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꽃의 도시 하를렘과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2/09/19 [10:07]

▲ 네덜란드 하를렘(Haarlem). 출처: 구글  © 이일영 칼럼니스트

 

 

네덜란드는 전체 면적의 삼 분의 일 정도가 해수면 아래에 존재하는 저지대 나라이다. 저지대(Low Countries)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부르고뉴 공국 시대였다. 부르고뉴 공국이 탄생한 것은 843년 프랑크 왕국이 분할된 베르됭조약 이후 부르고뉴 지역 오툉의 리처드 백작(858-921)이 888년 부르고뉴 공국 백작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프랑크 왕국의 황제 대머리 왕 샤를 2세(823~877)가 877년 세상을 떠나고 두 번째 부인이었던 리차일드(845년~910) 황후가 섭정으로 통치하면서였다. 리처드 백작은 황후의 남동생이었으며 프로방스 왕 보소(841~887)는 황후의 오빠였다. 

 

부르고뉴 공국은 880년에서 1032년까지 부르고뉴 가문의 세습이 이어졌으며 이후 1361년까지 카페 왕조-부르고뉴 공국을 거쳐 1477년까지 발루아 왕조-부르고뉴 공국으로 존재하였다. 

 

프랑스어로 네덜란드를 뻬이바(Pays-Bas)로 부르는 배경에서 부르고뉴 공국은 남부의 영토 프랑슈콩테와 구분하는 북부의 네덜란드 지역을 포함한 저지대 영토를 그 너머의 땅(나라)-pays de par-delà) 또는 이쪽의 땅(나라)-les pays de par deçà)으로 기록하였다.  

 

낮은(neder)+땅(land)이라는 뜻의 네덜란드(Netherlands)는 근대의 명칭으로 나라의 전 지역을 이르는 명칭 홀랜드(Holland)가 등장한 시기는 1064년이었다. 오늘날 암스테르담 서쪽 하를렘(Haarlem)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미국 뉴욕 맨해튼 북부 할렘가 명칭이 생겨난 배경이다. 1613년 맨해튼 섬을 탐험한 네덜란드가 다음 해 1614년 식민지로 삼아 1623년 정착민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여 1658년 네덜란드 주요 도시 하를렘을 명칭한 지역이 할렘이 되었다. 

 

네덜란드의 하를렘은 당시 암스테르담 서쪽 약 20km 지점의 해안 모래 언덕이었다. 여러 기록을 헤아리면 도시를 방어할 최소한의 성벽이 1270년까지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에서 도시가 형성된 시기를 추정해 볼수 있다. 훗날 이곳 모래 언덕의 토양이 알뿌리 구근 화초 재배에 적합하여 아름다운 튤립꽃이 피어나면서 튤립 재배지로 명성을 얻어 꽃의 도시(Bloemenstad)라는 이름으로 시대를 관통하였다.  

   

잠시 이를 정리하고 가자. 항해 왕국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활약으로  암스테르담 항구 도시가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1602년 인류사 최초의 증권 거래소가 설립되었다. 당시 네덜란드 유명 화가 렘브란트가 주식투자에 열중하였을 만큼 투자 열풍이 불면서 튤립 투기라는 어이없는 사태가 생겨났다. 

 

튤립꽃은 본디 야생화였다. 튤립꽃을 최초로 기록에 남긴 인물은 칭기스칸 후예 티무르 제국 통치자 후세인 바이카라(1438~1506)였다. 그는 티무르 르네상스 시대라는 평가를 가져왔을 만큼 헌신적인 예술가 후원은 물론 감성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공식적인 기록에 12명의 부인을 두어 18명의 아들과 18명의 딸을 낳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당시 티무르 제국의 수도 헤라트에 피어난 예술의 바람은 그가 사랑한 튤립 꽃 만큼 아름다운 바람이었다. 

 

그가 헌신적으로 후원한 두 명의 시인이 있었다. 페르시아 신비주의 시인 라흐만 자미(1414~1492)는 왕자 시절부터 교유한 스승이었다. 페르시아 문학 최후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자미 시인은 사랑을 주제로 하는 시 형식 (가잘)과 교훈적이며 영웅적인 주제를 한 구절에서 두 개의 연속적인 운율로 전하는 (마스나위)에서 뛰어난 감성을 전하였다. 

 

그는 특히 전설의 수피즘 시인 잘랄 앗 딘 알 루미(1207~1273)의 사랑 지향적인 감성을 계승한 시인이다. 참고로 루미 시인은 미국에서 인류의 감정을 담아낸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수년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시인이다.   

 

또한, 인도 태생 하버드 대학 의학박사로 전통 치유학 아유르베다와 현대 의학을 접목한 심신의학으로 세계에서 2천만 부 이상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영성주의자 디팩 초프라가 1998년 기획한 루미 시인의 사랑 시 낭송 음반은 세계적인 팝스타 마돈나에서부터 각 분야의 유명인사들이 참여하여 주목을 받았다. 

 

튤립꽃을 최초 기록으로 남긴 티무르 제국 통치자 후세인 바이카라가 헌신적으로 후원한 두 명의 시인 중 또 한명의 시인은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문학의 창시자로 역사에 남은 시인 알리셰르 나보이(1441~1501)이다. 그는 투르크 문학의 창시자이다. 

 

▲ 아프가니스탄 헤라트 성. 출처: 구글  © 이일영 칼럼니스트


티무르 제국 통치자 후세인 바이카라가 튤립 꽃을 최초로 기록한 배경은 제국의 수도 헤라트의 자연환경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중서부의 하리루드강 기슭에 자리한 수도 헤라트는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을 품은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으로 오랜 역사가 평가한 곳이다. 

 

아케메네스 제국 다리우스 대왕(550~BC. 486) 생전에 제작된 (베히스툰 비문)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후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BC) 330년 인도 원정 중에 아레아의 수도 아르타코아나를 정복하고, 아레아의 알렉산드리아라는 새로운 도시를 요새로 건설한 곳이 헤라트로 추정하며 주요한 이유가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이었다. 

 

필자가 많은 자료를 헤아려 최초의 기록이 전하는 내용에서 페르시아 제국에서 자생하여온 야생화 튤립꽃을 티무르 제국 통치자 후세인 바이카라가 당시 궁전 정원에서 재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바이카라가 세상을 떠난 50년 후 1554년 오스만 제국에서 튤립꽃을 합스부르크 왕가에 선물하였다. 당시 프랑스 출신 의학자이며 식물학자인 카롤루스 클로시우스(1526~1609)가 1573년 빈 제국의료원에 근무하면서 튤립 꽃을 처음 보게되었다. 이후 1593년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식물원을 설립하면서 바이러스에 의한 변종 튤립 재배에 성공하게 된다.

 

당시 튤립은 매우 희귀하였으며 꽃의 빛깔과 크기가 고귀한 꽃으로 사랑을 받았다. 이에 튤립이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어 웃돈을 주고 거래하게 되면서 귀족들과 부자들이 튤립을 선점해버렸다. 튤립꽃을 가지면 부자가 된다는 소문까지 가세하여 주식처럼 튤립을 거래하는 시장이 생겨나 1634년과 1637년 사이에 튤립 마니아로 기록된 투기 광풍이 불면서 혼란에 빠져든 역사가 있었다.  

 

(글을 줄이며....) 짧은 시간에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다 스스로 길을 잃은 느낌이다. 해야 할 이야기는 많지만, 일상의 시간을 나누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겸허하게 성찰하며 미국에서 인류의 감정을 담아낸 시인으로 평가한 루미 시인의 시로 마무리 한다.  

   

(가만히 있으라, 언어를 내린 신이 말씀하시도록. 문을 만들고 잠가 놓으신 것처럼 신은 열쇠도 만드셨으니.-Be silent that the Lord who gave thee language may speak, For as He fashi oned a door and lock, He has also made a key.) artwww@naver.com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Haarlem, the Dutch city of flowers and Herat, Afghanistan

 

- Lee Il-young, columnist

 

The Netherlands is a low-lying country with about a third of its total area below sea level. It was during the Principality of Burgundy that the term Low Countries appeared. The Duchy of Burgundy was founded in 843 after the Treaty of Verdun, which divided the Frankish kingdom, and in 888, Count Richard (858-921) of Hauten, Burgundy became Count of Burgundy.

 

The background was the death of Charles II (823–877), the bald king of the Franks, and his second wife, Empress Lee Child (845–910), reigning as regent. Count Richard was the Empress's younger brother, and Bosso, King of Provence (841–887), was the Empress's older brother.

 

The Duchy of Burgundy was the succession of the Burgundian family from 880 to 1032, followed by the Caffe dynasty until 1361 and the Duchy of Burgundy until 1477 as the Principality of Valois-Burgundy.

 

Against the background of calling the Netherlands Pays-Bas in French, the Duchy of Burgundy extended the lowland territories including the Dutch region in the north, which separated it from the Franche-Comte in the south, the lands beyond - pays de par-delà). Or this land (country) - les pays de par deçà).

 

The Netherlands (Netherlands), meaning neder + land, is a modern name. It first appeared in Haarlem, west of today's Amsterdam.

 

This is the background where the name of Harlem in northern Manhattan, New York, USA was born. After exploring Manhattan in 1613, the Dutch colonized the island in 1614 the following year, and settlers began to settle there in 1623.

 

Haarlem in the Netherlands was then a coastal sand dune about 20 km west of Amsterdam. From the fact that the minimum wall to defend the city did not exist until 1270, it is possible to estimate the time when the city was formed by counting various records. Later, as the soil of the sand dunes here was suitable for growing bulbous bulbs, beautiful tulip flowers bloomed, and it became famous as a tulip planting area, passing through the times as the city of flowers (Bloemenstad).

 

Let's clean this up for a moment. The first stock exchange in human history was established in 1602 as the port city of Amsterdam emerged as a center of trade thanks to the activities of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the kingdom of sailing. At that time, the famous Dutch painter Rembrandt was so absorbed in stock investment that an absurd situation called the tulip speculation arose.

 

Tulips were originally wild flowers. The first person to record tulip flowers was Hussein Baikara (1438–1506), ruler of the Timur Empire, descended from Genghis Khan. He was a person of great sensitivity as well as a devoted patron of artists that brought him an evaluation of Timur's Renaissance period. According to official records, he had 12 wives and was a legendary figure who gave birth to 18 sons and 18 daughters.

 

At that time, the wind of art that bloomed in Herat, the capital of the Timur Empire, was as beautiful as the tulip flower he loved.

 

There were two poets to whom he devotedly supported. Rahman Zami (1414-1492), a Persian mystic poet, was an educated teacher from the days of a prince. Regarded as the last poet of Persian literature, the poet Zami conveyed outstanding sensibility in the form of love-themed poetry (Ghazal) and didactic and heroic themes in two successive rhymes in one passage (Masnawi).

 

In particular, he is a poet who inherited the love-oriented sensibility of the legendary Sufist poet Jalal ad Din al Rumi (1207-1273). For reference, the poet Rumi is regarded as a poet who captured the emotions of mankind in the United States, and has been a bestseller for many years.

 

In addition, Deepak Chopra, a spiritualist who has recorded more than 20 million bestsellers in the world with mind and body medicine combining traditional healing Ayurveda and modern medicine as a medical doctor from Harvard University, born in India, in 1998, is a world-famous poet Rumi's Recitation of Love Poems album. From pop star Madonna to celebrities from various fields participated and received attention.

 

Another of the two poets devotedly patronized by Timur's ruler Hussein Baikara, who first documented tulip flowers, is Alisher Navoi (1441–1501), a poet who remains in history as the founder of today's Uzbek literature. He is the founder of Turkic literature.

 

▲ Herat Castle, Afghanistan. Source: Google © Ilyoung Lee Columnist

 

The background of the first recording of tulip flowers by Hussein Baikara, ruler of the Timur Empire, is closely related to the natural environment of Herat, the capital of the empire. Herat, the capital of Afghanistan, located on the banks of the Harirud River in midwestern Afghanistan, has been evaluated by a long history for its mild climate and excellent natural environment with fertile soil.

 

This is the content recorded in the (Behistun Inscription) made during the lifetime of Darius the Great (550~486 BC) of the Achaemenid Empire. Afterwards, Alexander the Great of Macedon conquered Artacona, the capital of Area during an expedition to India in 330 BC (BC), and built a new city called Alexandria of Area as a fortress. It was soil.

 

According to the first record, the author counts a lot of data, it means the fact that the tulip flower, a wild flower that grew wild in the Persian Empire, was cultivated in the palace garden by Hussein Baikara, the ruler of the Timur Empire at the time.

 

In 1554, 50 years after Baikara's death, the Ottoman Empire gave tulip flowers to the Habsburgs. At that time, the French physician and botanist Carlos Closius (1526–1609) first saw tulips in 1573 while working at the Imperial Medical Center in Vienna. After that, in 1593, he was appointed as a professor at Leiden University in the Netherlands and succeeded in cultivating mutant tulips caused by a virus while establishing a botanical garden.

 

At that time, tulips were very rare and were loved for their color and size. As a result, tulips became a symbol of status and traded at higher prices, and the aristocrats and wealthy took advantage of tulips. There was a history of chaos as a market was created to trade tulips like a stock, and a speculation frenzy recorded as a tulip maniac between 1634 and 1637.

 

(Reducing the text...) I feel like I've lost my way trying to talk about something in a short time. There are many stories to tell, but this is probably the reason why we need to share our daily time. It concludes with a poem by Poet Rumi, who was humbly introspected and evaluated as a poet who captured the emotions of mankind in the United States.

 

(Be silent that the Lord who gave thee language may speak, For as He fashi oned a door and lock, He has also made a key.) artwww@naver.com

 

*Writer: Lee Il-young

 

Director of the Korean Art Center. columnist. 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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