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피고와 망 a(부), b(모) 사이에는 양친자 관계
성립 안돼…상속재산분할청구 제기할 청구인적격 없다”
원고 측 “망인은 k가 친딸이 아니라며 친자확인 소송을 하려 했으나 노한으로 소를 제기하지 못하고 사망… k는 친자식 아니고 상속 지분이 없다는 유언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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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판부의 권유로 상속재산분할 소송을 준비하던 k씨는 유전자 감식 결과 ‘친자’가 아니라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접하게 됐다. © 브레이크뉴스 |
지난 45년 간 친부모, 형제로 알았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남이었다? 7살 무렵 6.25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져 고아원에서 자란 k씨는 성년이 된 후 이웃의 소개로 부모와 동생들을 다시 만났다. 그러나 양친이 모두 사망한 후 재산상속 문제가 불거졌고 “k의 상속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유언증서가 공개된 후 동생들의 제소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이 진행됐다.
재판부의 권유로 상속재산분할 소송을 준비하던 k씨는 유전자 감식 결과 ‘친자’가 아니라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접하게 됐다. 생전에 자신을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와 평소 동생들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자신이 친자식일 거라고 철석같이 믿어왔던 k씨는 이 같은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올해로 65살에 접어든 k씨는 “세상 천지에 부모, 형제 하나 없는 고아가 됐다. 남편과 자식을 볼 면목이 없다”고 탄식했다. 그는 “내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나 동생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 생전에 누구 하나 일언반구도 않다가 돈을 더 받을 욕심에 이제 와서 나를 내치고 있다”며 “돈을 바란 것도 아니고 다만 부모님 자식으로 남고 싶어 항소했는데 양녀로도 인정이 안 되더라”고 한숨지었다.
시사주간지 <사건의내막>은 k씨의 기막힌 사연과 수백억대 상속재산분할 소송 내막을 취재했다.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
지난 6월19일 oo지방법원에서는 피고 k씨에 대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항소심 판결이 진행됐다. 결과는 “피고와 망 a(부), b(모) 사이에는 양친자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기각판정이었다.
oo지방법원 가사부는 “피고와 망 a, b 사이에는 혈연적인 친생자 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함이 명백하다”며 입양여부에 대해서도 “망인들이 피고를 친생자로 알고 양육했으며 피고 역시 이 사건 소송과정에서 망인들을 친부모로 알고 있었던 점에 비추어 망인들과 피고 사이에는 입양의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친생자출생신고가 입양신고로서의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oo지방법원 가사부는 제1심 법원의 ◇◇대학교 의과대학장에 대한 각 유전자감정촉탁결과를 인용해 “모가 동일한 친형제자매라면 이들의 미토콘트리아 dna 염기서열은 동일할 것인데 원고 측의 염기서열은 동일한 반면 피고의 염기서열은 다르다”며 “아버지가 동일한 딸들의 x 염색체 유전자형은 아버지로부터 유전받은 인자(부성인자)를 서로 공유하게 되는데 피고와 h(여동생)의 유전자형은 서로 달라 이들의 아버지가 다르다”고 친생자 관계가 성립되지 않음을 재차 확인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혼인 전까지 망인들의 감호, 양육을 받아왔고 혼인 후에도 망인들과 왕래하면서 신분적 생활관계를 일정 부분 유지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피고에 대한 친생자 출생신고가 법률상의 친자관계를 공시하는 입양신고의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애초에 망인들이 피고를 만나려고 했던 이유가 피고와 성이 같고 a씨와 외모가 비슷하여 행방불명된 장녀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인 점과 실제 망인들이 피고를 만나 확인해본 결과 실종된 경위가 일치하고 피고에게 홍역을 앓은 흉터가 있는 등 망인들로서는 피고를 자신들의 잃어버린 큰딸로 생각할 개연성이 컸던 점, 망인들이 피고를 호적에 등재한 과정을 살펴보더라도 망인들은 피고를 잃어버린 큰딸로 생각해 장녀 호적에 등재하려고 했던 점 등을 들어 망인들과 피고 사이에 입양의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k씨는 “지금도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같이 살았던 3년 동안 집안의 모든 궂은일을 도맡아 했고, 결혼 후에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명절이나 연락이 오는 대소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럼에도 유전자 검사 결과와 동생들 말만 듣고 재판부가 양친자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을 내린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소송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민이 많았지만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45년간 친부모 알고 보니 남?
k씨의 불우한 인생은 7살 무렵 전쟁으로 부모와 헤어지면서 시작됐다. 그의 증언과 판결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6?25 전쟁 중에 폭격으로 땅에 반쯤 묻혔고 한 청년의 도움으로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별다른 외상은 없었으나 폭격의 충격으로 이전 기억을 모두 잃으면서 피란민들 틈에 끼여 거리를 전전하게 된다.
울면서 지나가던 k씨를 어떤 미군이 집으로 데려가 두세 달 동안 돌봐주었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천주교 관련 고아원에 맡겼다. 9살 되던 해 미군이 다시 찾아와 입양하길 원했지만 k씨는 미국에 따라가면 친부모를 영영 만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이를 거부했다. 18살까지 고아원과 보육원 등에서 지내다 방직공장에 취직한 후 친구 한 명과 같이 사글세를 얻어 독립했다.
그러던 중 같은 마을에 살던 한 이웃은 k씨를 보더니 “피란 중에 딸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들과 얼굴이 많이 닮았고 사정도 비슷하다”며 그에게 l씨(고모)를 소개했다.
k씨는 l씨를 처음 본 순간 “피가 당긴다는 말처럼 가슴이 내려앉으면서 눈물이 북받쳐 올랐다”고 한다. l씨는 한동안 k씨를 얼싸안은 채 눈물을 흘렸고 이름(성과 이름 끝 글자가 같음)과 나이, 실종된 경위가 일치하고 무릎과 발등에 홍역을 앓은 흉터가 있는 등 조카임을 확신했다. 이후 만난 a(부)씨와 b(모)씨도 k씨를 보더니 잃어버린 자신들의 큰딸이 맞다고 인정했고 k씨도 이들이 자신의 잃어버린 부모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들은 k씨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하면서 호적에 등재하려 했으나 이미 큰딸 이름이 사망처리되어 동명으로 입적할 수 없게 되자 k씨가 원래 사용하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자식’이라는 의미로 ‘子’를 붙여 a씨의 호적에 등재했다. 이 같은 사연은 당시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으며 이들은 k씨를 찾은 기념으로 동네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엇갈린 주장
가족과의 극적인 상봉 이후의 상황은 원고와 피고 측 간의 상반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재판부는 원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피고는 동생들인 원고 등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2~3년 간 망인들 및 원고 등과 함께 생활하다가 망인들의 동의 없이 당시 집안일을 도와주던 j와 함께 집을 나가 1967년 6월27일 j와 혼인신고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고가 집을 나간 후부터는 망인들 및 원고 등과 거의 왕래를 하지 않고 지내오던 중 b(모)는 1993년 10월31일 사망했고, a(부)는 2006년 2월20일 사망했다”고 인정했다.
원고 측은 “a는 병환으로 입원 중인 2006년 1월경 k가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면서 친자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하려고 했으나 노환으로 소를 제기하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k씨는 이를 반박했다. 그는 가족과 만난 후 겪었던 일들과 상속재산분할 소송까지 가게 된 내막을 설명했다. k씨는 가족을 찾은 기쁨도 잠시, 집안일을 모두 떠안아 식모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푸줏간과 농사일을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가사일과 터울이 많이 나는 어린 동생들을 떠맡아야 했다. 부모님과 8남매, 고종외사촌뻘 되는 조카딸, 일꾼(가게 일꾼 3명, 농사일꾼 1명)들이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까지 설거지를 해야 했고 어린 동생들의 기저귀 빨래를 하느라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고 당시의 힘든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게 3년여를 지내던 중 이모였던 d씨가 j씨(현재의 남편)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일꾼이라고 했지만 자신과 혼인시킬 목적으로 j씨를 데려왔다는 게 k씨의 주장이다.
그는 “훗날 남편에게 들으니 ‘부잣집에 딸이 있는데 얼마간 일꾼으로 일해주고 군대 다녀오면 한 살림 내 준다’고 얘기해서 왔다고 하더라”며 “나는 싫다고 했지만 고생만 하는 내가 불쌍했던지 남편은 부모님에게 데려가겠다는 말을 했고, 이렇게 사느니 j을 따라 나서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부모님의 동의 아래 이부자리만 챙겨 집을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k씨는 남편의 고향에서 어렵게 신접살림을 차렸고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소박한 결혼식도 올렸다.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남편은 남의 집 농사를 도와주거나 막노동일을 하며 끼니를 연명해 나갔다. 이후 만삭인 k씨를 친정집에 데려다 놓고 입대했다. k씨는 딸이 돌이 될 때까지 머무르며 친정집에서 집안일과 동생들 기저귀 빨래 등 집안일을 도맡았다고 한다.
남편이 제대한 후 둘째딸과 막내아들을 낳았지만 벌이가 없어 살림은 나날이 피폐했다. k씨는 이대로 굶어죽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빚을 내 솜사탕 기계를 사서 장사를 시작했고 이후에도 풀빵, 핫도그, 호떡장사 등을 하며 돈을 벌었다.
집값이 올라 월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전 재산 200만원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떠돌다 노인경로당에서 연 40만원을 주고 2년을 살았다. 어릴 적 방직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공장에서 실감는 일을 6개월간 했고 이후에는 식당에서 8년간 조리사로 일했다. 그렇게 돈을 벌어 3남매를 공부시켰고 전세방도 얻었다.
그는 “친정을 나온 후 한 번도 집에 손을 벌리거나 도움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자식된 도리로 틈틈이 부모님을 찾아뵀다”고 주장했다.
“호적만이라도 자식으로 남고 싶어”
k씨에 따르면 b씨가 사망한 후에는 친정집을 자주 왕래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장녀인 k씨에게 상의했고 새어머니를 들일 때도 의견이 어떤지 묻기도 했다는 것. 비록 동생들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 결혼식에 한 번도 초청을 받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생신과 연락이 오는 친척들 대소사에는 모두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k씨는 아버지의 팔순잔치를 계기로 발길을 끊었다고 털어놨다. 팔순잔치가 있던 날 형제들이 아버지께 절을 올리는 순서에서 사회자가 k씨 내외를 제외한 게 발단이 됐다.
그는 “동생들이 마지못해 사과를 했지만 평소 술을 먹지 않던 남편은 만취해 그간 쌓였던 분노를 터뜨렸고 나 또한 나를 누나로 인정하지 않는 동생들에게 맘이 상해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존심이 상해 왕래를 끊었고 아버지도 귀가 먹어 전화통화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남동생인 s씨가 찾아오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 재산상속 문제로 호적등본이 필요하다는 말에 k씨는 사위를 데리고 관할 동사무소를 찾아갔지만 원본에 k씨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심하게 훼손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원에게 이를 복원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며칠 후 k씨는 △△지방법원 □□지원으로부터 유언증서공개와 관련해 법정에 출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유언증서는 “호적상의 딸로 기재된 k는 친자식이 아니며 만일 친자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k에 대하여 상속 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짤막한 내용으로 사위인 c(여동생 남편)가 적은 것이었다. 재판부는 유언검인 조서를 진행했고 이에 상관없이 k에게 상속재산분할심판을 신청하라고 권고했다.
2차에 걸쳐 진행된 유언검인 조서에서 청구인 측(상속인, 동생들)은 “유언증서는 유언자가 2006년 2월3일 ☆☆의료원에서 입원 중 변호사, c, 증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유언자가 불러주는 대로 c가 받아 적었다”고 진술했다.
참고인 c는 “유언서는 당시 망인이 손을 많이 떨었기 때문에 망인의 자녀들과 증인들, 변호사가 참여한 가운데 망인이 불러주는 대로 직접 작성했고, 기재한 내용은 망인이 직접 보기도 하고 망인에게 읽어주기도 했으며 망인의 말이나 의식은 또렷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c는 “망인은 평소 딸은 하나뿐이라는 말을 종종 했고 자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유언서를 작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k씨는 동생들이 아버지의 사망사실을 알리지 않은 사실에 주목하며 “아버지는 내게 친딸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없고 병원에서 노환 중에 변호사가 아닌 c에게 유언장을 작성하도록 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s씨를 비롯한 상속인들은 k씨에 대한 ‘친생자부존재확인’ 소송을 청구했고 유전자 감식 결과 친자가 아님이 밝혀졌다. 이에 불복해 k씨는 ‘양자’로 인정해 달라며 항소심을 냈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소심 판결 후 △△지방법원 □□지원은 k씨에게 “청구인은 a의 적법한 상속인이라 볼 수 없으므로 청구인은 a의 상속재산에 대해 상속재산분할청구를 제기할 청구인적격이 없다”는 각하통지서를 보내왔다. 그는 항소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부모님이나 형제들은 내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건데 '너는 친자가 아니라 양녀였다'는 한마디 말만 해줬어도 이처럼 법정에 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재산에 욕심이 있었다면 애당초 양자라고 했지 왜 친자라고 주장했겠느냐. 이제 와서 다시 호적을 팔 생각을 하면 눈앞이 깜깜하고 그냥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k씨는 원래의 친부모와 형제를 찾을 기회마저 빼앗겨버린 것 같아 허탈감을 가눌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백발이 성한 지금 어떻게 친부모를 다시 찾을 수 있겠느냐”며 “호적상 고인들의 자식으로나마 남아 있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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