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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작의 신화적 상상력 4]
황금 소의 시대 4 : 유럽-그리스

수군작 | 기사입력 2002/06/28 [02:56]
지난 글에서 나는 기원전 4300~2100년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이집트지역의 황금소 신화를 다루었었다. 이번에는 유럽 그중에서도 그리스신화의 기원에 해당하는 에게해 문명의 신화를 다룰 것이다. 당근 기원전 2100여년경까지의 크레테 섬을 중심으로 했던 미노아 문명의 신화들이 그 주요 대상이다. 아래 간략한 에게해와 미노아 문명에 대한 소개를 먼저 읽어주시길...

에게-크레테-미노아 약사 1
에게-크레테-미노아 약사 2
점성학과 세차운동에 관해서
각 시대별 황도 12궁과 달의 배치

{image2_left}황소자리의 시대에서 우리는 추분의 황소, 하지의 사자, 추분의 전갈, 동지의 물병자리의 중요성을 이미 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를 거쳐서 이젠 유럽쪽의 <황금소의 별자리> 신화들을 살펴볼 차례이다. 사실 인도-유럽피안이라는 언어학적 분류가 말해 주듯이 애초에는 유럽과 인도를 하나로 묶어서 다룰려고 했다. <황금소 별자리> 신화의 인도편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인도가 아니다. 흔히들 모헨조다로 문명이라 불리우는 것으로 아리안족의 인도 침입 이전에 인더스 계곡에서 융성했던 문명이 오히려 <황금소 별자리> 신화의 인도편이다. 게다가 이들 인더스 문명 이후의 아리안족의 정규신화문헌들, 즉 베다들이 분명히 유럽-그리스-북유럽의 유러피언들과 동일한 신화적 패러다임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입증된다. 하지만 최근 신화방에서 맹활약을 보여주신 야소미트라님의 참여와 도움에 힘입어 인도 부분을 별도로 떼어내서 다룰 생각이다.  

여하간 <황금소 별자리>신화 유럽편에서는 일단 그리스 만을 대상으로 했다. 그 외 북유럽의 켈트, 스칸디나비아, 핀, 발틱 지역의 신화들은차후 시간나는 대로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여하간 유럽 지역의 홤금소 신화들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보다 시기적으로 약 500~1000 여년 정도 느린 기원전 4300 ~ 기원전 2100 년경에 걸치는 <홤금소 별자리> 시대의 중반 이후부터 나타난다고 보여진다.

영국 스톤헨지와 크레테의 미노스 문명의 기원전 3100 년경이 그 상한선이며, 2000년경의 미노스의 고왕궁시대가 그 하한선이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이미 거대한 제국과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명멸하던 이 시기에 이들 남북유럽의 유러피언들은 도시국가나 정규화된 왕권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원전 3100년경 북부유럽에서는 처음으로 스톤헨지의 거석문명이 나타난다. 이때 메소포타미아는 에리두를 비롯한 7개 도시국가 등장했으며, 비옥한 물질문명을 이룩하고 있었다. 또한 이집트는 상하이집트가 최초로 통일되어 멤피스 신전에서는 아피스 황소제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현재까지 아무도 스톤헨지의 건축술이 보여준 천문학적 컴퓨팅의 지식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이때보다는 조금 늦지만 기원전 2600년경 남부유럽의 에게해 크레테섬에 미노스문명이 나타난다. 길가메시 신화라든가, 피라미드와 같은 문명에 비할 수는 없지만, 당근 <황소>신화를 통해서 말이다.

{image1_right}크레테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천년경의 신석기 시대부터라고 보여진다. 이들은 우리가 지금 흔히 생각하는 그리스인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유라시아 실크로드 지역의 유목문명 가운에서도, 흑해와 카스피해를 중심으로 한 인도-유러피언들, 즉 후대의 아리안(기원전 20~15세기), 전차를 처음으로 등장시킨 힉소스(기원전 18~15세기), 히타이트(기원전 17~13세기), 스키타이(기원전 7~3세기)와 같은 코커서스계(백인종)의 선조들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근 유라시아 실크로드 유목문명의 또 하나의 대표적 인종이 바로 한국인이 속한 몽골로이드(황인종)계 알타이인종이다) 이들의 원시적인 진흙인물상들은 모계제 사회에서 보이는 땅의 어머니신, 풍요의 여신 숭배신앙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청동기 시대의 개막과 함께, 크레테에는 제우스-유로파 신화로 알려진 미노스 왕의 시대가 열리는데, 이로 인해 크레테 섬의 이 문명을 미노안 문명이라고 부르며. 기원전 2600~1100년 경까지 남유럽 에게해 문명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이후 기원전 1400 년경, 미노안 문명은 이후 호머 서사시의 트로이 전쟁으로 유명한, 그리스 본토로부터의 미케네인들의 침입으로 일차 대체되고, 이후 다시 기원전 1100년경의 또 다른 인도유럽어족인 도리스족의 침략으로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미노안 문명의 절정기는 기원전 18~16 세기였다. 고대 사가들은 크놋소스의 지배자였던 미노스(왕)에 대해서 엄청난 찬사를 표하고 있다. 현명한 법의 제정자, 공정한 심판자(이로 인해 그는 사후세계의 신인 하데스의 보좌가 된다), 위대한 바다의 지배자... 호머는 그를 제우스의 동반자라고 표현했으며, 투키디데스는 미노스 왕이 그의 함대를 이끌고 에게해를 평정한 최초의 사람이라고 기록한다. 테세우스 신화의 역사적 사실들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플라톤은 아티카의 시민들은 미노스에게 진중한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다의 지배권이란 무릇 크레테의 지리적 위치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크레테는 3개의 대륙을 잇는 요충지였다. 아시아(메소포타미아)-아프리카(이집트)-유럽(미노스). 3대륙의 문명이 뒤섞이고, 3대륙의 인종들이 뒤섞임으로서, 이후 그리스문명 전체를 특징짓는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세계의 철학, 오늘날 까지도 유럽문명 전반에 그 신섬함과 매력 그리고 다양성과 순발력으로 감동을 주는 새로운 예술양식이 발전되어 나왔다. 호머의 서사시는 크레테의 거주자들이 최소한 가자의 언어를 사용하는 5개의 부족들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펠라스기아 부족pelasgians, 원-크레테 부족 eteocretans, 카이도니아 부족kydonians, 에게 부족(미케네인들)achaeans, 도리스 부족dorians이 것이다. 또한 호머는 크레테가 90여개의 도시들로 이루어진 대단히 인구밀도가 높은 사회였다고 적고 있다. 그 주용한 도시들은 크놋소스, 파에스토스, 고르티스, 리토스, 카이도니아 그리고 뤼티온이다. 호머의 이야기처럼 현재의 지명에 따르자면, 크노스스 knossos, 파에스토스phaestos 말고도 말리아malia, 자크로스zakros에서도 미노안 왕궁들이 발굴되었다. 다음은 라이코스 백과사전에서 발취한 미케네인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스 민족은 bc 2000년 조금 뒤에 다뉴브강 유역으로부터 남하하여 그리스 본토에 들어갔는데, 그들은 이곳에서 이미 옛날부터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하여, 에게해역에 꽃을 피운 고도의 문화에 접하였다. 그들이 이것을 받아들여 이룩한 것이 그리스 본토인 펠로폰네소스의 미케네를 중심으로 한 미케네 문화이다."

bc 1450년경에 그들은 이미 크레타섬을 점유하고 이 섬의 문자를 써서 만든 문서가 상당수 남아 있다. 이것이 그리스어 최고(最古)의 문헌이다. bc 14세기에는 그들의 세력은 에게해(海) 전역에 미쳤다. 그러나 bc 1200년경에 북방으로부터 일대 민족이동의 물결이 밀어닥쳤는데, 후에 도리스인(人)으로 불린 그리스인을 중심으로 한 서(西)그리스인이 중부 그리스와 펠로폰네소스에 침입하였다. 그리하여 이제까지의 동(東)그리스인은 추방되기도 하고 정복당하기도 하였으며, 새로 들어온 그리스인과 합류되기도 하였다.

그리스로서는 확실히 혼란의 시기였으나 단순한 황폐의 시기만은 아니었다. 그 사이 그리스인(人)은 새롭고 합리적인 단음표기(單音表記)의 조직으로 된 알파벳을 페니키아인으로부터 빌려 쓰던 문자에서 창조하였다. 그 동안 그들은 기하학적 무늬의 토기(土器)를 만들었는데, 아직 유치하고 세련되지는 못하였으나 이미 고전시대 예술에의 제일보를 내디딘 것이었다. 소아시아 연안지대의 그리스 식민지인 이오니아와 아이오리스에서는 그 혼란의 영향이 적어, 이곳에서 최초의 도시국가(都市國家)와 새로운 항해통상(航海通商)과 함께, 최초의 서사시와 서정시가 일어났다."

미노아 문명에서 나오는 황소신화는 크게 3가지이다. <유로파>가 그 하나이고, <파시파에>가 그 둘째이고, <아리아드네>가 그 셋째이다. 이 셋은 시기적으로도 앞뒤로 연결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최고신이다. 그는 여성편력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그만큼 제우스가 그리스 전역의 지역성을 통합하면서 정규화된 신격이라는 것의 반증이다. 아래는 제우스의 여성편력의 내용들이다.

제우스 + 메티스 = 아테나  
제우스 + 테미스 = 호라, 모이라  
제우스 + 에우리노메 = 카리스  
제우스 + 데메테르 = 페르세포네  
제우스 + 므네모시네 = 뮤즈  
제우스 + 레토 = 아폴론, 아르테미스  
제우스 + 헤라 = 아레스, 헤베, 에일레이티아  
제우스 + 마이아 = 헤르메스  
제우스 + 이오 = 에파토스  
※ 여성과 관계치 않고 '헤파이스토스'와 '아테네'를 낳는다  

이제 여기에 <제우스 + 유로파 = 미노스>를 추가하면 미노아 문명 역시 제우스의 관할 아래 들어가는 것으로 정리된다. 고고학적으로 미노아 문명이 <유로파>신화 이전에는 모계제인 뱀-여신이 최고신었던 점으로 확인되는데, 제우스는 이러한 최고여신의 신격을 대체하는 가부장제적 도시국가의 성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우스가 <유로파>를 납치하여 크레테 섬으로 왔다는 신화의 물질역사적 층위이다.이처럼 제우스는 원래 인도-유러피언계의 신으로써, 인도 아리안 베다의 데바스devas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흑해-카스피해 지역의 인도유러피언들이 기원전 6000 년 경부터 크레테로 이주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데바스>를 가져왔다.

물론 유로파 신화에서 유로파는 페니키아 왕 아케노르의 공주로 나온다. 페니키아가 바로 현재의 레바논을 포함한 시리아 등지에서 활동한 우가리트 계열로서 광의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인 점을 감안하면, 유로파는 애초의 이쉬타르=이난나=이시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후대에 미노아의 멸망과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의 등장으로 데바스는 제우스로 변모했다고 여겨진다. 다시 미케네가 몰락한 기원전 15세기 이후 지중해의 패자가 된 페니키아 세력을 통해서 <이쉬타르-이시스> 숭배가 에게-그시스 신화 속에 유입되었고, 이후 다시 아테네-스파르타-카르타고의 그리스 문명의 부활 시기에 페니키아 이쉬타르는 <제우스가 납치한 유로파>로 정규화된 것으로 나는 본다. 그리고 이후 유로파라는 이름에서 현재의 유럽이란 지명이 나온다.

이처럼 신화 속 신격들의 정규화는 반드시 해당 지역성의 헤게모니 장악과정을 통해서 변형된다. 그러므로 수천년이 흐른 후대에 와서는 그 신화적 원형들의 지층이동을 짐작하는 수 밖에 없다. 하여간 <유로파 신화>에서 제우스는 인도 아리안계의 데바스이고, 유로파는 페니키아의 이쉬타르라는 것만 확실히 하자. 흰 황소로 변신한 제우스가 페니키아의 공주 유로파를 납치해서 크레테 섬으로 왔으며, 크레테 섬에서 유로파는 최초의 왕인 미노스를 낳는다. 미노스는 이후 약 1000 여년간 지중해의 지배자가 된다.

다음으로는 <파시파에와 미노타우루스 신화>이다. 미노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그의 왕권의 정당성으로 선물한 황소의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아낀 나머지 희생의 제물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에 분노한 포세이돈의 저주로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가 황소에게 욕정을 품게 된다. 미노스가 아테네와 전쟁으로 크레테를 비운 사이, 명장 다이달로스는 파시파에의 간청으로 인공암소를 만들어 파시파에에게 준다. 파시파에는 인공암소 안에 들어가서 포세이돈의 황소와 교접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미노스는 파시파에의 임신을 기뻐하지만, 태어난 아들 미노타우루스 또는 아스테리온은 우두인신의 괴물이다. 이에 미노스는 명장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을 만들어 미노타우루스를 감금한다.

여기서 보듯이, 흰황소 제우스-유로파의 신화가 포세이돈의 황소-파시파에로 변주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유로파 신화>에서의 미노스는 곧 <파시파에 신화>의 미노타우루스이다. 이것은 황소 별자리 시대에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었던 황소 신=사제=왕과 신전 여사제=신성한 창녀와의 결합 제의를 표현한다고 생각된다. 즉, 이것은 이집트에서는 아피스=오시리스=파라오와 하토르=이시스=여왕의 성결합이다. 또한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길가메쉬와 이쉬타르의 결합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의 자식들이 부활한 파라오=호루스이자, 두무지=탐무즈인 것이며, 에케 크레테에서의 미노스=미노타우루스인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아리아드네 신화>이다. 미노타우루스는 식육괴물인 바, 미노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는 어린 소년소녀 14명을 매년 미노타우루스의 공물로 크레테에 보내야 했다. 이에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여기서 '에게'라는 이름이 나옴)의 아들 영웅 테세우스가 등장하여, 미노스 왕의 딸인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미노타우루스를 처치한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낙소스넘에서 동행한 아리아드네를 디오니소스 신에게 넘긴다. 이로 인해 아리아드네는 디오니소스신의 부인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비로소 황소자리 시대가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황소는 도살된다. 그리고 디오니소스가 등장하는데, 디오니소스가 바로 황소자리를 이어받는 숫양자리 시대에 와서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와 동일시 되었음을 기억해두자. 즉 <아리아드네 신화>는 기원전 2100년 이후 황소 별자리 시대가 끝났음을 그 원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황소 죽이기를 도운 아리아드네가 디오니소스의 부인이 된다는 것은, 이후 디오니소ㅡ엘리쉬안 제의-미트라 제의 등으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사상으로까지 연결되는 숫양 별자리 시대의 신화들 속에서, 항상 부활하는 숫양 최고신의 부인 내지는 여사제로서 배치되는 것을 뜻한다.

신화에서는 아버지-어머니-아들(딸)의 배치는 이처럼 뒤섞여서 나타난다. 정상적인 도덕윤리 상으로는 근친상간이자, 반인륜적 이야기들이지만, 신화에서는 버젓이 그러한 패륜들이 자행된다. 그 이유는 지역성을 하나로 통합하며, 주기적 순환과 반복의 운동을 형상화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라 [화랑세기]의 근친상간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경악하는 것, 또는 이집트나 일본의 남매간-사촌간 결혼을 보며 얼굴을 찌푸리는 것은 이러한 신화적 이해를 바탕에 둔다면 완화될 수 있다. 현실 세계의 것을 영적 형상으로 재창조한 것이므로... 오히려 신화의 세계에서 우리는 현실 세계의 물질적 제도적 반인륜성을 승화시키게 된다.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에 있는 미노스 왕의 궁전은 1천개가 넘는 방을 가진 3~4층의 웅장한 건축물이다. 방과 복도의 벽에는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들로 채워져 있는데, 그 중에서 돌진하는 황소와 고계를 넘는 젊은이들이 그려진 그림과 황소를 도살한 후 의식을 올리는 그림은 무척 유명하다. 실제로 황소 머리 조각들은 다양하게 발견되며, 무엇보다 크노소스 궁전의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황소뿔 모양의 돌기들은 특징적이다.

또한 비록 미노아의 것은 아니지만 미케네시대의 사자의 문은 특히 중요하다. 우리가 잘 알듯이 황소와 사자와 전갈과 물병이 동일한 황소별자리 시대의 상징들이기 때문이다. 이 사자의 문은 다른 유물에 나오는 신성한 땅의 정상에 서있는 여신을 수호하는 두마리의 사자와 동일한 포즈를 취한다.

이 여신이 바로 두마리의 뱀을 손에 든 땅의 어머니이며, 그녀의 배우자가 바로 크레테섬에서 태어났다는 제우스, 흰황소이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미노스왕의 옥좌이다. 가장 오래된 서양문명의 왕좌로서, 그것은 사자 몸에 독수리 머리와 날개를 지닌 그리핀 두마리가 좌우에 새겨져 있다.

무엇보다 반드시 잊지말아야 할 것은 크레타섬은 화산지대로서, 실제로 미노아문명의 몰락을 갑작스런 화산폭발로 인한 것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소위 아틀란티스 신화) 황소 별자리 시대에 태양이 하늘의 황소였음을 기억한다면, 고대인들은 이 화산 폭발로 인한 지진을 하늘 황소가 뿔로 땅을 들이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밖에도 술잔, 그릇, 투구, 컵, 술병, 진흙토우들, 도장 등에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황소들의 이미지를 볼 수있다. 이 모두는 황소별자리 시대의 하늘의 태양이며, 땅의 번식과 풍요를 낳는 지모신의 배우자(아들)이며, 제우스이자, 제우스의 아들인 사제=왕인 것이다. 크레테섬의 이다 동굴이 제우스의 탄생지로 성역화되었던 것을 기억하자. /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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