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번방의 주인과 악의 평범성

부디 한 사람의 악마 뒤에 이 사회가 숨지 않기를...

이종철 철학박사 | 기사입력 2020/03/24 [10:00]

▲ 이종철 철학박사.  ©브레이크뉴스

n 번방 주범의 신상 프로필이 공개되었다. 이름과 학교, 그의 과거 경력들이 낱낱이 밝혀 졌다. 다들 n 번방의 끔찍한 사건들을 생각하면서 악마를 연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평범한 용모에다가 흔히 악마형 범죄자들의 과거와는 너무나 달랐다. 어느 대학, 학보사 편집장을 지내면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봉사 단체의 회원으로도 활약을 하고 있다. 악마와 천사가 한 평범한 인간 속에서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나찌의 살인마 아돌프 아이히만의 법정을 지켜보면서 기술했던 '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다시금 재현되는 느낌이다.

 

아이히만은 수많은 유태인들을 강제 수용소로 보내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가정에서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한 남편이자 자녀들에게는 인자한 아버지였다. 어떻게 전혀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 상반된 인격이 한 인물 속에서 공존하고 있을까? 아이히만은 마지막 변론에서 자신은 명령에 따랐다고 했다.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엄격한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런 말을 신뢰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는 내면의 책임은 피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렌트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사유의 불능이 그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또 다른 형태의 '악의 평범성'이라고 할 n 번방의 주범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변명할까? 그 역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했을까? 그에게는 아이히만처럼 명령을 가하는 상급기관이 없다. 그렇다면 그는 어린 여성들을 대상으로 가학적인 성적 착취를 하면서 쾌락에 빠져든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그 때문이겠지만 그에게는 아마도 그것이 본질은 아닐 수 있다. 공범자라고 할 관람자들로부터 고액의 입장료를 챙기는 데 혈안이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 한다면 그는 황금의 신에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려고 했을지 모른다. 돈이면 다 되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고, 그렇게 엄청난 돈을 번 자들을 성공한 자로 생각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이 사회의 일반적 정서 속에서 그는 스스로 악마가 되겠다고 자처한 것이다. 다들 물신(fetishism)의 자발적 노예가 되어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을 살 수도 있고, 착취도 할 수 있는 문화 속에서 수 많은 공범자들이 지갑을 연 것은 아닌가?

 

▲지난 3월25일 오전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들에게 도착적인 성 착취 공간은 저런 물신을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다. 그리고 이러한 도구들은 이 사회에 너무나 만연해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도박판들, 황금의 성전을 키우는 일에 혈안이 된 교회들, 연구와 인재를 양성하는 일보다는 외형적인 건물만 높이는 대학들, 법보다는 돈을 더 신봉하는 전임 판검사들의 전관예우들. 성장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업들. 돈 앞에서는 형제의 난도 불사하는 재벌들, 이런 것들이 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황금의 신들의 자발적 노예들의 다르면서도 같은 얼굴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이런 신들의 직접적인 착취 대상들은 이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 어린 여성들, 노동자들이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얼마든지 n 번방의 주인처럼 평범한 악마들이 양성될 수 있다. 악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마치 나찌의 명령에 수동적으로 복종했다고 하는 아이히만처럼, 이 시대의 악마는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이런 물신화된 사회에서 악마들은 언제나 다정하고 평범한 모습을 하고 어린 여성들의 성을 노리고 있다. 부디 한 사람의 악마 뒤에 이 사회가 숨지 않기를... jogel4u@outlook.com

 

*필자/이종철 철학박사. 

 

연세대 정법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연세대 철학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연세대 등에서 강의를 했고몽골의 후레 정보통신 대학의 한국어과 교수를 역임했다.(사)푸른아시아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원 상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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