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 암살 “암살자는 따로 있었다?”...사건의 진상

[긴급 진단]글로벌리스트들이 루비콘강을 건넜을 때: 아베 신조 전 총리 암살 사건

이만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영문명=Emanuel | 기사입력 2022/08/12 [08:29]

▲지난 7월8일 암살 당한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 ©뉴시스

 

지난 7월 8일, 일본의 옛 수도는 후덥지근했습니다. 일본 정계의 최고 권력자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총리가 나라 긴테쓰 철도역 앞에서 지역 자민당 후보를 위한 유세 연설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쾅 하는 큰 소리가 나더니, 그 뒤로 희한한 연기구름이 나타났습니다.

 

반응은 엄청났습니다. 유난히 많은 군중 속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피신하려고 뛰거나, 공포에 질려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유세 도중 유난히 멀찍이 떨어져 서 있던 아베 전 총리의 경호원들은 그를 보호하려는 노력도, 안전한 장소로 끌어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지켜봤습니다.

 

몇 초 후, 아베는 늘상 입던 파란색 재킷, 이제 피로 얼룩진 흰 셔츠, 그리고 납북 일본인과의 연대를 상징하는 파란색 배지를 찬 채로 쓰러져 그 땅바닥에 눕게 됐습니다. 아마 즉사했을 것입니다.

 

그제서야 경호원들은 아베의 뒤에 서 있던 용의자 야마가미 토루야 (山上徹也)를 붙잡았습니다. 야마가미와의 몸싸움은 전문적인 기습 체포가 아닌 TV 시청자들을 위해 안무가 된 듯한 댄스 형태를 취했습니다.

 

언론이 즉시 확인한 결과 야마가미는 아베 전 총리에 대해 개인적 불만을 가진 41세의 전 해상자위대 대원으로 밝혀졌습니다.

 

야마가미는 주저 없이 모든 것을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현장에서 도망치려고도 하지 않았고 경호원들이 그를 붙잡았을 때 여전히 그 우스꽝스러운 수제 총을 들고 있었습니다.

 

아베가 보도 위에 눕혀진 후에도, 군중들 중 단 한 명도 피신하려고 뛰지 않았고, 심지어 어디에서 총격이 왔는지 알아보고자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격이 끝났다는 것을 마술처럼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코미디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베를 리무진에 태우고 휙 가버린 것이 아니라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이 행인들에게 “의사 없냐?”고 소리치기만 했습니다.

 

언론은 이 공격에 대해 즉시 "외로운 총잡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였고, 야마가미가 카리스마 넘치는 무속인 카와세 카요(川瀬カヨ), 새로운 종교인 토이츠 쿄카이 (世界平和統一家庭連合)와 어떻게 연관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가 그 단체와 교류를 가진 아베를 어머니의 문제로 비난했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되풀이했습니다.

 

토이츠 쿄카이에는 문선명 목사가 세운 통일교 신도들이 있기 때문에, 언론인 마이클 펜 (Michael Penn)은 아베의 죽음으로 이어진 음모가 문선명 추종 세력과의 협력의 결과라고 속단했습니다.

 

비록 주류 언론은 이 환상적인 이야기를 받아들였지만, 일본 경찰과 보안 기관은 대안적인 해석을 가까스로 억누르는 데 실패했습니다. 블로거인 기타가와 다카하시(北川高嗣)씨는 7월 10일, 아베 총리가 야마가미가 서 있는 뒤쪽이 아닌 앞쪽에서 총을 쐈고, 총격이 역 광장 건너편 사거리 양쪽에 있는 높은 건물 중 하나 또는 양쪽에서 비스듬히 발사됐을 것이라는 자료를 올렸습니다.

 

키타가와 다카하시의 게시물:   ©브레이크뉴스

 

키타가와 다카하시의 게시물:

 

기타가와의 탄환 경로에 대한 분석은 아베가 그날 저녁 의사가 두 발의 탄환이 있었다고 발표하기 전까지 단 한 발의 총을 맞았을 뿐이라고 근거 없이 주장했던 언론이 내놓은 그 어떤 것보다 더 과학적이었습니다. 군중 속에서 떨어진 곳에 서서 어색한 사제총을 든 남성이 아베를 두 번 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방송인이자 총기 전문가인 코조노 히로미 (小園浩己)는 자신의 (7월 12일자) 방송 "수끼리"에서 그런 위업은 못 믿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상을 주의 깊게 보면, 소음기가 달린 소총에 의해 이웃 건물 꼭대기에서 여러 발의 탄알이 발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일본의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자 일본의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현재의 지정학적 위기에서 탄생한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대응하여 결집한 인물인 아베 신조와 같은 인물이 주변의 심각한 안보 정보 없이 총살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메시지는 국내 시청자들에게서 잊혀졌을 지 모르지만, 다른 정치인들에게는 아주 분명했습니다. 그 문제에 관해, 메시지는 아베가 총살된 거의 같은 순간에 권좌에서 쫓겨난 보리스 존슨에게, 또는 우버에 대한 영향력 행사 스캔들로 갑자기 기소되고 몇 달간의 대규모 시위에도 흔들리지 않자 지난 7월 11일 퇴진 요구에 직면했던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이 메시지는 아베의 흰 셔츠 전체에 붉은색으로 쓰여져 있었습니다. 글로벌리스트 체제에 굴복하고 코로나19 체제를 홍보하는 것은 G7 국가의 지도자의 안전 보장에도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아베는 지금까지 전 세계 국가의 통치를 갉아먹은 암의 최상위 피해자였습니다. 이 암덩어리는 국가 정부로부터 의사결정을 개인 소유의 슈퍼컴퓨터 은행, 사모펀드 그룹, 텔아비브, 런던, 레스턴의 고용정보회사들의 네트워크로 옮기는 제도적 질병입니다. 억만장자들이 세계 경제 포럼, NATO, 세계은행 그리고 다른 권위 있는 한 기관들에서 고용해온 전략적 사상가들입니다.

 

4차 산업혁명은 중앙정부를 위한 모든 정보의 통제권을 효율성의 이름으로 페이스북, 아마존, 오라클, 구글, SAP 등으로 이전하기 위해 이용되었습니다. J. P. 모건이 말했듯, "모든 것에는 좋은 이유와 진짜 이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아베의 암살로, 이 기술 폭군들과 그 마스터들은 국가 권위로 포장한 사람들은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고 베어버릴 수 있다고 선언하여, 루비콘 강을 건넜습니다.

 

키타가와 다카하시의 게시물    ©브레이크뉴스

 

일본의 문제

 

일본은 "서구"에 합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전한 유일한 아시아 국가로서, 독점적인 G7 클럽의 회원이 될 수 있고, 최고의 정보 공유 프로그램인 "파이브 아이즈 5개국"과 협력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계속해서 세계 금융가들, 그리고 월가의 신세계 질서 설계자들의 기대와 요구를 무시해왔습니다.

 

비록 미국 정부로부터 아시아에서 일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동맹국이라고 끊임없이 비난 받아온 한국이지만, 펜타곤과 세계 경제 전체를 장악하느라 바쁜 초부자들이 일본의 신뢰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계 은행, 골드만 삭스, 또는 하버드 대학교의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의 글로벌리스트 시스템에는 "선진국" 출신의 가장 잘 나고 똑똑한 사람들을 위한 정해진 길이 있습니다.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또는 이탈리아에서 온 엘리트들은 유창한 영어를 배우고, 워싱턴, 런던, 또는 제네바에서 싱크탱크나 대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좋은 수입을 보장하는 은행, 정부 기관, 또는 연구소에서 한직을 확보하며, <이코노미스트> 지가 제공하는 상식적이고 친금융적인 관점을 채택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선진적인 은행 시스템이 있음에도, 또한 선진적인 기술을 구사하는 것이 독일 전동 공구의 유일한 라이벌임에도, 그리고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는 정교한 교육 시스템을 갖췄음에도, "선진" 국가를 위해 이 모델을 따르는 지도자를 양성하지는 않습니다.

 

일본 엘리트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공부하지 않고, 일본은 해외 학술이나 언론에서 가져온 정보에 의존하지 않는 세련된 지식인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다른 국가들과 달리, 일본인들은 일본 전문가들만 인용하여 정교한 언론 기사를 전부 일본어로 작성합니다. 실제로 식물학과 세포생물학 등 분야에서, 일본은 완전히 일본어로 쓰여진 세계적인 학술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은 다국적 기업이 아무리 시도해도 쉽게 침투하지 못하는 수준 높은 국내 경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막대한 부의 집중은 초(超)부자들이 세계 경제 포럼의 젊은 글로벌 리더 프로그램과 슈바르츠만 장학생 프로그램으로 대표되는, 비밀 글로벌 거버넌스를 위한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게 해줬습니다. 이러한 증가하는 정책 수치는 글로벌리스트 의제가 방해 받지 않고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각국의 정부, 산업 및 연구 기관에 스며듭니다.

 

일본은 이러한 교활한 형태의 글로벌 거버넌스에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영어를 잘하거나 하버드에서 공부하는 일본인들이 일본 사회에서 반드시 탄탄대로를 걷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외교와 경제는 완고 하도록 독립적인데, 이는 코로나19 캠페인 동안 다보스 군중들 사이에서 우려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비록 아베 정권과 그 이후의 기시다 정권은 백신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있어 세계 경제 포럼과 세계보건기구의 지시에 따랐지만, 일본 정부는 대부분의 국가들보다 시민들의 삶에 덜 간섭했고, 조직들이 백신을 요구하도록 강요하는 데 덜 성공적이었습니다.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인구에 대해 서비스를 차단하기 위한 QR 코드의 사용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일본에서의 구현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요구된 디지털화 의제를 완전히 이행하기를 거부하여, 다국적 기술 대기업들이 다른 국가에서 행사하는 통제권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일본 디지털화의 지연으로 인해 워싱턴 D.C.의 윌슨 센터는 일본 디지털 에이전시의 장관인 카렌 마키시마(2021년 9월 글로벌 금융의 압력으로 출범)를 초청하여 일본이 왜 디지털화가 그렇게 늦었는지 설명하게 되었습니다(7월 13일).

 

일본인들은 디지털화, 정부와 대학교의 기능을 다국적 기술 대기업에 아웃소싱 하는 것, 그리고 정보의 민영화에 대한 자신들의 저항이 스스로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음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기록물을 사용하는 등 옛 관습을 따르는 일본어 교육기관을 계속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여전히 책을 읽고 있고, 한국인이나 중국인만큼 AI에 매료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본의 저항은 1867년 메이지 유신 (明治維新)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일본은 복잡한 국내 담론을 만들기 위해 서양 사상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일본 개념과 결합하여 동서융합의 정부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메이지 유신 당시 수립된 통치 체계는 일본과 중국의 과거, 그리고 19세기 프로이센과 영국에서 나온 전근대적 원칙에 기초한 통치 모델을 사용한 것으로, 상당 부분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 결과, 장관들이 각 부서 예산을 신중하게 지키고 내부 지휘 계통을 유지하며 관료들의 영지를 감독하는 봉건주의적 통치 방식이 생겨났습니다.

 

아베의 문제

 

아베 신조는 우리 시대의 가장 세련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미국이나 다른 국제기구와 항상 거래를 트지만, 일본을 글로벌리스트들이 지시하는 대상으로 삼는 것에 관해서는 늘 신랄합니다.

 

아베는 일본을 제국의 지위로 되돌리려는 꿈을 품었고, 자신이 메이지 천황의 환생이기를 상상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실제 일본 내 의사결정 과정을 통제하는 것만큼 TV 출연에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존슨이나 마크롱과 달랐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그러려 했던 것처럼 아베의 통치를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정부의 위험한 민영화, 교육의 공동화를 추진했고 중산층에서 부유층으로 자산을 대거 이전하는 것을 추진했던 부패한 내부자였습니다.

 

극우 성향의 니혼카이키(日本会議)포럼을 이용해 극우적인 어젠다를 홍보하고, 일본 제국주의 과거의 가장 모욕적인 측면을 미화하는 것은 심히 불온했습니다. 아베는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모든 군사비 지출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지지했고, 사실상 미국의 어떤 뻘 짓도 기꺼이 지지했습니다.

 

그런 면을 염두에 두고 볼 때,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총리의 손자이자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 외상의 아들로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어린 시절부터 빈틈없는 정치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의 의제를 진척시키기 위해 광범위한 정치적 도구를 사용하는 데 창의적이었고, 다른 아시아 정치인들이 가질 수 없는 편안함으로 전 세계의 기업 및 정부 지도자들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베를 직접 만난 두 번의 자리에서 받은 인상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어떤 냉소적인 정치를 추진했든지 간에, 그는 일본인들이 "수나오"라고 부르는 순수함과 소박함을 청중들에게 발산했습니다. 매혹적이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추종자들 사이에 충성심을 고취시키고 그의 정책에 적대적인 사람들을 압도하는 수용성과 개방성을 암시했습니다.

 

요컨대, 아베는 자민당 내에서, 그리고 국제 사회 내에서, 사려 깊고 자애로운 지도자로 보이면서도 상대와 맞설 수 있는 세련된 정치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아베의 민족주의에 적대적인 일본인들도 그를 기꺼이 지지했습니다. 글로벌한 정치 지도력을 일본에 회복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외교관들과 군 장교들은 비전의 부재에 대해 끝없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강대국이 되기 위한 모든 자격을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고시에는 능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기를 꺼리는 사람들 즉 특별할 것 없는 일련의 도쿄 대학 졸업생들이 운영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푸틴이나 시진핑 같은 존재를 낳지 않으며, 마크롱이나 존슨 같은 사람도 배출하지 않습니다.

 

아베는 지도자가 되기를 원했고, 세계무대에서 그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연줄, 재능, 그리고 무자비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일본 역사상 가장 오래 재임한 총리였고, 실각했을 때도 총리로서 세 번째 도전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세계 경제 포럼의 배후에 있는 부자들은 아베와 같은 국가 지도자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국제적인 의제에 순응한다고 할지라도, 국가 내에서 저항을 조직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잘못됐는가?

 

아베 전 총리는 중국 및 러시아와의 경제적 유대가 강화됨에 따라 지난 10년간 일본이 직면했던 불가능한 딜레마를 전통적인 국정 운영 기술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미국, 이스라엘, NATO와의 정치 및 안보적 통합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일본이 러시아,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과 동맹국들과 그렇게 친해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아베는 거의 성공했습니다.

 

아베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냉정을 유지했습니다. 일본을 위한 독특한 자리를 개척하기 위해 모든 기술과 연줄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베는 일본이 해 아래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외교부의 전략 사상가 야치쇼타로(谷内正太郎)의 정교한 외교에 눈을 돌렸습니다.

 

아베와 야치는 서로 모순되지만 효과적인 지정학적 전략을 사용하여 동서양을 모두 관여 시켰고, 비밀 외교를 충분히 활용하여 일본을 강대국 게임의 자리에 복귀시키는 장기적 협정을 타결시켰습니다.

 

한편, 아베는 오바마와 트럼프에게 미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데 있어서 한국, 호주 또는 다른 인도보다 더 멀리 갈 의향이 있는 일본을 제시했습니다. 아베는 미국의 동아시아 계획에 맞는 재(再)군비화를 추진한 것에 대해 국내의 엄청난 비난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무기 시스템의 구매에 더해, 열광적이도록 친미적인 언사로 워싱턴 정치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동시에, 아베는 중국과 러시아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것은 하찮은 기술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미국 내부와 중국 및 러시아 정부에 대한 정교한 로비를 수반했습니다.

 

러시아의 경우 아베 총리는 2019년 러시아와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방영토(러시아어식 표현으로 쿠릴 열도)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는 복잡한 평화협정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습니다. 미국이 일본 정부에 제재를 가하도록 압박하는 동안에도 일본 기업들에 대한 에너지 계약을 확보하고 러시아에서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나카 사카이(田中境)기자는 러시아 정부가 일본 정부의 다른 모든 대표들의 입국을 금지한 이후에도 아베 총리는 러시아 입국을 금지 당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아베는 또한 중국을 진지하게 끌어들여 장기적인 제도적 유대를 공고히 하고, 제15차 회담(2019년 4월 9일~12일)에서 돌파구를 마련한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추구했습니다. 아베는 중국 정치인들과 접촉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비록 그의 언사가 거칠게 반중국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입장에서는 아베는 신뢰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정치인으로 여겨졌습니다.

 

아베의 암살로 이어지는 과정을 촉발시킨 중요한 사건은 마드리드에서 열린 NATO 정상회담(6월 28일~30일)이었습니다.

 

NATO 정상회의는 막후의 숨은 참가자들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해 법을 내려놓는 순간이었습니다. NATO는 유럽을 방어하기 위한 동맹을 넘어, 책임 없는 병권으로 발전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으며, 세계 경제 포럼, 세계의 억만장자, 은행가들과 함께 "세계 군대"로 일하며, 영국 동인도 회사가 과거에 했던 것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NATO 정상회의에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의 지도자들을 초청하기로 한 결정은 NATO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이들 4개국은 (다국적 기술 대기업에 아웃소싱) 정보 공유, (록히드 마틴과 같은 다국적 기업의 직원이 관리해야 하는) 첨단 무기 시스템의 사용, (압박적 결정의 선례가 되는) 합동 훈련, 국가 내에서 명령 계통을 훼손하는 기타 "협조적" 접근 방식 등 전례 없는 수준의 안보 통합에 초청되었습니다. 

 

7월 1일, 기시다 총리가 도쿄로 돌아왔을 때, 첫 만남을 가진 상대 중 하나가 아베였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에게 바이든 행정부가 일본에 요구한 불가능한 조건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백악관은 이제 전적으로 빅토리아 눌랜드 정무 차관과 같은 글로벌리스트들 및 부시 일족에 의해 훈련받은 다른 이들의 도구입니다.

 

일본에 대한 요구는 본질적으로 자살행위였습니다. 일본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러시아와의 전쟁 가능성에 대비하며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군사, 정보, 외교 기능은 NATO 주변에서 잔치를 벌이기 위해 모이는 민간 계약자들의 신흥 세력으로 옮겨질 예정이었습니다.

 

아베가 죽기 전 1주일 동안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아마도 워싱턴 D.C., 베이징, 모스크바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베를린, 런던에 있는 자신의 모든 자산을 사용하여, 세계에 일본이 바이든의 모든 배후에 있다는 인상을 주는 다층적인 대응을 고안해내면서도 일본이 부정한 방법으로 중국과 러시아와의 데탕트를 추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정교한 정치 놀이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이 대응의 문제점은 다른 나라들이 폐쇄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러한 정교한 플레이가 일본을 주요 국가 중 유일하게 반(半) 기능적인 행정부를 가진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은 아베가 암살되기 정확히 2년 전인 2020년 7월 9일 실종된 박원순 서울시장과 거의 비슷합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중앙 정부에 의해 실시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위해 서울시청에서 조치를 열심히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신은 산에서 발견되었고, 직원을 성희롱한 혐의에 대한 괴로움으로 인한 자살로 사인이 즉시 결정되었습니다.

 

이제 어떡해야 할까?

 

현 상황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다나카 사카이 기자가 시사하듯, 점점 더 많은 일본인들이 미국이 리더십에 대한 자신들의 가장 큰 희망을 파괴했고, 글로벌리스트들은 일본이 미국 정부 및 다른 기생충 계급의 숨겨진 플레이어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끝도 없이 약한 생각을 가진 총리들 밑에서 살게 되기를 원한다고 인식하게 된다면, 그러한 전개는 일본과 미국 사이의 완전한 단절을 가져올 수 있고, 이는 또한 정치적-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워싱턴의 일본 최고 책임자인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이 본거지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홈페이지에 게재된 아베 전 총리 추모 초고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부시 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베테랑인 그린과 CSIS 아시아 프로그램 의장 헨리 A. 키신저 석좌 의장는 <우위의 선: 아베 신조 시대의 일본의 대전략>의 저자입니다. 그린은 아베의 가까운 동료였고, 아마도 미국인들 중 가장 가까웠을 것입니다.

 

▲ 필자/이만열 박사.     ©브레이크뉴스

그러나 아베에 대한 헌사는 크리스토퍼 존스톤 Christopher Johnson (CSIS의 일본 의장이자 전 CIA 장교)이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이 이상한 선택은 그린이 본능적으로 초기 반응을 보이는 것을 피하고 전문 공작원에게 맡기고 싶어할 정도로 암살이 매우 민감한 사건임을 암시합니다.

 

워싱턴, 도쿄, 또는 다른 지역의 책임 있는 지식인과 시민들에게는 이 모호한 암살에 있어 단 한 가지 실행 가능한 대응이 있습니다. 바로 국제적인 과학 조사에 대한 요구입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 정부들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어떻게 장악되어 왔는지에 대한 현실을 직시하게 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배후세력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국가원수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세계 금융의 죄를 감추기 위해 각국이 충돌하는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난번 군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통제력 상실은 1932년 5월 15일 이누카이 쓰요시 (犬養毅)총리의 암살과 1936년 2월 26일 사이토 마코토 (斎藤実)총리의 암살에 부분적으로 기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있어서, 더 적절한 사례는 로스차일드, 워버그, 그리고 다른 은행업자들이 공동으로 일으킨 세계 경제 조작이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로 야기된 긴장감이 어떻게 세계 대전으로 흘러 번졌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Original Text 

 

'Abe Shinzo' assassination of former Japanese prime minister "Is there another assassin?"...The truth of the case

When the Globalists Crossed the Rubicon: The Assassination of Shinzo Abe

-Emanuel Pastreich

 

July 8 was a muggy day in the ancient capital of Japan. Shinzo Abe, the most powerful figure in Japanese politics, was delivering a stump speech for a local Liberal Democratic Party candidate in front of the Nara Kintetsu railway station when suddenly a loud bang rang out, followed by an odd cloud of smoke.

 

The response was incredible. Among those in the unusually large crowd gathered, not a single person ran for cover, or hit the ground in terror.

 

Abe’s body guards, who stood unusually far away from him during the speech, looked on impassively, making no effort to shield him, or to pull him to a safe location.

 

A few seconds later, Abe crumpled and collapsed to the ground, lying there impassive in his standard blue jacket, white shirt, now speckled with blood, and trademark blue badge of solidarity with Japanese abductees in North Korea. Most likely he was killed instantaneously.

 

Only then did the body guards seize the suspect, Yamagami Toruya, who was standing behind Abe. The tussle with Yamagami took the form of a choreographed dance for the television audience, not a professional takedown.

 

Yamagami was immediately identified by the media as a 41-year-old former member of the Maritime Self-Defense Force who had personal grievances with Abe.

 

Yamagami told everything to the police without hesitation. He did not even try to run from the scene and was still holding the silly hand-made gun when the bodyguards grabbed him.

 

Even after Abe was lying on the pavement, not a single person in the crowd ran for shelter, or even looked around to determine where the shots came from. Everyone seemed to know, magically, that the shooting was over.

 

Then the comedy began. Rather than putting Abe in a limousine and whisking him away, those standing around him merely called out to passersby, asking if anyone was a doctor.

 

The media immediately embraced the “lone gunman” conclusion for this attack, repeating entertaining tale of how Yamagami was associated with Toitsu Kyokai, a new religion started by the charismatic shaman Kawase Kayo, and why he blamed Abe, who had exchanges with that group, for his mother’s troubles.

 

Because Toitsu Kyokai has followers from the Unification Church founded by Reverend Moon Sun Myung, journalist Michael Penn jumped to the conclusion that the conspiracy leading to Abe’s death was the result of his collaboration with the Moonies.

 

Although the mainstream media accepted this fantastic story, the Japanese police and security apparatus did not manage to squash alternative interpretations. Blogger Takashi Kitagawa posted materials on July 10 that suggested Abe was shot from the front, not from the back where Yamagami stood, and that the shots must have been fired at an angle from the top of one, or both, of the tall buildings on either side of the intersection across from the railway station plaza.

 

Kitagawa’s analysis of the paths of the bullets was more scientific than anything offered by the media that had claimed, without basis, that Abe had only been shot once until the surgeon announced that evening that there had been two bullets.

 

The chances that a man holding an awkward home-made gun, standing more than five meters away in a crowd, would be able to hit Abe twice are low. The TV personality Kozono Hiromi, who is a gun expert himself, remarked on his show “Sukkiri” (on July 12) that such a feat would be incredible.

 

A careful viewing of the videos suggests that multiple shots were fired by a rifle with a silencer from atop a neighboring building.

 

The message to the world

For a figure like Shinzo Abe, the most powerful political player in Japan and the person to whom Japanese politicians and bureaucrats rallied in response to the unprecedented uncertainty born of the current geopolitical crisis, to be shot dead with no serious security detail nearby makes no sense.

 

Perhaps the message was lost on viewers at home, but it was crystal clear for other Japanese politicians. For that matter, the message was clear for Boris Johnson, who was forced out of power at almost exactly the same moment that Abe was shot, or for Emmanuel Macron, who was suddenly charged with influence peddling scandal for Uber, and faces demands for his removal from office, on July 11—after months of massive protests had failed to sway him in any way.

 

The message was written all over Abe’s white shirt in red: buying into the globalist system and promoting the COVID-19 regime is not enough to assure safety, even for the leader of a G7 nation.

 

Abe was highest ranking victim so far of the hidden cancer eating away at governance in nation states around the world, an institutional sickness that moves decision making away from national governments to a network of privately-held supercomputer banks, private equity groups, for-hire intelligence firms in Tel Aviv, London and Reston, and the strategic thinkers employed by the billionaires at the World Economic Forum, NATO, the World Bank and other such awesome institutions.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was the excuse employed to transfer the control of all information in, and all information out, for central governments to Facebook, Amazon, Oracle, Google, SAP and others in the name of efficiency. As J. P. Morgan remarked, “Everything has two reasons: a good reason and a real reason.”

 

With the assassination of Abe, these technology tyrants, and their masters, have crossed the Rubicon, declaring that those dressed in the trappings of state authority can be mowed down with impunity if they do not follow orders.

 

The Problem with Japan

Japan is heralded as the only Asian nation advanced enough to join the “West,” to be a member of the exclusive G7 club, and to be qualified to enter into collaboration with (and possible membership in) the top intelligence sharing program, the “Five Eyes.” Nevertheless, Japan has continued to defy the expectations, and the demands, of global financiers, and the planners within the beltway and on Wall Street for the New World Order.

 

Although it was South Korea in Asia that has constantly been berated in Washington as an ally not quite up to the level of Japan, the truth is that the super-rich busy taking over the Pentagon, and the entire global economy, were starting to harbor doubts about the dependability of Japan.

 

The globalist system at the World Bank, Goldman Sachs, or the Belfer Center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Affairs at Harvard University has a set track for the best and the brightest from “advanced nations.”

 

Elites from Australia, France, Germany, Norway or Italy, learn to speak fluent English, spend time in Washington, London, or Geneva at a think tank or university, secure a safe sinecure at a bank, a government institution, or a research institute that assures them a good income, and adopt the common sense, pro-finance, perspective offered by the Economist Magazine as the gospel.

 

Japan, however, although it has an advanced banking system of its own, although its command of advanced technologies makes it the sole rival of Germany in machine tools, and although it has a sophisticated educational system capable of producing numerous Nobel Prize winners, does not produce leaders who follow this model for the “developed” nation.

 

Japanese elite do not study abroad for the most part and Japan has sophisticated intellectual circles that do not rely on information brought in from overseas academic or journalistic sources.

 

Unlike other nations, Japanese write sophisticated journal articles entirely in Japanese, citing only Japanese experts. In fact, in fields like botany and cellular biology, Japan has world-class journals written entirely in Japanese.

 

Similarly, Japan has a sophisticated domestic economy that is not easily penetrated by multinational corporations—try as they do.

 

The massive concentration of wealth over the last decade has allowed the super-rich to create invisible networks for secret global governance, best represented by the World Economic Forum’s Young Global Leaders program and the Schwarzman Scholars program. These rising figures in policy infiltrate the governments, the industries, and research institutions of nations to make sure that the globalist agenda goes forth unimpeded.

 

Japan has been impacted by this sly form of global governance. And yet, Japanese who speak English well, or who study at Harvard, are not necessarily on the fast track in Japanese society.

 

There is stubborn independence in Japan’s diplomacy and economics, something that raised concerns among the Davos crowd during the COVID-19 campaigns.

 

Although the Abe administration (and the subsequent Kishida administration) went along with the directives of the World Economic Forum and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for vaccines and social distancing, the Japanese government was less intrusive in the lives of citizens than most nations, and was less successful in forcing organizations to require vaccination.

 

The use of QR codes to block service to the unvaccinated was limited in its implementation in Japan in comparison with other “advanced” nations.

 

Moreover, the Japanese government refuses to fully implement the digitalization agenda demanded, thus denying multinational technology giants the control over Japan that they exercise elsewhere. This lag in Japan’s digitalization led the Wilson Center in Washington D.C. to invite Karen Makishima, minister of Japan’s Digital Agency (launched under pressure from global finance in September, 2021) so that she could explain why Japan has been so slow to digitalize (July 13).

 

Japanese are increasingly aware that their resistance to digitalization, to the wholescale outsourcing of the functions of government and university to multinational tech giants, and the privatization of information, is not in their interest.

 

Japan continues to operate Japanese-language institutions that follow old customs, including the use of written records. Japanese still read books and they are not so enamored with AI as Koreans and Chinese.

 

Japan’s resistance can be traced back to Meiji restoration of 1867. Japan set out to create governmental system wherein Western ideas were translated into Japanese, combined with Japanese concepts, to create a complex domestic discourse. The governance system set up in Meiji restoration remains in place to a large degree, using models for governance based on pre-modern principles from Japan and China’s past, and drawn from 19th century Prussia and England.

 

The result is feudalistic approach to governance wherein ministers oversee fiefdoms of bureaucrats who carefully guard their own budgets and who maintain their own internal chains of command.

 

The Problem with Abe

Shinzo Abe was one of the most sophisticated politicians of our age, always open to make a deal with the United States, or other global institutions, but always cagy when it came to making Japan the subject of globalist dictates.

 

Abe harbored the dream of restoring Japan to its status as an empire, and imagined himself to be the reincarnation of the Meiji Emperor.

 

Abe was different from Johnson or Macron in that he was not as interested in appearing on TV as he was in controlling the actual decision making process within Japan.

 

There is no need to glorify Abe’s reign, as some have tried to do. He was a corrupt insider who pushed for the dangerous privatization of government, the hollowing out of education, and who backed a massive shift of assets from the middle class to the wealthy.

 

His use of the ultra-right Nihon Kaigi forum to promote an ultranationalist agenda, and to glorify the most offensive aspects of Japan’s imperial past, was deeply disturbing. Abe gave his unflinching support for all military expenditures, no matter how foolish, and he was willing to support just about any American boondoggle.

 

That said, as the grandson of Prime Minister Nobusuke Kishi, and the son of foreign minister Shintaro Abe, Shinzo Abe showed himself to be an astute politician from childhood. He was creative in his use of a wide range of political tools to advance his agenda, and he could call on corporate and government leaders from around the world with an ease that no other Asian politician could.

 

I remember vividly the impression I received from Abe on the two occasions that I met him in person. Whatever cynical politics he may have promoted, he radiated to his audience a purity and simplicity, what the Japanese call “sunao,” that was captivating. His manner suggested a receptiveness and openness that inspired loyalty among his followers and that could overwhelm those who were hostile to his policies.

 

In sum, Abe was sophisticated political figure who was capable of playing one side against the other within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and with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while appearing to be a considerate and benevolent leader.

 

For this reason, Japanese hostile to Abe’s ethnic nationalism were still willing to support him because he was the only politician they thought capable of restoring global political leadership to Japan.

 

Japanese diplomats and military officers fret endlessly about the Japan’s lack of vision. Although Japan has all the qualifications to be a great power, they reason, it is run by a series of unimpressive, University of Tokyo graduates; men who are good at taking tests, but are unwilling to take risks.

 

Japan produces none like Putin or Xi, and not even a Macron or a Johnson.

 

Abe wanted to be a leader and he had the connections, the talent, and the ruthlessness required to play that role on the global stage. He was already the longest serving prime minister in Japanese history, and had plans for a third bid as prime minister, when he was struck down.

 

Needless to say, the powers behind the World Economic Forum do not want national leaders like Abe, even if they conform with the global agenda, because they are capable of organizing resistance within the nation state.

 

What went wrong?

Abe was able to handle, using the traditional tools of statecraft, the impossible dilemma faced by Japan over the last decade as its economic ties with China and Russia increased, but its political and security integration with the United States, Israel and the NATO block proceeded apace.

 

It was impossible for Japan to be that close to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while maintaining friendly relations with Russia and China. Yet Abe almost succeeded.

 

Abe remained focused and cool. He made use of all his skills and connections as he set out to carve a unique space for Japan. Along the way, Abe turned to the sophisticated diplomacy of his strategic thinker Shotaro Yachi of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to assure that Japan found its place under the sun.

 

Abe and Yachi used contradictory, but effective, geopolitical strategies to engage both East and West, making ample use of secret diplomacy to seal long-term deals that put Japan back in the great powers game.

 

On the one hand, Abe presented to Obama and Trump a Japan that was willing to go further than South Korea, Australia or other India in backing Washington’s position. Abe was willing to suffer tremendous domestic criticism for his push for a remilitarization that fit the US plans for East Asia.

 

At the same time that he impressed Washington politicians with his gung-ho pro-American rhetoric, matched by the purchase of weapons systems, Abe also engaged China and Russia at the highest levels. That was no small feat, and involved sophisticated lobbying within the beltway, and in Beijing and Moscow.

 

In the case of Russia, Abe successfully negotiated a complex peace treaty with Russia in 2019 that would have normalized relations and solved the dispute concerning the Northern Territories (the Kuril Islands in Russian). He was able to secure energy contracts for Japanese firms and to find investment opportunities in Russia even as Washington ramped up the pressure on Tokyo for sanctions.

 

The journalist Tanaka Sakai notes that Abe was not banned from entering Russia after the Russian government banned all other representatives of the Japanese government from entry.

 

Abe also engaged China seriously, solidifying long-term institutional ties, and pursuing free trade agreement negotiations that reached a breakthrough in the fifteenth round of talks (April 9-12, 2019). Abe had ready access to leading Chinese politicians and he was considered by them to be reliable and predictable, even though his rhetoric was harshly anti-Chinese.

 

The critical event that likely triggered the process leading to Abe’s assassination was the NATO summit in Madrid (June 28-30).

 

The NATO summit was a moment when the hidden players behind the scenes laid down the law for the new global order. NATO is on a fast track to evolve beyond an alliance to defend Europe and to become an unaccountable military power, working with the Global Economic Forum, the billionaires and the bankers around the world, as a “world army,” functioning much as the British East India Company did in another era.

 

The decision to invite to the NATO summit the leaders of Japan, South Korea, Australia and New Zealand was a critical part of this NATO transformation.

 

These four nations were invited to join in an unprecedented level of integration in security, including intelligence sharing (outsourcing to big tech multinationals), the use of advanced weapons systems (that must be administrated by the personnel of multinationals like Lockheed Martin), joint exercises (that set a precedent for an oppressive decision-making process), and other “collaborative” approaches that undermine the chain of command within the nation state.

 

When Kishida returned to Tokyo on July first, there can be no doubt that one of his first meetings was with Abe. Kishida explained to Abe the impossible conditions that the Biden administration had demanded of Japan.

 

The White House, by the way, is now entirely the tool of globalists like Victoria Nuland (Under Secretary of State for Political Affairs) and others trained by the Bush clan.

 

The demands made of Japan were suicidal in nature. Japan was to increase economic sanctions on Russia, to prepare for possible war with Russia, and to prepare for a war with China. Japan’s military, intelligence and diplomatic functions were to be transferred to the emerging blob of private contractors gathering for the feast around NATO.

 

We do not know what Abe did during the week before his death. Most likely he launched into a sophisticated political play, using of all his assets in Washington D.C., Beijing, and Moscow—as well as in Jerusalem, Berlin, and London, to come up with a multi-tiered response that would give the world the impression that Japan was behind Biden all the way, while Japan sought out a détente with China and Russia through the back door.

 

The problem with this response was that since other nations had been shut down, such a sophisticated play by Japan made it the only major nation with a semi-functional executive branch.

 

Abe’s death parallels closely that of Seoul’s mayor Park Won Sun, who went missing on July 9th, 2020, exactly two years before Abe’s assassination. Park took steps in Seoul City Hall to push back on the COVID-19 social distancing policies that were being imposed by the central government. His body was found the next day and the death was immediately ruled a suicide resulting from his distress over charges of sexual harassment by a colleague.

 

What to do now?

 

The danger of the current situation should not be underestimated. If an increasing number of Japanese come to perceive, as the journalist Tanaka Sakai suggests, that the United States destroyed their best hope for leadership, and that the globalists want Japan to make do with an unending series of weak-minded prime ministers who are dependent on Washington and other hidden players of the parasite class, such a development could bring about a complete break between Japan and the United States, leading to a political or military conflict.

 

It is telling that Michael Green, the top Japan hand in Washington D.C., did not write the initial tribute to Abe that was published on the homepage of CSIS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his home institute.

 

Green, veteran of the Bush National Security Council and Henry A. Kissinger Chair of the Asia Program at CSIS, is the author of Line of Advantage: Japan’s Grand Strategy in the Era of Abe Shinzo. Green was a close associate of Abe, perhaps the closest of any American.  

 

The tribute to Abe was drafted by Christopher Johnstone (the Japan chair at CSIS and former CIA officer). The weird choice suggests that the assassination is so sensitive that Green instinctively wished to avoid writing the initial response, leaving it to a professional operative.

 

For responsible intellectuals and citizens in Washington, Tokyo, or elsewhere, there is only one viable response to this murky assassination: a demand for an international scientific investigation.

 

Painful as that process might be, it will force us to face the reality of how our governments have been taken over by invisible powers.

 

If we fail to identify the true players behind the scenes, however, we may be led into a conflict in which the blame is projected onto heads of state and countries are forced into conflicts so as to hide the crimes of global finance.

 

The loss of control of the Japanese government over the military the last time can be attributed in part to the assassinations of prime minister Inukai Tsuyoshi on May 15, 1932 and of prime minister Saito Makoto on February 26, 1936.

 

But for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he more relevant case is how the manipulations of an integrated global economy by the Rothschild, Warburg, and other banking interests created an environment wherein the tensions produced by the assassination of Archduke Franz Ferdinand of Austria-Hungary on June 28, 1914 were funneled towards wor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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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wlee 2022/08/12 [11:57] 수정 | 삭제
  • 처음 뉴스 봤을 때도 경호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수상하기도 했고, 뜬금없이 종교와 엮어서 뭔가 찝찝했었는데 이런 큼지막한 비밀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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