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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N'Roll Diary] 레인 스테일리에 대한 명상

김수민 | 기사입력 2002/05/18 [03:59]
- 그의 죽음 뒤에서 -


한국의 락 매니아들이 즐겨 쓰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 말이 되지 않는 것으로 '3대'니 '5인방'이니 하는 것들이 있다. 가령 '3대 기타리스트'라는 말은 에릭 클랩튼과 제프 벡, 지미 페이지를 추켜 올릴 때 쓰는 어법이었다. 이것은, 지미 헨드릭스, 리치 블랙모어 등이 빠졌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같은 그룹(yardbirds)을 거쳐간 영국 출신의 동갑내기들만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약한 수법이다. 이러한 수법은 그러나 한 시대를 매우 손쉽게 정리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회상을 도울 수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얼터너티브'가 아니라고 취급받는, 90년대 초의 '얼터너티브(일명 시애틀 그런지)' 락음악에도 5인방이니 하는 어법이 존재한다. 너배너(nirvana), 펄 잼(pearl jam), 사운드 가든(sound garden),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 정도? 펄 잼을 제외한 이들이 다 아프고 쓰라린 명멸을 겪었다. 너배너는 리더 커트 코베인의 자살로 총성과 함께 막을 내렸으며, 사운드 가든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별안간 해체를 선언했다. 스매싱 펌킨스 또한 작년 간판을 내렸다.

{image1_left}눈치 빠른 독자라면 다루고자 하는 뮤지션이 레인 스테일리이며, 그가, 아직 언급하지 않은 그룹 앨리스 인 체인스의 보컬리스트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앨리스 인 체인스는 80년대 중반에 결성되어 89년 '콜럼비아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한 후 90년 'face it'이라는 데뷔 음반을 발표하고 활동해왔다. 시애틀 그런지 밴드 중에 너배너가 펑크, 펄잼이 복고풍의 하드락에 가깝다고 한다면 앨리스 인 체인스나 사운드 가든은 80년대의 헤비메틀적 성향이 짙게 남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앨리스 인 체인스는 출발 자체가 '라이트 메틀(대중적 취향의 메틀음악을 경멸조로 부를 때 쓰인다)'인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80년대의 메틀을 극복하고 타도(!)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시애틀 그런지도, 80년대가 남긴 자산의 일부를 승계한 것은 어찌보면 역설적이다. 하지만 헤비메틀이건 시애틀 그런지건 그들이 영향받은 아티스트가 70년대의 하드 락커들임을 감안할 때, 얼터너티브는 헤비메틀의 '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복동생'에 가깝다.

{image2_right}시애틀 그런지 밴드들에 관한 통상적인 평가는, 메틀적 요소를 듬뿍 함축하고 있는 초기 음반보다는 뒤에 나온 앨범들에 더 후하게 내려졌다. 앨리스 인 체인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음악 웹진 'weiv'에서 정건진 씨는 "데뷔작 [facelift]에서 직선적이고 원색적으로 발화했지만 완성도면에서의 미흡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반면 1992년 9월에 내놓은 2집 [dirt]는 그러한 빈틈을 채워 줄만큼 철저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이들의 개성이 밀도 있게 반영된 음반이다."라 평했는데, 이처럼 거의 대부분 1집 [face it]보다 2집 [dirt]를 높게 평가한다. 대표곡이라 가장 많이 지목되는 'would?' 역시 2집 수록곡이고...... 그렇지만 나의 호감은 그 반대다. 레인 스테일리의 활약이 제일 두드러진 작품이 데뷔작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쟈켓설명 : alice in chains의 [facelift] columbia, 1990/08
  

일단 스테일리의 음색은 기본적으로 중저음톤으로, 나의 구미에 걸맞다. 그리고 음울함이나 괴기스러움에서부터 다혈질과 폭발력에 이르기까지 여타 얼터너티브 계열의 보컬리스트의 개성에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펑크를 계승한 것으로 논평되어진)얼터너티브 음악의 뮤지션들이 아마추얼리즘에 충실할 것이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창법과 발성의 소유자이다. 커트 코베인이나 에디 베더(펄 잼), 빌리 코건(스매싱 펌킨스) 등이 제 각각의 카리스마를 간직하고 있겠으나, 테크니컬한 면을 통 틀어 높게 평가할 수 있는 시애틀 그런지 보컬은, 내게 있어 레인 스테일리와 크리스 코넬(사운드 가든) 정도다. 어쩌면 이것은 시애틀 그런지 그룹들의 초기 작품과 같이, 나의 취향이 아직도 메틀의 자장 안에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락 넘버의 보컬 파트를 커버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예 높은' 음역대보다는 중음에서 고음 으로 넘어가는 부분이야말로 소화하기에 최고로 힘든 공간이다. 육성으로 메우기에 여간 까다롭지 않으며, 그렇다고 가성이나 반가성을 쓰면 우습게 들린다. 나는 '발성 상의 명창'을 가릴 때 이 부분에서 승부가 판가름난다고 보고 있다. 대개의 보컬리스트들이 '중고음'이라 불리우는 그 음역대에서, 다소 약한 모습을 보이며 아마추어들은 소위 '삑싸리'라고 불리우는 소음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그곳이 레인 스테일리의 강점이 뛰노는 곳이다.

그가 지난 달 19일 밤에 시체로 발견되었다. 장소에 도착한 검사관들이 스테일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주검은 부패된 상태였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슬펐다. 그의 죽음이 나를 뒤흔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너무나 담담히 그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내 모습이 슬펐다. 그가 죽은지 한달쯤 지나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제는 비로소 깨닫고 있다. 우리는 하나의 원본과 하나의 '아우라'라를 잃었다.

나는 더 이상 그를 만나지 못한다. 지난날의 모습을 띄우는 방법 이외로는 말이다. 데뷔작의 첫 트랙, 'we die young'을 튼다. 제리 캔트렐(기타)의 용맹한 인트로와 그에 이어지는 스테일리의 목소리를 추억한다.

* 필자는 연세대 [조선바보] 편집주간, 노사모, 노벗 회원인 동시에 이문옥팬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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