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일본과 언제든 마주앉을 준비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 3.1절 기념사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 될 것" 일본에 관계개선 희망

김기홍 기자 | 기사입력 2021/03/01 [11:49]

▲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일본과 우리 사이에는 과거 불행했던 역사가 있었다. 우리는 그 역사를 잊지 못한다.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법"이라면서도 이같이 말했다.

 

이어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다. 과거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며 "양국 협력은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 도움이 되며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지사지의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며 "올해 열리게 될 도쿄 올림픽은 한일 간, 남북 간, 북일 간 그리고 북미 간의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은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도 변함없이 노력할 것"이라며 "전쟁불용, 상호안전보장, 공동번영이란 3대 원칙에 입각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참여를 시작으로 북한이 역내 국가와 협력하고 교류하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3.1절 기념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3·1독립운동이 시작된 역사의 현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3·1독립운동 기념식이 열리게 되어 참으로 뜻깊고 감회가 큽니다.

 

102년 전 오늘, 이곳 탑골공원에서 민족의 회복과 도약이 시작되었습니다.

 

천도교, 기독교, 불교가 종교의 벽을 넘어 한마음이 되었고 학생들이 민족대연합의 선두에 섰습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한 청년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낭독이 끝나자 만세 소리가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비폭력운동, 3·1독립운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자유와 독립의 외침은 평범한 백성들을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태어나게 했고 정의와 평화, 인도주의를 향한 외침은 식민지 백성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함성이 되었습니다.

 

3·1독립운동은 식민지배의 수탈로부터 민족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함께 한 운동이었습니다.

 

3·1독립운동으로 우리는 식민지 극복의 동력을 찾았고 민족의 도약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역경을 헤쳐나가며 대한민국 역사의 반전을 이룬 자랑스러운 선조들께 깊은 존경을 바칩니다.

 

국민 여러분, 100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국난에 함께 맞서는 우리 국민들의 헌신과 저력은 한결같습니다. 

 

한 해를 넘긴 코로나의 위협에 우리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년, 국민들은 방역의 주체가 되어 대한민국을 지켜주셨습니다.

 

방역 요원과 의료진은 직업적 책임감을 뛰어넘는 놀라운 헌신과 희생을 보여주었습니다.

 

3·1독립운동 전 해, 일제의 무단통치와 수탈에 신음하던 1918년에도 '스페인 독감'이라는 신종 감염병이 우리 겨레에 닥쳤습니다.

 

당시 인구의 40%가 넘는 755만 명의 환자가 발생해 14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콜레라 역시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치명률이 65%에 이르렀고 1920년에만 1만3천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제는 식민지 백성을 전염병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방역과 위생을 구실로 강제 호구조사와 무조건 격리를 일삼았고, 1920년 당시 의사 1인당 담당 인구수가 무려 1만7천 명에 달했습니다.

 

그와 같은 척박한 의료 현실 속에서 의학도들은 3·1독립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경성의전과 세브란스의전 학생들이 탑골공원의 만세 시위를 주도했고,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과 세브란스의전 간호부 학생들 역시 붕대를 가지고 거리로 뛰쳐나와 동참했습니다.

 

체포된 학생들 가운데 경성의전 학생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가족과 이웃, 공동체의 생명을 지킨 것은 3·1독립운동으로 각성한 우리 국민 스스로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의료인들은 독립운동으로 탄압받는 민족의 구호를 위해 상해에서 대한적십자회를 설립했고, 1920년에는 적십자 간호원 양성소를 세워 독립군을 치료할 간호사들을 길러냈습니다.

 

콜레라가 유행하자 전국 곳곳의 청년·학생들은 청년 방역단을 조직하여 무료 예방접종과 소독 등의 방역 활동을 벌였고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열세 개 동, 3천여 가구가 연합 자위단을 조직해 콜레라에 맞섰습니다.

 

효자동을 비롯한 여덟 개 동 주민들은 전염병 병원 설립을 위한 조합을 결성했고 1920년 9월 4일, 마침내 최초의 사립 전염병 격리병원 효자동 피병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조선인이 지은 병원에서 조선인 의사와 간호사, 한의사가 전력을 다해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오늘의 코로나 상황 속에서 보면 우리 스스로 우리 환자를 돌보려 했고, 우리 스스로 의료체계를 갖추려 했던 선대들의 노력이 참으로 가슴 깊게 다가옵니다.

 

오늘 우리가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는 힘이 100년 전 우리 의료인들의 헌신과 희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국민 여러분,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 보건의료 체계는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소득층은 언제든 연간 80만 원 이하의 자부담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중증환자 보장률도 80%까지 올랐습니다.

 

우리 의료는 대장암과 위암을 비롯한 각종 암과 뇌졸중 치료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고, 기대수명과 영아 사망률, 암 질환 생존율 등 주요 지표에서

OECD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보건의료 체계와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이 K-방역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100년이 흘렀지만 한결같은 것이 또 있습니다.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는 '포용'과 '상생'의 마음입니다. 

 

이야말로 어떤 위기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우리 국민의 힘입니다. 

 

우리는 국민의 힘으로 많은 위기와 역경을 이겨왔고 지금도 코로나 위기를 이겨내고 있습니다.

 

3·1독립운동은 민족지도자들이 시작했지만 온갖 탄압을 이겨내며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확산시킨 것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이웃을 위해 매일 아침 마스크를 챙겨 쓰는 국민의 손길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국민들의 가슴 깊은 곳에도 국난 극복을 위해 함께한 3·1독립운동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을 위해 인내하고 희생해온 국민들과 지금 이 순간에도 격리병동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의 노력으로 코로나와의 기나긴 싸움도 이제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충분한 물량의 백신과 특수 주사기가 확보되었고 계획대로 접종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끝까지 방역에 최선을 다하며 국민 한 분 한 분이 모두 코로나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 때까지 백신 접종에 만전을 기할 것이며 다음 겨울에 접어드는 11월까지 집단 면역을 이룰 것입니다.

 

코로나 방역에 있어서 정부가 시종일관 지켜온 제1의 원칙이 투명성입니다. 

 

정부는 방역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항상 투명하게 공개해왔습니다.

 

백신 접종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신 접종의 전략과 물량 확보, 접종 계획과 접종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고, 언제나 국제기준을 따르고 있습니다. 

 

국민들께서 백신 불신을 조장하는 가짜뉴스를 경계해주시고 백신 접종에 적극 협력하여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1946년 해방 후 처음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임시정부 국무위원 조소앙 선생은 "우리 동포를 자유민이 되게 하고, 정치적 권리를 갖게 하고, 의식주 걱정 없는, 진정한 광복을 이루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건국이념으로 우리 스스로 힘이 있을 때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 평등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삼균주의'를 공표했습니다.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이었고 우리는 이 꿈 위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뤘습니다.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로 성장했고, 세계 7대 수출 강국이 되었으며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열었습니다.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우리의 첨단 IT 제품이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5G 상용화에 이어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 미래차에서도 앞서가고 있습니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에서 자립을 이뤄가고, 시스템반도체와 바이오산업의 성장 속도도 자랑할 만합니다.

 

우리 청년들의 고등교육 이수율도 OECD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지식을 쌓은 우리 국민의 저력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우리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힘으로 코로나 위기 속에서 방역과 경제의 모범을 만들어왔고, K-방역의 성과와 경험을 세계와 공유하고 있습니다.

 

개도국과 보건 취약 국가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 파리평화회의의 문턱에서 가로막혔던 우리가 이제는 G7정상회의에 초청받을 만큼 당당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올해 G7 정상회의 참여로 우리가 이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성취 위에서 '선도국가, 대한민국호'가 출발하는 확실한 이정표를 만들겠습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와의 협력 속에서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세계와 함께 회복하고 도약할 것입니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이곳에서 인류 평등의 대의와 함께 독립선언의 목적이 일본을 미워하고 배척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라 간의 관계를 바로잡아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이루고자 함에 있다는 것을 선포하고 비폭력 평화 운동을 선언하였습니다.

 

우리는 100년 전의 선조들로부터 나라 간의 호혜 평등과 평화를 지향하는 정신을 물려받았습니다.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코로나에 맞서 연대와 협력, 다자주의와 포용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힘이 지배하는 일방적인 세계 질서 속에서 식민주의와 전쟁으로 인류 모두가 불행해지는 시대를 넘어섰습니다.

 

우리는 글로벌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으며 백신의 조기개발을 위해 세계 각국이 협력해야 하고 세계적인 집단 면역을 위해 개도국과 백신을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계는 공존과 새로운 번영을 위해 연대와 협력, 다자주의 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코로나 극복은 물론 기후변화 대응 같은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해 다자주의에 입각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다자주의에 입각한 연대와 협력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도 생겼습니다. 

 

지난해 12월 우리는 미국, 중국, 러시아, 몽골과 함께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를 출범시켰습니다.

 

일본도 참여를 검토하고 있으며 나아가 북한도 함께 참여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국들과 협력할 것입니다.

 

코로나와 같은 신종 감염병과 가축 전염병의 초국경적인 확산은 한 나라의 차원을 넘어 다자주의적 협력에 의해서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도 변함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전쟁불용, 상호안전보장, 공동번영이란 3대 원칙에 입각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참여를 시작으로 북한이 역내 국가들과 협력하고 교류하게 되길 희망합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상생과 평화의 물꼬를 트는 힘이 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일본과 우리 사이에는 과거 불행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불행했던 역사 속에서 가장 극적이었던 순간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그 역사를 잊지 못합니다.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한일 양국은 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 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한일 양국은 일종의 분업구조를 토대로 함께 경쟁력을 높여왔고, 한국의 성장은 일본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일본의 성장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때때로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와 분리하지 못하고 뒤섞음으로써 미래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면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길입니다. 

 

한국은 과거 식민지의 수치스러운 역사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던 아픈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교훈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언제나 피해자 중심주의의 입장에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것입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협력과 미래발전을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양국 협력은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 도움이 되며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함께 준비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이웃나라 간의 협력이 지금처럼 중요한 때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3·1독립선언서는 일본에게 용감하고 현명하게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를 바탕으로 우호적인 새로운 관계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우리의 정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일 양국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며 함께 걷고 있습니다.

 

올해 열리게 될 도쿄 올림픽은 한일 간, 남북 간, 북일 간 그리고 북미 간의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할 것입니다. 

 

나아가 한일 양국이 코로나로 타격받은 경제를 회복하고, 더 굳건한 협력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지금 우리 곁에 계신 생존 독립유공자는 스물네 분에 불과합니다.

 

모두 아흔을 훌쩍 넘기셨습니다.

 

독립유공자들은 온몸으로 민족의 운명을 끌어안아 오신 분들이며 독립유공자들께 명예롭고 편안한 삶을 드리는 것은 국가의 무한한 책임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독립유공자를 위해 찾아가는 재가복지서비스 특별기동반을 운영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포함하여 모두 4만4천여 가구에 코로나 긴급구호 물품을 전해드렸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병원에 모시고 다녔습니다.

 

해외 독립유공자와 후손들께도 마스크 등 방역물품을 지원했습니다.

 

정부는 이달부터 독립유공자들의 자택으로 직접 찾아뵙는 한방 주치의 제도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12월부터는 독립유공자를 비롯한 국가유공자들께 자율주행 스마트 휠체어를 지급하고, 인공 망막, 스마트 보청기 개발도 본격적으로 착수할 예정입니다.

 

정부는 그동안 독립유공자 심사기준을 개선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독립유공자를 발굴 포상해왔습니다.

 

독립운동 사료 수집을 강화하고 공적심사 기준을 더욱 개선해 포상 대상을 확대해나가겠습니다.

 

3·1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학생들은 1926년 6·10만세운동,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3·1독립운동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갔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6·10만세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고, 올해부터 기념식을 정부 주관 행사로 거행하게 됩니다.

 

3·1독립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과 함께 3대 독립운동 모두가 국가기념일이 되어 매우 뜻깊습니다.

 

임시정부 요인 환국일인 올해 11월 23일,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이 드디어 개관합니다.

 

목숨을 건 무장투쟁과 의열활동, 필사적인 외교전, 마침내 이뤄낸 광복군의 좌우합작과 국내진공작전의 준비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27년의 위대한 대장정을 생생하게 되살릴 것입니다.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가 미래 세대에게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이 되길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3·1독립운동 이후 우리의 100년은

식민지배, 분단과 전쟁, 가난과 독재를 극복해온 100년입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평화, 정의와 인도주의를 향해 전진해온 100년입니다.

 

우리는 지금 3·1독립운동의 정신과 민주주의, 포용과 혁신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으며 세계는 우리의 발걸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대와 협력으로 소중한 일상을 회복할 것입니다.

 

인도주의와 다자주의, 상생과 포용의 정신으로 국제질서를 선도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곳 탑골공원에는 위기와 역경 속에서 역사의 반전을 이룬 선열들의 정신이 살아있고, 우리는 선열들을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함께할 때 우리는 더욱 강합니다.

 

더 높이 도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President Moon Jae-in "I am ready to sit face to face with Japan anytime."

Hope to improve relations in Japan "It will be helpful for Korea-US-Japan trilateral cooperation"

-kihong Kim reporter 

 

 

President Moon Jae-in said on the 1st, "Our government is always ready to sit face to face with the Japanese government to have a conversation."

 

President Moon said at a ceremony to commemorate the March 1st anniversary of the 102nd anniversary held in Tapgol Park in Jongno-gu, Seoul, that morning, "There was a history between Japan and us that was unfortunate in the past. We cannot forget that history. The perpetrator can forget it, but the victim cannot forget it." Said this.

 

"We cannot be held back by the past. We need to focus more on future-oriented development while solving the past problems according to the past problems. The cooper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will benefit both countries, and stability and common prosperity in Northeast Asia. It will be helpful for the Korean government, and it will be helpful for the trilateral cooperation between Korea, the US and Japan.

 

He added, “I am confident that we will be able to wisely solve the problems of the past if we go head-to-head in the posture of history,” he said. “The Tokyo Olympics, which will be held this year, could be an opportunity for dialogue between Korea and Japan, North Korea, North Korea and North America. Korea will cooperate with the successful hosting of the Tokyo Olympics,” he said.

 

In addition, he said, "We will continue to strive for denuclearization and lasting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We will continue to develop inter-Korean relations based on the three principles of non-warfare, mutual security, and common prosperity."

 

In addition, he said, "I hope that North Korea will cooperate and exchange with the nations in the region, starting with participation in the Northeast Asian quarantine and health cooperation body to protect the lives and safety of the people."

 

Fellow Koreans, overseas compatriots, and I am very deeply impressed with the fact that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Memorial Ceremony was held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at the site where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began.

 

Today, 102 years ago, the recovery and leap of the nation began here in Tapgol Park.

 

Cheondogyo, Christianity, and Buddhism crossed the barrier of religion and became unified, and students took the lead in the nation's great coalition.

 

On March 1, 1919, at 2 pm, a young man climbed to Palgakjeong Pavilion and read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hen the reading was over, the sound of hurrah covered the sky.

 

It was the beginning of the world's largest non-violent movement,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The cry of freedom and independence that began in Tapgol Park made ordinary people reborn as citizens of a democratic republic, and the cry for justice, peace, and humanitarianism became a shout of unity that united the colonial people.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was a movement that the whole people worked with to restore the lives of the nation from the exploitation of colonial rule.

 

With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we found the driving force for overcoming the colony, and we were able to start a leap for our nation.

 

We dedicate our deepest respect to our proud ancestors who made a reversal in the history of Korea through adversity.

 

Fellow citizens, 100 years have passed, but our people's dedication and strength to face the national crisis are the same.

 

We haven't succumbed to the threat of more than a year.

 

In the past year, the people have been the subject of quarantine and have protected the Republic of Korea.

 

The quarantine personnel and medical staff showed amazing dedication and sacrifice that exceeded their professional responsibilities.

 

The year before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in 1918, when Japanese imperialism was struggling with unauthorized rule and exploitation, a new infectious disease called the'Spanish flu' hit our people.

 

At the time, more than 40% of the population occurred at 7.55 million, killing more than 140,000.

 

Cholera also meant death.

 

The fatality rate reached 65%, and in 1920 alone, over 13,500 people were killed.

 

The Japanese colonial rule could not protect the colonial people from the epidemic.

 

For the pretext of quarantine and hygiene, forced rescue personnel and unconditional quarantine were used, and in 1920, the number of people in charge per doctor reached a whopping 17,000.

 

In such a barren medical reality, medical students most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Gyeongseongjeon and Severance Medical Center students led the demonstration for national independence in Tapgol Park, and Severance Hospital nurses and Severance Medical School nursing students also ran out to the streets with bandages to join.

 

Among the arrested students, Gyeongseongjeon students were the most common.

 

It was the Korean people themselves, who awakened through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that preserved the lives of their families, neighbors and communities.

 

When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was established, medical professionals established the Korean Red Cross in Shanghai to aid the people who were oppressed by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in 1920 established the Red Cross nurse training center to raise nurses to treat the independence army.

 

With the outbreak of cholera, youth and students all over the country organized youth quarantine teams to conduct quarantine activities such as free vaccination and disinfection, and received great response.

 

In Seoul, thirteen dongs and 3,000 households formed an allied self-defense group to combat cholera.

 

Hyoja-dong and other residents of eight towns formed a cooperative to establish an infectious disease hospital, and on September 4, 1920, the first private infectious disease quarantine hospital, Hyoja-dong Hospital, was finally established.

 

In a hospital built by Koreans, Korean doctors, nurses, and oriental medicine doctors treated patients with their utmost efforts.

 

In today's coronavirus situation, the efforts of our ancestors who tried to take care of our patients by ourselves and to equip ourselves with a medical system come deeply to our hearts.

 

We are very proud that the strength we are fighting against Corona today stems from the dedication and sacrifice of our medical workers 100 years ago.

 

Fellow citizens, 100 years have passed, and our health care system has become world-class.

 

Low-income families can receive health insurance-covered treatment at any time of less than 800,000 won per year, and the coverage rate for severely ill patients has risen to 80%.

 

Our medical care is evaluated as the world's best in the treatment of various cancers and strokes, including colorectal cancer and stomach cancer, and in key indicators such as life expectancy, infant mortality, and cancer disease survival rate.

It is ranked at the top of the OECD.

 

This surprisingly developed health care system and biopharmaceutical production capacity became the basis for K-Defense.

 

100 years have passed, but there is another thing that is consistent.

 

It is a heart of'embracing' and'win-win' that cares for and relies on each other.

 

This is the power of our people to overcome any crisis.

 

We have overcome many crises and adversities with the power of the people, and we are still overcoming the corona crisis.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was initiated by ethnic leaders, but it was ordinary ordinary people who overcame all kinds of oppression and spread it into the national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I think the spirit of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which we have joined to overcome the national crisis, is alive and deep in the hearts of the people who are wearing masks every morning for their neighbors and practicing social distancing.

 

With the efforts of the people who have endured and sacrificed for their neighbors and the medical staff working in the quarantine ward even at this moment, the long fight against Corona is now coming to an end.

 

A sufficient amount of vaccine and special syringe have been secured, and vaccination is proceeding smoothly as planned.

 

The government will do its best to prevent quarantine until the end, and will make every effort to vaccination until each of the citizens is safe from coronavirus, and will achieve collective immunity until November, the next winter.

 

Transparency is the first principle that the government has consistently adhered to in corona prevention.

 

The government has always transparently disclosed all information necessary for quarantine.

 

The same goes for vaccination.

 

The strategy and quantity of vaccination, vaccination plan and vaccination status are transparently disclosed, and always comply with international standards.

 

We urge the public to be wary of fake news that promotes distrust of vaccines and actively cooperate in vaccination.

 

Fellow Koreans and fellow Koreans abroad, at the ceremony for the first March 1st after liberation in 1946, Mr. Jo Soang, a member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s State Council, said, "We will make our compatriots free citizens, have political rights, and do not worry about food, clothing, shelter, and I will achieve it."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s the founding ideology of the Republic of Korea, proclaimed'Tricultureism' that equal development between individuals and individuals, nations and nations, and nations and nations is possible when we have our own strength.

 

It was a simple but grand dream, and we have achieved amazing achievements on it.

 

It has grown from the world's poorest country to the world's 10th largest economy, has become the world's seventh largest export country, and has opened an era of per capita national income of $30,000.

 

Our high-tech IT products, such as semiconductors, smartphones, and displays, are now the world's largest market share.

 

Following the world's first commercialization of 5G, we are also leading the way in eco-friendly future vehicles such as electric vehicles and hydrogen vehicles.

 

It is self-reliant in the materials, parts, and equipment industries, and the growth rate of the system semiconductor and bio industries is also worth boasting.

 

Korean youth's tertiary education completion rate is also the highest among OECD countries.

 

The potential of our people, who constantly learned and accumulated knowledge, was the driving force of economic growth.

 

With the power of a mature democracy, we have been setting an example of quarantine and economy in the midst of the corona crisis, and we are sharing the achievements and experiences of K-Defense with the world.

 

We are also expanding support to developing and vulnerable countries.

 

100 years ago, we were blocked at the threshold of the Paris Peace Conference, and now we are a proud country enough to be invited to the G7 Summit.

 

By participating in this year's G7 Summit, we will make a clear milestone in which the'Leading Country, Republic of Korea' starts on top of all the achievements in politics, economy, society, and culture that we have achieved.

 

We have grown in cooperation with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will continue to recover and leap forward with the world in the future.

 

100 years ago, our ancestors declared that the purpose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long with the cause of human equality was not to hate and exclude Japan, but to correct relations between countries and achieve peace in the East and the world, and launched a non-violent peace movement. Declared.

 

We inherited the spirit of mutual benefit, equality and peace between countries from our ancestors 100 years ago.

 

Now, 100 years later, we are once again seeing how important the spirit of solidarity, cooperation, multilateralism and inclusion in the face of coronavirus is important.

 

We have passed the era of unhappiness for all of humanity due to colonialism and war in a one-sided world order dominated by force.

 

We have realized the importance of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cooperation to sustain our global supply chain, and we have come to recognize that countries around the world must cooperate for early development of vaccines, and that vaccines must be shared equally with developing countries for global population immunity.

 

Now the world must revive the spirit of solidarity, cooperation, and multilateralism for coexistence and new prosperity.

 

We need to find solutions based on multilateralism not only for overcoming corona but also for global problems such as responding to climate change.

 

Now we have the capacity to lead the solidarity and cooperation based on multilateralism.

 

Last December, we launched a Northeast Asian quarantine and health cooperation body with the United States, China, Russia and Mongolia.

 

Japan is also considering participation, and I look forward to North Korea as well.

 

We will most actively cooperate with the participating countries.

 

The cross-border spread of new infectious diseases such as corona and livestock epidemics can be effectively countered only by multilateral cooperation beyond the level of a single country.

 

We will continue to strive for denuclearization and lasting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We will develop inter-Korean relations based on the three principles of non-warfare, mutual security, and common prosperity.

 

I hope that North Korea will cooperate and exchange with countries in the region, starting with participation in the Northeast Asian quarantine and health cooperation body to protect the lives and safety of the people.

 

It will be a force to open the waters of win-win and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East Asia.

 

Fellow Koreans, there has been an unfortunate history between Japan and us.

 

Today is the day to remember the most dramatic moment in that unfortunate history.

 

We cannot forget its history.

 

The perpetrator can forget, but the victim cannot.

 

But now, 100 years later, Korea and Japan are working in all fields, including economics, culture, and people-to-people exchanges.

We became very important neighbors to each other.

 

Over the past decades, Korea and Japan have improved their competitiveness together based on a sort of division of labor structure, and the growth of Korea has helped the development of Japan, and the growth of Japan has helped the development of Korea.

 

It will continue to be so in the future.

 

The only hurdle we have to overcome is that sometimes the problems of the past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problems of the future, but mixed together, which impedes future development.

 

We must learn lessons as we face the history of the past.

 

It is by no means a shame to learn lessons from past mistakes, but rather to be respected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Korea is striving to learn lessons without forgetting the shameful history of its colonies and the painful history of the wars of the same people.

 

But you can't be stuck in the past.

 

We need to focus more on future-oriented development while solving the problems of the past according to the problems of the past.

 

The Korean government will always seek wise solutions from the standpoint of victimism.

 

We will also do our best to restore the honor and dignity of our victims.

 

However, Korea-Japan bilateral cooperation and efforts for future development will not stop.

 

Cooper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will benefit both countries, stability and common prosperity in Northeast Asia, as well as trilateral cooperation between Korea, the United States, and Japan.

 

Moreover, now is the time to overcome the corona crisis together and prepare for the post-corona era together.

 

I would like to emphasize that there has never been a time when cooperation between neighboring countries is as important as it is now.

 

The March 1 Declaration of Independence proposed to Japan to bravely and wisely correct past mistakes and to create a new friendly relationship based on true understanding.

 

Our minds haven't changed then or now.

 

Our government is always ready to sit down and have a conversation with the Japanese government.

 

We are confident that we will be able to wisely solve the problems of the past if we go head-to-head in the posture of the reverse branch.

 

Both Korea and Japan are walking together looking at the past and the future at the same time.

 

The Tokyo Olympics, which will be held this year, may be an opportunity for dialogue between Korea and Japan, North and South, North Korea and Japan, and North America.

 

Korea will work together to successfully host the Tokyo Olympics.

 

Furthermore, I hope that both Korea and Japan will be able to recover the economy hit by the corona and create a new order in the post-corona era through stronger cooperation.

 

Fellow citizens, members of independence merit and family members, there are only twenty-four surviving merit of independence by our side.

 

All over ninety.

 

The people of independence merit are those who have embraced the fate of the nation with their whole bodies, and it is the limitless responsibility of the state to give the people of independence merit an honorable and comfortable life.

 

Last year, the government operated a special task force for in-home welfare services that visited people of merit for independence.

 

We delivered corona emergency relief supplies to 44,000 households, including independence merit and bereaved families, and carried people with disabilities to hospitals.

 

We provided quarantine supplies such as masks to foreign contributors and their descendants.

 

Starting this month, the government is planning to implement a system of oriental medicine doctors who visit the homes of people of independence merit.

 

From December, we plan to provide self-driving smart wheelchairs to people of national merit, including those of national merit, and to develop artificial retinas and smart hearing aids in earnest.

 

The government has improved the screening criteria for people of merit for independence and has been discovering and rewarding people of merit at the highest level ever.

 

We will increase the number of awards by strengthening the collection of materials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further improving the standards for public evaluation.

 

The students who played the leading role in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continued the spirit of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through the June 10 National Movement in 1926 and the Gwangju Student Independence Movement in 1929.

 

The government designated the June 10th Movement as a national anniversary last year, and from this year the ceremony will be held as an event organized by the government.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Gwangju Student Independence Movement, as well as the three major independence movements, are national holidays, which are very meaningful.

 

The National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Memorial Hall is finally open on November 23, this year, the day of the transition to Korea.

 

From the armed struggles that risked their lives, the desperate diplomatic wars, the left-right cooperation of the Liberation Army finally achieved, and the preparation for the domestic vacuum operation, we will vividly revive the great long campaign of 27 years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 hope that the history of our independence movement will become a great pride and pride for future generations.

 

Fellow Koreans, Koreans overseas, Our 100 years after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It is 100 years of overcoming colonialism, division and war, poverty and dictatorship.

 

It is 100 years of progress toward freedom and peace, justice and humanitarianism, which are the universal values of mankind.

 

We are now pioneering new paths with the spirit of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power of democracy, inclusion and innovation, and the world is paying attention to our steps.

 

We will restore our precious daily life through solidarity and cooperation.

 

We will become a country that leads the international order with the spirit of humanitarianism, multilateralism, win-win and inclusiveness.

 

Here in Tapgol Park, the spirit of the ancestors who made a reversal of history amidst crisis and adversity is alive, and we will continue to remember the ancestors.

 

Together we are stronger.

 

I will jump higher.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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