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위한 기도(Prayer for Peace)'

"주여! 나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김덕권 시인 | 기사입력 2020/05/20 [12:01]

 

▲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성 프란치스코(1182~1226)는 이탈리아의 로마 가톨릭교회 수사(修士)이자 저명한 설교 가입니다. 또한 프란치스코회의 창설자이지요. 하루는 친구들이 그에게 웃으면서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프란치스코는 “나는 가난이라는 여인과 결혼할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프란치스코는 ‘가난이라는 덕’을 여인으로 의인화(擬人化)하여 칭송하였습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고향 ‘아시시’ 인근에 있는 나병환자들을 수용한 병원을 찾아가 환자들을 간호하기 시작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를 통해 결정적인 회개생활로 들어갑니다. 로마를 순례한 길에서 그는 성당 문 앞에서 구걸하는 걸인들과 같이 생활하기도 하였습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Prayer for Peace)’는 성 프란치스코가 지었다고 알려진 기도문입니다. 한 번 가슴으로 느껴 보시지요.

 

"주여! 나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주여!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써 찾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

 

어느 추운 눈 내리는 겨울밤이었습니다. 불을 끄고 막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구주(救主)를 영접하며 살아가는 프란치스코가 찾아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에는 험상궂은 나병환자가 추워서 벌벌 떨며 서있었습니다.

 

나병 환자의 흉측한 얼굴을 보고 섬칫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죄송하지만 몹시 추워 온 몸이 꽁꽁 얼어 죽게 생겼네요. 몸 좀 녹이고 가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문둥병환자는 애처롭게 간청을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솔직히 안 된다고 거절 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로 준비해 둔 빵과 우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문둥병 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빵과 우유를 게걸스럽게 다 먹었습니다. 식사 후 몸이 좀 녹았으니 나병환자가 나가주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문둥병 환자는 가기는커녕 기침을 콜록거리며 오히려 이렇게 부탁을 합니다.

 

“성도님! 지금 밖에 눈이 많이 내리고 날이 추워 도저히 가기 어려울 것 같네요. 하룻밤만 좀 재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 수 없지요. 누추하기는 하지만, 그럼 여기 침대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지요.” 마지못해 승낙을 했습니다. 염치가 없는 문둥병환자에게 울화가 치밀어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혼자 살고 있어서 침대도 일인용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침대를 문둥병환자에게 양보를 하고 할 수없이 맨바닥에 자려고 하였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문둥병 환자는 또다시 엉뚱한 제의를 해 왔습니다. “성도님, 제가 몸이 얼어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네요. 미안하지만 성도님의 체온으로 제 몸을 좀 녹여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일인용 침대라 잠자리도 불편하고 고약한 냄새까지 나는 문둥병환자와 몸을 밀착시켜 자기 체온으로 녹여주며 잠을 청했습니다. 도저히 잠을 못 이룰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꿈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꿈속에서 주님께서 환히 기쁘게 웃고 계셨습니다. “프란시스코야! 나는 네가 사랑하는 예수란다. 네가 나를 이렇게 극진히 대접했으니 하늘에 상이 클 것이다.” “아 주님! 저는 아무것도 주님께 드린 것이 없습니다.” 꿈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자리에 일어났습니다.

 

벌써 날이 밝고 아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대에 같이 자고 있어야 할 문둥병환자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름냄새가 베어 있어야할 침대에는 오히려 향긋한 향기만 남아 있을 뿐 왔다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어떻습니까? 마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께서 아시시의 성자(聖者) 프란치스코에게 현현(顯顯)한 것이 아닌가요? 과연 우리가 이런 경우를 당하여 내 침대를 내어 주고 껴안아 언 몸을 녹여 줄 수 있을까요? 그리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깊은 연민(憐愍)의 정을 느끼고 도움의 손길은 내어 줄 수는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성자와 중생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 그 차이를 극복하고 우리도 성인의 위(位) 오를 수 있을까요? 바쁩니다. 우리도 어서 어서 진리 전에 평화의 사도가 되도록 기도드리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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