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히 머리로만 알던 양극화의 실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시라!

아이디어 소설 <한생각> 제15장 상

이헌영 소설가 | 기사입력 2020/11/02 [12:19]


 

▲ 이헌영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15. 대선

 

관영의 여당은, 중진의원들과 최고위원 연석회의를 열고, 다시 의원총회결의로, 대선선거대책본부를, 출범시켰다.

 

본부장엔, 현, 대표인 김경희 대표와, 대행체제를 이끌었던 서 주원 전 대행, 그리고 학계를 대표하여, 문성대학 총장이었던 강창구, 등3인이 공동으로 맡았다.

 

중앙본부에 이어, 전국 각 시도 본부가 출범했다.

 

공약개발위원회는[비전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정계. 법조계. 경제계. 학계, 노동계 외에도 청년계, 여성계를 포함시켜 거창한 규모로 출범했다.

 

외곽조직으로 원로고문단도 있었고, 자문그룹도 있었다.

 

조직 총괄본부가 있어서, 모든 조직을 움직이고 관리한다고 하지만, 전국의 수많은 00산악회, 00팬클럽, 00포럼, 등, 읍면동 단위까지 뻗어있는 조직을, 제대로 움직이고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은 알면서도, 그대로 운용했다.

 

잠시잠깐 선거 때만 운용되는 조직이 온전한 조직으로서 운용될 턱이 없었다. 조직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효율적으로 운용되던, 전혀 효율적이 아니던, 상관없이 돈이 필요하다. 전국곳곳마다, 실력과 전혀 관계없는 선수들이, 애국깨나 하는 선수로 둔갑해 설쳐 댔다.

 

관영은, 황당하고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때가 되면, 발을 빼야할 사연이 있지 아니한가.

 

관영의 공약개발위원회인[비전코리아]는 당정연구원 원장인 4선 조무음의원이 맡았다.

 

관영은[비전코리아]의 출범 현판식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든 과정이 매스컴에 보여주기 위한 행사였기 때문이었다.

 

대선공약을 연구개발 하는[비전코리아]의 구성원은 각계각층의 인물 460명이나 되었다. 그들 대부분이 이름만 올렸을 뿐으로[비전 코리아]사무실은 심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위원장인 조무음의원도 어쩌다 한 번씩 얼굴을 내밀뿐, 각계의 대표들이 토론하는 등의 회의는 아예 없었다.

 

그러면서도,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안상’ 이라는 구실을 붙여 외부인 출입을 금지시켰다.

 

정작 대선공약은, 선거대책본부의 선거 전략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공약은,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정확히 판단하고, 그에 합당하고 실천 가능한 것이어야 하건만, 전략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유권자들이 솔깃할 만한 공약이 무엇일까? 이었다. 부유층 유권자보다는 서민유권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초점은 서민에 맞추는 건 당연했다. 서민에게는 경제론 보다는, 복지가 인기가 있고, 그 앞에 무상이라는, 두 글자를 넣어[무상복지]를 간판으로 하면 금상첨화라고 했다.

 

경제론에서는, 일자리 창출이 한 발짝 더나가서[좋은 일자리 창출]이 간판이 되었다.

 

통일 안보부분에서는[임기 내 남북 정상회담]을 노력한다. 라고 했다

 

[무상 복지]에는 출산, 보육, 육아, 교육, 의료, 노인, 여성, 장애인, 가계부채, 전월세, 농어촌, 등등 모든 민생이 완전 무상, 대부분 무상, 일부무상, 등의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좋은 일자리창출]에는 경제민주화, 중소기업, 최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시간, 여성인재, 노동환경, 창업지원, 세제개혁, 규제철폐, 금융개혁, 공기업개혁, 등등이 자리를 잡았다.

 

[임기 내 남북정상회담]에는 철통방어, 도발방지, 대화, 복무기간단축, 복무환경개선, 이산가족상봉, 철도연결, 제2개성공단, 공동개발, 관광, 체육교류, 등등이 자리를 잡았다

 

그것 외에도 세대를 위한공약, 계층을 위한공약, 등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 도와 시. 마다 맞춤식 공약이 있었다,

 

그 모든 공약은, 1,현황과 문제점, 2,목표, 3,이행절차와 이행 기간, 4,재원조달 방법 등을 제시해 놓았다, 

 

마치 그 많은 공약들을 꼭 이행할 것처럼 교묘하게 짜 넣었다.

 

모두가 과거의 공약집에 있었던 것을 현재의 유권자의 구미에 맞게 각색 한 것이다. 외형상 훌륭한 새로운 공약집이 한권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말했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 창출에 있다’ 처음엔 관영도 그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선거 전략가들이 공공연히 강조하듯 외칠 때 그럴듯한 뭔가가 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공약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본 관영은 ‘정당은 국민에게 사기를 쳐서라도 정권을 잡아야 된다.’로 해석되었다.

 

관영은 공약을 만드는 전략가들에게, 양극화해소 방안이 없다고 지적하고, 부유세도 들먹이며, 입씨름을 벌렸지만, 이기려고 기를 쓰진 않았다. 입씨름이 외관상으로는 크게 보이도록,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기도 하고, 문밖 사람들도 듣도록 큰 소리도 내고, 여러 사람 있는 곳에서, 투덜대기도 했다.

 

기자들이 사실 확인을 요청했을 때 관영의 대답이다.

 

“아무래도 100% 만족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는, 그동안 쭉 양극화문제를 제기해 왔었는데, 당에서는 그 문제를 복지수준을 높이는 걸로 해결하려고하고, 저는 좀 더 적극적이고 원천적인 해결방안을 내라고 하고, 뭐, 그러다보니 약간의 입씨름이 있었습니다. 더 잘 해보려고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의견이 부딪치기 마련이고,…잘 하고 있습니다,”

 

마치 지나가듯이 말은 했지만, 매스컴으로서는 좋은 뉴스거리였다.

 

각, 매스컴에서 관영이 당에서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는 공약에 대해서,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뉴스를 일제히 내보낸 다음날, 당 대표 김경희가 관영의 방을 방문했다.

 

“후보님! 접니다! 그냥 무턱대고 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한 참 바쁘실 시간에 어인일로…환영 합니다”

 

관영은, 그녀를 진심으로 반겼다.

 

여직원이 쌍화차를 놓고 나가자, 대표가 한 모금 마시고, 방문목적을 말하기 시작했다..

 

“후보님! 궁금해서 왔습니다.”

 

“하하하!… 뭐가 그리 궁금하십니까?”

 

“후보님의 생각을 모르겠습니다. 경선 전의 후보님과 지금의 후보님은 다른 분 같아서요.”

 

“그게 무슨?… 어떤 면에서 다르다는 거죠?”

 

“후보님의 목표가 변하신거 같아서요. 분명 전에는 목표가 지금과는 달랐던 거 같은데요.”

 

“좀 구체적으로 말씀을…어떻게 다르다는 것인지…?”

 

어린 여성대표는 말을 멈추고, 관영을 말끄러미 바라본다.

 

무엇을 찾는 눈길이다. 관영은 왠지 면전에서,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대표가 입을 열었다.

 

“틀림없이 후보님께서는, 경선 전의 목표는, 대통령은 안 돼도 좋다. 양극화문제만 해결됐으면,… 하는 거 같았거든요. 그래서 국민들이 후보님을 지지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의 후보님은 그게 아닌 거, 같아요. 막상 후보가 되셨는데 양극화해소에 대한 후보님의 대안이, 뚜렷하게 나온 게 없어요. 지금의 목표는, 대통령되시는 것으로 바뀌셨나요? 당연한 거 같지만, 저는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물론, 일단 대통령에 당선이 돼야 양극화해소를 할 거 아니냐하시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공약에 명시되지 않고 있는데, 당선 후에 어떻게 실마리를 찾으시려고 하죠? 공약에 명시돼도 어려울 텐데,…어쩌시려는 건지 궁금합니다.”

 

관영은 뜨끔했다. 어린 대표에게 들키고 만 꼴이었다.

 

그렇다, 지금까지 관영은 양극화해소의 첨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한 그가 경선에서 승리하여 후보가 되었으면, 그에 합당한 공약을 내놔야 했었다. 당의 선거 전략가들이 승리를 위한 공약을 만들고 있지만, 후보로서 강력하게 주창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대표님! 정확히 잘 지적하셨습니다. 저는 양극화해소를 저의 목표로 정하고 싶은데, 저들과 얘기를 해보면 그들도 제 말이 맞답니다. 그래서 복지를 늘리는 거 아니냐?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으니, 부유층에게 절대 불리하고, 빈곤층에겐 절대 유리한, 공약을 만들어 달라했더니, 지금 공약이 그렇대요. 참! 기가 막혀서,… 빈곤층의 지갑이 불룩해져야 내수 경기가 살아나고, 내수경기가 살아나야 일자리도 생기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할 거, 아니냐? 그래야 부유층이 하고 있는 사업도, 수요가 늘어 매출로 이어지지 않겠느냐?…지금기업들이 그냥 끌어안고 있는, 유보금이 1000조원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그 많은 유보금을 쌓아놓고도,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왜이겠어요? 투자를 해봤자, 수요처가 없으니,…소비자를 만들어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아무리해도, 소위 선거박사라는 저들은 ‘선거는 단기전이며 단판이다’라는 얘기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건, 장기전이다. 이라는 거예요. 공약은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거라는 제생각과, 선거는 이기고 볼일이다. 라는 저들의 생각의 차이인거 같습니다.”

 

젊은 여성대표는 집중해서 듣고, 무슨 말을 할듯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 박자, 쉬고 말했다

 

“제가 여쭙는 것은 양극화해소를 위한공약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양극화에 대한 확실한 공약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관영은 대표의 발언이 질책으로 들렸다

 

은근히 짜증이 났다. 정곡을 찔려,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대표님도 보셨잖아요. 부유세. 부동산 보유세. 법인세. 양도세 유산세. 들은 못 건드린다잖아요. 결론은 부자들 것을 가난한 쪽으로 옮겨야 되는데, 그게 세금 아닙니까? 그런데 세금은 건드리지 말재요. 그럼 어찌합니까? 지금 걷고 있는 세금이라도, 가급적 많이 빈곤층으로 밀어 넣어야지요.”

 

“후보님! 저도 그 자리에 있었었기에 알지요.…그래요 분명히 저들이 그랬던 건, 사실이지만, 후보님 또한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어렵게 치고 올라오셔서, 이제 대선 후보까지 되셨는데, 정작 후보가 되자, 어떻게 되신 겁니까? 정말 저 공약만으로 대선에 임하실 겁니까?”

 

그때부터 관영은 입을 닫고, 어린 여성 대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느덧 짜증은 사라지고, 아련한 연민 같은 것이 돋아났다. ‘그대여! 너무 애쓰지 마시게 내 이미 준비한 바가 있으니…’ 자초지종을 말하고 싶었다.

 

할 말을 참으며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보냈다.

 

“후보님! 후보님이 워낙 인기가 있으시니, 당선은 가능하시겠지만, 이 상태로는, 후보님이 외치셨던 양극화문제, 자살문제 등은 해결난망입니다. 사실 저 개인적으로도, 후보님을 존경해왔고, 이번에야말로, 세상이 바뀌게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는데 유감입니다. 저도 공약문제로, 회의를 할 때, 후보님을 강력하게 지원사격하고 싶었지만, 후보님이 발을 빼는 모습에… 궁금했습니다. 왜? 그리 약해지셨는지,…고지가 눈앞인데…“

 

관영은, 할 말이 없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사죄하는 눈길을 보냈다. 자신의 어쭙잖은 연기를, 김경희 대표만 알아차린 걸까? 관영이 말이 없자 김경희 대표가 다시 말했다.

 

“후보님! 우리다시 부딪쳐요. 제가 뒤에서 받쳐 드릴게요. 어린 사람이 대표랍시고, 설쳐대면, 선배의원님들이 불편해 하실 거, 같아서 조심조심 해왔는데, 조금 더 용기를 내볼게요. 후보님!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 몰라요. 아마 후보님도, 두고두고 후회하시게, 될 거예요. 저도 그렇고요. 사실 이런 양극화문제 같은 것은 야당 쪽이 들고 나오고, 여당 쪽은 에둘러서 좋은 뜻이라면서도, 본질을 흐리게 해서, 저지하는 모습을 보여 왔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당선가능성이 높은, 여당후보님이, 양극화해소를 들고 나오셨으니, 이런 기회가 또 있겠습니까? 다시 한 번 공약에 대해서 [비전코리아] 위원들과 선거대책 본부 측, 의원님들과 함께하는 모임을 주선하겠습니다. 의원님께서 의지를 보여 주십시오.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관영은 마음속 깊이 감동했다.

 

어깨라도 부둥켜안고 싶었지만, 손을 내미는 것으로 대신했다.

 

두 사람은 두 손을 맞잡고, 마주 보았다. 서로의 눈 속에 반짝이는 진실을 확인했다. 관영은 자초지종을 말해서, 이 어린 여성 당대표를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대표님! 고맙습니다.… 대표님! 우선 저라는 사람을 다시 한 번 짚어서 생각해주세요. 저라는 사람은, 사업을 하던 사람으로, 결코 그렇게 순진하거나, 어리숙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생각해 주십시오. 저는 목적의식이, 뚜렷합니다. 대표님이 힘을 보태야 할, 절호의 순간이 있을 겁니다. 부디 그 순간을, 놓치지 말아주십시오. 궁금한 것은 못 참는다고 하는데, 대표님! 이번만은 참고, 기다려 보십시오.… 조금 다른 얘기 좀 할게요. …제가 양극화와 관계된 얘기들을 많이 하고 다니니까,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 대표이셨던, 서주원 대표를 통해 제동을 걸어 왔었습니다. 그래서 서주원 대표가 저를 불러서, 일종의 경고를 했습니다. 그때,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이러는 것은, 대통령님과 이미 합의를 본 것이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서주원 대표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그래서 서주원 대표가 그 정무수석에게 큰 소리로 그랬답니다. 󰡒어이! 왜 그래! 정관영의원이 그러는데, 대통령과 얘기가 다 됐다는데, 당신이 오버하는 거 아냐󰡓 했더니, 그 정무수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가더랍니다. 그리곤, 다음날 다시 와서, 자기가 죄송하게 됐다고, 하더랍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정치라는 게, 보이는 부분은 별것 아닐 수 있고, 진짜 정치는, 잘 보이지 않는 다는 겁니다. 제가 대통령님과 만났다는 거, 모르셨지요?…비밀이지요. 저는 지금 비밀 이야기를 털어 놓는 겁니다. 왜냐하면, 대표님은 믿을 만하니까요. 대표님도 저를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은 실망을 드리고 있지만 결과는 대표님의 기대에 맞아 떨어질 겁니다. 그 것의 완성은, 대표님의 힘에 의해서 좀 더 확실하게, 안착할 수 있을 겁니다. 대표님! 저 정관영은 대표님을 기대합니다.… 마음 든든합니다.”

 

김경희 대표는 놀란 눈동자를 고정시킨 채, 엉킴을 풀어보려고, 골똘히 생각에 빠져 들었다. 어깨만이 숨을 감당하느라, 오르내렸다. 한참을 그랬다. 한참을.

 

그리고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후보님!… 제가 모르는, 그 무언가가 있는데, 좀 기다려 보면 알게 된다. 그때, 제가 할 일이 있을 것이다…. 후보님은 양극화에 대한 생각이, 뚜렷하다. 그러한 말씀이시죠? 한 가지만, 여쭤 볼게요. 단답형 식으로 말씀해주셔도 됩니다.…양극화 해소됩니까?”

 

“예! 됩, 니, 다.… 놀라지 마시고…대표님의 지지성명이 있게 되면 확고하게 됩니다.”

 

관영은, 천천히 확신에 찬 어조로, 또박 또박 대답했다.

 

어린 여성대표는, 말없이 한참을 앉아 있다가, 어정쩡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관영은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관영은 최연소 여성 대표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과연, 당내의원 중, 나이도 제일 적고 게다가 여성인 김경희가 보수적인, 여당의 대표를 해낼 수 있을까? 했었다.

 

그런 생각은 관영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과 각종 매스컴에서도, 같은 우려를 다루었었다. 실제로 당 대표 취임식에서도, 우려를 불식시킬만한, 강렬한 무언가를 보여 주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의 언행은, 믿기지 않을 만큼 달랐다.

 

첫째 시간관념이 철저했다. 모든 회의 개시 시간을 정확히 했다. 정확한 시간에 개회를 하고 성원이 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폐회를 선언했다.

 

“성원이 되지 않았으므로 폐회 합니다.” 뿐이었다.

 

그 동안은, 회의시간에 성원이 되지 않아서, 늦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일찍 참석한 사람만 바보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린 여성대표의 “성원이 되지 않았으므로 폐회 합니다” 의 선언이 연거푸 몇 번 있자, 회의시간 참석자들의 불만이 있었으나, 얼마 후에는, 시간을 준수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둘째는 의견조율에,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의견 제시자의 의견에 대해서,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서, 찬, 반, 또는 다른 의견을 내놓기 쉽게 했다.

 

범위를 벗어나지 않게, 범위의 선을 제시했다.

 

회의 전에, 충분한 회의준비를 하지 않은 참석자는, 즉흥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밖에 없는데, 어린 여성대표는 귀신같이 알고, 발언을 중단시켰다. 또, 같은 발언이라도, 실제적인 사안과는 거리가 있는 정치적 발언, 즉, 보이기 위한 발언은 예외 없이 경고를 주었다. 어린 여성대표의 뜻은 확실했다.

 

1 시간을 잘 지키자

 

2 사전에 회의 안건에 대하여 공부하라.

 

3 인기발언을 하지 말고 안건에 집중하라

 

4 모든 회의는, 국회나 당사 내에서 하고, 식당이나 호텔 모임은 하지 않는다.

 

또, 젊은 대표답게 모바일 폰이나, 컴퓨터를 잘 활용했다.

 

특히 모바일 폰이나, 컴퓨터로 화상 대화를 많이 활용했는데, 익숙지 않는 방식에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시대에 맞춰야 한다는 대표의 뜻에, 점점 활용도가 높아져갔다

 

묘하게도 연령이 많은 의원들이, 먼저 적응을 했다.

 

당연히 당이 젊어져 가는 느낌들을 받았다

 

한편, 장훈의 야당도, 대선 채비에 들어갔다.

 

비공개 의원총회를 하기 전에, 장훈의 요청으로, 최고위원회의가, 역시 비공개로 열렸다.

 

당 대표 박래면의원과 최고위원으로 권진수, 정해찬, 김성민, 문성식, 이기호의원 등과 장훈까지 7명이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자리가 안정 되자 박래면대표가 입을 열었다.

 

“경선이 무사히 잘 마무리됐고, 이제는 대선에 임하기위해서 대선 선거대책본부를 꾸려야겠는데, 본부를 꾸리기전에, 허장훈후보님이 하실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최고위원회를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허장훈후보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말씀 하시지요,“

 

장훈은, 물 한 모금을 천천히 마시고, 둘러앉은 면면들을 휘돌아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대표님과 최고위원님들께,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민주당 같이 유서 깊은 당에서는, 전통이나 관례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전통과 관례가 존중받아야 되는데,…그냥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선거에 임하는 방법을, 바꿔 보려고 합니다, 여당의 정관영후보는 버거운 상대입니다. 현재 지지율에서도 제가, 두 자리 숫자로, 밀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오던 대로 그럴 듯한, 선거대책본부 만들고 선거공약 만든다며, 유명경제학자 모셔오고 그 유명인들 덕으로, 표 좀 얻어 보려하는 등의 전략으로는, 정관영후보를 못 이깁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합니다, 그 다른 방법을, 저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고, 공약도, 이미 만들어 놨습니다. 제가 후보수락연설 때, 핵심을 관통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했었는데, 바로, 그 핵심을 관통하는 공약을, 만들어놨습니다. 그래서 위원님들께 죄송합니다만, 이번선거는, 제게 맡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부탁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부디 좋은 결심들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박래면 대표가 나섰다.

 

“그러니까 후보님! 어떤 방법으로 하시겠다는 거요? 후보님의 선거혁신을, 우리 모두 잘 아는 터라, 이번 선거도 묘안이 있을 것이다. 라는, 짐작은 했었고, 오늘도 이런 애기가 나올 줄은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작전은, 알아야 하지 않나요?”

 

“예! 작전은 전과 비슷합니다. 정말, 조용한 선거를 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TV를 잘 활용해볼, 생각입니다. 사실, 지금 시대에, TV나 인터넷을 활용하지 않고, 전단지, 현수막, 가두연설, 그리고 운동원을 몇 만 명씩 동원하는 방법은, 돈만 잔뜩 들어가고, 효과는 별로 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진수의원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었다.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말을 했다.

 

“아!…뭐! 후보님이 오죽 많은 연구를 …하셨겠습니까? 저는, 일단후보님의 뜻을 존중하고 싶고…TV나, 거…인터넷으로 해야 된다는 것도, 맞다고 봅니다. 그런데, TV를 활용한다고 하셨는데, 후보 간의 토론, 그리고 후보연설,…광고 같은 것이 있잖아요? 어떤 거…?”

 

“토론은, 양쪽이 합의를 해야 되니까, 일단 합의가 되면, 하는 거구요. 저는, 그보다는 공약을 설명하는 후보연설 쪽을 택하려고 합니다. 브리핑 차트를 많이 활용하는, 공약설명 인데요.

 

차트뿐만 아니라, 그래프, 또는 스토리가 있는, 영상제작도, 할 수만 있었으면 합니다.…이제 고백합니다.…사실 그런 팀을 이미 만들어서,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시간이 제법 걸리는 것이라서, 당의 허락을 받고 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비밀도 지켜야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무례합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해찬 최고위원이, 손 사레를 치며 황급히 받았다.

 

“아네요! 후보님, 아닙니다. 야!… 정말 준비를 단단히 하셨네요. 이번에는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확, 드는데요. 감이와요. 역시 후보님이십니다. 그럼 우리는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까? 공약은 어떤 것 입니까? 그게 제일 궁금하네,…이제 공약에 대해서, 얘기 해보시지요?”

 

“아! …그게… 철저히 비밀로 간직하고 있다가, 방송으로 짠! 하고, 밝혀야 되거든요. 그래서 이 자리뿐만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도 밝히면, 효과가…거듭 죄송합니다. 이거 이렇게 밖에 못하니…”

 

김성민 최고위원이, 갸우뚱하면서 천천히 말을 했다.

 

“이미 팀을 만들어서, 제작을 하고 있다면서요. 그러면 그 사람들에게는, 다 알려 줘야 할 텐데, 물론 입 조심을 시키셨겠지만, 그게 비밀 유지가 될까요?”

 

“그게, 그들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전체 내용을 아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그들은, 전체 중의 한 부분씩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짧은 드라마 비슷한 게 있는데 그 내용이 대선과는, 전혀 관계없거든요. 나중에 제가 방송에서, 그것들을 사용할 때 라서야,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웬만한 것은, 저와 제처가 다 하고 있습니다. 촬영분만 별도로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분명한건, 제처도 전체적으로는 모르고 있습니다.”

 

문성식 최고위원이 목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렇게 까지, 비밀스럽게 해야 할 정도라면,…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을 하시겠다는 건데, 내용 자체가 충격적이라는 거, 아닙니까? 아! 우선 제가, 궁금하네요?”

 

“네! 바로, 그겁니다. 모든 유권자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겁니다. 제가, 방송으로 밝히기 전에는, 가급적 많은 언론과 국민들이, 궁금해 하게 하는 것, 그래야 시청률이, 높아질 것 아닙니까? 그리고 대선 선거대책본부는 만들되, 따로 공약개발위원회 같은 것은, 만들지 않는다더라. 공약은 허장훈후보가 진즉에 만들어 놓았고 발표도 허장훈후보가 직접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설명할 계획인데. 그 내용이, 굉장히 파격적이라는 것, 같더라. 이렇게 여론이 형성되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침묵을 지키던 이기호 최고위원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 허 의원! 아니, 후보님이 이 정도로 말씀을 할 정도라면, 우리가 후보님 뜻대로, 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보님의 지난 총선에서, 전략도 정확하게 들어맞아, 우리가 제1당이 된 거, 아닙니까? 100% 믿고, 밀어 드립시다. 문제는, 의원총회에서도, 그대로 통과가 돼야 되고, 형식적이긴 해도, 선거대책본부는 만들어야 되는데…모든 의원들이 이런 기회에 뭔가, 한 역할씩을 하고 싶어 할 텐데, 아무래도, 대표님께서 총대를 메셔야 되지 않겠어요?”

 

박래면 대표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어차피 의원총회에서는, 제가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결국엔, 허장훈후보님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리고 이건, 방금 생각한 건데, 지금까지는 선거 대책본부위원장과 위원들은, 당 대표를 포함한, 중량감이 있는 인사들이, 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말고, 획기적으로 바꿔 보는 게, 어떨까요? 여당 대표인, 김경희의원 같이 우리도, 저, 같은 구닥다리 보다, 젊고 패기 있는, 초선이나 재선의원 중에서, 선출하면, 당 이미지도, 그만큼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여러분 의견은 어떠십니까?”

 

잠시, 사태파악을 위한 정적이 흐른 뒤, 일성이 터졌다

 

“이야! 참! 당이 잘 될 라니까, 이런 일도 생기네요. 아니, 대표님께서, 통 큰 양보를 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 정말 대표님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문성식 위원이 큰소리로 반기고, 모든 위원이 손뼉으로 화답했다. 장훈도 깊은 곳으로부터, 감동이 밀려 올라왔다.

 

권진수 위원이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아! 어! 감동했습니다. 정말 우리 정치가 성숙…이젠 뭐가 될 거 같네요. 그런데, 누구 생각해 놓은 사람 있는 겁니까?”

 

“없어요. 방금 생각난 거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게 좋겠다고 생각되시면, 추천 좀, 해보시지요. 차분하고, 미래가 촉망될 만한 사람, 초선의원과 재선의원만 해도 90명이 넘을 텐데, 그중에서, 누굴 세워야 할지, 추천 해보세요.”

 

대표는 마음을 비웠음을 확실히 했다.

 

이기호 위원이 나섰다

 

“제 생각은, 초선의원은 무리입니다. 초선의원을 뽑으면, 신선하다는 것 보다는, 이거, 뭐, 장난하나? 할 겁니다. 이제 막 의원이 됐는데, 보여주기도 지나친 거, 같습니다. 선대본부장이 아무리 할일이 없다. 하더라도, 당 안팎에서 할일이 많이 있습니다. 여당 측과 TV 토론문제라든가, 각 매스컴과의 여론전, 그리고 여러 가지 변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때 마다, 적절히 대처 해나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초선은 어렵지 않을까요? 그래도 재선 정도라면, 근 4년 이상 경험이 있으니, 그런 대로 잘 대처하지 않을 까요? 재선의원도 한 40명 정도 되지요?”

 

토론은 계속됐다. 분명해진 건, 과거의 회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회의 모습은, 당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척 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측근들을 챙겨서, 계파를 공고히 하는 기회로 삼았던,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 과정에서, 교묘한 말솜씨를 발휘하고, 또 익혀가므로, 점점 정치꾼으로, 성장 했었다. 이젠 아니다. 지난 선거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

 

진정성을 갖고, 조용히 국민에게 다가갈 때, 국민에게 신임을 얻고,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에게도, 당당한 힘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듣고만 있던, 장훈의 머릿속에서, 정관영의원이라면, 이럴 때, 어떤 아이디어를, 떠 올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에, 한 단어가 생각났다. ‘추첨’ 이라는 단어였다.

 

다음날, 역시 비공개로 열린 의원총회는, 처음부터 밝은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열렸다. 이미 최고위원회에서, 있었던 회의내용이, 방송과 신문을 통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박래면 대표가, 이미 알려져 있었던, 어제의 일을 낱낱이, 소개했다. 160명이 넘는 의원이, 참석한 총회가 질문은 있었지만, 반대토론은 나오지 않았다.

 

허장훈후보에게 공약을 일임한다는 의견도, 공약개발추진위원회는, 아예 꾸리지도 않는다는 의견도, 한 결, 같이 반대토론이 없었다. 이어서, 선거대책본부장 자리를, 자진해서, 사양한 대표에게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대표가 답례를 겸해서 말을 이어갔다.

 

“의원동지,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 박수는, 저 혼자 받는 것은, 염치없는 일입니다 제가, 과분하게도 6선의원입니다. 제가 양보한 거 같지만, 여기에는, 5선의원, 4선의원, 3선의원이 즐비합니다. 제가 양보하면, 사실은 그분들의 차례가 될 수 있는 것인데, 어제 참석했던 최고위원들이, 모두 그런 당사자들임에도,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고, 2선 의원들에게, 맡기기로 마음을 모았던 것입니다. 저는, 그분들 모두에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대표의 발언이 채, 마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고, 발언이 끝났을 때는, 박수와 함성이 실내를 요란하게 흔들었다.

 

이윽고, 선거대책본부장과, 본부 원을 뽑는, 추첨이 시작됐다.

 

추첨방식도, 허장훈후보가 제안한 그대로, 실행하기로 했다.

 

투명한 유리항아리 2개를 준비하고, 한 쪽에는, 초선의원 46명 숫자와 같은 수의 번호를 적은, 쪽지를 넣고, 한쪽 항아리에는, 2선의원 42명의 이름이, 인쇄된 쪽지를 자신들이 확인하고, 넣었다. 그리곤, 초선의원들이, 자신들의 숫자와 같은 수가 들어있는 항아리에서, 한 장씩, 꺼내 1번부터, 7번까지를 가려냈다. 이렇게 해서, 2선의원들 중에서 선거대책팀, 7명을 뽑을 초선의원, 7명의 추첨자가 결정되었다. 2선의원 자신들은, 추첨행위 없이, 추첨자로 뽑힌 초선의원에 의해서, 추첨 받는 형식이었다. 7명의 추첨자는, 1번부터 차례로, 2선의원 이름이 들어있는 항아리에서, 한 장씩을 꺼내 모두에게 보이면, 그 이름의 당사자는, 대책팀으로 당선이 되는데, 제일 먼저 뽑힌 의원이, 의장격인, 대통령 선거대책본부장이 되고, 나머지 6명은, 본부원이 되는 것이다. 결과가 나오는, 진행과정을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즐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명 한명 당첨이 될 때마다, 환호와 축하의 박수가 쏟아졌다. 언제, 이렇게 모두가 승자가 되는, 정치행위를 경험했던 적이 있었던가.

 

추첨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 그 경험은, 곧 바로 뉴스로 세상에 알려져, 비상한 호기심과, 밝고 좋은 쪽으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관영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모두들 일제히, 인사를 한다.

 

겉옷을 벗는데, 최광택 보좌관이 싱글거리며, 들어와, 관영의 눈치를 살핀다. 관영이 별 표정 없이, 보좌관을 보며 물었다.

 

“뭐 좋은 일 있어요?”

 

“아닙니다. 후보님! 별거 아니고요. 어제 저녁TV 얘기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재미로…모르셨죠? 어제 종편에서, 역술가…모르시는 구나“

 

“TV프로그램 얘기예요? 역술가?…그런 걸 본단 말 이예요?”

 

“그러게요.… 어제저녁 TV에서, 우리나라 7대 역술인들을 몰래 카메라를 동원해서, 일종의 검증을 한 건데요. 이미 죽은 사람의 생년월일을, PD가 자기 것인 척하며, 내밀고, 사주를 봐 달라고 했더니, 모두들 그럴듯한, 사주풀이를 내놓는데, 딱, 한명의 여자 역술가만, 대번에, “이사람 죽은 사람인데” 하면서 또, 맞은편에서, 촬영하던, 기사를 보고 “저 사람은 노숙자인데 일당 받고 왔구만” 하더랍니다. 사실이 그랬답니다. 혹시나 해서, 노숙자 한명을 말끔하게 꾸미고 연습을 시켜서, 몇 명의 기사들과 함께, 현장에 임했는데, 그것을 정확히 꿰뚫어 본 거죠. 그런데, 그 여자 역술가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는, 정관영후보가 당선된다고, 한 겁니다. 이름을 밝히는 장면에서 소리는 삭제를 하고, 그 역술인의 코 위로는 모자이크 처리를 한 채로, 입술만 보여주었는데, 그 입술 모양이 정관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겁니다. 신기…재미있잖습니까?”

 

“신기하긴 뭐가 신기합니까?… 아침부터, 참!”

 

“인터넷에서 난리에요 검색어 1위랍니다”

 

관영은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아! 나는 절대 대통령은 되지 않네!’

 

앞으로의 계획을, 모르는 저들은, 역술인의 그 예언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역술인 이야기로 하루가 시작됐지만, 더 이상 그따위일로, 지체할 시간이 없다. 마치 대통령이 꼭 되고 싶은 사람처럼, 여기저기를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날, 저녁 늦게 귀가한 관영이 옷을 벗어 아내에게 건네자, 옷을 받아 걸며 아내가 말했다.

 

“여보! 역술인 얘기 들었어요?”

 

“무슨! 아! 역술인…언뜻 듣기는 했어. 뭐 그런 걸… ”

 

“당신, 진짜 대통령 될 거죠? 진짜… 그러면 난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지금 이대로만 하면 되지. 그렇게 걱정이 돼?”

 

“그럼요! 내가 어떻게 대통령 마누라노릇을 해요?…오늘 몇 사람이, 전화를 해선, 미리 축하한다는 거예요. 점쟁이가 아니, 역술가라나! 점쟁이하고, 역술가하고, 그게 그 거, 아니에요? 아주 기가 막히게, 용한 역술가가 TV에 나와서, 그랬다고 하면서, 마치 당선된 것처럼 축하한대요. 그래서 막 뭐라고 했더니, TV 좀 보래요. 다시보기를 해서 보래요. 그래서 봤더니, 그 여자가 입술만 보이는데, 얄팍한 입술이, 당신이름을 말하는 거 같더라고요. 세상에! 그 여자 용하긴, 용한 거 같더라고요.”

 

“용하긴…뭐가 용해! 이 사람아! 엉터리야! 나 대통령 안 돼!”

 

바로, 그 순간, 관영의 머릿속에 예리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얄팍한 입술’

 

“여보! 그 프로그램 다시 한 번 볼 수 있지?”

 

“당신도?… 볼 수야 있지요.”

 

관영은 몇 번을 되돌려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맞다. 그 여자가 틀림없다. 라고 확신했다.

 

두 번째, 돌려보았을 때는, 확신이 줄어들었고, 세 번, 네 번, 보았을 때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섯 번, 여섯 번, 보았을 때는 헛짚었구나, 하는 판단이 섰다. 자신이 우스워졌다.

 

잠시나마 흥분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혀를 차며 자책했다.

 

‘치! 정신 좀 차리자 나여! 제발 정신 좀 차리자’

 

그런데,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 입술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옛날의 입술이 온전히 기억날 리 없다. 지금의 입술도 가물가물 하다. 그런데 첫 번째 보았을 때는 어떻게 틀림없다고 확신이 들었었지?

 

 

다음날, 관영은, 급한 일들을 처리한 후, 최광택 보좌관을 불렀다. 막상 보좌관을 불러놓곤 망설여졌다. 한 참 만에 입을 열었다.

 

“거 왜!…어제아침에, 얘기했던 역술가 말입니다”

 

“예? 그거 보셨어요?…신통한 거 같죠? 뭘 좀 아는 것 같더라고요.”

 

“봤어요. 그래서 뭐 좀 알아볼게 있어서요. 그 여자 이름하고 사진 좀, 구할 수 있지요. 조용히 소문나면 안돼요”

 

“의원님! 뭐 하시게요? 역술인을…누가 알면 난리가…”

 

“그냥 이상한 상상 말고요. 이름하고 사진이요.”

 

최광택 보좌관은, 내키지 않는 마음을 내 보인 채, 대답했다.

 

“네!…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찜찜하게 대답하고 갔던, 그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의기양양하게 들어왔다.

 

“구했습니다. 이름은 송희진 이고요. 56세. 사진은 여기.”

 

하며 핸드폰 화면을 켰다.

 

관영은,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아! 이 여자! 이 여자가,…이게 말이 되는 거야! 이런!’

 

사진은 여러 개였다. 모두 돌려 보았다.

 

사진들은 한 결 같이 웃고 있었지만, 식탁 앞에서의 그 눈길 그 입술이 분명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말했었다

 

“영부인께서 제안하신 것이고, 대통령님은 그렇게 순수하신 분이 아닙니다.”

 

관영은 설마 했던 일이, 이제는 명확해 졌다.

 

대통령이, 나를 불렀던 목적은, 순수한 것이 아니었다.

 

후보등록일, 후보등록이 당선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처럼 여야는 앞 다퉈 등록했다.

 

원내의석수에 따라, 야당의 허장훈후보가 기호1번, 여당의 정관영후보가 2번, 노동당의 황준우후보가 3번, 대선단골 후보자 천명회가 4번, 육군 대장출신 김진영이 5번, 여성운동가 배선숙이 6번, 환경운동가 고신숙이 7번,을 받았다.

 

이틀에 걸쳐 후보등록을 한, 다음 날부터 22일간의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선거운동 첫날, 여당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 다소 쌀쌀한 여의도 광장에, 거대한 애드벌룬이 떴다. 초대형 헬륨 풍선 2개에 선을 연결하여 대형현수막을 늘어트렸다. 현수막엔[양극화의 실체]라는 문구가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선명하게 씌어져 있었다.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든 인파는, 대통령 선거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여당의 국회의원들이 총 출동하였고, 당직자와 질서유지요원들, 그리고 당원들과 일반인 인파도, 자꾸 늘어가서, 수만 여명에 이르렀다.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과 촬영 팀이, 분주히 움직였고, 여러 대의 방송중계차까지, 동원된 현장 분위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아직 관영은, 등장하지 않았다. 10시 정각에, 오늘의 행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몇몇 방송은 이미 화면에 애드벌룬에 매어달린 현수막, 그림을 띄우고 있었다.

 

앵커가 취재 기자에게, 오늘선거운동의 퍼포먼스 형태를 알아 봤느냐는 질문에도, 기자는 아직은 알려진 게 없다는 말과, 모르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허를 찌르는, 독특한 형식이 되지 않을까 하고, 짐작만 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가까워오고, 긴장감이 더 해갈 때쯤, 한대의 탑 차가, 국회건물 뒤쪽으로부터, 나타나서 서서히 다가왔다.

 

중형의 4각 탑 차위에는, 깃발이 솟아있었는데,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양극화의 실체]라고, 씌어져 있었다. 모두들 오늘 퍼포먼스와, 관계된 차인 것을 알고, 주목했다. 탑 차는 서서히 사람들을 헤치며, 들어왔다. 이윽고, 차가 계단 앞에 들어와 서자, 차문이 열리며, 관영이 내렸다.

 

두툼한 점퍼차림으로,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취재 전쟁이 시작됐다. 수많은 카메라와 마이크가 달려들었다. 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계를 보았다. 3분전이다.

 

관영은, 인파를 헤치며 계단 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뒤돌아서, 취재진과 가늠할 수도 없는 인파를 둘러보았다 예상은 했었지만, 인파와 열기에 가슴이 뻐근해져왔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인가! 잘 해내자!’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시간이 되었다, 이제 외쳐야한다

 

모든 마이크와 카메라가, 그의 입으로 향했다. 마른침을 삼키고 일성을 밀어 내었다.

 

“국민여러분! 보십시오!…똑똑히 보십시오! 이 나라의 양극화의 실체를, 똑똑히 보십시오! 오늘,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말로만, 글로만, 떠들어대던 양극화의 실체를, 종이 그래프를 이용해서, 확실하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종이 그, 래, 프, 를 이용하여,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 시작합니다!”

 

관영답게 최대한 큰소리로 외쳐 선언했다.

 

관영이, 탑 차있는 곳을 향해 주먹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언제, 그곳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지, 똑 같이 노랑 조끼를 입은 20대의 남녀가, 한편에서, 무리지어 걸어 나왔다.

 

인파가 갈라지며, 길을 내주었고, 그들은 관영이 서있는 계단 밑에 이르렀다. 맨, 앞에 선 청년 2명은, 제법 굵은 종이 두루마리를 맞들고 있었다.

 

그들은, 지체 없이 계단에서부터, 넓은 광장을 향해 두루마리를 풀며 전진했다. 또, 다른 요원들은 바닥에 풀린 두루마리 가장자리에 동전보다 몇 배쯤 되는 쇠뭉치들을 드문드문 놓아 종이가 들뜨지 않게 하며, 뒤따랐다. 잠깐 사이에, 국회의사당 앞에, 하얀 종이길이 생겨났고, 길은 점점 길어져갔다.

 

길은 1미터마다 길의, 길이를 숫자로 표시돼 있었다. 1로부터 시작된 길의 첫 장의 그래프에는, 빨갛게 칠해진 면이 제법 있었지만 2로 시작되는 두 번째 장에는, 빨간 부분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세 번째, 네 번째로 갈수록 줄어드는 정도가 심해져서 단 한 줄만이 남았고 10을 지나고 20. 30,을 지나 80, 90을 지나서 두루마리 한 개가 끝났을 때엔, 100이라고 돼 있었는데. 그때는 빨간 부분은 겨우 단, 한 줄의 가느다란 선으로만 그어져 있을 뿐이었다.

 

탑 차는 펼쳐지는 두루마리를 따라 나란히 동행하며. 두루마리 하나가 끝나자, 두 번째 두루마리를 공급해 주었다.

 

두 번째, 두루마리는 첫 번째, 두루마리와 테이프로 연결되었다. 잠시, 멈추었던 하얀 길은 101로 시작하여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길은 다시 200에서 끝나고, 세 번째, 두루마리가 공수되어 테이프 작업으로 201로부터 다시 시작하여, 길은 점점 길어져갔고. 빨간 선은 점점 가늘어져 실선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그 시간, 관영은 길의 첫 출발지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요원 3명이 대형 브리핑차트 판을 밀고와, 관영의 뒤에 세웠다. 관영은 기자들의 취재를 위해, 차트 판을 이용해 설명을 시작했다.

 

“보시면,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는 그래프이지만,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저 두루마리 종이 길은 가로 세로 각 1미터짜리 모조지를 100장씩, 이어 붙여서, 100미터짜리 두루마리를 만든 것입니다. 각각의 1미터짜리 모조지에는, 가로, 세로, 각 1센티미터 칸을 그려서, 그래픽 용지를 만들었습니다. 즉, 가로세로 100개의 칸이 만들어졌고, 가로축인 X축에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마다의 재산을 합산한, 등위를 부여했습니다. 전체 가구 수는 3인 기준으로 약 1700만 가구가 되지만, 알기 쉽게 100분 율로 환산해서, 1등급부터 100등급까지, 나타내 보았습니다. 즉, 우리나라 전 가구의 재산을, 등급을 나누어, 1등급부터 100등급까지, 표시해봤습니다.

 

세로축인 Y축에는, 재산의 정도를 표시했습니다. 1센티로 되어있는 한 칸이 1000만원입니다. 빨강색으로 칠해져있는 부분만큼, 재산이 있다는 겁니다.…1미터짜리 한 장에는, 10억까지 표시할 수 있습니다. 두루마리 하나에는, 1000억까지 표시할 수 있습니다. 맨 첫 장에서 보면, 100등급은 재산이 아예 없다는 0에서 시작하고 있는데 85등급까지, 즉, 우리국민의 15%인 250만 가구는 단, 한 푼의 재산도 없고 빚만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위 80등급이, 한 칸을 채, 다 못 채우는800만원이고요. 70등급이 세 칸을 다 못 채우는 2700만원이고요. 60등급이 8800만원, 50등급이 2억8000만 원 정도, 됩니다. 여기까지는 단 1장에 표시할 수 있지만, 40등 30등급, 20등급 10등급, 그리고 5등급 4등급, 3등급, 2등급, 1등급은 얼마나 많은 종이그래프가 더 많이 필요한지 직접 확인해보십시오.

 

막연히 머리로만 알던 양극화의 실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시라고, 이번 행사를 기획 했습니다.”

 

관영은, 기자들의 취재를 위해, 아주 천천히 설명을 했다.

 

이제 종이 길은, 서서히 방향을 좌로 틀어, 마포대교 쪽으로 향해 전진했다. 8번째 두루마리가 끝났을 때는, 광장중심 쯤에 도달했고, 16번째의 두루마리가 끝났을 때는 마포대교 남단에 다다랐고, 시간은 45분이 걸렸다.

 

이제 빨간 선은 실 같이 가늘어져, 눈 크게 뜨고 가까이에서 찾아보아야, 보일 정도가 되었다. 하얀 길은 1601이라는 숫자로 다시 시작하여 거침없이 마포대교를 건너갔다.

 

각 방송사들은, 두루마리를 연이어 풀며 하얀 길을 만들어 가는 현장을, 헬리캠 촬영으로, 따라가며 중계했다 국회 앞에서부터 하얀 종이 길을 따라 수많은 인간 띠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두루마리 길은 계속 나아갔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초록불이 켜질 때까지, 잠시 숨을 고르고, 켜지면, 지체 없이 바닥에 하얀 길을 만들며 건넜다.

 

횡단보도에 생겼던, 종이 길은 건너자마자, 앞쪽을 바로 자르면, 뒤쪽에서 당겨말아서 뭉치로 눌러놓았다.

 

마포역에 도착했을 때는, 두루마리가 36개가 끝났고 숫자는 다시 3601로, 시작했다. 3600미터의 길을 만들은 것이고 시간은 1시간 30분이 지났다.

 

탑 차는 여전히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며, 두루마리를 공급했다. 그래프에 재산 상태를 표시하는 빨강색칠은, 오래전부터 1등급을 지나 0등급 쪽으로 붙어서, 거미줄 같은 외선 하나로, 끈질기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공덕역에 도착했다. 두루마리는 43개가 소요됐고, 4301로 시작해 애오개역을 향해 나아갔다.

 

애오개역에 도착했다. 두루마리는 56개가 소요됐고, 5601로 시작해 충정로역을 향해 나아갔다.

 

충정로역에 도착했다. 두루마리는 67개가 소요됐고, 6701로 시작해 서대문역을 향해 나아갔다.

 

서대문역에 도착했다. 두루마리는 75개가 소요됐고, 7501로 시작해 광화문 광장을 향해 나아갔다.

 

광화문광장과, 주변의 도로와 건물계단엔 온통 인파로, 뒤덮여 있었다. 대부분 방송을 보고 나온 사람들이다.

 

두루마리길이, 광화문지하도를 어렵사리 지나, 광장에 도달하자 박수와 함성으로 맞이하며, 겨우 겨우 길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요원들은, 어떤 답례나 반응도 없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종이 길은 힘겹게, 인파를 뚫고, 세종대왕 동상을 크게 돌아 유턴을 했다.

 

두루마리는 89개가 소요됐고, 숫자는 8901로 다시시작 됐다.

 

이때시간은 오후, 2시 20분으로, 4시간 20분이 소요됐다.

 

시민들은 대체적으로, 질서정연 했지만, 기자들과 방송 팀들은 정신없이 몰려다녔다. 세종대왕동상을 돌아설 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 그것이었다. 기자를 비롯한 취재진들은, 하얀 종이길이 청와대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으로 짐작했었으나, 동상을 크게 돌아 반대쪽으로 잡자, 난장판이 되었던 것이다.

 

요원들에게도, 미리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기자들은 더더욱 알지 못했던 것이다. 현장을 총 지휘하는 사람은 탑 차안에 있는 최경록으로 새로운 두루마리를 내어줄 때에야, 방향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노랑 조끼의 요원들은, 완전히 지쳤고, 그들은 전원 새로운 요원으로 교체됐다. 길은 새로운 요원들에 의해서, 지체 없이 다시 나아갔다. 광장의 인파를 뚫느라, 속도는 느려졌지만, 꾸준히 나아갔다. 취재진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방향을 청와대쪽으로 예상했다가, 반대쪽으로 돌아오자, 길을 내어주기가 난감한 상황이 됐으나, 시간이 좀 더 걸렸을 뿐, 시민들은 용케도 길을 열어 주었다. 광화문 지하도를 향해, 두루마리는 계속 풀며 전진했다. 지하도를 지나, 서대문역 쪽으로, 방향을 잡자, 이젠 누구라도, 진행방향을 알 수 있었다. 왔던 길의 건너편 길로,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며, 여의도를 향했다. 길 양편으로, 하얀 길이 평행선으로, 계속해서 만들어져갔다. 도로엔 오전보다 훨씬 많은 시민들이, 몰려나와 박수와 함성으로 격려해주었다. 서대문역을 지나고, 충정로역을 지나고, 애오개역을 지나고, 공덕역을 지나고, 마포역을 지나,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 광장에 들어섰다.

 

여의도 광장엔, 오전 출발할 때의 인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겨울의 짧은 해는, 기우러져 이미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여의도 광장에, 들어선 종이 길은, 오전에 만들어놓은 종이 길과, 30여 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빽빽이 들어찬 군중을 뚫고, 나란히 전진해 들어갔다.

 

군중들은 박수와 환호로, 격려해주었고 누군가 “대통령!”을 연호하자, 이내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정 관영!”을 외쳐댔다. 드넓은 광장에 들어찬 수십만 군중은, 서로가 서로에게, 확인이라도 하듯이, “대통령!󰡓󰡒정 관영!” 을 줄기차게 외쳐댔다. 외침은 점점커지고, 고층건물에 부딪친 외침이 메아리로 되살아나와, 외침과 외침이 겹쳐져, 광장을 뒤덮어, 수십만 군중은, 살아있는 파도처럼, 일어서고, 또 일어서기를 끝없이 반복하며 광기를 더해갔다.

 

그 순간에 그들이 알고 있는 단어는 오직 “대통령!󰡓󰡒정관영!” 뿐이었다.

 

종이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요원들도, 귀가 먹먹하고, 가슴이 벌렁 벌렁 해질 지경이지만, 용케도 조금씩 전진해 들어갔다. 군중은 연호를 외치면서도, 길을 터주려고, 필사적으로 뒷사람들에게 밀지 말라고, 외쳐, 끝내 길을 만들어냈다.

 

어둠이 짙어가는, 여의도의 검은 바닥위에, 하얀 종이 길은, 대조적으로, 뚜렷해서 TV화면에 선명하게 드러나, 온, 국민의 머릿속에, 그 영상을 생생하게 각인시키기에, 너무나도 완벽했다.

 

드디어,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계단 첫, 출발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다시, 방향을 바꿔, 광장 중앙을 향해, 전진해 갔다.

 

그때, 갑자기, 광장 한 가운데가, 대낮같이 밝아지며, 요란한 팡파르가 터져 나왔다. 순간, 모두들 그쪽을 바라보니, 대낮보다 더, 눈부시게 밝은 조명아래, 높은 연단이보였다.

 

텅 빈 연단 중앙을 비추던, 조명이 서서히 움직여 한 지점을 비추었다. 그곳에는, 오늘의 요원들이 종이 길을 만들며, 연단 쪽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 질 때, 잠시 멈췄던 연호가 다시 터지고, 순식간에 절정으로 달아올랐다.

 

광장이 터져나갈 지경이 되었을 때, 길은 연단에 도착했고, 두루마리는 정확하게, 끝이 났다. 대장정의 그래픽 퍼포먼스는 비로소, 멈추었다.

 

두루마리는 181개가 소요됐고, 숫자는 18100으로 끝이 났다.

 

시간은 오후, 7시15분으로, 겨울의 짧은 해는, 완전한 어둠으로 바뀌어 있었다. 최종 숫자가 의미하는 재산은, 18조하고도 1천억 원이다. 대한민국 제1의 부호의 재산이다.

 

그, 재산의 정도를 표시하기위해, 1미터짜리, 그래픽 종이가 18100장이 필요했다. 18100장을 이어서, 붙인 그래픽을 펼치는 데만 9시간15분이 걸렸다.

 

끝남과 거의 동시에, 찢어질 듯한 확성기소리가, 광장을 강타했다.

 

“여러분!…정 관영후보의 입장입니다!”

 

멈춘 요원들을 비추던, 조명 빛 속으로, 관영이 들어섰다.

 

조명이 움직이며, 관영을 연단으로 이끌었다.

 

순간 광장은 천둥 번개가 되어, 하늘을 뚫을 듯 함성으로 뒤덮였다. 이젠, 연호는 외침에서 그치지 않고, 악다구니가 되었다.

 

관영도, 이정도의 군중과 이정도의 광기는, 예상치 못했었다.

 

연단에 오른 관영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두 손을 가슴에 얹었다. 군중은, 그게, 무슨 뜻이라도 되는 양, “와아아!” 함성을 지르다 이내, “대통령! 정관영!”을 발악하듯 외쳐댔다.

 

관영이 마이크 앞에 섰지만, 연호는 그치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대치하듯, 서있었다. 관영이 두 손을 들어, 자제를 시키었지만, 연호를 멈추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연단 앞에서부터 그치기 시작하여, 썰물처럼 저 뒤까지 밀려나며, 이윽고, 연호는 그쳤다. 수십만 인파가, 순간적인 적막을 연출하며, 모두의 눈은 관영의 입을 주시했다. 길고긴, 몇 초가 지났다. 관영이 마이크에 입을 바짝 대고, 낮게 외쳤다.

 

“보셨습니까?”

 

낮게 외치긴 했지만, 날카로움은 모두의 기대치를 충족했다.

 

“네 예!…”

 

연단 앞에서 시작된 답례가 뒤까지 이어져 여운같이 이어졌다.

 

“보셨습니까?…”

 

이번엔, 좀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네! 에 에 옛!…”

 

답례도 더 크고 더 짧게 응했다.

 

“보, 셨, 습, 니, 까?

 

관영은 세 번째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덩달아 답례도 벼락 치듯, 강하고 짧게 끊어졌다.

 

“네 에 옛!…”

 

관영은 만족했다, 모두가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관영은 또 다시 “아셨습니까!”를 세 번 차례대로 외쳐, 호응을 이끌어냈다. 여섯 번의 외침과, 여섯 번의 호응으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다 달았다고 판단한, 관영은, 본격적인 연설을 시작했다.

 

“오늘, 우리는, 이 나라 전체재산이 어떻게 분포되어있는가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이 나라가, 얼마나 기형적인 나라인가를 알았습니다. 기형적인 나라의 꼴을, 그냥 감내하고 살아야 합니까?…지금껏 살아온 것처럼!…이대로 쭈욱…더. 더. 더.…지독한 기형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살아야 합니까? 국민 대다수가 빈곤층이어서, 이미 소비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 상황이 계속되면 부유층의 사업도 결국엔 문을 닫게 됩니다.…이미 중견기업과 대기업들도, 매출이 밑으로, 밑으로,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잖습니까? 소비자가 행불상태인데 물건이 팔리겠습니까? 소비자를 만들어내야 합니다.…다시 한 번! 외칩니다! 소비자를 만들어내야, 국가와 국민이 살아납니다! 자본주의! 좋은 제도입니다. 그러나 맹점이 있습니다.…국가의 총, 재산이 늘어나는 속도는 감안하지 않고, 개인의 무한소유를 허용한 것입니다. 능력 있는 개인에게, 나라전체 재산의 거의전부라도,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것을, 사유재산 보호법이라는 것으로, 보호를 해주고 있습니다. 미친 짓입니다! 정말 미친 짓입니다. 이래서야, 국가가 온전해 질수 없습니다. 몇 명의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이, 가난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장합니다! 개인의 재산보유 한도를, 정하자는 겁니다. 아주, 인색한 정도가 아닌, 자본주의 상식에 걸 맞는 정도로 정해서, 자본주의도 살리고, 국민들도 살리는 선에서, 정하자는 겁니다. 저 정관영의 목표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경제양극화를 해결하는 것, 그것이 목표입니다.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평생 당하기만 하는 삶, 더럽고 위험하고 냄새나고 힘든 일들은 도맡아 하면서도, 임금은 제일 적고, 그래서 항상 빚에 억눌려 사는 삶, 그러한 삶들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 그들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실제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하겠기에, 대통령이 되려는 겁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살려내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해내고, 싶습니다! 하게 해주십시오! 해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경제양극화를 해결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처음엔, 비교적 차분하게 시작했지만, 끝부분엔 격해지는 가슴을 억제하며, 혼신을 다해 부르짖었다. 결국 일반적인 선거연설 패턴을 따른 셈이었다. 군중의 호응은, 가히 폭발적으로, 광장의 폭발음이 고층건물에 부딪쳐 되돌아와 엉키어 광장전체가 들썩들썩했다.

 

TV방송을 비롯한 모든 매스컴이, 온종일 매시간 뉴스 때마다 “아직도 두루마리 그래픽 행진은 끝나지 않았느냐”고 현장 기자를 부르곤 했었다. 18Km에 이르는 종이 길의, 헬리캠 촬영 영상은 전 세계에 TV를 통해 토픽 뉴스로, 퍼져나갔다

 

양극화가, 매우 심하다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차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고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당연히, 수천, 수만 곳에서, 격론이 벌어졌고, 그들은, 분노했다. 분노의 표출로 끝날 만큼, 막연한, 분노가 아니었다.

 

“우리의 재산은 단, 1센티도 안되는데 18Km라니! 해도 해도 이건 너무하다! 엎어야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엎어야 한다. 엎어버리자”

 

“이게, 같은 나라, 같은 국민이라고, 할 수 있나? 엎자! 때려 엎자!”

 

분노는 엎어야한다.’로 발전해서 퍼져나갔다.

 

온, 종일 TV 평론가들은, 그래픽 종이길이 표현한, 경제양극화문제에 매달렸다. 이래저래 전국은 들끓었다.

 

한편 장훈도 크게 놀랐다.

 

관영의 능력이 이 정도까지일 줄은 예상 못했었다.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폭동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이제 내 순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정관영의원이 지핀 불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모래저녁 8시다. 이 들끓는 나라를 확실히 잡아야 한다. 긴장감으로 머리끝이 짱짱해졌다.

 

‘해낼 수 있을까…?’

 

화장실 거울 속의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자신 있지?…’

 

눈이 눈을 들여다보다 입술을 본다. 입 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어본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연습한 번 더!’

 

카메라를 주시하며 빨간 불이 들어오는 순간까지 숨을 조절하고 첫 발음을 내보낸다.

 

문제 제기의 순서에선, 차분하게 나열한 다음, 해결책을 내놓기 직전에 영상을 소개하고, 5분25초를 기다린다.

 

다시 불이 들어오고, 메인 멘트가 시작된다. 관영의 퍼포먼스내용이 자연스럽게 삽입된다. 마치, 미리짠 것 같이 아귀가 딱 들어맞는다. 시간을 흘깃 확인하는 여유도 있었다.

 

40분. 장훈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다음 날, 아침 조간신문 3가지를 보았다.

 

온통, 정관영후보의 경제양극화의 실체를 그래픽으로 밝혀낸 퍼포먼스, 이야기와 내일 있을 허장훈후보의 공약발표 이야기다. 사설들을 살펴보았다.

 

보수적인 신문사설엔 [여당후보의 일탈, 꼭 필요했었나?] 진보적인 신문사설엔 [여당후보의 반전은 희망이 될 것인가?]

 

경제지의 사설엔 [누구를 위한 퍼포먼스인가?] 이었다.

 

같은 사안일지라도, 해석은 늘 달랐던 신문 사설들이 오늘이라고 다를 리 없다. 내용들을 읽다보면 억지이론을 만들어 내느라 구차하기 까지 한 부분이 쉽게 눈에 뜨였다.

 

TV뉴스는 어제 있었던 퍼포먼스의 각국반응을 소개하고, 있었다. 하얀 종이그래프 길과 수많은 인파를 배경으로, 쏟아내는 각국의 반응은, 한 결 같이 놀라워했고, 이 양극화현상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닌, 자국의 현상으로 받아들여, 수많은 격론을 낳고 있으며,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여의도 정가는 어제의 그래픽 퍼포먼스가 전 세계에 던진 충격과 반응에 놀라워하며 온종일 들끓었고, 더불어 내일 오후8시에 있을, 야당의 허장훈후보의 선거방송도 궁금증을 일으키며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허장훈후보의 선거방송은 비밀공약발표로 인식되어 있었다. 철저한 비밀에 싸여 있는 그 공약이 과연 어떤 것일까? 어제의 정관영후보의 퍼포먼스와 비견될 만한 공약이 될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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