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자본주의 모순 앞에 던져진 제주도의 미래

개발에 밀린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 훼손 더 커지기 전에 대책마련 절실

강행원 화가(동양미학) | 기사입력 2019/03/23 [16:15]

▲한라산의 설경.     ©브레이크뉴스

 

영국시인 셀리의 시는 ‘겨울이 깊으면 봄도 멀지 않으리’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라고 자연의 순리를 노래하고 있다. 혹한의 겨울을 사는 사람들에게 봄이 가까이 오고 있음에 대한 위안과 기다림의 향수를 느끼게 할 것이다. 겨울 속에 봄을 느끼는 제주의 자연환경에선 기다림의 향수를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뉘앙스에 따라서는 봄 같은 겨울을 사는 사람들에게 봄을 느끼게 하는 감정유발의 낭만이 시어에 담긴 찬미이기도 하다. 겨울인데도 봄인 듯이 푸른 나뭇잎이 사철 녹색을 두른 아름다운 제주도(이하 제주)의 풍광은 한라산(漢拏山)이 오묘(奧妙)를 품고 봄을 그리고 있다.

 

한라산의 오묘

 

어김없는 자연의 순리, 겨울이 오면 다음은 봄이 오게 되는 뚜렷한 4계를  1950m의 백록담기상이 거느리고 있었다. 겨울에 쌓인 눈이 봄 언저리에도 녹지 않고, 중산간 아래로는 겨울인데도 봄인 듯이 계절을 잊은 채 신록처럼 빛나고 있다. 필자가 제주의 두 달 살이를 하면서 한라산에 오른 이월 말의 소감이다. 이곳 토박이 친구는 아직 한라산 정상 등반을 해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토호들은 이 오묘와 더불어 살면서도 그 심오함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길손의 눈에 비친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은 자연과 유토피아를 노래했던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들인 셸리와 브레이크 등의 시를 떠올리게 했다.

 

이들의 자연에 대한 유토피아의 동경은 발전하는 산업현실을 외면한 비정치적인 이유로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야했다. 하지만 이들이 노래한 자연에 대한 예찬 이면에는 18세기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의 반발에 영향을 받게 되면서 당국의 현실정치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가 내재 되어 있었다. 이들은 첨예해지는 자본주의 모순 앞에 내던져진 민주주의의 퇴보에 분노했던 몇 세기 전의 선각들이다. 특히 그 시대의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연파괴 등의 삭막한 현실에 매우 비판적인 인식을 가졌던 시인들이다. 필자가 느꼈던 제주역시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예찬과 찬미는 이들 선각의 시인들이 경험했던 길을 교훈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가 제주의 아름다운 참모습을 3천km가 넘도록 매일 장소를 바꾸어 샅샅이 둘러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함에도 걸어서 오르는 360여개로 알려진 오름들은 20분의 1도 채 오르지 못했다. 평소의 제주여행은 기껏해야 2박3일, 길어야 하루를 연장하는 정도였다. 그간에 찾았던 제주는 내 창작 삶의 힐링을 위해 풍광스케치를 하고자 했던 단순한 발로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제주 전체의 자연환경과 볼거리를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싶었다. 소기의 성과는 이룬 셈이다.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과 겨울이 봄 같은 온화함이 좋아 여생을 몸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제주의 현재 모습을 진단해 보았다.

 

▲ 강행원 화가.  ©브레이크뉴스

개발에 밀린 낙원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은 그대로 낙원이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낙원이 개발에 밀려 상처를 입고 있다. 제주도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의 자연유산이다.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미학적인 가치와 더불어 청정지역으로 지켜야 할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모순 앞에 무릎을 꿇고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제주경제의 주력사업을 관광산업으로 전환한 점도 그 핵심이 자연유산 때문일 것이다. 다음은 제주도가 품고 있는 자연사와 인류사적 문화유산이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박물관에도 그 유산들이 빈약하게 관리되어 볼품이 없었다. 가장 소중한 가치를 헤아리지 못했다면, 그 가치와 조화를 이루는 미학의 눈도 없었을 것은 자명하다.

 

관광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연유산이 훼손되는 것은 제주인의 삶을 통째로 짓밟힌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원흉들은 박물관으로부터 일반주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의 건축물로 하여금 천혜의 유산이 상처를 입은 것이다. 이유는 건축허가가 쉽지 않는 곳에도 명분상 허가가 가능한 예를 이용하여 건축이 불가능한 곳에 대형건축물들이 들어서는 경우다. 특히 박물관은 곳곳에 천국을 이루고 있다. 아마도 관광을 지역경제의 주력사업으로 볼거리 제공 자원이란 점을 이용한 셈이다. 박물관 여러 곳을 관람해 보았으나 공립박물관인 감귤박물관을 제외하고는 참으로 허술했다. 사설박물관은 관람객도 없었지만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특히 난개발은 타운하우스와 빌라 다가구 펜션 리조트 호텔 고층아파트 등 다양하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주거문화를 개발해 파는 돈벌이의 수단을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미학적인 규제는 있어야 했다. 타운하우스는 마치 제품 찍어내듯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면 모양새가 같은 것끼리 경쟁적으로 들어서서 식상해 보였고 환경과는 괴리되었다. 빌라와 다가구는 본래의 주거문화를 짓밟고 자연과 동화해온 평화적인 질서를 무너뜨린 꼴불견이다. 호텔과 리조트들 역시 아름다운 경관을 해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중문의 고층아파트들 또한 하늘높이서서 아름다운 오름들의 공제선을 가로막는 그 행렬은 탄식뿐이다.

 

환경훼손 사례의 예를 하나만 더 들고자한다. 제주를 대표하여 유네스코에 등제된 성산일출봉을 마주한 섭지코지에 들어선 건축물들이다. 일출봉을 마주하고 있는 섭지코지 후면에 들어선 거대한 리조트들이 줄을 서서 뒤덮고 있다. 눈에 거스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이것들까지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곳의 정상, 봉화대 앞의 유채꽃밭 전면에서 바라본 일출봉 뒷면 전망을 특별히 가로막고 있는 건물이 있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토록 가관인지 자본주의 모순과 일치한 재앙이었다. 이런 모양을 제주인들은 발전으로 생각하며, 정책적으로는 인구 확장의 목표달성을 위한 최선이라고 여기는 것인지 묻고 싶다.

 

정책당국의 고민


다음은 제주의 비싼 물가에도 깜작 놀랐다. 처음에는 관광지의 물가가 좀 심한 편으로 생각되어 재래시장이나 오일장을 일부러 찾았다. 하지만 제주에서 생산되는 지역 특산물 가격마저도 서울보다 비쌌다. 관광객들에게는 현지물가에 학을 뗄 만큼 나쁜 인상을 심어 주었을 것이다. 이는 관광객들만의 고통이 아니라 제주도민들의 삶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여겨진다. 각박해진 상권 문화는 토호들의 순수성마저 인성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상권을 가지고 있거나 토지를 소유한 자들의 생각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듯 자신들의 현지상황을 서울의 명동땅값에 비교하며 우쭐대는 모습이었다.

 

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곳은 부동산 시장이다. 관광산업은 침체의 늪을 헤매는데 천정부지로 오른 부동산들은 그 노림수가 무엇인지 팔리지 않아도 물량은 매일 넘쳐나고 있었다. 수요자는 드문데 국제학교와 신공항 건설계획을 미끼로 하는 판매 전략은 한결같았으며, 그 많은 중개사들의 요란한 움직임만 제주의 활력인양 보였다. 국제학교는 성공적인 느낌이지만 신공항은 쟁점으로 남아 성산을 통과하는 일주도로 양면 갓길엔 공항건설 절대반대라는 깃발이 끝없이 펄럭였다. 문득 CGT(프랑스노총)에서 있었던 노회찬의원 생전의 강연 내용이 떠올랐다. 요지는 강연을 경청하던 한 유학생이 문화정책에 대한 노의원의 생각을 물었던 대답 내용이다.

 

“비행기가 한 대도 오가지 않는 공항을 수천억씩 들여서 짓고 또 짓는 이 나라가, 예술은 가난 속에서 나온다고 굳건히 믿고, 예술에는 단호히 지갑을 열지 않는다. 문제는 산업적 가치를 입증하던 하지 않던, 문화와 예술에 대해서 사회는 일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예술이 건강하게 사회에서 싹트게 하는 것은 정책당국의 역할이다.” 이에 대한 공감은 제주의 정책당국이 문화예술에 무지했던 결과가 무엇인가를 필자가 앞에서 지적한 미학부재였다. 그것은 천혜의 관광자원의 진정한 미학적 가치에 대한 부조화를 헤아리지 못한 상처들이다. 하지만 제주의 신공항 건설계획은 이착륙의 포화상태에 이른 문제 해결과제주도 전 지역으로의 이동시간 단축 해결의지 때문일 것이다.

 

단지 이 문제라면 굳이 환경훼손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조원을 들여 공항건설 계획이 절실한 이유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합당한 답이 나오지 않아서 세운 대안임을 알고 있다. 하자만 문제는 또 다시 찬반충돌이 불가피한 비효율적인 일로 서로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해결을 위해서는 지금의 공항을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라도 확장하는 쪽으로 기획을 바꾸는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싶다. 공항과의 시간 단축은 무시해도 무관하다고 본다. 그것은 가장 먼지역의 이동시간이 기존의 1시간 권이면 나쁘지 않다.

 

불과 10여 년 전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정체성을 무시한 제주문화는 격세지감이 혼재되어있다. 볼거리들도 겉치레만으로는 내용체계가 부실하며 제주다운 문화의 정체성은 화산석 돌담 말고는 불분명했다. 토호들이 주장하는 과거역사의 제주는 수탈에 대한 생존과 항쟁으로 몸부림쳤으며 척박한 땅과 바다 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왔던 것이 전부라고 한다. 가난한 운명을 면치 못한 대물림 속에서 제주인 스스로 제주를 지켜내고 가꾸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자부심이며 한마디로 누구의 지적이나 충고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의 그 가치를 제주인 스스로 누릴 수 있다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마치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닌 것처럼 배타적으로 말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동족상잔의 6.25를 거치면서 한반도는 어디를 막론하고 부유한 곳은 없었다. 제주는 훌륭한 바다 밭이라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제주도를 사랑하는 길손이자 예술인으로써의 충정이지 간섭이나 지적이 아니다. 토호들의 삶속에 천혜유산 오묘가 늘 함께하고 있을 때는 진정한 가치를 모르다가 그 유산이 큰 상처를 입은 뒤에야 가치를 알게 된다면 이미 되돌리기는 늦다. 제주의 진정한 미래는 예술적인 조화이다. 아름다운 제주를 위해 상처를 더 키우기 전에 천혜자원에 대한 미학적 가치조화를 망각하지 말기를 바라며… yoonsan47@hanmail.net

 

*필자/강행원, 화가(동양미학).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