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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준크의 눈] 미스 월드컵과 여자 축구
이런 탱크탑 저런 탱크탑

공희준 Soccer Jockey | 기사입력 2002/07/05 [21:52]
{image1_left}2002 월드컵을 통해 가장 뜬 사람은?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한 히딩크 감독도, 지지도의 급상승으로 유력한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선 정몽준 축구협회장도 아니다. 오빠 부대의 우상으로 떠오른 송종국과 김남일도 아니다. 주인공은 대담한 노출패션과 쌍꺼풀 수술이 다소 풀린 듯한 뇌쇄적 눈빛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여러 스포츠 신문과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등장하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여인이다. 언론은 묘령의 이 아가씨에게 미스 월드컵이라는 왕관을 씌워줬다.

스포츠 신문 홈페이지에서 미스 월드컵과 대면하는 순간 이 아가씨 '선수'구나 하는 직감이 느껴졌다. 90년대 이후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의 신체노출이 상당히 과감해졌다고 하나 평균적인 여염집 규수가 붉은 악마 셔츠를 잘라낸 아찔한 탱크탑을 입고(혹은 살짝 걸치고) 내일 아침 전국의 신문 가판대에 자기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실릴 것을 뻔히 알면서 카메라 앞에서 도발적인 포즈를 취할 정도는 아니라고 믿는다. 강남의 물 좋은 장소에 가면 훨씬 적나라하고 야시시한 광경이 많다고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들의 사적 영역에서의 드러냄과 공적 공간에서의 노출이 일치하는 사례는 지극히 드물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혹 집 안과 집 밖의 신체노출과 일터와 놀이터의 옷차림에 차별성이 없는 여자들이 주변에 있거들랑 부디 내게 소개해주시라. 나도 야한 여자가 좋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융합현상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연예와 운동경기가 결합한 스포테인먼트는 앞으로 급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다. 자본주의 사회가 지금 당장 종언을 고하거나 인류 전체가 유혹의 시험대에서 미동도 하지 않을 만큼 수양에 매진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대중문화산업의 세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스 월드컵이 전직 백댄서이든 현직 가수 지망생이든, 혼자 힘으로 연예인이 되고자 애쓰는 소박한 옆집 아가씨든 스타마케팅에 착수한 전문기획사의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철저한 기획상품이든 상관하지 않겠다. 미끈한 다리와 볼륨 있는 바디라인을 과시하는 젊은 처자와 만나는 것이 나는 대단히 즐겁다. 겉으로는 성의 상품화를 입에 게거품을 물고 성토하지만, 이면에서는 친구들과 상품 아닌 상품의 솜털까지 세밀히 분석하며 불순한 상상으로 일탈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심했다. 미스 월드컵의 자태는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프로페셔널 하다. 프로는 아름답지만 진정한 프로는 꾸미지 않아도 빛나는 법이다. 온 국민이 주시하는 한국팀의 경기가 열리던 날, 수많은 사진기자들이 몰려든 틈을 절묘하게 포착해 민망한 옷차림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 미스 월드컵의 단독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길거리 캐스팅이 빈번해지고 이런 경로를 밟아 연예계에 진출한 스타들이 늘어나면서 연예인을 지망하는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이 꽃단장을 하고 방송국 관계자들이 자주 찾는 거리를 의도적으로 배회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비판 일변도로 백안시할 사안은 아니다. 미스 월드컵이 스타 연예인으로 발돋움하고자 매진하는 장면에서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읽는다. 그렇지만 영업에도 금도가 있고 장사꾼도 지킬 것은 지킨다. 독일과의 준결승전이 진행된 6월 25일은 한국전쟁 발발 52주년이었다. 높은 곳에서 낯설게 군림하던 태극기를 본인의 미적 취향에 따라 다양한 의상과 개성 있는 응원복으로 재단해 입는 것은 신세대 특유의 재기발랄하고 신선한 패션감각과 탈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 무척이나 대견스럽다. 하지만 미스 월드컵의 그 날의 의상 코디는 좀 심했다. 튀기 위한 오버가 지나친 것이다.

매니지먼트 기획사가 스타를 키우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깜짝쇼 연출은 불가피하다 해도 과다노출이라고 밖에는 부를 수 없는 탱크탑 복장으로, 그것도 한국전쟁이 발발한 당일을 거사일로 정해 마케팅을 펼친 상술은 몰염치의 극치다. 엄청난 특종이라도 잡은 냥 손가락에 쥐가 날만큼 셔터를 눌러내고, 이걸 사이트 정문과 신문 1면에 큼지막하게 편집해 올린 언론기관 종사자들의 몰상식한 작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단란주점이나 룸살롱도 현충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즉자적으로 사는 나란 인간도 5.18 같은 날에는 성인 사이트 같은 곳에 접속하기가 왠지 망설여진다. 미스 월드컵 제조과정을 보면 도무지 찜찜한 감정을 숨기기 어렵다.

미스 월드컵에 관한 관심의 백 분의 일이라도 여자축구에 기울여 보라. 여성의 가슴을 싫어할 남자는 없을 게다. 나는 연예계 데뷔작업의 일환으로 카메라 기자들 앞에서 연출된 포즈를 짓는 미스 월드컵의 가슴선 보다는 지난 1999년 미국서 개최된 세계 여자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웃통을 벗어 젖히고 그라운드를 질주하던 여자 선수의 탱크탑이 훨씬 생명력 있고 예쁘다. 안의 '내용물'이 돋보이도록 이리저리 난도질된 'be the reds' 탱크탑에 비해 유니폼 상의를 내던지고 운동장에서 포효하던 여자축구 선수의 스포츠 브라가 더욱 섹시하고 매력적이다.

우리나라의 여성권한지수는 여전히 세계 바닥권을 맴돌고 있다.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여자 축구선수들의 생기 넘치는 살색 대신, 인공 선탠으로 태운 미스월드컵의 갈색 피부가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풍토에서는 호주제를 폐지하든, 채용할당제를 실시하든 궁극적인 양성평등이 실현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image2_right}월드컵 축구의 열기가 여자 축구의 활성화로 이어지기 바란다. 늘씬하게 쭉 빠진 각선미에 못잖게 굵은 허벅지와 두꺼운 종아리도 아름다운 신체로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남자 축구에서 드러난 한국 축구의 고질적 병폐들을 여자 축구가 반면교사로 지양해주기를 당부드린다. 기존의 고색창연한 창의성 없는 플레이를 극복한 생각하는 축구,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자율적 축구 문화를 조성하는 데 있어 여자 축구가 남자 축구를 훌쩍 뛰어넘었으면 한다. 연고대 출신들이 나눠먹는 남자 축구의 패권적 과점체제가 이대숙대 동문들이 갈라먹는 그릇된 패거리주의로 전이되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해 주시라.

기계로 밀어댄 것처럼 획일적인 단발머리 선수들 대신 귀여운 노랑머리와 앙증맞은 깻잎머리 선수가 맘껏 운동장을 누비는 한국 여자축구의 선전과 발전을 기원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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