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과연 보수와 진보정당은 존재하는가?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

김진호 서원대 교수 | 기사입력 2020/04/01 [15:45]

▲밤의 국회의사당     ©정유진씨 제공

 

중세의 세계관을 종식시키고 근대의 과학혁명을 연 대표적 인물이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라는 자이다. 그는 사물에 대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의 진보적인 과학철학 제시이후 아이작 뉴턴은 만유인력을 발견해 냈고 인류의 자연과학기술은 급속도로 진보해갔다. 베이컨은 과학적 사고방식을 가로막는 요소로 편견과 선입견을 말하고 있다. 그는 신기관(Novum Organum, The New Organon, 1622)이란 저서에서 인간이 과학적 사고를 막는 4대 우상을 지적한 바 있다. 그중 시장우상은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성가신 오류로서 언어와 사물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때 생기는 오류를 말한다. 필자는 베이컨의 시장우상을 생각하면서 우리 사회에 대표적인 시장우상이 무엇이 있는가 문제제기를 해 보고자 한다. 우리 한국사회에 여러 가지 시장우상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시장우상이 바로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의 잘못된 인식 및 이들 용어의 사용이다.

 

근대 과학적 세계관을 제시한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561-1626). ©브레이크뉴스

보수라는 용어의 역사적 맥락과 개념(공동체 질서와 법치주의)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수적 성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그러나 보수라는 용어가 정치적 용어로 사용되게 된 것은 자유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1789년 프랑스에서 인류 최초의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 프랑스 혁명의 급격한 사회변화를 반대한 이론으로 보수주의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용어를 사용한 사람이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라는 자이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 달리 계몽사상이 시민혁명으로 갈수 있는 역동적 사회는 아니었다. 계몽사상이 부르주아 계층에게 혁명적인 힘으로 영향력을 끼친 곳은 프랑스였다. 에드먼드 버크는 영국의 휘그당 정치인이자 사상가로서 프랑스 혁명 직후인 1790년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and On the Proceedings in Certain Societies in London, 1790) 이라는 논문을 통해 국가라는 것이 유기적으로 발전하는 존재이며 기존의 제도들 역시 시행착오를 통해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이성적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비역사적이라고 주장했다. 버크는 혁명가들의 합리주의적 이상주의적인 시도가 자칫 거창한 투기가 될 수 있으며 사악한 자들이 정의로운 척하며 기존에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전통들마저 무불별하게 파괴하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버크는 가족과 국가 등 공동체의 질서에 대한 존중, 신에 대한 경외심 등 사회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전통적 요소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버크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즉 권위에 버금가는 책임이 사회질서의 중대한 부분이라고 보았다. 또한 버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불완전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크는 급진적 혁명가들이 자칫 전체주의를 형성해 책임없는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했다. 개혁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개혁을 가장한 전체주의는 안좋은 것이다. 그것이 버크의 보수주의였다. 버크는 미국의 독립혁명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급진적 이상주의와 유토피아주의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그는 급진적 혁명을 통해 계급의 평등화를 시도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반대했다. 버크는 “평준화하려는 자는 결코 평등화하지 못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이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사회에서 개인의 지위가 낮은 지위에서 높은 지위로 이동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상승이 결코 쉬워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버크는 혁명가나 개혁주의자들이 누구나 평등하다고 선동하고 평준화를 하려고 했으나 결국 평등한 사회를 만들지 못하고 그들 자체가 높은 지위를 독점해 수구화되는 모습을 이미 본 것이다.

 

보수주의의 선구자 에드먼드 버크 (Edmund Burke, 1729-1797).  ©브레이크뉴스

이를 통해 에드먼드 버크의 사상을 종합해 보면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인정(우리 모두는 틀릴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생각한 사상과 철학 및 제도들은 오류가능성이 있다.)이었다. 즉 유토피아주의에 대해 경계하는 것이 그의 보수주의 사상을 대변한다. 인간의 불완전성의 인정은 오늘날에도 보수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버크의 보수주의 사상이 프랑스 혁명을 반대했다고 해서 수구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보수주의의 핵심은 인간의 불완전성의 인정이었고 그것을 잘 정리한 자가 버크였을 뿐이다.

 

이후 보수주의는 자유주의의 확대와 더불어 그 개념이 더욱 확대되게 되는데 보수주의는 자유주의 사상의 법치주의와 결합하였다. 자유주의의 개인주의와 법치주의 사상은 자유주의자들의 혁명이 성공하고 자유주의가 확산되자 더욱 강화되었다.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보수주의는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맥밀런 백과사전에서 보수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보수주의란 검증된 공동체를 지향하며 도덕성과 양심에 기반하며 대중에 기반한 포퓰리즘에 회의적이며 물질적이고 감성에 영향을 받는 인간에 의해 지지되는 중도좌파 및 극단적 좌파들의 혼란스럽게 만드는 전략(선동) 등을 반대하는 것이다.”

 

보수라는 용어는 초기에는 급진적 혁명과 유토피아주의(인간의 불완전성을 부정하는 신조를 말한다. 유토피아주의는 특정한 사상이 완벽하고 오류가 없으며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조이다. 내가 생각한 이론, 정책 그리고 사상들이 진보와 발전을 가져온다는 강한 믿음이나 확신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이른바 적폐일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이 유토피아주의에 빠지면 독선적이고 편향적 사고에 빠진다. 인간이 생각한 사상이나 이론은 오류가 있게 마련인데 오류를 부정함으로써 오만한 태도에 빠지게 된다. 보수주의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강조함으로써 유토피아주의를 배격한다.)에 대해 반대하는 데에서 출발했으나 자유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시민의 권리가 신장되고 계몽된 사회가 형성되면서 보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영국에서는 프랑스에서의 혁명이 성공하고 시민의 권리가 신장되자 토리당이 당명 보수당으로 바꾸고 휘그당이 자유당으로 당명을 바꾸게 되었다.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인들은 보수의 의미를 과거 수구성에서 탈피해 새로 정립하기 시작했다. 보수당 당수였던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는 1876년 개혁입법에 돌입해 선거권 확대에 압장섰다. 디즈레일리 정부는 1879년 노동법을 개선하여 노동자의 권익을 증대시켰고 식품의약품 판매법과 교육법, 위생법 및 공중보건법 등을 제정했다. 노동자들의 결사 시위의 자유를 허용하고 재산권 법을 정비해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게 개혁했다. 또한 노동자 주거개선을 위한 법안과 노동자 계급의 주택을 마련하기 위한 저렴한 대출을 허용했다. 그의 개혁입법의 진수는 선거법일 것이다.

 

1867년 그는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그 결과 유권자 수가 2배로 늘어나 250만명이 투표권을 획득하게 됨으로써 대중 민주주의의 발판을 열었다. 당시 경쟁당이었던 자유당은 보수주의자들의 이러한 적극적인 개혁에 밀려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자유주의자들보다 더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개혁을 했던 자들이 보수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디즈레일리의 보수주의에 입각한 개혁은 성공해 보수당은 자유당처럼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영국 정치의 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 보수주의자로서 개혁정책을 펴 대중적 지지에 성공한 보수당의 디즈레일리. ©브레이크뉴스

독일에서는 보수라는 의미가 법치주의이며 유토피아주의를 배격한다는 의미로 발전한다. 빈체제가 정립된 직후인 1816년에서 1818년 사이 독일의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Maikäferei 라는  보수주의 단체가 결성된다. 독일 보수주의 사상가들이 대다수 법학 전문가였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독일의 보수주의  사상가 사비니(Friedrich Carl von Savigny, 1779-1861)는 마르부르크(Marburg)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자였다. 그는 보수주의가 법치주의에 기반한 것이라는 것을 주장했고 자유와 재산을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개인의 자유, 권리, 재산을 지키기위해 법이 필요하다는 자유주의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했다.

 

게를라흐(Ernst Ludwig von Gerlach, 1795-1877) 역시 이 시기 독일 보수주의 이론을 정립했다. 그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는 평생을 급진적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고 1813년에서 1815년까지 나폴레옹의 유럽해방전쟁에 참여한 이력을 가진 자였다. 

 

양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현대에 이르러 보수라는 의미는 또 다시 변화하게 된다. 독일의 기독교 민주당(CDU)은 급격한 유토피아주의를 배격한다는 기존의 보수의 이념을 바탕으로 현실사회에 정의로운 개혁을 위해서는 좌파든 우파든 어떠한 정책도 상관없다는 기독교 민주주의정치를 실현하려 하였다. 

 

사회정의와 자유주의 경제를 조화롭게 추진해 사회적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실현시킨 서독 기독교 민주당의 아데나워 (Konrad Adenauer, 1876-1967) 아데나워도 보수주의 정치인이었다. 그의 개혁은 라인강의 기적을 실현시켰다. ©브레이크뉴스

즉 보수란 수구성을 탈피하고 개혁과 현실정치에서 법치와 정의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보수라는 것이다. 즉 보수란 좌파적 정책을 시행할 수 있고 우파적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즉 좌파정책이든 우파정책이든 상관없이 보수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정의와 법치 그리고 공동체의 질서이며 급격한 유토피아주의와 포퓰리즘를 경계하는 것이다. 

 

보수(Conservatism)와 수구(반동, Reactionary)는 다르다

 

프랑스 혁명 당시 보수라는 용어는 반 자유주의를 표방한 수구(반동)라고 볼수는 없다. 

 

1950년대 영국 보수당의 당수이었던 쿠인딘 호그(Quintin Hogg, 1907-2001)는 보수란 사회적 전통을 옹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한 사회가 원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며 보수적 경향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보수라는 용어가 하나의 철학이라기보다는 우리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본성이자 태도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보수는 나쁜 것이 아니며 경험에 기초해 판단하는 합리적 태도를 의미한다.

 

인간의 보수적 경향은 인간의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면서 나타난다. 보수적 경향이란 단순히 구 생활방식이나 과거의 것을 따라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경험이 쌓이면서 어떠한 의사결정을 할 때 신중함을 보이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인간의 행동은 일반적인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호그는 인간의 보수적 경향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본 것이다.

 

사회학자 만하임(Karl Mannheim)은 보수라는 용어가 근대적 현상으로서의 보수가 있고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보수를 구분했다. 만하임은 모든 인간의 근본적인 성향을 보수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심해진다. 외교국방연구소의 권오중 박사는 만하임과 마찬가지로 어느 사회이던지 인간은 누구나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공동체가 안정화되고 더욱 나아지는 것을 최우선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한국사회에서 대중들은 이러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인 보수적 성향을 부정적으로 보고 보수를 수구와 같이 부정적인 용어로 사용한다.

 

보수를 영어로 conservatism 이라고 한다. 수구는 영어로 reactionary로 표기한다. 보수는 수구가 아니며 일반적으로 수구와 반동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릴라(Mark Lilla)는 정치적 용어로서 보수(conservatisn)와 수구(reactionary)를 구분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보수가 관습과 전통에 대한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달리 수구는 단순히 과거로의 회기, 단순히 지키고 보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는 말한다. 즉 보수는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적 변화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보수와 수구를 구분하는 것은 간단하다. 사회변화를 감수하느냐에 대한 부분, 개혁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과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이 있었던 시기 수구라는 용어는 반동으로 사용되어 왔다. 보통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서 수구는 반동이라는 용어로 표현되어 왔다.

 

수구와 반동이라는 용어는 간단하다. 혁명의 시대에 혁명을 반대하는 흐름 혹은 그러한 생각을 가진 자들을 의미했다. 자유주의 혁명시기에서 반동은 과거 왕조로 회기하려는 자들을 의미했으며 사회주의 혁명시기 반동은 자본주의 질서를 옹호하는 자들 즉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보았을 때 자본주의와 같은 구질서를 옹호하는 자들을 의미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현대사회에서 보수주의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으나 자유주의 혁명의 시대에 수구세력들은 고전적 자유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수구와 보수는 다른 개념이다.

 

유럽정치에서 보수는 진보를 추구했다. 진보를 추구하지 않는 자는 진정한 보수가 될 수 없다. 

 

19세기 독일의 보수주의 사상가 후버(Victor Aimé Huber, 1800-1869)는 보수적인 것을 자유와 진보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사회가 진보하기 위해서 보수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즉 보수가 진보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후버는 보수주의자이면서도 자유주의자이자 법치주의자였다.

 

그는 국가가 자유헌법을 실현해 전 국민이 자유헌법을 누릴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자유주의와 개혁에 대한 열망은 목숨을 걸고 혁명전쟁에 뛰어들 정도로 대단했다. 그는 자유주의에 심취해있던 젊은 시절 스페인에서 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해 참전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자칭 혁명가들의 수구성에 실망하여 스페인을 떠났다. 이후 그의 자유주의에 대한 이상은 보수주의 사상과 결합한다. 후버는 사회를 유기체적인 공동체로 보고 기독교의 가치와 가정과 법치를 수호하기 위한 보수정당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는 1841년 독일에서의 한 보수정당의 요소, 가능성과 필요성(Über die Elemente, die Möglichkeit oder Notwendigkeit einer konservativen Partei in Deutschland)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듬해인 1842년 반대자들(Die Opposition, Ein Nachtrag zu der konservativen Partei)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개혁시대를 열어갈 보수정당의 창당을 주장했다. 후버는 보수정당이 사회적 개혁에 적극적으로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수세력이란 사회적 개혁을 하는 세력이다. 이것이 당시 후버가 내린 보수주의의 결론이다. 이러한 후버의 사상은 비스마르크의 개혁입법에도 영향을 준다. 그는 비스마르크의 사회 개혁 입법에 참여했다.

 

독일에서 보수주의 정치의 이론을 제시한 후버(Victor Aimé Huber, 1800-1869), 그는 후에 비스마르크의 요청으로 독일의 협동조합 및 노동조합에 대한 입법에 참여한다.  ©브레이크뉴스

실제로 독일 사회의 개혁입법은 보수주의자들이 성취했다. 세계 최초의 사회보장법을 실시했던 비스마르크 역시 보수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대표적인 보수주의 정치가였다. 

 

또한 비스마르크는 참정권을 확대하는 개혁을 추진했다. 독일에서 19세기 참정권 확대와 복지제도의 시행은 보수주의자들의 작품이었다.

 

또한 현대사에서 독일 ‘라인강의 기적’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경제철학은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us)였으며 질서자유주의에 기인한 경제 정책은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 정책이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성장을 존중하면서 분배 정의와 사회 정의를 동시에 고려한 정책이었다.

 

또한 이것을 강력하게 추진한 정당이 독일 기독교 민주당(CDU)이다. 독일의 기민당은 전형적인 보수정당이다. 

 

독일은 보수주의를 진보라고 인식한다. 독일의 보수주의자들은 보수적인 정책이 사회적 진보를 가져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보수주의의 정치를 구현해 세계최초의 사회보장법 및 참정권 확대 등 진보 정책을 추진한 보수주의자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 ©브레이크뉴스

2017년 보수주의 이론과 관련해 스크런튼(Roger Scruton)은 Conservatism: An Invitation to the Great Tradition 이라는 저서에서 사회적 전통 및 제도가 없으면 개인의 자유 역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근대의 보수주의가 전통적 자유주의자인 토마스 홉스, 제임스 해링턴, 존 로크, 몽테스퀘어 등이 주장한 개인의 해방은 관습과 제도의 유지 없이 달성될 수 없다는 개념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즉 진정한 개혁과 사회적 진보는 비현실적으로 급진적이고 이상주의가 아닌 사회적 전통에 기반해서 점진적이고 균형적으로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크런튼은 현대의 보수주의가 대중의 주권에 대한 진보적 개념을 수용하는 계몽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19세기 영국의 보수당의 디즈레일리는 진보적 보수(Progressive Conservative)라는 용어를 사용해 보수 정치는 사회적 진보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정책을 통해 증명하였다. 그는 공중위생과 노동조건의 개선 그리고 참정권 확대 등의 진보적 개혁을 추진했다. 2009년부터  진보적 보수주의 프로젝트를 구상했던 영국의 카메론(David Cameron, 1966-) 보수당 당수(2010년에서 2016년까지 보수당 당수 역임)와 테레사 메이(Theresa May, 1956-) 보수당 당수(2016년에서 2019년까지 보수당 당수 역임)는 자신들을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묘사했다. 

 

이와 같이 유럽의 여러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진보정치를 구현하는 주체로서 보수주의를 강조한다. 즉 보수의 정신은 사회적 진보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개혁정책 등은 보수정치가들의 작품이었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우리 한국사회가 보수와 진보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며 보수와 진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사용하는 것은 한 사회가 언어사용의 오류에서 오는 베이컨의 시장우상에 해당된다. 진보는 어느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만일 자기들만이 진보를 성취할 수 있고 자기들만이 진보적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다. 유럽사회에서 보수는 결과적으로 사회의 진보를 성취하고 이룩해내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과연 대한민국에 진정한 보수가 있냐는 물음이다. 앞서 유럽의 역사와 학자들을 통해 보았듯이 보수란 의미는 지킬 것은 지키고 개혁할 것은 개혁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후버를 비롯한 독일의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와 자유의 원리로써 보수를 해석했다.

 

역사적으로 진정한 보수세력은 진보정치를 구현해왔다. 진정한 보수는 개혁과 진보를 추구하는 자라는 것을 감안할 때 대한민국에 진정한 보수정치세력이 존재하는가?

 

한국사람들 대부분 보수정당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있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고 보수가 아닌 수구적 행태를 보임으로써 이미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은 바 있다.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은 비대위를 출범해 각종 변화를 시도하려했으나 역시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물론 국민들의 반응만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그것은 포퓰리즘이 될 수 있기에 경계해야한다. 그러나 코스프레에 머물지 않는 진정한 개혁을 한다면 그 개혁의 진정성은 국민들에게도 전달된다. 필자가 문제제기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개혁의 진정성을 국민 대다수가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필자는 자유한국당의 개혁이 진정성이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유한국당은 이미 보수정당이 아니었다. 보수라기보다는 반동이나 수구정당이 더 적절한 표현인 듯 하다. 진정한 보수는 개혁을 지향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제(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태도)를 실천하는 자들이다. 과연 과거 자유한국당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지위를 포기하고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공동선, 공익)를 실현할 수 있는 정당이었고 정치세력이었는가? 필자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공동선과 공익을 실현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자들은 이미 보수가 아니다. 필자는 당명을 바꾼 미래통합당이 진정한 보수정당이 되기를 바란다.

 

특정 정치세력이나 개인이 자신들을 진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가? 아니면 오만을 본질로 해 대중을 선동하려는 사악한 레토릭인가?

 

과거 한국민주당(약칭 한민당)이라는 정당이 있었다. 이 정당은 친일지주세력들이 해방이후 세운 정당인데 1945년에 창당해 1955년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꾸고 그 명맥이 현재 더불어 민주당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민주당은 어찌된 이유인지는 모르나 한민당을 거론하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며 본인들의 정당이 1955년에 창당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 민주당의 전신이 친일파들이 1945년에 세운 한민당이라는 사실은 자명한 팩트이다. 과거 한민당은 자신들의 정당의 존립근거를 반공에 두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친일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서였다. 해방이후 좌익들이 난무했던 38선 이남 미점령지구에 반공을 레토릭으로 내세운 한민당의 등장은 미국에게 매우 고마운 존재였다. 따라서 미국은 전략적으로 한민당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한민당에 기생하고 있던 친일세력들은 해방이후 재기에 성공했다. 한민당은 미국의 지원아래 거대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 독립투사였던 이승만은 귀국후 거대정치세력으로 성장한 한민당과 제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후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친일파에 기반한 한민당과의 제휴를 끊어버리고 독자적 행보를 이어갔다. 이후 한민당은 이승만과의 내부적 갈등을 겪으며 이승만을 적대세력으로 규정했고 이승만에 대한 독재 투쟁과 민주화 투쟁이라는 명분을 확보해 나가기 시작한다. 정의롭지 못했던 친일 세력이 반공이라는 레토릭을 거쳐 반독재 투쟁 그리고 민주화 투쟁이라는 정의로운 레토릭을 사용해 정의로운 자들로써 변신을 하는 순간이었다. 베이컨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한 역사적 과정들을 통해 변신을 하는 과정들과 정의롭지 않은 자들이 정의로운 척하는 상황을 그는 시장우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물과 언어가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생기는 오류인 시장우상은 한민당이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부정의가 정의로 변신을 함으로써 현실화되었다. 반공을 기초로 한 당의 정체성 그리고 이후 이승만과의 반독재 투쟁 그리고 이후 이루어지는 군사정부와의 반독재투쟁을 거치면서 어느새 민주당은 진보라는 이미지로 변환이 되기 시작했고 진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저술한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 칼 포퍼는 이 책에서 전체주의와 유토피아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해 명쾌히 해석함으로써 현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이론을 명쾌하게 정리한 자이다.     ©브레이크뉴스

그러나 정치세력으로 진보라는 말을 하는 것이 매우 오만한 행위라는 것을 칼 포퍼(Karl Popper)는 그의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증명하고 있다. 칼 포퍼는 역사적으로 진보라는 말 즉 추상적인 선을 말하는 자들의 위선과 이중성을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에서 비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다 틀릴 수 있다.” 이 말은 칼 포퍼의 철학을 대표하는 대명제이다.

 

따라서 칼 포퍼는 내가 생각한 이론, 정책 그리고 사상들이 진보와 발전을 가져온다는 강한 믿음이나 확신이 유토피아주의로 가게 되고 이러한 유토피아주의가 매우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 완벽하지 않으며 인간이 생각한 이론, 정책 그리고 사상들은 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 포퍼는 나의 생각만이 진보를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유토피아주의자들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전체주의의 기원이 유토피아주의에 있으며 나의 생각만이 옳고 정의롭다라는 생각들이 이 세상을 더 참혹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유토피아주의는 좌파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좌우파 관계없이 나올수 있는 개념이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극우는 나치즘과 파시즘의 전체주의로 변질되었고 극좌는 공산주의라는 전체주의로 변질되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도 이러한 전체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필자는 진보라는 말이 갖는 전체주의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칭 진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칼 포퍼가 말한 우리 모두는 틀릴 수 있다 가 아니라 “우리는 진보고 너는 퇴보다.” 라는 인식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말은 굉장한 오만이고 이러한 행태는 역사적으로 전체주의와 포퓰리즘으로 직결되었다.

 

조지오웰 (George Orwell, 1903-1950) 보수는 급격한 유토피아주의와 급격한 전체주의를 배격한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은 개혁을 가장한 위선자들의 포퓰리즘을 여실히 나타낸 작품이었다.    ©브레이크뉴스

민주당의 전신이 한민당이었고 한민당은 과거 자신들의 친일전력을 반공과 민주, 정의, 진보라는 화려한 레토릭으로 세탁한 적이 있다. 이러한 과거를 감안할 때 민주당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석고대죄해야 한다.

 

프랑스 혁명으로 기초가 세워진 공화주의와 이에 기반한 근대민주주의 정치가 발달한 국가들 은 정당의 이름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독일의 사회민주당(SPD)은 1875년에 창당해 1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명칭 그대로 정당의 이름을 사용한다. 기독교 민주당(CDU) 역시 전후 1947년 창당된 이래 그 명칭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1955년 한민당에서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꾼이후 한국의 자칭 보수정당과 마찬가지로 역시 수도없이 정당명을 바꾸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탁해왔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지핞고 본인들을 절대선으로 착각하고 진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내로남불의 이중성을 보인다면 역시 더불어민주당도 과거 자유한국당과 마찬가지로 수구정당을 벗어날 수가 없다. 

 

진보는 결과적 개념이다. 1998년 독일 사회민주당의 라퐁텐이 재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극단적 좌파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는데 우리나라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포퓰리즘식 복지정책을 남발하던 자였다. 그는 월세보조금 등을 파격적으로 인상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했으나 결국 재정은 파탄 났고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한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의 후유증을 경험해야 했다. 그는 주변의 EU국가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으며 도중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정책은 독일뿐만 아니라 EU를 위협하는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 급진적 포퓰리즘 정책을 펴다 독일국민에 의해 사임한 독일 사회민주당 라퐁텐 (Oskar Lafontaine, 1943-) 포퓰리즘정책에 대해 경계하는 독일인들의 의식수준이 필자는 부러울 뿐이다.   ©브레이크뉴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라퐁텐의 개혁은 진보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포퓰리즘 정책은 마치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것처럼 포장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정책은 퇴보를 가져왔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급진적이고 비현실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진보와 퇴보는 결과론적 개념이다. 본인의 사상과 신념, 이론이나 정책이 진보적이라고 해서 진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정책은 해보고 실현해서 결과가 나왔을 때 진보인지 퇴보인지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라는 용어 사용은 지양해야 한다. 적폐라는 용어 사용도 지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적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폐는 상대방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우리 정당에게도 적용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현 정부나 여당은 정권 초반 적폐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자신들은 마치 깨끗한 자들인 것처럼 코스프레 및 이미지 메이킹을 한 적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적폐를 주장했던 자들이 과연 정의로왔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말로만 떠들고 구호만 외친다고 정의로운자가 되고 진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진보라는 용어를 매우 신중하게 사용해야한다. 자신이 생각한 신념 혹은 정책등이 진보가 될지 퇴보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떠한 이론이나 정책을 통해 사회가 진보되었다는 것은 미래에 규정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본인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전체주의의 씨앗이자 뿌리인 오만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진보란 용어와 관련해 미국사회가 갖는 특수성이 있다. 유럽에서는 진보란 용어를 쓰지 않으나 미국에서는 급진주의자들의 정치성향을 liberal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따라서 liberal을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진보로 번역한다. 그러나 우리가 번역하는 liberal이라는 용어는 진보의 의미인 progressive와는 다르다. 아무리 급진적인 liberal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법적으로 특혜를 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특혜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미국에서는 그를 진보(progressive)적이라고 한다. 즉 liberal이라하더라도 그 사람의 성향이 완전히 급진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의하면 존 롤즈의 정의론은 진보(progressive)적인 것이다.

 

지난번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였던 힐러리는 liberal 과 progressive는 같은 의미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liberal 성향을 가진 자들을 진보(progressive)라고 포장해 그들의 표를 가져오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그러나 존 맥후터(John Mcwhorter)는 liberal 성향의 1/4이 자기를 진보라고 생각하고 있고 보수주의자의 7%는 본인이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진보라는 용어가 결과론적이고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진보란 특정한 세력 및 이론 또는 성향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진보를 자기들만의 전유물로 여기며 진보를 가장하는 일명 진보 코스프레가 판을 친다. 그리고 많은 대중들이 자기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착각하고 진보의 대열에 서길 원한다.

 

코로나 19 사태를 통해본 독일보수세력의 냉철한 현실인식과 정직함. 이것이 보수다.

 

최근 코로나 19사태로 인해 대한민국의 경제 및 사회가 상당히 경직되어 가고 있다. 2020년 2월 12일 현 정부와 대통령은 코로나 19 사태가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코로나 19에 개의치말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라고 독려한 적 있다. 2020년 2월 12일 대통령은 남대문 시장을 방문해 코로나19와 관련해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고 말하며 "각 부처와 지자체는 예정된 행사들은 계획대로 진행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보건복지부 차관은 “집단적인 이벤트를 취소하거나 연기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며칠 후에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진원지는 중국이었는데 2020년 3월 초까지 한국은 인구대비 세계 최대 확진국이었다. 2020년 3월 30일 현재 한국인의 입국을 통제하는 국가가 181개국이다. 한국인의 입국금지 조치는 147개국이며 격리조치 14개국, 검역 강화 및 권고 사항 등은 20개국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이렇게 많은 국가들이 한국인의 출입을 제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 모든 국가들이 국경 봉쇄가 가장 효과적인 방역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조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입국 통제에 대해서 상당히 미온적이다

 

2020년 3월 11일 독일의 기독교 민주당(CDU)의 메르켈 총리는 코로나 19 사태와 관련해 매우 보수적인 전망을 했다. 2020년 3월 23일 오명돈 중앙임상위원장(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은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19 유행은 종식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올 가을에 더 큰 유행이 찾아 올 수 있다고 예측하면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명돈 위원장의 말은 독일의 메르켈의 전망과 흡사하다. 그러나 다음 날 정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세종청사에서 감염의학 전문가인 오명돈 위원장이 말한 불편한 진실을 일축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만을 강조했다. 비단 메르켈 뿐만 아니다.

 

영국 보수당의 존슨(Boris Johnson, 1964-) 총리는 2020년 3월 29일 BBC방송에 출현해 코로나 19의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비관적 예측을 했다. 존슨 총리는 “국민께 솔직하게 말씀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는 상황이 좋아지기 전에 더 나빠질 것을 예측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비상상황이라는 용어를 써가면 지금은 국가적 비상상황이며 집에 머물러 물리적으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서 정부는 모든 조치를 다해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존슨의 이번 대국민 서한은 이번주부터 3천만 가구에 우편배송을 한다.

 

▲ 메르켈(Angela Merkel, 1954-) 독일 수상은 앞으로 독일인의 70프로가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매우 보수적으로 전망했다. 한국정부의 처신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사진은 2020년 3월 11일 베를린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19사태와 관련해 발언하는 메르켈의 모습이다.    ©브레이크뉴스

한국 정부와 독일 정부의 코로나 19에 대한 대응은 매우 차이가 있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 그리고 대중들에게 단기적인 희망을 심어주고 실망을 시키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을 대중들에게 알려주고 우선 당장은 다소 실망적인 전망이지만 대비하자는 정치인들의 책임감있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2020년 2월 13일 문 대통령은 "방역 당국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 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이 말이 나오기 무섭게 박종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우리는 중국이랑 밀접하게 유통되는 나라고, 상당히 강력한 제한조치를 하지 않는 한 리스크(위험)는 계속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도 낙관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라고 매우 우려한 바 있다.

 

2020년 3월 31일 김종인 통합당 선대위원장은 허용범 서울 동대문구 갑 후보의 선거사무소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허 후보는 “언론에서 마치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코로나 19 대처를 가장 잘하는 것처럼 방송하니 문재인 정부의 실정이 묻혀버리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을 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제가 1977년 의료보험을 설계하고 1989년 보건사회부 장관할 당시에 보험을 전국민으로 확대한 장본인"이라며 "그걸 바탕으로 의료보험 체계가 잘 수립됐고 방역체계도 메르스 이후로 잘 된 것 그리고 의료체계와 의료인 헌신,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오늘날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키고 있는 실정이지 이게 정부의 치적이나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스스로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선거에 활용하려고 하는 상황과 달리 독일이나 영국의 보수정치인들은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한다. 그들은 책임지지 못할 말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 책임있는 말을 하는 것이 바로 보수이다. 책임은 영어로 responsinilty 다. 이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응답이라는 뜻의 response와 능력이라는 뜻의 ability 의 합성어이다. 즉 응답하는 능력이 책임이라는 것이다.

 

반응과 응답을 하기위해선 일방적인 마이 웨이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즉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경청해야만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 좋은 것이고 나아가 영어의 어원대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경청하는 것이 책임감의 중대한 부분이다. 그러나 코로나 19와 관련해 그동안의 한국정부가 대응한 태도를 보면 과연 의학 전문가와 감염의학 전문가들의 말을 얼마나 경청했는지 의아스럽기 짝이 없다.

 

정부가 전문가들의 견해들을 무시하고 대중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남발했다가 결국 이 사달까지 나게 되었다. 이는 결코 책임감있는 모습은 아니다. 필자는 독일의 정치와 한국 정치를 비교하면서 책임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포퓰리즘이 아닌 책임감이라는 것이 독일 보수정치의 중대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분석하게 되었다. 과연 대한민국 정치에서 책임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진정한 정치발전은 용어에 대한 올바른 개념정립에서 나온다.

 

역사적으로 자유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이론이 발전하고 정치발전을 이룬 국가들의 공통점이 있다. 계몽주의를 겪은 국가들의 지식인들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사물과 용어에 대한 정의를 보다 분명히 하는 작업을 했다. 그 대표적인 작업이 백과사전 편찬이다. 계몽주의자들은 대중들이 시장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용어와 사물을 정확히 정의내리는 작업을 해왔다. 사물과 용어가 정확히 일치하다보니 부정의와 오류에 빠지지 않고 대중들에 대한 선동이나 포퓰리즘이 잘 통하지 않는다. 오직 논리와 원칙만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것이 서양의 계몽주의였다. 

 

필자 역시 40대지만 필자와 같은 세대인 3-40대 많은 사람들은 보수라는 용어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며 자칭 진보라는 대열에 서기를 원한다. 이들 대다수가 진보라는 용어가 왠지 세련되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 세대 대다수가 진보의 대열에 서길 원한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또한 이는 보수라는 용어가 수구적이고 고리타분하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베이컨이 말한 시장우상에 빠진 것이다. 보수는 수구와 개념적으로 전혀 다르며 고리타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유럽 역사에서 보수주의는 근대 자유주의와 맥을 같이했고 온고지신 즉 진보와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주의의 정신이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진정한 보수는 코스프레 진보가 아니라 진정한 진보를 구현했다. 

 

이 시대 우리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치발전을 위해서이다. 올바른 개념에서 올바른 사유가 나온다. 한 사회의 용어에 대한 개념정립이 중요한 이유가 개념이 정립되어야 원칙과 정의가 바로 서기 때문이다. 근대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백과사전을 편찬하면서 한 사회의 대중들이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고 올바른 개념이 바로 선 사회를 꿈꿨다.

 

▲ 김진호 박사.   ©브레이크뉴스

필자가 이미 설명한대로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를 정치적 성향을 구분하는 데에 사용하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보수는 역사적으로 진보를 추구해왔고 그리고 진보적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한 보수가 진짜 보수이다. 또한 진보라는 용어가 갖는 긍정적 힘을 이용해 진보적이지 않은자들이 자칭 진보세력이라고 주장(코스프레)하면서 시장우상에 빠지는 것 역시 조심해야 한다.

 

진보는 결과적 개념이다. 어떠한 결과가 발전과 혁신을 이룬 것으로 평가될 때 우리는 그때 비로소 그 때 그 정책과 사상이 진보적이었다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결과론적 개념이기 때문에 현재의 본인의 사상과 정책 혹은 정치성향을 진보라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만일 본인의 정치성향을 진보라고 주장할 때 이것은 명백한 오만이다. 따라서 우리보다 정치가 발전한 서유럽 사회가 진보라는 용어 사용을 지양하는 것이다.

 

우리는 용어나 언어가 갖는 힘을 알아야 한다.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고 그 용어에 대해 대중들이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는 단계가 될 때 우리도 정치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사유가 바로 진짜 인문학이다. jinhos75@naver.com

 

*필자/김진호

 

한국외국어대학교 문학박사(현대사/정치학 전공). 한국외대, 고려대 등 다수 대학 출강. 현재 서원대학교 교양대학 조교수, 사단법인 외교국방연구소 이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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