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흥룡 ©브레이크뉴스 |
우리 사회는 1987년을 경계로 긴 생각에서 짧은 생각의 시대로 전환했다. 특히 지난 20년간은 짧은 생각의 시기였다. 단기 목표들이 줄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긴 생각은 거대담론을, 짧은 생각은 정책 수준의 전략을 말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원래부터 국제주의였는데 최근의 글로벌 추세는 150년 전의 국제주의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달리할 정도가 아니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파이오니아계획과 보이저계획을 통해서 태양계를 넘어선 성간탐사를 추진하고 있다. 국제적 차원을 넘어 우주적 차원으로 넘어간 것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영화 인터스텔라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스웨덴의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트럼프와 맞서면서 지구의 기후변화를 말하고 있다. 툰베리는 나무 1조 그루를 심는 것보다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원인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피케티는 런던경제대학에서 진행된 자본과 이데올로기 출판기념회에서 기후위기와 금융위기 등 전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의 초집중을 막는 등 현재의 경제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가 어느날 이런 이야기를 잊은 것 같다. 긴 이야기를 망각한 짧은 이야기는 자칫 방향을 잃기 쉽다.
우리 사회에는 민주화와 통일이라는 오래된 목표가 있었고 이와 관련된 방법론 논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작은 반동적 시기를 거쳤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회복한 것은 중간 단계의 민주주의일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으며 토론도 없는 상황이다. 분단된 나라의 통일과 관련된 관심도 실용적 정책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국민주주의의 더 높은 단계를 향한 고민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모색이어야 할 것이며, 이 고민과 모색이 남한 혹은 한반도에 머물지 않고 아시아 및 세계적 관점으로 확장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해서, 한반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가 세계적 수준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한반도 차원의 문제를 모색하는 시점에서도 우리는 세계적 차원의 문제를 생각해야 하며, 이렇게 되기 위해서라도 한반도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과거가 족쇄가 되는 상황에서는 결코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heungyong5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