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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권력의 민간이양을 소신으로 지녔던 '채명신 장군'

필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신의가 정치인의 생명”이라고 강조했는데..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20/03/29 [09:43]

채명신 장군의 서울 용산구 후암동 자택 마당에서 필자(오른쪽)와 채명신 장군(왼쪽). 1990년대 초 여름, 정글화를 신던 발에 슬리퍼가....    ©브레이크뉴스

필자는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채명신 예비역 중장(1926.11.27.-2013.11.25.)을 여러 번 만났었다. 

 

채 장군은 전 주월 사령관(1965-1969년)으로 유명하다. 기자(주간 토요신문 편집국장)로서, 그를 만난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결별-권력투쟁 등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서 였다. 인터뷰는 당시 토요신문에 시리즈로 여러 차례 기사화 됐다. 

 

채 장군은 1972년 시작된 박 정권의 유신-영구집권 정치공작을  정면으로 반대, 예편 당했다. 채 장군은 박정희 장군와 함께 5.16 군사 쿠데타에 가담, 혁명5인위원이기도 했다. 그러하니 당연하게 군사정권 하에서 차기를 넘볼 수도 있는 군사-정치적 위치에 있었다. 거기에다가 주월사령관으로 4년간 재임, 시중에선 “박정희 이후엔 채명신이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박정희 유신에 반대했다. 군에 몸담고 있었으니 박정희 정권의 탄압을 견대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채 장군은 ‘유신반대 장군’이라는 이유로 강제예편 당한 이후 스웨덴, 그리스. 브라질 대사를 지냈다. 국내 정치에 넘볼 수 없는 힘없는 외교관(대사) 자리로 내밀렸던 셈이다. 

 

채 장군은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 살고 있었다. 마당에 잔디가 깔린 2층 집이었다. 그 집에서 인터뷰가 이뤄졌다. 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참전의 내막-역사, 게릴라전으로 월맹군을 제압하던 군사작전, 참전 용사 가운데 5,000명 이상 전사한 장병들에 대한 회한, 박정희의 유신획책에 반대한 이유, 대통령의 꿈이 있었나 등등을 물었었다.

 

1993년 2월, 김영삼 정권이 출범한 이후 그는 국방장관 후보 물망에 올랐다. 이때 미국에서 한 여인이 찾아왔다. 채 장군의 사생활을 폭로했다. 채 장군이 국방장관 물망에 올라 있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그 여인이 등장한 것은, 필자가 근무하던 매체가 아니라도 어느 매체에나 공개될 수밖에 없는 정황이었다. 그래서 단독 보도(취재=토요신문 박철성 기자)를 실행했다. 요즘 용어로, 미투기사이다. 그 보도와 관련, 채 장군을 직접 만나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왜 그런 나쁜 내용을 보도 했느냐?”라고, 화를 낼 줄 알았다. “내가 비판 받을 일을 저지른 거지...뭐. 그 여인에게 죄송해!” 의외로 담담했다. 죽음을 넘나든 전장 터의 총지휘 장군이어서 그랬을까?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내가 전장 터(소위 월남전)에서 살아온 게 가슴 아파요. 죽어간 전우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요. 생각할수록 그래요. 5천명 이상의 전사자가 생겼잖아요. 참전 이후 풍토병이나 고엽제 후유증으로 죽어간 장병들도 많아요. 내가 죽으면 그들 옆에 영원히 묻히고 싶어요.”

 

채 장군은 2013년 사망했다. 그는 죽기 전 가족들에게 “나 죽으면 장군 묘역에 묻지 말고 전우들(참전 장병들) 옆에 묻어 달라, 꼭 사랑하는 전우들 곁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이 유언이 실제로 받아들여져 그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전사자들이 묻힌 동작동 제2묘역(월남파병전사자 묘역)에 잠들고 있다. 누구에게나 생명은 오직 하나이다. 장군이나 사병이나. 전쟁영웅의 부하사랑으로 읽힌다.

 

채 장군은 박정희의 영구집권 시도였던 유신을 단호하게 반대했던 장군이었다. 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5.16 군사쿠데타 출신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될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군사권력의 민간이양을 소신으로 지녔었다. 그는 필자에게, 분명히, 또록또록 말했다. “정치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신의(信義)”라고. 당시는 이미 세상을 떠난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한 ‘경고’이기도 했다. 

 

오는 4월15일이면, 총선이 치러진다. 국가 입법기관의 대표들을 뽑는다. 전장(戰場)을 총 지휘하던 야전장군 출신 채명신 장군은 ‘신의’를 강조했었다. 총선을 앞두고 채 장군이 말한 “정치인은 국민이 준 믿음, 신의를 저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말이 새삼 떠올려진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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