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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반론] 공희준씨의 취화선 비판에 대하여

| 기사입력 2002/07/02 [16:31]
* 본문은 본지 공희준기자의 '세상이 뭐라 하든 나는 축하하지 않을 것이오'(대자보 85호)라는 기사에 대한 독자반론입니다. 대자보는 열린매체로서 독자 여러분들의 반론을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image2_left}처음엔 글을 잘 보았습니다.  칸 영화제 수상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서는 저 또한 마뜩치 않게 생각하고있던 터에 제목을 보고 반가움조차 일었지요. 그러나 다 읽고난 지금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울 뿐더러-솔직히 이야기하면-도대체 왜 읽었는지 허탈감마저 들고 있습니다.

먼저 당신은 '공인'이란 단어에 딴지를 걸었습니다. 저 또한 예술작품에 공인이란 단어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들은 황당하기 그지 없더군요.  

[관련기사]
공희준, 세상이 뭐라 하든 나는 축하하지 않을 것이오, 대자보 85호
배정원, [반론] 임감독의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은 축하할 일이다. 대자보 86호

당신은 평론가들이 임권택 감독에게 붙인 '작가주의'라는 라벨에 시비를 걸었습니다. 전 임권택 감독이 작가라고 판단하지만 당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걸고 넘어진 이유가 저를 실소케했습니다.

'한국영화판에서는 블록버스터급 규모인 70억원이라는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가며 만드는 영화를 과연 순일한 무균질의 작가주의 영화로 분류할 수 있을까 하는 곤혹스런 난제를 떨치기 힘들었던 탓이다.'

미안하지만 작가 영화인가, 아닌가는 제작비 규모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물론 네오 리얼리즘처럼 저예산의 악전고투를 거치며 뛰어난 작가 영화가 탄생하기도 했지만 저예산 영화가 곧 작가 영화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당장, 작가 영화를 주창한 프랑스의 평론가들이 제일 먼저 들고 나온 영화들이 바로 헐리웃의 스튜디오 시스템하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아니었습니까?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때, 카이에 뒤 시네마가 '작가'로서 열렬히 옹호했던 팀 버튼의 필모그라피는 블록버스터 영화로 점철되어 있지 않던가요?  

제작비가 많다는 예를 '작가 영화 여부에 대한 의혹'으로 드시니 좋은 예가 있습니다. 혹시, 브레송의 '호숫가의 란슬롯'이나 칼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열정'에 대해 작가 영화로서 의혹을 갖고 계십니까? 두 영화 모두 많은 제작비를 들인 영화입니다. 또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사극'이란 점입니다. 영화인이 아닌 님은 왜 '사극'은 돈이 많이 들수밖에 없는지를 모를 겁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자신이 모르는 것을 남탓으로 가리려 든다면 그건 죄입니다.

안타깝게도 가면 갈수록 당신의 글은 '죄'의 혐의가 늘어납니다. 다시 님의 글을 그대로 옮겨놓겠습니다.

'아무리 충무로에 자금이 풍부히 돌고 투자자가 넘쳐 난다지만, 여전히 무수한 젊은 감독들과 재기를 노리는 중견 감독들이 제작비를 마련하고 프로듀서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현실에서 한국영화계의 실력자 1~2위를 다툰다는 이들이 '국제영화제 수상에 목말라' 하는 노 감독의 개인적 소망을 이루고자 흥행과는 무관하게 거액을 선뜻 내놓는 다는 것이, 동기의 순수함과 인간관계의 화통함을 떠나 상식적으로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이건 '작가 영화로서의 자격' 시비가 아닌 인신 공격입니다. 전 우선 '그놈의 칸 이야기!'라고 호통치셨던 임권택 감독이 얼마나 '국제 영화제 수상에 목말라'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알 방법도 없을 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전 임권택 감독의 속마음보다 작품에 나타난 무의식과 욕망, 그리고 그 표현으로서의 내러티브나 스타일, 연기에 더 관심이 갑니다. 그런데, 님은 어떻게 임권택 감독이 '수상에 목말라'했는지, 그 속마음을 뭘로 파악했는지 참 궁금합니다. 혹시 역술인이십니까?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왜 그게 '작가 영화'에 대한 평가 잣대가 되어야 합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작가 영화인가, 아닌가는 정확히 작품을 놓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도박빚을 갚기 위해 글을 썼던 토스토에프스키의 소설들이 '도박빚용 소설'로 폄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렇지만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작품'에 대해 논하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데, 뒤 따르는 글들을 보며 저는 점점 더 기가 차기 시작했습니다.

' 대중적 인지도와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가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캐스팅 대란 속에서도 임권택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선뜻 출연을 약속한 국내 최고 연기자들의 열연에 힘입어 여하튼 국민감독의 작가주의 영화는 화려하게 탄생했고, 예상대로 국내흥행에서는 뚜렷한 호조를 기록하지 못했다. 외려 임권택 감독의 막내딸 뻘인 신인급 감독이 평생 극장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8순을 바라보는 신인(?) 여배우를 기용해 연출한 영화가 흥행돌풍을 일으키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수상과는 무관하게 ‘취화선’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애매모호한 위치의 영화로 규정 지어질 전망이다. 일반공중이 인정한다 함은 곧 흥행에 성공함을 뜻한다. 앞으로 있을 해외시장에서의 흥행추이는 예측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취화선의 신통치 않은 박스오피스 성적은 최소한 국내시장에서만큼은 영화가 일반공중으로부터 별로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함을 반증한다. 수상을 계기로 개봉관 수를 확대하는 부산을 떨고, 중간고사를 마친 각급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하여 흥행스코어가 일정 부분 높아지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이것은 영화 자체의 힘이라기 보다는 영화제 수상의 산물이고 언론보도가 낳은 홍보효과의 결과물이다.'


이제 당신은 '작가영화의 잣대'를 어이없게도 유명배우 캐스팅과 흥행에 들이대고 있습니다. 작품을 논하고자했다면 당신은 '유명'배우가 아니라 유명'배우'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즉, 스타로서의 최민식이 아니라 배우로서의 최민식의 페르소나가 이 영화에 적절히 녹아들었는지, 그의 연기가 어떤 새로움을 갖고 있는지, 임권택 감독 영화에서 설명적 지식인 역할을 도맡아 하는 안성기의 페르소나는 적절한지 등등에 대해 말입니다. 제작비의 많고 적음이 작가 영화 여부에 아무 관련이 없듯, 스타 캐스팅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스타를 캐스팅하고도 작가 영화로서 추앙받는 작품을 무수히 들이댈 수 있습니다. 당장 가장 위대한 작가로서 인정받고 있는 고다르도 제인 폰다, 브리짓드 바르도를 캐스팅했었습니다. 아울러 '흥행'으로 대중의 공인을 받지 못했다는 말은 왜 들어갔는지 저로선 도저히 요령부득이었습니다. 솔직히 전 이 대목부터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당장 '가장 애매모호한 영화'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전 당신이 '가장 애매모호한 평'를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취화선이 '작가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하려는 것입니까? 아니 '흥행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비판하려는 것입니까? 당신은 영화에 '공인'을 하려는 한국 문화에 대해 분개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취화선'이 '흥행'이라는 '대중의 공인'을 받지 못했으므로 '애매모호한 영화'라고 비판하려는 것입니까?

그런데, 그 뒤의 글을 보며 전 마지막으로 기대를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혹시, 이제부터라도 '작품'이야기를 하나,싶어서 말입니다.  

' 진정성 있는 작가주의는 세론의 평판과 세상의 인정 여부에 관계 없이 감독의 세계관이 진솔이 투영되고 투철하게 발현되었음을 의미할 게다.'

맞는 말입니다. 단, 어떤 평론가들은 '스타일'에 좀 더 주목한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지만요. 어찌되었든 당신은 분명 '작가주의는 감독의 세계관 반영 여부'라고 말햇습니다. 이는 '취화선'에 대한 비판이 바로 작품에 대한 평가로 시작되어야함을 당신도 알고 있구나 싶어서 기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단 한줄도 못가 당신은 또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국가나 공공단체’가 인정한 영화, 즉 공인된 영화에 작가주의 영화라는 레테르를 갖다 붙이기는 영 어색하다. 국가나 공공단체가 인정한 영화를 우리는 흔히 관제영화나 어용영화라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대한뉘우스’와 ‘배달의 기수’가 있다.'

당신은 당신의 비판이 이해가 됩니까? '작가 영화의 여부는 작품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는 작품 이야기는 쏙 빼놓고 외부에서 '공인'했으니까 작가주의 영화로 말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하니 말입니다. 거기에 '대한뉘우스'와 '배달의 기수'는 또 뭡니까? 취화선을 국립 영화 제작소에서 제작했습니까? 아니,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작가의 작품은 존재합니다. 당장 2차 대전 당시 영국의 다큐멘터리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것들은 그야말로 '대한 뉘우스'류의 작품들입니다. 그래도 대개의 사람들은 작품으로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작품 속에 작가의 숨결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작가의 작품'들은 '공공단체'인 필름 보관소나 미술관, 박물관들이 '공인'하여 사들입니다. 그 공공단체들이 공인했으므로 그 곳에 보관되는 필름들은 전부 작가의 영화가 아닙니까? 당신은 작품에 대해 '공인'하는 분위기가 마음에 안든다고 하더니, 어처구니없게도 그 '공인'의 권위에 눌려 그러므로 작품이 잘못되었다고 화풀이합니다. 극단적으로 제가 반문해볼까요? 어느 명사가 당신의 글을 읽고나서 '포르노식 글쓰기'라고 평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내가 당신의 글이 어떤 내용인지는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저명인사가 '포르노식 글쓰기'라고 명명한 글에 진지한 영화평이라고 레테르를 갖다 붙이긴 영 어색하다'고 쓰면 당신은 객관적이라고 박수를 치시겠습니까?

혹시나 해서 당신의 글 뒷부분을 더 읽어보았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영화의 경쟁력 운운하는 글들은 그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역시 작품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외화벌이를 못한다고 해서 작품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역시 여기서도 작품 이야기는 없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언제쯤 작품 이야기를 할 것입니까?  아니, 작품 이야기를 할 의도는 있습니까? 지금까지의 대목을 놓고 본다면 당신은 세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흥행영화를 예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중요한 것은 작가 영화냐, 아니냐가 아니라 산업으로서의 영화를 보증하는 흥행에 영화의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밑천 떨어지니 아예 인신공격으로 다시 돌아가시는군요.

'흥행실패를 예견하고도 70억원이란 돈을 퍼부어 국제영화제 수상을 대망해온 감독에게 상을 안겨준 영화라면 그 공은 감독이 아니라 제작자와 투자자에게 돌아가야 제격이다. 물론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국민감독에게 뤼미에르 극장의 붉은 카펫을 밟게 해주고자 하는 지인들의 선의와 우정은 치하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붉은 카펫을 걸어가는 임권택 감독의 뒷모습에서 당당한 정복자의 위엄보다는 옛날 진상품을 바치기 위해 자금성 계단을 올라가던 조선사신의 쓸쓸한 잔영을 떠올린다.'

70억 투자해서 칸 감독상탔으면 그게 무슨 감독이 잘해서냐,는 비아냥거리시는데요, 공희준씨. 저랑 내기 하나 할까요? 칸 영화제 수상을 목표로 700억 줄테니 당신이 3년내에 영화 하나 제작해서 수상 못하면 7000억 돌려주는 걸로요. (물론 농담입니다.)  물론, 제작자와 투자자들은 칭찬받을만 하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 논리대로라면(솔직히 이야기하면 당신의 논리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사실 비판받아야 합니다. 흥행 여부에 더 목매달아야 할 제작, 투자자가 얼이 빠져 사심에 가득한 감독에게 놀아난 꼴이 됐으니까요. 그런데, 전 참 의아합니다.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제작, 투자자도 흥행만이 아닌 작품을 보겠다며 투자했는데 제작자도 아닌 당신은 작가 영화 여부에 딴지를 걸겠다더니 작품에 대해서는 계속 침묵한채 부진한 흥행과 70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만 물고 늘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전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70억원이란 제작비가 이 작품의 작품성과 관련해서 그렇게 큰 문제입니까? 그것보다 더 많은 제작비 들이고도 아예 칸 못가는 '작품'들 수두룩 합니다. 당신은 혹시 저예산 독립 영화만이 작가의 영화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까? 그건 당신의 자유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작가 영화의 잣대로서 '작가의 세계관 투영 여부'에다가 그 이야기를 덧붙여야했습니다. 당신 글의 일관성을 위해서 말입니다.

결국 저는 당신이 그토록 시비를 걸고 있는 '작가 영화 여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비판을 단 한마디도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작비, 스타 캐스팅, 언론의 반응과 같이 작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야기만 줄줄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당신 글 어디에서도 '작가 영화'로서의 중요한 잣대인 스타일, 연기, 내러티브의 독창성, 미장센 등은 단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전 솔직히 놀랐습니다. 당신은 놀랍지 않습니까?) 마지막 부분에 와서야 난 다시 내가 왜 당신의 글을 읽기 시작했는가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처음 제목과 몇줄 읽으며 반가왔던 이유를 그제야 다시 깨달았던 것입니다.

'칸 영화제 수상은 임감독의 개인적인 영광을 떠나 국가적 경사일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제 수상을 목표로 작품을 주조하는 과정이 히딩크 감독이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조련하는 방식처럼 체계적 기획의 성격의 짙고, '축하 분위기 또한 마치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딴 것처럼 호들갑스럽고 일회성 이벤트적이라면 이는 참다운 예술영화와 영화예술에 대한 오마주로 간주하기 어렵다.'

{image1_right}앞부분에 적은 '체계적 기획'이란 단어는 역시 당신이 영화의 미학적 가치는 그만두고 한국 영화의 제작 환경에 대해서도 뭘 모르고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획' 영화란 프로듀서가 특정의 목적-대개는 흥행-하에 영화의 각 요소를 사전에 기획하는 영화입니다. 쉽게 예를 든다면 '조폭' 영화란 아이템을 잡은 뒤 사회적 이슈화를 위해 페미니즘도 넣고, 타겟 관객층은 어디에 두고 이를 위해 그 계층에 인기있는 누구를 배우로 캐스팅하고...어쩌고 한 다음 시나리오 작가 불러서 자신의 기획대로 쓰게 만들고 가장 만만하다고 판단되는 감독 하나 잡아서 연출케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따라서 영화 제작에 있어 감독보다 프로듀서의 힘이 더 강하게 발휘됩니다. 그런데 취화선은 임권택 감독 자신이 안을 냈을 뿐더러 감독 자신이 현장에서 강한 권한을 가지고 많은 요소를 결정하여 찍은 영화입니다. 기획 영화인데 감독이 현장에서 맘대로 시나리오를 바꾼다?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쓴 '체계적 기획'이란 표현은 틀렸습니다. 차라리 '칸 영화제 수상을 위한 전략들이 보인다'고 표현했다면 약간은 고개를 끄덕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따옴표친 뒷부분은  백퍼센트 동의합니다. 칸 영화제 수상을 대하는 국내의 반응은 문제가 많을 뿐더러 이후 한국 영화나 작가 영화의 발전에 아무 도움이 안된다고 저 또한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당신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 글의 마지막 대목을 볼까요?

‘취화선’을 만드는 데 소요된 제작비로 가칭 ‘임권택 창작기금’을 조성해 영화감독을 꿈꾸는 후학들에게 국민감독의 지혜와 경험을 전수하는 장기적 사업에 투자했다면 훨씬 의의 있는 프로젝트가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칸이 뭐라 하든 아카데미가 뭐라 하든 나는 나 임권택이오”라고 자신감 있게 포효하는 국민감독을 기대했다면 이는 국외자의 지나치게 호사스런 바람이었을까.'

결국 당신은 다시 인신 공격으로 글을 끝맺습니다.  이제는 악쓰는 것 같아 보기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임권택 감독이 '임권택 창작기금'을 만든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분이 그걸 만들지 않고 자기 작품 만들 욕심을 더 낸다고 해서 전혀 비판받을 일은 아닙니다. 감독은 작품 만드는 걸 우선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작가'와 거리가 먼 '싸구려 감독'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런데도 영화를 만들지 말고 후배들 돈이나 대줘라는 말, 임감독을 작가로서 인정하든, 안하든을 떠나 너무 심한 농담아닙니까? 차라리 작품에서 더이상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없으니 은퇴하시지요란 말이 더 당당하지 않을까요?(이런 말을 하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당신의 글이 어떠했는지, 왜 문제인지 하나도 밝히지 않은채 '공희준씨는 영화평을 쓰는 시간에 차라리 국가가 창작 후원자로 나서길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받으러 돌아다니는게 작가 영화 융성에 더 도움이 되겠다는 아쉬움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린다면 기분이 어떠시겠습니까?

공희준씨.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전 당신 글을 읽으면서 속으로 실실 웃었고 또 슬퍼졌습니다. 실실 웃었던 이유는 영화에 대해서는 개나 소나 글을 쓰고 평을 하는구나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영화에 대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미학적 측면에 주목해서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제작 환경에 대해 해설할 사람도 필요하며 영화의 사회적 맥락은 물론 영화를 둘러싼 사회적 반응도 좋은 글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글에 책임을 진다면 자신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려는지는 분명히 해야합니다.

과감하게 이야기하자면 난 당신이 영화의 미학에 대해 무지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당신글에서 '작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당신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쓸 수 없다는 이야긴 아닙니다.

난 당신이 하고싶었던 이야기는 '취화선'을 둘러싼 사회적 반응이었으리라고 짐작합니다. 좋은 소재입니다. 또 앞에 밝혔듯이 저 또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터트려야할 사회적 반응에 대한 불만을 엉뚱하게도 취화선이란 작품과 임권택 감독에게 쏟아붓습니다.

충고한다면 당신은 이렇게 글을 써야 했습니다. '난 작품으로서의 취화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취화선이 작가 영화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그러나 취화선을 둘러싼 여러 매스컴과 사회의 반응이 과연 그들 스스로 이야기하는 '작가주의 영화'에 합당한 것인지는 짚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랬다면 저는 흔쾌히 당신 글에 동의했을 지도 모르고 최소한 이렇게 긴 시간 반론을 쓰는 고생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친김에 슬펐던 이유도 말씀드리죠. 난 당신 글에서 이른바 지식인의 오만을 봅니다. 영화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그 반응에 대해서는 딴지를 걸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 지식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만으로 그 지식이 포괄할 수 없는  작품과 작가의 영역에 대해서까지 함부로 난도질해대는 오만말입니다. 공희준씨. '영화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분석하기 어렵다. 만든다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그렇다.'라고 밝힌 메츠의 글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요. 그리고 자신이 좀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작품과 감독에 대해 말하는 자신이 과연 한국 영화나 문화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십시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영화를 분석할 수 없어도, 아니 작가주의 영화가 뭔지 알지 못해도 얼마든지 취화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좋은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글이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쓰여졌다면 자기 과시용 허영이 되기 쉽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무지를 그 대상에게 떠넘긴다면 그것은 글쓰는 사람의 무지를 넘어 범죄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본문은 원래 지난 6월 25일 대자보 독자마당에 올려져 있던 글입니다. 편집에 수정가필이 전혀 없었음을 알려드립니다(원문보기)
* 흠님은 대자보 편집부에 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월간 [인물과 사상] 1년 정기구독권을 드리겠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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