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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씨년스러운 방에서 마리 로랑은 코른 교수와 마주하고 있었다. 코른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도울 조수를 구하고 있었고, 의사인 로랑은 그에 적격이었다. 코른 교수는 로랑에게 뜻밖의 조건을 내걸었다.
‘입이 무거워야 하며, 자신의 저택에서 본 모든 일을 일절 누설해서는 안 된다.’
로랑이 이에 동의하자 코른은 그녀를 서재 옆의 방으로 데려갔다. 흑인 하인인 존이 불을 켜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로랑의 두 눈은 경악으로 가득 찼다.
얼마 전 죽은 저명한 외과의사 도웰 교수가 머리만 덩그러니 남아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전 갓 숨진 시신에서 절개한 기관들을 소생시키는 실험을 했던 도웰 교수는 머리만 남은채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머리가 도웰 교수가 맞느냐는 로랑의 질문에 코른은 지병을 앓고 있던 도웰 교수가 죽음에 이르렀으며, 생전 그의 유언대로 기증된 그의 시신을 수습하였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도웰 교수를 소생시키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머리만 남았다고 말하며 로랑이 할 일은 도웰 교수의 머리 상태를 확인하고 일지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코른 교수는 그녀에게 일을 맡기며 한 가지 금기를 설정한다.
‘절대로 머리의 목구멍으로 이어지는 굵은 관이 나오는 실린더의 밸브를 열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며칠 동안 머리를 관찰하며 그와 친분이 쌓인 로랑은 금지된 밸브에 손을 댄다.
100년 전 러시아 소설가의 상상력이 집약된 공상과학소설
이 소설은 러시아의 소설가 벨랴예프가 1937년에 발표했다. 작가는 해박한 의학 지식을 활용하여 작품의 재미를 극적으로 끌어낸다. 죽은 사람의 몸에서 머리를 떼어 소생시키고,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하는 장면은 이 작품이 보여주는 상상력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머리를 떼어 이식하는 수준이 아니고, 신경과 신경, 혈관과 혈관을 잇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신빙성을 더한다.
이 작품은 죽음에서 소생한 인간의 모험과 동료를 구하는 무용담 등이 재미를 배가시키며 직접 제시되지는 않지만 살인, 시신거래 등의 엽기적인 행동을 삽입하여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점을 던지며 독자가 생각할 여지를 남겨놓았다. 이처럼 많은 즐거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일까,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러시아의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으며 1984년에는 러시아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역자 김성호는 mbc아나운서 출신으로 러시아 국립 모스크바대학 문헌학부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2002년 이후에는 스피치와 커뮤니케이션, nlp, 인문학, 심리학 분야에 대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11년 현재 <김성호 스피치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김성호 저/a6(문고판) 377p/2011년 7월/전자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