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당당한 모습으로 사형대에 섰다”

[김재규 사형장면 사진공개]“사형장으로 걸어가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모습은 당당”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21/04/05 [17:58]

▲ 수갑을 차고 사형장에 앉아있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브레이크뉴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부마항쟁 과정인 지난 1979년 10.26 때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살해했다. 그는 군법에 회부되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 사형(1980년 5월24일 사형)됐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예비역 장군)은 “육군 18대 3군단장-15대 6사단장”을 지낸 군 출신. 박정희 전 대통령 살해혐의로 사형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필자(문일석 본지 발행인)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친동생인 김항규씨와 지난 1995년 10월 6일, 1995년 11월12일, 2차에 걸쳐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그는 당시 작고(1997년 5월30일 작고)하기 전 밝히지 못했거나 본인이 생각해온 10.26관을 최후로 토로했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친동생인 김항규와 그 가족에게 "나는 세상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는 최후의 유언을 남겼다. 군사재판은 김재규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군 재판기관은 그를 사형에 처했다. 짐작하건데 김재규 사형 과정에 군 보안사가 뒤에서 사형을 주도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김재규 정 중앙정보부장 사후 만 40년 만에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살해 장면이 담긴 사진이 공개됐다. 박정희 대통령 살해를 '무혈혁명'이라고 주장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사형장으로 걸어가는 모습은 비굴하지 않았고, 아주 당당했다. 그리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하얀 색 한복을 입고 사형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최후 모습이 한국 민주주의의 아픔을 전해주고 있다. 무고한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칼로 사살되는 그 순간, 광주민주화운동의 치열한 시점에 그는 전두환 군사쿠데타 신군부 군인들에 의해 사형 처분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문일석 본지 발행인)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장의 친 동생인 김항규씨와 두 번에 걸쳐 단독 인터뷰를 그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의 조그마한 한옥, 모친 댁에 숨어 지내고 있었다. 그를 만난 것은 지난 1995년 10월 6일과 1995년 11월12일, 두 차례였다. 김재규 사형 장면 사진 공개를 계기로 필자가 김재규 동생인 김항규씨(고인이 됨)의 생전 인터뷰(16년 전) 내용을, 그대로, 또다시, 세상에 전한다.

 

▲ 김재규 사형 준비 장면.     ©브레이크뉴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사형이 완료된 장면.   ©브레이크뉴스

▲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시신이 담긴 검은색 관.    ©브레이크뉴스

 

박정희 대통령 살해한 김재규 장군 친동생 김항규씨 ‘육성증언’

-김재규 "세상에 부끄러운 일 절대하지 않았다" 유언

 

김항규씨는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형(김재규)을 두었다는 것 때문에 1979년 10.26 이후 험한 세상을 살았다. 현불사에 입산, 승려는 아니지만 10여년 간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 이후 죽기 전까지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소재하는 조그마한 한옥의 3평 남짓한 비좁은 방에서 생활하다가 세상을 하직했다. 당시 기자(필자)의 김항규씨 단독 인터뷰는 어렵사리 이뤄졌었다. 그는 "침묵해왔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입을 열 필요성이 있어 할 말을 남기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10.26은 사전에 계획했던 일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으면 말해달라.

 

▲내가 형님을 만난 것은 10.26이 일어나기 15일 전쯤이었다. 밤이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눴다. 그때 형님은 "이승만 대통령은 물러설 때 물러설 줄을 알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절대로 물러설 성격이 아니다"면서 거사의지를 내비쳤다.

 

나는 "집안사람이 형님만 있는 게 아니다. 만약 형님이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린 어찌되겠느냐"고 말했었다. 이때의 대화로 보면 형님은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해야 된다는 생각을 거사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와 같은 대화가 오간 뒤부터 형님은 10.26이 일어날 때까지 나와의 면회를 거절했다. 형님의 10.26은 무엇이 되려는 생각에서 일으킨 사건이 아니었다고 본다. 형님은 박정희 대통령을 목숨을 걸고 사랑했다. 역설적이지만, 형님이 박 대통령을 너무 사랑했기에 박 대통령이 발전시킨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박 대통령을 제거했던 것이다. 

 

남녀 간에 서로 사랑하다가 더 이상 사랑을 나눌 수 없을 때 죽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심중(心中)이란 말이 있다.  형님이 박정희 대통령의 마음 한가운데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살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이 발전시킨 나라가 잘못되고, 그 국민이 피해를 본다면 불행한 일이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그런 최후의 용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형님은 최후진술에서 "제 나이 한 10년이나 20년 끊어 바치더라도  좋으니까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놓자, 나는 대통령의 참모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고급관리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 충성하고 이 국민에게 충성할 의무가 있지 않느냐, 결국 나의 명예고 지위고 목숨이고 또 대통령 각하와의 의리도, 이런 소의에 속한 것은 한꺼번에 다 끊어 바친다, 대의를 위해서 내 목숨 하나 버린다, 그래서 원천을 때려 버렸다"고 말했다.

 

형님을 비판하는 분들도 있겠으나 어찌됐든 형님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형님은 김영삼이나 김대중 같은 민간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군인 출신 정치인들이 국가를 이끄는 시대는 지났다고 간파했다.

 

형님은 중앙정보부장으로서 부마사건의 현장에 직접 나갔었다. 부마사건을 현장 시찰한 형님의 결론은 민란(民亂)이었다. 10.26사건이 없었다면 서울에서 민란이 발생, 엄청난 희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박정희 대통령의 제거는 거대한 국민적 희생을 사전에 막은 대 사건이었다고 본다.

 

▲김재규 장군의 친 동생인 김항규씨. 필자(문일석 본지 발행인)는 김재규 장군의 친동생 김항규씨와 지난 1995년 10월 6일, 1995년 11월12일, 2차에 걸쳐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박대통령을 제거하고 대통령에 오르기 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김재규 장군 여동생 김재선) 이런 주장은 신군부가 만들어서 유포시킨 내용이었다. 나는 오빠가 체포되어 사형을 받을 때까지 뒷바라지를 한 사람이다. 오빠는 체포된 뒤 다급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했다. 다급한 메시지란 "혁명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전 국민에게 빨리 알려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국선 변호사들은 오빠의 다급한 목소리를 외부에 전달하는데 소홀했다. 나 자신은 오빠는 독재정치를 무너뜨린 혁명가였다고 믿고 있다.

 

"사랑하기에 살인했다"

 

김항규는 10.26 이후 태백산 현불사에 10여년간 은둔하며 세상을 보냈었다. 그는 그 동안 입을 열어 말하지 못한 내용의 일부를 공개했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당시 김영삼 총재와 어떤 사이였는가?

 

▲10.26 사건, 큰 비밀은 아니지만 그 동안 말 못하고 있던 사실 하나를 밝혀두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형님은 박정희 대통령을 너무너무 사랑했기에 총으로 살해할 수밖에 없었다. 대인(大人)의 길과 소인(小人)의 길은 그런 점에서 다르다. 자기가 모시고 있는 대통령을 살해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살해하는 것과 똑 같다는 점에서 그렇다. 형님은 사형대에서 떳떳하게 목숨을 내바쳤다.

 

1979년 10월,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제명사건 무렵이었다. 나는 가끔씩 형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형님은 "박대통령이 김영삼 총재를 없애라고 지시했다"면서 난감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김녕김씨로 김영삼 총재와 동성동본이었다. 항렬로는 김영삼 총재가 조카뻘이었다.

 

형님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일해 온 김 총재를 내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없앨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었다. 형님은 김영삼 총재의 제명사건(1979.10.4)이 있기 하루 전 약수동 정보부장 공관에서 김 총재를 만났다. 씨족관념이 강했던 형님이 김 총재를 초청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의 깊은 내막은 잘 모르지만, 형님은 한국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김 총재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형님은 "김녕김씨 씨족을 어찌 내가 죽일 수 있느냐? 그것도 한국 민주화의 기둥인 사람을"이라면서 개탄한 것을 옆에서 지켜 볼 수 있었다. 형님은 10.26이후 1심 2회공판(12월8일)에서 김영삼 총재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을 쏘기 위해 손에 총이 갔다고 했다. 인용해 보겠다.

 

"각하, 김영삼 총재는 이미 국회의원으로서 면직됐습니다. 사법조치는 아니지만, 이미 그 걸로써 본인을 처벌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국민들이. 또 이 사람을 사법조치까지 하면 같은 건으로 2중 처벌을 하는 인상을 줍니다" 그 말씀을 드리고 곧이어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이렇게 제가 콱 흥분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손에 총이 갔습니다....그러고는 그냥 손에 총이 가서 "이 버러지 같은 친구"하면서 차지철 경호실장을 쏘고 대통령 각하를 쏘았습니다."

 

▲ 김재규  추모 모임,   ©브레이크뉴스

 

김재규의 최후유언

 

-육군교도소에서 마지막 면회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김 정 중정부장은 어떤 유언을 남겼는가?

 

▲1980년 5월24일 사형을 당했다. 그런데 하루 전, 나는 온 가족을 데리고 형님의 면회를 갔다. 형님이 아이들의 손을 붙들고 "큰아버지는 세상에 부끄러운 일을 절대하지 않았다. 나의 최후진술을 자자손손 전해다오. 그 속에 나의 진실이 있다"고 말했다. 형님은 이 말을 마치고 난 후 나에게 "이제야 마음이 편안하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사형집행이 임박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 대화가 오간 다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소개해 줄 수 있는가?

 

▲나는 형님과의 이별을 위해 이별가를 불렀다. 일본노래 나니와시(浪花節)였다. "내 눈을 보라/ 아무 말도 하지 말라/ 사내들끼리의 뱃속 아니랴/ 한 사람쯤 나 같은 바보가 없으면/ 이 세상에 아무도 눈을 뜨지 못한다" 는 가사로 되어 있는 노래이다.

 

내가 부른 이별가를 듣던 형님은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로 "음"이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형님은 내 귀에다 대고 "항규야, 나 내일 영원히 이별한다. 너만 알고 있어라"고 말한 뒤 내 등짝을 있는 힘을 다해서 때렸다. 이것이 형님과의 마지막 이별의 순간이었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이 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루머이다. 내가 사형 당한 형님의 시신을 만지면서 얼굴을 확인하고 새 옷을 입혔다. 이런 설은 누군가가 만들어 낸 루머라고 생각한다. 나는 세계의 탐정 소설을 거의 빠짐없이 읽었다. 아마 1천여 권은 탐독했을 것이다. 혹시나 다른 사람의 시체로 바꿔치기 할 수도 있다는 의문을 가지고 온 몸을 살펴보았는데 형님이 틀림없었다. 형님의 목에는 교수형 시킬 때 목에 걸었던 밧줄 자욱이 선연하게 나 있었다.

 

-장사 지낼 때도 참관했는가?

 

▲물론이다. 보안사에서 남한산성을 묘지로 지정해 주었다. 장례를 하기 하루 전에 남한산성을 올라갔다. 나는 산을 올라가면서 남무묘법연화경을 독경했다. 그리고 "부처님 , 형님이 묻힐 묘지 하나를 주십시오"라고 소원했다. 이때 느티나무 한 그루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 나무의 늘어진 가지들이 "여기요, 여기요"하는 듯 흔들거렸다. 그래서 나는 느티나무 곁을 가리키면서 "여기를 파주시오"라고 말했다. 그 다음날 그곳에 형님의 시신을 장례 지냈다. 무덤이 비어 있다,  죽지 않고 어딘가 살아 있다는 말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예비역 장군. ©브레이크뉴스

한통의 박정희 친필편지

 

김항규는 박정희대통령이 1978년 10월19일자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보낸 친필편지 한통을 삶이 끝날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 편지는 이 편지는 박 대통령이 김항규의 행동을 정보부장인 김재규에게 질책하는 내용의 편지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정보부장에게 친필로 써 보낸 편지의 서두는 "근간 입수된 첩보 중 김부장의  측근 또는 가족에 관한 건 몇 가지 통보하오니 사실여부 알아봐서 시정 조치토록 하시오"라는 문구로 시작된다.

 

그는 이 편지로 인해 혼쭐났다고 회고했다. 김항규는 이 편지를 잘 보관해왔다. 법률상으로는 살해주범인 형이 죽인 살해자 박정희이지만, 두 사람 간의 마지막 악연의 끈을 보여주는 문건이라고 했다.

 

이 편지를 펼쳐 보이며 눈물을 짓던 김항규는 "내가 좋아하는 설송 스님(작고)의 법문이 있다"면서 그 내용을 읊조렸다.

 

 "바람없는 천지엔 꽃이 필 수 없다(無風天地無花開)/ 이슬 내리지 않는 곳엔 열매도 없다(無露天地無結實)"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는 한국 역사에 어떤 꽃과 열매를 남겼을까?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바람과 이슬처럼 사형대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김재규의 친동생 김항규는 "꽃과 열매"라는 화두(話頭) 하나를 기자에게 말해주곤 세상을 떠났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김재규는 군법에 회부되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 사형(1980년 5월24일 사형)됐다. 사진은 통곡의 미류나무가 있는 구 서대문 형무소 사형장.   ©브레이크뉴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as'Google Translate'.

 

Jae-gyu Kim, Head of Central Intelligence Agency “I stood at the death penalty in a stately appearance”

[Photos of Kim Jae-gyu's death penalty scene disclosed] “The appearance of former Central Intelligence Agency head Kim Jae-gyu walking to the death penalty is Dangdang”

Moon Il-suk Publisher

 

At the time, Kim Jae-gyu, then head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murdered the then-president Park Chung-hee on October 26, 1979, during the Buma Uprising. He was referred to the military law and executed during the 1980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May 24, 1980). Kim Jae-gyu, former head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preparatory general), was from the military who served as “the 18th Army 3rd Corps Commander-15th 6th Division Commander”. Former Central Intelligence Agency chief Kim Jae-gyu, executed for the murder of former President Park Jung-hee. The writer (publisher Moon Il-suk) had two interviews with Kim Hang-gyu, former brother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on October 6, 1995 and November 12, 1995. Before he died (December 30, 1997) at the time, he had not been able to disclose, or he was the last to discuss Pavilion 10.26, which he had thought of. Former Central Intelligence Manager Kim Jae-gyu left his last will to his younger brother, Kim Hang-gyu, and his family, "I did not do anything embarrassing in the world." The military trial sentenced Kim Jae-gyu to death, and the military courts put him to death. As you might guess, it seems that the military security officer led the death penalty in the back of Kim Jae-gyu's execution. A photograph of the murder of former Central Intelligence Agency chief Kim Jae-gyu was released 40 years after the death of Kim Jae-gyu, head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The appearance of former central intelligence chief Kim Jae-gyu, who claimed the murder of President Park Chung-hee as a'bloodless revolution', walked to the death penalty, and was very confident. And he was hanged without a tear. The last appearance of former Central Intelligence Agency chief Kim Jae-gyu, who was executed in a white hanbok, conveys the pain of Korean democracy. This is because innocent citizens of Gwangju were killed with gun knives by the martial law army, and at the fierce moment of the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he was executed by soldiers of the new military unit during a military coup with Chun Doo-hwan.

 

However, the writer (publisher Moon Il-suk) had two solo interviews with Kim Hang-gyu, former central intelligence chief Kim Jae-gyu's brother, and he was hiding in his mother's house in a small hanok in Dongsomun-dong, Seongbuk-gu, Seoul. I met him twice, on October 6, 1995 and on November 12, 1995. With the release of the picture of the Kim Jae-gyu death penalty, the author delivers the contents of the interview (16 years ago) of Kim Jae-gyu's younger brother Kim Hang-gyu (deceased) to the world as it is.

 

General Kim Jae-gyu who murdered President Park Jung-hee, Kim Hang-gyu, his younger brother, “Testimony of Nurturing”

 

-Jaegyu Kim "I never did anything embarrassing in the world" will

 

Kim Hang-gyu has lived in a rough world since October 26, 1979 because he had an older brother (Kim Jae-gyu) who murdered President Park Jeong-hee. He entered Hyeonbulsa Temple, but he was not a monk, but he walked the path of a religious for 10 years. After that, until his death, he died while living in a cramped room of about 3 pyeong in a small hanok located in Dongsomun-dong, Seongbuk-gu, Seoul. At that time, the reporter's interview with Kim Hang-gyu was difficult. He said, "I've been silent, but he needs to open his mouth because he doesn't know when he will die, so I'll leave a word to say."

Some claim that -10.26 was planned in advance. If you know anything about this, please tell me.

 

▲I met my older brother about 15 days before October 26th. We talked until late at night. At that time, the elder brother said, "President Syngman Rhee thought he would withdraw when he retires, but President Park has no personality to withdraw."

 

 I said, "It's not just your brother in the family. What would happen to us if you did something like that?" Looking at the dialogue at this time, the older brother had the idea that President Park should be removed from before. After such a conversation, my brother refused to visit me until October 26th. I don't think your brother's 10.26 was an incident that was caused by the thought of becoming something. My brother loved President Park Chung-hee at the risk of his life. Paradoxically, his brother loved President Park so much that he was forced to remove President Park in order to restore democracy in Korea that President Park developed.

 

 It could be compared to a man and a woman who loves each other and dies when they can no longer make love. There is a word called "simjung". Since his brother was piercing the heart of President Park, he would have had to kill him in the end. I think that it is unfortunate if the country developed by a loved one is wrong and the people suffer damage, so I think that I loved President Park so so much that he made such a final quest.

 

 In his final statement, "It's okay to cut off my age of 10 or 20 years, so let's restore liberal democracy to this country. I'm the president's staff and a high-level official of the Republic of Korea. Then, I'm loyal to this country and to this people." Isn't there an obligation to be loyal? In the end, I sacrifice my honor, position, life, and loyalty to the President's Excellency, all things belonging to this loyalty at once.

 

 Some people criticize him, but I think he has changed the course of history anyway. My brother desperately wanted civilian politicians such as Kim Young-sam and Kim Dae-jung to become president and lead the country. He saw that the age of military politicians leading the country is over.

 

 As the head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my brother went directly to the scene of the Buma case. The conclusion of my brother who inspected the Buma case was Minran (民亂). Without the 10.26 incident, there might have been a civil war in Seoul and a huge sacrifice. The removal of President Park seems to have been a major event that prevented huge national sacrifices in advance.

 

 -Did you have any idea to get rid of President Park and become president?

▲ (General Kim Jae-gyu's younger sister Kim Jae-seon) These claims were made and disseminated by the New Military Department. I am the one who supported his brother until he was arrested and executed. After his brother was arrested, he wanted to deliver the message urgently. The urgent message was that "we made a revolution." He appealed to the entire public to inform the whole country of this as soon as possible. However, the public defense lawyers neglected to convey his brother's urgent voice to the outside. I myself believe that my brother was a revolutionary who overthrew the dictatorship.

 

 "I murdered because I love you"

 

 After 10.26, Kim Hang-gyu spent the world in hiding at Hyeonbulsa Temple in Taebaeksan Mountain for 10 years. He opened his mouth to reveal some of the things he hadn't spoken.

 

 -How was Kim Jae-gyu's former Chinese government leader and President Kim Young-sam at the time?

▲The October 26 incident, it is not a big secret, but I want to reveal a fact that I have not been able to say. Again, my brother loved President Park Chung-hee so much that he had no choice but to kill him with a gun. The way of a large person and a way of a small person are different in that respect. It is so in that killing the president he is serving is the same as killing himself. My brother proudly gave his life at the death penalty.

 

 In October 1979, it was at the time of the dismissal of the New Democratic Party President Kim Young-sam. I could meet my brother from time to time. At that time, the elder brother was embarrassed, saying, "President Park ordered the removal of Governor Kim Young-sam." We were Kim Nyeong-Kim, President Kim Young-sam and same-sex fellowship. Governor Kim Young-sam was his nephew.

 

 My brother once said, "I can't help but get rid of President Kim, who has worked for democracy in Korea." My brother met Governor Kim at the diplomatic mission of Yaksu-dong, the Minister of Information, the day before the expulsion of Governor Young-sam Kim (79.10.4). I don't know what kind of story the elder brother, who had a strong clan concept, invited Governor Kim to talk about, but I know he would have listened to President Kim's words that Korea also needs democracy.

 

 At that time, my elder brother said, "How can I kill the Kim Nyeong-Kim clan? That is also the pillar of Korean democratization." In his second trial (December 8) after 10.26, he said he had a gun in his hand to shoot President Park because of President Kim Young-sam. Let me quote.

 

 "Sir, Governor Kim Young-sam has already been dismissed as a member of the National Assembly. It is not a judicial action, but I think that he has already punished me for that, the general public. Also, when I take judicial action against this person, it gives the impression of double punishment with the same thing. “After I said that, I was very excited, saying, "Do your politics a little more nationally." Then the gun went right into my hand... Then I just got a gun in my hand, and said, "This is a friend like this," he said, "Chief Chae Cheol, and the President of the President."

 

 Kim Jae-gyu's Last Will

 

 -I know you had your last visit at an army prison. At that time, what will the Chinese government chief Kim Jeong leave?

 

He was ▲ executed on May 24, 1980. But a day ago, I took my whole family to visit my brother. The elder brother held the children's hands and said, "My eldest father never did anything embarrassing to the world. Bring my last statement with my own hands. There is my truth in it." After my brother finished saying this, he confessed to me, saying, "Now I am at ease." I could intuit that the execution of the execution was imminent.

 

 -Can you tell us what happened after such a conversation?

 

▲I sang a breakup song to break up with my brother. It was the Japanese song Naniwashi (浪花節). It is a song with the lyrics of "Look in my eyes/ Don't say anything/ Isn't it in the stomach between men?/ Without a fool like me/ No one in this world can open their eyes."

 

 My brother, listening to the farewell song I sang, responded with a sound from the stomach, saying "Well." And my brother put it all into my ear and said, "Hey, I'm breaking up forever tomorrow. Only you know," and then he hit my back with all his might. This was the moment of my last breakup with my brother.

 

-There are rumors that former Chinese government chief Kim Jae-gyu is alive somewhere. What do you think of this theory?

 

▲In conclusion, this is a rumor. As I touched the body of my brother who was executed, I checked his face and put on new clothes. I think this kind of theory is a rumor that someone has made up. I have read almost all of the world's detective novels. Probably over 1,000 books were read. I looked at the whole body with the question that I could replace it with someone else's body, but it must have been my brother. On his brother's neck, there was a clear line of rope that was hung around his neck when he was hanged.

 -Did you visit while you were in business?

 

▲Of course. The security company designated Namhansanseong Fortress as a cemetery. The day before the funeral, I went up to Namhansanseong Fortress. As I climbed the mountain, I read the Nammu Myobeop Yeonhwa. And he wished, "Buddha, please give me a graveyard for your brother to be buried." At this time, a zelkova tree came into my eyes. The drooping branches of the tree shook as if "here, here." So I pointed to the zelkova tree and said, "Please dig this here." The next day, my brother's body was buried there. It is not true that the tomb is empty, that it is not dead and that it is alive somewhere.

 

 ▲ Kim Jae-gyu, former head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who murdered former President Park Jung-hee in 1979 and disappeared with the dew of his brother-in-law.

 

A copy of Park Jeong-hee's handwritten letter

 

 Kim Hang-gyu kept a handwritten letter from President Park Chung-hee to the central intelligence chief Kim Jae-gyu on October 19, 1978 until the end of his life. This letter was a letter in which President Park rebuked Kim Jae-gyu, the head of intelligence, for Kim Hang-gyu's actions. President Park Jeong-hee's handwritten letter to the chief intelligence officer, Kim Jae-gyu, begins with the phrase, "We will notify you of some of the information about Mr. Kim's close associates or family members.

 

 He recalled that he was confused by this letter. Kim Hang-gyu has kept this letter well. According to the law, it is Park Jung-hee, the murderer who was killed by his brother, the killer, but it was said that it was a document showing the last string of evil between the two.

 

 Kim Hang-gyu, who opened this letter and cried out, recited the content, saying, "There is a method of my favorite monk Seolsong (small high school)."

 

  "Flowers cannot bloom in the windless heaven and earth (無風天地無花開)/ Where there is no dew, there is no fruit (無露天地無結實)"

 

What kind of flower and fruit did Kim Jae-gyu, who murdered Park Jung-hee, leave behind in Korean history? Former Central Intelligence Agency chief Kim Jae-gyu, who murdered the president, ended up at the death penalty like wind and dew. Kim Jae-gyu's younger brother, Kim Hang-gyu, passed away after telling a reporter one topic of "flower and fruit". moonilsuk@naver.com

 

 *Writer/Ilsuk Moon. poet. publisher.

 

<Picture description>

▲ Kim Hang-gyu, the brother of General Kim Jae-gyu. The writer (publisher Moon Il-suk) had two interviews with General Kim Jae-gyu's younger brother Kim Hang-gyu on October 6, 1995 and November 12, 1995.

▲ Kim Jae-gyu, former head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is walking toward the death penalty.

▲ A scene where the execution of former Central Intelligence Agency chief Kim Jae-gyu was completed.

▲ A black coffin containing the body of former Central Intelligence Agency chief Kim Jae-gyu.

▲10.26 memorial event.

▲ Kim Jae-gyu was referred to the military law and executed during the 1980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May 24, 1980). The photo shows the old Seodaemun Prison execution site, where there is a weeping cottonwood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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