance policy chosen to peacefully maintain the China-centered order.
If so, how was it with Korea? The fact that the Joseon Dynasty was able to maintain peace with China for 500 years was ultimately possible through tribute and crown prince installation. The Ming Dynasty tried to stabilize the Joseon Dynasty politically by granting legitimacy through the process of installing the crown prince of Joseon, and economically, it carried out trade through tribute. Looking at the relationship with the periphery centered on China, the recent relationship between China and North Korea can be sufficiently inferred.
North Korea's succession of power from Kim Il-sung to Kim Jong-il was smooth thanks to China's securing of North Korea's legitimacy through a process such as crowning the crown prince and its economic support policy through tribute trade. From that point of view, it should be seen that it is almost impossible for the military or influential people to stage an armed coup to take over the regime of Kim Jong-un, whose power base is weak after the death of Kim Jong-il.
<Stepping out on the path of involuntary opening through concession trade>
During the agricultural era, China had an overwhelming economic and cultural advantage over other regional powers, accounting for 30% of world GDP. However, in the 19th century, the Western powers that achieved the industrial revolution carried out 'involuntary opening', the so-called 'concession trade'. The first ‘Opium War’ occurred in 1840 and ended in 1842, and the Treaty of Nanjing was concluded with Britain, and Shanghai, Ningbo, Fuzhou, Xiamen, and Guangzhou were opened.
Following the Second Opium War, England, France, Russia, and the United States took control of Beijing in 1856, and in 1860, the Treaty of Beijing was signed and Tianjin was opened. At the time, China, which was an agricultural powerhouse, was unable to actively cope with the new trend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and eventually succumbed to the Western powers and was forced to open up involuntarily.
China in the era of the Han, Tang, Yuan, Ming and Qing years accounted for more than 30% of world GDP at that time. In general, if it accounts for 20% of the world's total GDP, the word 'Pax' is used in terms of world-centered order, so in China, all five dynasties were already 'Pax'. Particularly, some consider the 130 years (1662-1795) as the time when Pax Sinica was achieved, from Emperor Kangxi in the Qing Dynasty to Emperor Qianlong, the most prosperous period in Chinese history. This is because it laid the ground for a multi-ethnic country with a wider territory and diverse cultures than any other dynasty, and it was a period in which peace and prosperity lasted the longest.
At that time, there was active trade between the Qing Dynasty and England. In England, cotton was a trade commodity, and in China, silk, tea, and porcelain were trade balances. As the demand for these Chinese products exploded in the UK, all silver produced in the UK, which was a means of settlement for trade, was driven to China. The British had no choice but to grow opium in India and export it to China, and many Chinese people became addicted to opium, so an incident occurred in Guangdong. That is the Opium War.
The conflict between China and Britain, which originated from trade friction, proceeded in two stages and ended in 1860. As a result of the Opium War, Tianjin was opened, and China's eastern coastal cities unintentionally engaged in concession trade. However, looking at it now, it can be said that the cities that opened ports at that time were rather helpful to China's economic development. Much of the infrastructure built at that time has already disappeared, but based on that experience, with the opening of the reform and opening era, those places are leading China's rapid growth.
<Opening the era of reform and opening through processing trade>
Reform and opening in a modern sense is the era of ‘processing trade’ that can be summarized as the period from 1978 to 2000. The Kuomintang government, which overthrew the feudal dynasty through the Xinhai Revolution and established the Republic of China, was defeated in two civil wars with the Communist Party and retreated to Taiwan. The victorious Communist Party established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1949.
China, which had been cut off from the outside world by Mao Zedong's Cultural Revolution, opened the door to the West with the visit of US President Nixon in 1972. Subsequently, after the death of Mao Zedong, Deng Xiaoping came to power, and from 1978, the era of reform and opening up began in earnest. This year is regarded as the first year of China's reform and opening up, and the whole country is divided into five major economic blocs.
<The First Reform and Opening Up in the Pearl River Delta Economic Zone in the 1980s>
The first round of reform and opening was centered on the Pearl River Delta. Deng Xiaoping initiated reform and opening up by forming an industrial cluster in the Pearl River Triangle, centered on Shenzhen, an industrial and man-made city near Guangzhou, spanning Guangzhou, Shenzhen, Dongguan, and Zhuhai. Cities in this region are located within 3 hours by land, and each industry sector is evenly distributed, making it an advantageous area to seek synergistic effects.
Currently, the Pearl River Delta region is weak in financial and logistics functions, so it is being pushed behind by the Yangtze River Delta region centered on Shanghai, which was formed later. That is why the Guangdong provincial government is pursuing a linkage with Hong Kong through a strategic agreement. In addition, the so-called ‘Dazhou Delta’ is being formed by attracting high-tech industries to traditional toll processing areas such as Guangzhou, Shenzhen, Dongguan, and Zhuhai, and reinforcing financial and logistics functions, which are weak points in these areas, through nearby Hong Kong. If this is successful, it is expected that the Pearl River Delta region, a symbol of the first reform and opening up, will be able to re-emerge as a powerful entity in the Chinese economy.
<Second Reform and Opening in the Yangtze River Delta Economic Zone in the 1990s>
The Chinese government took lessons from the fact that the first round of reform and opening did not go as planned, and in 1992, during the Chinese New Year, Deng Xiaoping visited Wuhan and Shanghai and expressed his views on reform and opening, so-called “Southern Shunganghwa,” and China’s reform and opening entered a new phase. In this process, Deng Xiaoping recruited Jiang Zemin to carry out the second round of reform and opening, centering on the Yangtze River Delta region of Shanghai, Jiangsu and Zhejiang.
The development of the Long Delta is a practical symbol of China's reform and opening up. The Changjiang River, known to us as the Yangtze River or the Yangtze River in the West, originates from the Tibetan Plateau and continues to Shanghai via Chongqing and Wuhan, and has a tradition of being the center of inland logistics. Shanghai was just a small fishing village in Jiangsu Province, but as it opened its doors to the invasion of Western powers, it developed into a direct-controlled city with economic prosperity.
Shanghai, the center of the Long Delta, is an urban-agricultural complex combining urban and rural areas, which are the characteristics of Chinese cities, with a total area ten times larger than Seoul and a population of more than 25 million. In Shanghai, the Pudong area has been specialized in finance, IT and R&D as the core of the second round of reform and opening, and has recently integrated logistics functions by integrating nearby districts. As a result, a huge Pudong area twice the size of Seoul was born, and efficiency was maximized by integrating finance and logistics.
Compared to the main triangle, the Yangtze River Delta has successfully attracted high-tech industries, forming a complete industrial cluster with Shanghai, which is centered on finance and logistics, and Jiangsu and Zhejiang, which are centered on production bases.
<The 3rd Reform and Opening in the 2000s, the Bohai Sea Economic Bloc>
Entering the 2000s, China began developing the northern region, centering on the ‘Gyeongjin Economic Bloc’ centered on Hebei Province. Since 2005, this region has been expanded and readjusted to the Bohai Sea Economic Zone, which includes Liaoning and Shandong. The center of this area is Tianjin's Binhai New Area. Binhai New District was developed using Shanghai's Pudong as a model and covers an area twice that of Pudong and four times that of Seoul. Many high-tech industries have entered and the industrial base is good, so finance and logistics have been combined, but it still does not seem to be a competitor to Pudong.
The Chinese government planned to intensively foster the Bohai Sea Economic Bloc linking Shandong, Qingdao, Dalian, Beijing, and Hebei Province, and the Binhai New Area at its center, as a center for logistics, finance, and trade based on high-tech manufacturing, but it is true that it is difficult and inefficient to form a dense industrial cluster like the Yangtze River Delta region due to the vast area and scattered base cities.
<The 4th Reform and Opening in the Midwest Economic Zone in the 2000s>
The Midwest Economic Bloc was promoted as part of an inland development strategy centered on China's ancient capitals, such as Chengdu, Chongqing, and Xi'an. This area began to develop further with the active support of the central government, such as the Chinese government investing 4 trillion yuan to build SOC to stimulate domestic demand after the financial crisis in 2008.
However, it is true that there are still limits to development in this area due to geographical constraints. Above all, it is inefficient to move to inland or eastern ports, such as high logistics costs and long travel time, and the western side is adjacent to the former Soviet Union satellite independent countries in Central Asia, where the economy has not developed yet, so it is not easy to use the land route in Central Asia.
However, based on abundant underground resources, green growth power industries such as wind power and solar power, which are new energy in the green industry era, are in full swing, so it has the potential for long-term development. The Chinese government also places importance on the development of green industries, so it is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this area in the future, but the short-term effect seems to be insignificant compared to the central government's concentrated investment.
<The 5th Reform and Opening in the 2000s, Northeast Economic Bloc>
The center of the 5th round of reform and opening is highly likely to be the “three northeast provinces” of Liaoning, Jilin and Heilongjiang. This area had a tradition of early industrialization as it was industrialized by Japan after the Manchuria Incident, but it had been pushed aside from development priorities. However, it is also true that there are recent ambitious movements such as the development plan of Janggil Island. In addition, this area borders on North Korea, so it is unclear under the situation of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but if North Korea accepts the open policy or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is overcome, it is expected that it will be connected by land to South Korea and Japan and meet a renaissance.
<WTO accession welcomes true reform and opening>
In a real sense, it can be said that China's reform and opening began with its accession to the WTO in 2001. This is because it was recognized as a member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earned the trust of Western countries.
Of course, joining the WTO meant that it would be regulated by the WTO, but economic growth gained momentum as large capital began to flow in after gaining the trust of Western countries. Therefore, the actual achievements of reform and opening can be seen as after 2001, and it can be said to be voluntary reform and opening.
Even before the WTO in 2001, capital from the West came in, but the mainstream was Chinese capital. Hong Kong, Taiwan, Singapore and pan-Southeast Asian capitals were all out of patriotism. Moreover, it is significant that these overseas Chinese capitals had continuity. In general, capital tends to suspend or reduce investment once the investment is made and the possibility is judged to be slim, but since continuous investment was made with the expression of patriotism, the toll processing industry was able to succeed as the first stage of manufacturing. Until then, there was an inflow of capital from Western countries, Japan, and Korea, but it was in a passive form. Then, with the accession to the WTO, huge Jewish and Christian capital began to enter in earnest. So, the creation of the Shanghai Pudong myth actually took place after the WTO accession.
<The 2010 Shanghai Expo concludes reform and opening up>
The Expo is, in effect, an economic Olympics. The Shanghai Expo can be seen as the end of the 30-year history of China's reform and opening up. If the Olympics is a sport, but can be seen as a political war from another perspective, the Expo is an economic war. In addition, it has the effect of showing that Shanghai is at the center of the success story as the 30 years of reform and opening are over. That's why it is said, "Looking at Shanghai, you can see the future" and "Looking at Shanghai, you can see the world."
Shanghai Pudong has over 200 modern skyscrapers. It's like Chicago in the US. In Puxi, Shanghai, there are London, New York, and Paris around the old concession area. The population and area are also equivalent to the four cities mentioned above. In other words, Shanghai has all the cities of the world representing the past and present. Through the appearance of Shanghai, we can realize the appearance of China that has been reformed and opened, and we can also see that China has transformed into a huge market in the world. Most countries around the world participated in the Shanghai Expo, and heads of state or heads of state from almost all countries visited. I went to see the huge Chinese market.
Also, during the expo, Shanghai's astounding changes were known to the world, and China's remarkable achievements in reform and opening were widely publicized through the world's media without hesitation. This introduction of China, which lasted for six months, was indeed a tremendous publicity effect. The PR effect of the Shanghai Expo had the effect of planting a strong image around the world that China would soon become the center of the world.
In addition, it served as an opportunity to inspire strong self-esteem in the Chinese people, their own people. As many as 70 million Chinese watched the Shanghai Expo and felt a sense of pride in China's progress. Looking at the China Pavilion,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Pavilion, Electric Power Pavilion, Automobile Pavilion, Ship Pavilion, Space Aviation Pavilion, etc., I felt that China is the world's best in all fields, and I had great pride.
Now, as of 2023, China ranks first in world exports, first in foreign exchange reserves (approximately 3.1 trillion dollars), and second in overall GDP (approximately 19 trillion dollars), about four times ahead of Japan (5.4 trillion dollars), rising to second place in the world in total GDP.
On January 29, 2005, at the World Economy Forum held in Switzerland, Vice Premier Huang Ju, Vice Premier of the State Council of China, predicted that China's GDP would reach about $4 trillion by 2020, overtaking Japan and becoming the world's second largest economy.
Of course, it is about $ 19 trillion, which is less than three quarters of about $ 26 trillion of the US GDP in 2023, but it is also true that China's rapid economic growth will allow it to overtake the United States sooner than expected. China and Korea, which have achieved reform and opening through such remarkable economic growth, have been mutually beneficial economically.
During China's reform and opening process, investment by Korean companies benefited considerably, and Korea received a lot of help in overcoming the financial crises of 1997 and 2008 as the market opened up due to China's high growth. The two countries have helped each other through difficult times and have made remarkable progress despite the short history of diplomatic relations.
Through the process of China's reform and opening reviewed in this way, the Chinese market has already grown astronomically. In line with this, we also need to reinforce the perception that Korea's economic territory must be expanded through the Chinese domestic market. Nevertheless, fundamental countermeasures must be prepared for the reality that market share in the manufacturing sector such as smartphones, automobiles, and home appliances is endlessly falling. Our companies need a more challenging attitude. There should be a rapid change in our perception of China as well as companies, and it is time for Korea to prepare for a leap forward in the 21st century by using their growth as our stepping stone. Isn't it natural that China's growth, which is revitalized through reform and opening, will soon secure a future of hope for us as well. In the future, China is destined to coexist with us as an economic community.
*Author Kim Jeong-gi's career as CEO of CityNet Secretariat
*Education
△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Stony Brook) Graduated from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Summa Cum Laude)
△ Doctor of Law, Marquette Law School
(Doctor of Jurisprudence)
*Diplomatic security experience
△The 8th Consul General of the Republic of Korea in Shanghai (Level 13 Ambassador)
△ 2010 Shanghai Expo Korean Pavilion Government Representative
△ Representative of the Secretariat of CityNet (Asia Pacific Local Government Network)
△Special Professor in East Asian International Politics, Graduate School of Political Science, Kookmin University
△Visiting Researcher of North Korean Studies, College of Foreign Studies, Peking University
△ Research Professor of Chinese Studies,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Peking University
*Economic management experience
△ Young founder and chairman of Georo Publishing Company
△ Korea Securities Depository International Fund Committee Advisory Committee
△Advisor at Law Firm Youngjin China Economic and Financial Center
△Chair Professor, Graduate School of Business, Dongguk University
△Visiting professor at Kyunghee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Techno Business (Yongin)
△Professor Ye Woo, Department of Economics, Hannam University
△Visiting Professor at Institute of International Economics, Nanjing University
*Education experience
△ The first president of Soongsil Cyber University
△Chair Professor at Sungkyul University Department of Liberal Arts and Teaching
△Specially appointed professor at Yongin University College of Liberal Arts
△Seoul National University, Korea University, Yonsei University Foreign Language Institute English Instructor
△Completion of National Policy Course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Public Administration
△Completion of the highest level course at Harvard University Kennedy School
*Forensic law career
△ Law Firm Continental Aju China General American Attorney
△ Soongsil Cyber University, Faculty of Law, full-time professor
△ Korea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Law, the highest level course 'Gojeong' lecturer
The Milwaukee District Court Judge's Times
△ American Bar Association ADR Subcommittee
*New media career
△ Liberty Korea Party Podcast <Red Hat> Panel and Anchor
△ Youtube channel Shin Eui Han-soo <World Observatory> Political Critic
△Kim Jeong-gi TV <Direct Directness> Chief Critic
△Internet Press Break News Political Columnist
*Political career
△ People's Power Yongin (Byeong) National Assembly member contest candidate
△ People's Power Seok-Yeol Yoon, Presidential Candidate, Political Administration Division
Members and Seondae Committee General Advisory Committee for Political Reform
△ SH strategy meeting for candidate Se-hoon Oh of the Liberty Korea Party
General Manager and Senior Subcommittee Organization Headquarters General Headquarters
△ International Committee on Presidential Candidate Lee Myung-bak of the Grand National Party
Chairman and Seondae Committee Chairman of the Seoul Pilseung Competition Preparation Committee
*Book
△ Georo English series for college students [10 volumes in total] (Goro)
△ I challenge the 1% possibility (Chosun Ilbo)
△ Korean style negotiation law (Youth Mental History)
△ Talking about the future of Korea (Book Publishing Silk R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