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때 3‧1운동을 주도했던 민족지도자로서 국내에서 일제에 항거하여 그들의 회유와 강압에 굴복하지 않고 민족의 자존과 정조를 지킨 유일한 독립투사이다.
만해는 문학사에서 불멸의 시집 『님의 침묵』을 낸 시인으로서, 일제에 조국을 잃어버린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잃어버린 님을 찾아 사회 전반에 걸쳐서 전인적 역할을 다했던 근대 개화기의 걸출한 계몽 사상가이다.
그 동안의 만해의 연구 성과를 종합하면 만해를 세 가지 측면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독립운동가, 둘째 민족 저항시인, 셋째 계몽 사상가이다. 이 셋의 관계는 삼위일체이고 회삼귀일(會三歸一)이다.
본 논문에서는 각 시문학 장르(자유시, 시조, 한시 등)에서 발표한 대표적인 작품을 뽑아 거기에 나타난 만해의 대승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래서 만해의 문학적인 성과가 『님의 침묵』뿐만 아니라 한시, 시조에서도 평가받을 만한 문학적으로 성공을 있음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소설부분은 문학 장르가 다르므로 다루지 못하였다.
2. 한용운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1) 한용운의 생애
만해 한용운(1879~1944)은 1879년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번지에서 한응준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만해 한용운의 생애를 크게 4분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⓵홍성 한문 학습기(1세~18세), ②백담사 출가 불경 학습 저술기(19세~41세), ③경성 3·1운동 독립운동기(42세~54세), ⓸심우장 국민 계몽기(55세~66세)이다.
그가 홍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한문 학습과 출가하여 백담사에서 불경을 학습하고 저술 활동을 한 시기를 1·2기로 하고, 그의 일생에서 대표적인 사건인 3·1운동을 주도한 민족지도자로서 독립운동을 한 시기와 만년에 성북동 심우장에서 결혼하고, 『불교』 지와 일반 신문 잡지에 10년 동안 소설과 시조, 논설, 자유시, 수필 등 200여 편을 발표하여 국민을 계몽시키다 생애를 마친 시기를 3·4기로 하였다.
6세에 사숙에서 한문을 공부하여 9세에 『서상기(西廂記)』을 읽고, 『통감』과 『서경』을 통달한 천재로 그의 집을 신동집이라 불렀다.
14세에 전정숙과 결혼했고, 18세에 마을에서 한문 훈장이 되었다. 26세(1904년)에 아들 한보국이 태어났다. 여기까지 만해가 고향 홍성에서 한문을 학습한 제1시기이다.
만해의 제2시기는 27세(1905년)에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에서 김연곡(金蓮谷) 스님을 스승으로 출가하였다. 스승인 연곡스님은 『영환지략(瀛環志略)』(청나라 서계여가 편찬한 세계지리서), 『음빙관문집(飮氷室文集)』(양계초의 저서)등 개화문명을 소개한 책을 구해서 읽은 눈이 열린 승려이다. 만해는 1906년(28세) 이 책을 보고 세계 여행을 꿈꾸며 불라디보스톡 여행을 하였고, 29세에 일본을 시찰하고 지은 한시가 9수 있다.
32세(1910년)에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하였다. 1911년 송광사와 범어사에서 승려궐기대회를 개최하고 한일불교동맹조약을 분쇄하였다. 조선 임제종 종무원을 설치하고 관장에 취임하였다. 33세에 만주 일대를 시찰하다 신흥무관학교의 청년 무관에게 일본 첩자로 오인을 받고 총격을 받고 기적으로 살아났다. 김구 선생의 증언이 있다.
“한용운 선생은 신흥무관학교에 오셨다가 우리 무관학교 수위에게 탄환 다섯 발을 맞으시고 넘어져서는 이 탄환이 나를 일본의 밀정으로 알고 쏘는 조선군인의 탄환이라니 나는 이러한 독립용사의 굳건한 수위에 다섯 개의 탄환보다 더 큰 선물을 받을 수가 없다. 죽어도 원한이 없다 하고 피투성이로 병원에 가시였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거룩한 애국자의 말입니까?” 김구(1876~1049)의 증언, 『만해 한용운과 심우장 사람들』, 남한산성 만해기념관, 2016년, 19쪽.
1913년(35세)에 『조선불교유신론』을 발행하였다. 조선불교가 새롭게 유신하고 개혁해야 함을 주장하는 당시 혁명적인 논문으로 한문으로 저술한 명저이다. 운양 김윤식은 “『조선불교유신론』은 문체로 보나 사상으로 보나 근세에 짝을 찾기 어려운 대문장이다.”고 평가했다.
1914년 『불교대전』을 발행하였다. 8만대장경을 읽고 주제별로 불자들이 쉽게 불교경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편찬한 파천황적 불교성전이다.
실생활에 필요한 불교 교리와 부처님 말씀이 요령 있게 잘 정리되어 있는 생활불교의 교본이다. 한 가지 문제라면 ‘선정(禪定)’에 대한 단원과 만해 자신이 생명처럼 지킨 ‘정의(正義)’에 대한 서술이 빠졌다. 천하의 만해도 실수가 있고 오류가 있다. 수제자 최범술에게 써준 서예 작품 “마저절위(磨杵絶葦)”를 잘못 써서 “韋(가죽 위)”로 써야 하는데, 착각하여 “葦(갈대 위)”로 오류를 범했다.
김형중, 「3·1운동의 기수 만해 한용운」, 『불교 교과서 밖으로 나오다』, 운주사, 2008, 226쪽. “마저절위: 한용운의 굳건한 의지가 담긴 글씨. 절구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과 대나무로 만든 책의 가죽 끈이 끊어졌다는 고사로, 쉬지 말고, 노력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글이다.”
1917년(39세)에 『정선 강의 채근담』을 간행했다. 백담사 오세암에서 깨달음을 얻어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1918년(40세)에 월간 잡지 『유심』을 창간하고 편집 발행인이 된다. 권두언에 ‘심(心)’ 1918년 9월 서울에서 월간 교양잡지 『유심(惟心)』을 창간하여, 1호에 그의 첫 시 ‘심(心)’을 권두시에 발표한다. “心은 心이니라. 心만 心이 아니라 비심(非心)도 心이니 심외(心外)에는 하물(何物)도 무(無)하니라. 생(生)도 心이오 사(死)도 心이니라.” 인간의 인식의 중심이 되는 마음에 대하여 알기 쉽게 한글로 심게(心偈)를 지었다. 불교잡지인 ‘유심’을 해설한 명문이다.
이란 시가 발표된다. 중앙학림(동국대학교 전신)의 강사가 된다. 이때 쓴 만해의 친필 이력서가 현존해서 만해의 40세까지의 한학 이력과 승려 생활과 불경 공부 이력 등 행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엔 중앙학림에서 공부한 기록이 없다.
1919(41세)는 일제강점기에서 조선이나 만해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만해 인생의 3기인 3·1민족운동기이다. 만해는 천도교의 최린과 사석에서 의논하여 3·1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거룩한 쾌거인 조선독립선언을 주도한 민족 지도자가 만해 한용운이다. 이정식·김학준,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민음사, 47쪽. “언론인 송건호에 따르면 3·1운동의 발상자(發想者)는 한용운이었다. 한용운이 최린을 설득하고 그를 통해 손병희를 설득했고 그리하여 천도교를 확보한 다음 천도교를 통해 최남선과 접선하고 다시 기독교 쪽과 접선했다. 한용운은 한 점 타협 없는 항일자세를 지키다가 1944년에 죽는다.”
1921년(43세)에 출옥하여,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하고, 민립대학 설립을 위한 강연을 다녔고, 신간회 활동을 했다.
1925년(47세)에 백담사 오세암에서 『심현담 주해』와 『님의 침묵』을 탈고하여1926년에 발행하였다. 불후의 명작 『님의 침묵』은 조선의 시단에 기적이요, 조선의 시성(詩聖)이 탄생했다.
1933년(55세)에는 심우장을 짓고, 유숙원 간호사와 결혼을 했다. 만해의 인생 4기인 심우장 국민 계몽기이다. 심우장에서 10년 동안 만년을 보내면서 1935년 조선일보에 장편소설 『흑풍』을 연재하고, 1938년에 『박명』을 연재하였다. 만해가 소설과 시조를 쓴 목적은 어린 양을 일깨우기 위한 방편이다.
1944년(66세) 6월 29일 심우장에서 입적하여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치아(齒牙) 사리가 나왔다. 위당 정인보는 다음의 애도 시조를 지어 만해의 영혼을 위로했다. “풍난화(風蘭花) 매운 향기 당신에게 비할손가 이 날에 님 계시면 아니 더 빛날까 불토(佛土)가 이외 없으니 혼(魂)아 돌아오소서”
만해 한용운의 시 세계와 사상에 대하여 연구한 논문이 수백 편이 넘어 ‘만해학’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인물로서 가장 많이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김형중, ‘님의 침묵 시문학의 지도를 통한 인성교육’, 「인성교육을 통한 청소년 포교 활성화 방안」, 『종학연구 6집』, 2021, 94~95쪽.
에 수록되었고, 대학수능시험에서 가장 빈도가 높게 출제되었다.
2) 시대적 배경과 사조(思潮)
만해가 살았던 시대는 국내는 일제강점기의 궁핍하고 우울한 시대였고, 국외는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식민지 개척시대였다. 서구열강은 근대 민족국가가 형성되고, 아시아의 식민지국가는 민족운동을 부르짖으며 저항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서구 유럽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성공하여 자주적 민주국가와 자유를 주장하고, 신분계급사회가 철폐되고 평등사회를 부르짖었다. 합리주의 이성주의를 주장하며 시민의 무지와 비이성을 타파하는 계몽사상이 유행하였다.
중국에서는 양계초(梁啓超, 1873~1929) 만해는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양계초의 글을 3회, 『음빙실문집』을 1회 인용한다.
가 등장하여 사회진화론을 부르짖었다. 그의 저술인 『음빙실문집』은 만해는 물론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하였다. 양계초는 중국인들에게 독일의 칸트철학을 처음으로 소개하고 불교의 『대승기신론고증』을 저술한 불교학자이며 계몽사상가였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을 단행하여 군국주의 국가로 성장하였다. 유럽과 미국에 이와쿠라 사절단을 파견하고 유학생을 보내 서구식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이루어 근대화에 성공하였다. 만해는 천지가 개벽하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개혁적 정치 변화와 신문명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몽매한 조선 백성을 일깨워서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환으로 계몽운동에 대한 원력을 갖게 되었다.
3. 한용운의 시문학에 나타난 대승사상
1) 『님의 침묵』에 나타난 대승사상
⓵ 유마사상의 불이(不二)사상
『님의 침묵』에서 ‘님’의 정체는 ‘부처’, ‘중생’, ‘조국’, ‘깨달음’, ‘불성’, ‘애인’, ‘자유’, ‘독립’ 등 다의적이고 복합적인 상징어이다. 『님의 침묵』은 『유마경』에 나오는 ‘유마거사의 침묵’에서 유래한다. 『님의 침묵』(1926)은 3년 동안 감옥에서 오직 조국의 독립만을 부르짖으며 자나 깨나 생각한 님을 시화(詩化)시킨 시집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으로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만해가 『님의 침묵』이란 시집을 발표함으로써 당시 서구의 시를 번안하는 형식의 시 수준에 머물던 시단에 시 창작의 모범이 되었다.
이 시에서 ‘님’은 조국이고, ‘이별’은 일본에게 빼앗긴 조국과의 이별이다. 만해는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는 불교의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순환 윤회의 진리를 근거로 제시하며 잃어버린 조국을 꼭 되찾을 것을 염원하고 있다.
『님의 침묵』에서 님과 내가 둘이 아니고, 이별과 만남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사상적 근거는 『유마경』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이다.
⓶님을 향한 정조와 충정
만해는 시에서 님과의 맹서를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라고 표현하고 있다. 「나의 길」에서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것은 만일 님의 품에 안기지 못하면, 다른 길은 죽음의 길보다 험하고 괴로운 까닭입니다.”라고 님에 대한 정조와 충정을 죽음보다 중요하고 강하다고 읊고 있다.
『님의 침묵』 가운데 만해가 님과 언약한 맹세를 지킬 것을 다짐하는 정조와 지조를 읊은 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생명보다 사랑하는 애인을 사랑하기 위하여는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위하여는 괴롭게 사는 것이 죽음보다도 더 큰 희생이다. 이별은 사랑을 위하여 죽지 못하는 가장 큰 고통이요 보은이다.” (이별)
“님이여, 나의 마음을 가져가려거든 마음을 가진 나에게서 가져가셔요.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님에게서 하나가 되게 하셔요” (하나가 되어 주셔요)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복종)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어요. 당신은 당신의 오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당신의 오실 때는 나의 기다리는 때입니다. 당신은 나의 꽃밭으로 오셔요. 만일 당신을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나의 죽음의 뒤에 서십시오.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어서 오셔요.” (오셔요)
“네 네 가요. 지금 곧 가요.……홰를 탄 닭은 날개를 움직입니다. 마구에 매인 말은 굽을 칩니다. 네 네 가요. 이제 곧 가요.” (사랑의 끝판)
“독자에게,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시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 슬퍼할 줄을 압니다. 나는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독자에게)
만해는 『님의 침묵』에서 처음에는 참을성 있게 님과의 이별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님을 떠나보내지만 「오셔요」에서는 이제 당신이 오실 때가 되었으니 오셔요 하고 간곡히 청하고 있다. 이제는 참을 수 없는 한계 상황에 이르렀음을 선언하고 있다. 이제 당신을 맞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읊고 있다.
「사랑의 끝판」에서는 잃어버린 님을 마냥 기다리지 말고 지금 일어나서 찾아나서라는 명령이다.
마지막 시 「독자에게」는 “나는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때는 이미 독립이 되어 있을 것을 확신하므로 지금 이천만 한겨레 민족이 자신의 시를 읽고 잃어버린 님(조국)을 찾아 행동으로 나서야 함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⓷자비의 보살사상
『님의 침묵』 가운데 가장 부처의 자비사상이 잘 드러난 대표시가 「나룻배와 인」이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나룻배와 행인」은 부처님의 자비 속에서 살면서도 부처님의 은혜를 모르고, 저버리고 배반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 날마다 스스로는 낡아가면서 그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대승 보살의 자비로운 마음을 읊은 시이다.
‘나’는 석가요 불법, 보살을 상징함이고, ‘당신’은 중생이다. 나룻배는 반야용선이다. 중생을 생사고해를 건너서 피안의 언덕으로 실어다 주는 지혜의 용선이요 자항(慈航)이다.
서윤길(동국대학교 불교학자)은 만해의 독립운동의 정신적 기저에는 자비정신이 바탕을 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만해는 「내가 믿는 불교」에서 불교의 사업은 무엇인가. 물론 박애요, 호제(互濟)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것이 진리인 이상 반드시 사실로 현현될 것입니다.” 서윤길, 「만해 독립운동의 본질과 방편」, 2023년 심우장 만해학술 세미나 기조강연, 만해사상실천연합, 2023, 24쪽.
불교는 자비의 종교요, 중생을 자비로 구제하는 구세주의 종교이다.
⓸ 실천적인 대승선 사상
「선사의 설법」에 대승 선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해탈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얽은 님의 사랑의 줄이 약할까봐서 나의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들였습니다.”
「선사의 설법」은 만해의 혁명적인 선 법문이다. 선은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창조적인 인식의 전환을 추구한다.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는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고통을 면할 수 있음을 서술한 것이다.
「선사의 설법」에서는 구도자인 선사의 깨달음의 세계인 대승 선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선사가 집착의 줄을 끊으라는 원론적인 설법을 하였는데, 만해는 이 시에서 대해탈은 속박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설파하고 있다. 고통스런 현실을 회피한다고 고통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번뇌가 있어야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끝내 보리(菩提)를 얻는다.
만해의 시에서 부정과 역설적 표현이 그의 시에 특징이다. 번뇌가 보리(菩提)이고, 중생이 부처이다. 『보왕삼매경론』에서도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고 하였다. 현실을 떠난 설법은 관념의 세계요, 논리의 유희일 뿐이다. 만해는 잃어버린 조국에 살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님을 되찾아야겠다는 역사의식이 투철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⓹ 정진바라밀 사상
만해 한용운의 「찬송」은 부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이다. 부처가 되려면 수많은 시간 동안 수행과 단련을 해야 한다.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읍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의 첫 걸음이여 님이여 당신은 의가 무거웁고 황금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과 평화를 좋아하십니다”
순금이 나오려면 수많은 제련 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수행자도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려면 피나는 구도와 수행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위대한 한 성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수행하지 않고 깨달은 사람은 없다. 정진바라밀을 닦아서 부처가 된 정진불(精進佛)을 찬송하는 찬불가이다. 휴정의 『청허당집』에 “정진이 석가모니요, 지혜가 문수보살이다.”고 하였다.
2) 시조에 나타난 대승사상
⓵시조에 나타난 화엄사상
만해의 시조는 『한용운 전집』(1978년) 1권에 39수가 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조에도 깨달음의 세계를 읊은 선시가 많이 있다. 대표적인 선시가 「춘주」 2수이다.
「춘주」는 최동호 편 『한용운 시전집』(1989년)에는 시의 제목을 「춘화(春畵)」 최동호, 한용운 시전집, 서정시학, 2009, 392쪽.
라고 되어 있는데, 「춘화: 그림 같은 봄날」보다는 「춘주(春晝): 봄날의 낮」이 시의 내용으로 보아 맞다. 더구나 시조 「춘조(春朝)」가 있는 것으로 보아 따사로운 봄날 아침과 낮에 쓴 시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춘주」는 원래 『불교』 96호 (1932년 6월 1일 발행) 권두언으로 발표된 것이다. 여기서의 시조 제목은 『낙화(落花)』이다. 한용운 전집 2권, 불교문화연구원, 2006년, 353쪽.
「춘주」는 불립문자인 선의 특성을 시적 미감을 통해서 멋지게 나타낸 시조이다.
“ 따스한 볕 등에 지고 유마경 읽노라니
어지럽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린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 하리오
봄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고 앉았더니
삽살개 꿈을 꾸고 거미는 줄을 친다
어디서 꾸꿍이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
「춘주」는 “따사로운 봄날 대낮에 『유마경』을 읽는데 바람에 나는 꽃잎이 글자를 가렸다.”로 시작한다. 처음에 붙인 제목 「공화란추(空華亂墜)」에서 알 수 있듯이 ‘허공을 나는 꽃(空華)’은 허공에 핀 꽃으로 본래 실체가 없는 번뇌 망상을 상징하는 선어이다. 번뇌 망상을 없애고 진리의 길에 이르는 길은 참선의 체험뿐이다. 그러니 구태여 꽃 밑의 글자를 읽을 필요가 없다는 선의 세계를 시화(詩化)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사법계)와 눈에 보이지 않은 본체의 세계(이법계)가 서로 장애가 없이 원융한 화엄의 이사무애법계를 노래한 겻이다.
초장 “봄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고 앉았더니”는 고요한 봄날 향을 피워 놓고 단정히 앉아 참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중장 “삽살개가 꿈을 꾸고 거미가 줄을 친다”고 한 것은 삽살개도 따스한 봄볕 아래 참선하듯이 졸고 있고, 거미도 자신의 본분사인 거미줄을 치고 있다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서 현상계의 모든 사물들이 각기 불성을 발휘하고 있는 화엄성기(華嚴性起)의 세계를 읊은 것이다. 거미는 자기가 친 거미줄에 걸리지 않고 자유로워서 무애한 해탈 자유를 상징한다.
종장에서 “어디서 꾸꿍이 소리는 산을 넘어 오더라”고 결구한 것은 선시 이론의 극치인 뜻을 글자 밖에 나타내는 운외지미를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산 너머에 꾸꿍이(뻐꾸기) 소리를 따라 깨달음, 봄의 정취가 들려오는 듯하다.
당나라 사공도(司空圖)의 운외지치(韻外之致), 운외지미(味外之味)의 시론은 사람들에게 명확한 시선일치(詩禪一致) 이론을 인식시켰다. 만해의 자유시, 한시, 시조 등 시문학을 통틀어 「춘주」 시가 가장 선시에서 강조하는 운외지미(韻外之味)의 선취(禪趣)의 풍격을 갖춘 절창시이다. 운허 스님이 지은 ‘만해 용운당대선사비’에 만해의 대표시로 이 시조가 나온다. 운허, 만해 용운당대선사비,
⓶ 시조 「심우장」에 나타난 불성사상
만해가 「심우장(尋牛莊)」의 시조가 있다. 1937년 『신불교』(제9집)에 발표한 시조이다.
“잃을 소 없건 만은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은 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쏘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심우장」 초장 “잃을 소 없건 만은 찾을 손 우습도다”는 우리의 본래 자성은 불생불멸이고 불구부정이다. 따라서 잃어버릴 것도 찾을 것도 없는 자리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소를 타고 소의 등 위에서 소를 찾듯이 마음을 가지고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찾는다. 본래마음(자성, 불성)을 찾으면 견성성불이다.
중장은 설사 마음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실체가 없는 마음을 찾아서 지닐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종장의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는 선종의 6조 혜능의 자성게(自性偈)의 뜻을 용사(用事)한 것이다. 혜능의 “본래무일물 하처염진애(本來無一物 何處染塵埃: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물들겠는가)”는 마음(一物)은 실체가 없어서 번뇌망상의 진애가 낄 수가 없으므로 닦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찾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마음의 본래자리인 불성(자성)을 읊은 것이다.
⓷시조에 나타난 자비사상
만해가 『회광』 ‘창간호’(1928)에 발표한 「성불과 왕생」은 3·4조, 3·5조의 정형식인 단시조이다. 이 시조는 1973년에 간행한 『한용운 전집』과 1979년에 간행한 증보재판에 수록되지 않은 1981년 만해사상연구회에서 새로운 자료로 발굴한 18편 중의 하나이다.
“부처님 되려거든 중생을 여의지 마라
극락을 가려거든 지옥을 피하지 마라
성불(成佛)과 왕생(往生)의 길은 중생과 지옥”
만해는 구제할 대상인 중생이 있어야 부처가 될 수 있고, 고통이 지옥이 있기 때문에 왕생을 위해 수도하여 그곳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의 원력이다. 이 시조는 육바라밀 가운데 중생을 사랑하는 자비바라밀 사상이 잘 나타난 시조이다.
시조가 선비의 충절과 풍류 등 관념적인 주제를 노래한 정형시인 것이 선사가 선 수행과 깨달음 등 관념적인 내용을 읊는 선적인 시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하다. 만해의 시문학을 계승한 오현 스님의 선시는 현대시조 형식으로 창작하는 전범을 보인다.” 김형중, ‘무산 대종사의 오도송 파도’, 현대불교신문, 2024년 5월 1일.
3) 한시에 나타난 대승사상
⓵ 관월시(觀月詩)에 나타난 선정사상
만해는 선시의 특성이 언어의 압축과 고도의 상징적 언어로 표현되듯이 가장 시어가 절제된 시체인 오언절구와 칠언절구가 대부분이다.
만해의 한시(총 165수) 가운데 ‘달[月]’을 소재로 하여 읊은 시가 많다. ‘월(月)’은 45회나 나타나는 시어이다. 만해의 시에서 달은 잃어버린 조국의 꿈과 희망, 생명을 주는 의미를 지닌다. 달은 조국 광복을 상징하는 빛이요, 항상 마음속에서 광명을 발휘하는 불성이다. 관월시(觀月詩, 詠月詩)가 만해의 한시에 6수 있다.
「월욕생」, 「월초생」, 「월방중」, 「월욕락」 4수의 연작 관월시를 짓기 전에 달을 보고 묘오(妙悟)의 경지에서 시작을 시도하는 「견월」과 달과 함께 하나가 되어 무아지경에서 노는 「완월」을 살펴보자.
“幽人見月色 숨어 사는 사람이라고 달이 안 보이랴
一夜總佳期 밤새도록 좋은 밤이네
聊到無聲處 달을 따라 말없는 경지에 이르러
也尋有意詩 좋은 시를 찾느니 「見月」
空山多月色 빈 산에 달빛이 흘러넘치고
孤往極淸遊 홀로 거닐며 마음껏 노니는 이 밤
情緖爲誰遠 누구에게 멀리 달려가는 마음인가
夜闌杳不收 밤은 깊어 가는데 정을 걷잡을 수 없네” 「玩月」
「견월(見月)」은 밤새도록 달을 바라보며 무성처(無聲處)의 경지 즉, 차별과 분별이 끊어진 적멸의 경지인 오도의 경지에서 시선일여에 젖어 읊은 시이다. 관월시 4수를 읊기기 전의 서시라 할 수 있는 시이다.
“온갖 소리가 끊어진 경지(聊到無聲處)”는 깨달음의 경지로 『십우도』의 ⑧인우구망의 경계이다. 만해는 이 묘오의 경지에서 시를 찾고 있다. 완전히 선과 시가 만나는 순간이다. 선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유인(幽人)’은 만해 자신을 뜻한다. 불성을 찾지 못한 사람이라고 불성이 없는 것이 아님을 “숨어 사는 사람이라고 달이 안 보이랴”고 읊었다.
결구 ‘야심유의시(也尋有意詩)’에서 시를 찾는다는 ‘심(尋)’으로 보아 확암(廓庵)의 『십우도』 ①심우(尋牛)에서와 같이 달을 통해 마음의 모습을 찾아 읊은 ‘관월시’의 연작시를 구상한 것으로 짐작된다.
「완월」 시는 「견월」 시를 읊고 이어서 읊은 시라고 추측된다. 가을 밤 달빛이 흘러넘치는 빈 산 속을 홀로 거닐며 달과 함께 마음껏 노닐며 사랑하는 님을 찾아 달려가는 만해의 심경을 노래한 시이다.
만해가 밤새도록 멀리 찾아가는 정의 대상은 부처요, 불성이요, 깨달음이다. 「월욕생」, 「월초생」, 「월방중」, 「월욕락」 4수의 연작시를 살펴보자.
“ 衆星方奪照 뭇 별들이 앞서나와 되게 쏘아 비치니
百鬼皆停遊 온갖 귀신들 활개치다 멈추네
夜色漸墜地 밤빛은 점점 땅으로 엎드려서
千林各自收 수풀들이 그것을 모두 빨아들이네 「月欲生」
蒼岡白玉出 푸른 언덕에 흰 달덩이 불끈 솟으니
碧澗黃金遊 산골 물에선 황금덩이 떠서 흐르네
山家貧莫恨 산가의 가난을 한하지 마라
天寶不勝收 하늘이 주는 보배 다 거둘 길 없나니 「月初生」
萬國皆同觀 만국이 달을 다 같이 보건만
千人各自遊 천인이 노는 모습 제멋대로네
皇皇不可取 너무나 눈부시어 가질 수 없고
迢迢那堪收 너무 먼 하늘에 걸렸으니 손댈 수 없네 「月方中」
松下蒼烟歇 솔 밑에 푸른 안개를 달님이 걷으시니
鶴邊淸夢遊 학 옆에서 맑은 꿈꾸네
山橫鼓角罷 북과 피리소리 그치고 산도 드러누우니
寒色盡情收 찬 달빛 다하여 아쉽네” 「月欲落」
4수 모두 「완월(玩月)」 시와 같이 ‘유(遊)’와 ‘수(收)’를 운으로 하여 읊었다.. 「월욕생(月欲生)」은 달이 막 떠오르려 할 때를 인상적으로 묘사한 시이다.
달이 뜨기 전에 뭇 별들이 먼저 나타나서 빛을 비추니 온갖 잡념과 번뇌가 사라져 울창한 숲 속의 고요와 함께 그 위에 달을 뜨려고 준비하고 있다.
기구의 ‘뭇별들이 앞서나와 되게 쏘아 비치니 온갖 귀신들 활개치다 멈추네.’는 지혜광명인 발광지와 환희심이 나타나 온갖 번뇌 망심인 심마를 항복받고 전구와 결구에서처럼 무심적멸의 경지에 이르러야 둥근달을 기대할 수 있다.
「월초생(月初生)」은 달이 막 나올 때의 전경을 묘사한 시다. 백옥같이 깨끗한 마음의 달이 푸른 언덕 위에 나타나니, 산 속 시냇물 위에서는 황금덩이가 춤을 추며 놀고 있다.
기구와 승구는 ‘창강(蒼岡)’, ‘벽간(碧澗)’ 그리고 ‘백옥’, ‘황금’이 대구를 이루어 색채의 조화를 이루고 있어 회화적인 묘사이다.
전구와 결구의 “산가(山家)의 가난을 한하지 마라. 하늘이 주는 보배 다 거둘 길 없나니”는 『법화경』의 빈인보주(貧人寶珠)의 비유를 시화한 것이다. 보배로운 불성[心珠]이 가난한 산골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모두 평등하게 있음으로 한탄하지 말고 하늘이 본래 부여한 무가보( 無價寶)의 불성을 활용하면 그 이익을 다 거둬들일 수 없을 정도로 큼을 읊은 철리시이다. 김형중, 「한용운의 선시 세계」, 『유심 2001겨울호』, 만해사상실천선양회, 2001, 79~80쪽.
「월방중(月方中)」은 달이 하늘 한복판에 떠올랐을 때의 전경을 읊은 시이다. 밤하늘에 떠있는 월주(月珠)을 모든 나라 사람들이 다 같이 봐라보건만 그 달 아래서 노는 모습은 천태만상 제멋대로다.
기구와 승구에서 달이 중천에 떠서 만국의 사람이 달을 바라보며 부처의 자비 광명에 흠뻑 젖어 환희의 기쁨을 누리는 모습을 표현하고, 전구와 결구에서는 불성이 모양이나 크기가 없어서 우주에 하늘에 꽉 차 있어서 중생들의 눈과 마음으로 인식되지 못함을 나타내고 있다.
「월욕락(月欲落)」은 달이 지려 할 때의 전경을 읊은 시이다. 『십우도』의 ‘반본환원返本還源)’의 경계와 같이 달이 처음 푸른 언덕에 떠서 차츰 중천에 이르러 마음껏 광명을 발휘하다가 마지막으로 학이 내일을 위해 나래를 접고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달도 하룻밤의 활동을 정리하는 전경을 묘사한 것이다.
만해가 달을 보고 달의 변화하는 모습을 마음이 깨달음의 과정으로 변화하는 세계를 표현한 것은 동방의 선종 선시사에서 처음 있는 창작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⓶ 「차확암십우송운」에 나타난 구도심과 구세주의
십우도는 참선 수행자가 자신의 본래 착한 마음(自性, 佛性)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과정을 10단계로 정하여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다.
한국의 선시 가운데 대표적인 기우시(騎牛詩)는 청허(淸虛)의 「기우시」, 경허(鏡虛)의 「심우송(尋牛頌)」, 만해(卍海)의 「심우장 노래」, 구산(九山)의 「소 찾는 노래」 그리고 무산(霧山)의 『심우도(尋牛圖)』가 유명하다. 김형중, 「심우도와 선시」, 『유심 2002겨울호』, 만해사상실천선양회, 2002, 392쪽.
만해가 확암의 십우송을 10수를 각각 차운(次韻)하여 10수를 원문에 있는 석고이 선사와 괴납련 선사의 화운시와 어께를 겨루어 10수를 읊었다. 만해가 깨달은 선의 경지와 선시를 구사할 능력이 중국 당송시대의 조사들에게 뒤지지 않는 증거이다.
차운시(화운시)는 한시에서 상대와 시를 주고받는 수증에서 상대방의 운을 받아서 응답하는 시를 창작해야 하므로 한시 창작 능력이나 정신세계가 동등한 고수만이 가능한 일이다.
만해의 차운시 「차확암십우송운(次廓庵十牛頌韻)」 10수 중 첫 번째 시 「심우(尋牛)」을 보자.
“此物元非無處尋 원래 못 찾을 리 없긴 없어도
山中但覺白雲深 산 속에 흰 구름이 이렇게 낄 줄이야
絶壑斷崖攀不得 다가서는 벼랑이라 발 못 붙인 채
風生虎嘯復龍吟 호랑이 용 울음에 몸을 떠느니”
기구의 ‘심(尋)’, 승구의 ‘심(深)’ 그리고 결구의 ‘음(吟)’을 모두 차운(次韻)하여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가는 10과정을 각 단계의 내용에 적합하게 읊고 있다. 마음을 찾아가는 첫 구의 운자가 잃어버린 소를 ‘찾을 심(尋)’이고, 이어서 험한 계곡이 더욱 ‘심할 심(深)’이고, 소를 찾아도 얻을 수 없는 ‘얻을 득(得)’이고, 답답한 구도자의 심경을 ‘읊을 음(吟)’으로 구성된 운자이다.
만해는 중생이 천성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지만 본래 마음이 온전하게 구족된 본래 자성 청정심을 믿기 때문에 기구에서 “此物元非無處尋 원래 못 찾을 리 없긴 없어도”라고 읊었다. 그러나 구도의 길은 험난하다.
십우시의 꽃은 마지막 10단계인 ‘이전수수(入廛垂手: 시내에 들어와서 중생을 구제하는 단계)’의 보살행이다. 만해는 “중생이 사는 진흙탕 속에 자유롭게 들어가서 울고 웃는 그들의 볼을 어루만지네. 고통의 바다 속에 들어 불길 속에 연꽃을 피게 하리라”고 읊었다. 불교 수행은 대승보살의 자비행(구세주의)으로 완성된다.
서정주는 만해의 한시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만해의 한시의 문장 맛은 시집 『님의 침묵』이 못 가진 것들도 상당히 많이 보완해서 가지고 있다. 이 분의 한시가 이조의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이나 자하(紫霞) 신위(申緯)의 수준을 잇는 격과 풍미(風味)와 구성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게 되어서 참으로 흐뭇하였다. 그의 한시가 갖는 지조는 사가나 자하 같은 이조 한시의 최고봉으로서도 못 따를 데도 있는 것이다. 그가 전 한시사(全漢詩史)에 있어서도 가장 독창적이고 심오하고 유력한 고봉 중의 하나였음을 새로 인식하게 된 것은 내게는 적지 않는 기쁨이 되었다.” 서정주 번역, 만해 한용운 한시선, 『미당 서정주 전집 20』, 은행나무출판사, 1982.
⓷ 옥중시에 나타난 호국불교 사상
자신의 나라가 외적으로부터 강탈당했을 때 목숨을 걸고 싸워서 나라를 지킨 장군이 가장 위대하다. 시인도 저항 민족 시인이 가장 높게 평가받는다.
만해가 감옥에서 면회를 온 학생에게 써 준 「기학생(寄學生: 학생에게 부친다)」의 한시가 있다.
“瓦全生爲恥 보신(保身)하여 기와처럼 온전하면 삶이 치욕 되고
玉碎死亦佳 옥으로 부서지면 죽음도 이름답네
滿天斬荊棘 하늘 가득 가시 자르는 고통으로
長嘯月明多 길게 한숨짓건만 하늘 달은 밝구나”
목숨을 보전코자 기개를 굽히고 부끄러워하느니 충절을 위해 깨끗이 죽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젊은 학생에게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일제와 싸워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당송(唐宋) 대가의 시에 어께를 견줄 수 있는 풍격을 갖춘 시이다. 온전한 기와(全瓦)처럼 사는 것보다 차라리 부서져도 옥으로 사는 것이 이름답다는 시이다.
만해에게 선망하는 위인이 있었다. 안중근의 장한 쾌거를 읊은 「안해주(安海州)」와 매천 황현의 순교를 위로한 「황매천(黃梅泉」이 있다.
“萬斛熱血十斗膽 만 섬의 뜨거운 피 열 말의 담력
淬盡一劍霜有鞱 칼 한 자루 벼려 만드니 칼집 속에 서릿발이 서네
霹靂忽破夜寂寞 벼락소리 갑자기 밤의 적막을 깨부수니
鐵花亂飛秋色高 총에서 뿜는 불꽃 가을하늘보다 높아라
就義從容永報國 의를 향해 조용히 나라 은혜 갚으려고
一瞑萬古劫花新 한 번 죽어 만고(萬古)에 영겁의 꽃 새롭게 피었네
莫留不盡泉臺恨 저승에까지 그 한 가지고 가지 마셔요
大慰苦忠自由人 님의 큰 충절 위로할 사람 절로 있으리”
안중근(安重根)은 해주 사람으로 만해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이다. 조선 총독부 총독 이토 히로부미를 하르빈 역에서 사살하여 조선 청년의 기개를 만천하에 진동시킨 영웅의 역사적 사건을 찬양한 시이다. 두보의 시가 위대한 것은 당시 안사의 난으로 피폐해진 민중의 처참한 모습을 시로 읊은 인간애이다. 시인은 자신이 산 시대의 아픈 사건을 시로써 기록할 의무가 있다.
매천(梅泉) 황현(黃玹) ‘선암사에 머물면서 매천의 시에 차운함(留仙巖寺次梅泉韻)’의 한시가 있음.
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여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 선비로서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책임과 수치를 자살로서 자신의 충절을 드러내 온 국민을 통분케 하였다. 만해는 이 시에서 매천의 죽음을 위로하고 국민이 그의 뜻을 따라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을 것이라고 결구(結句)하고 있다.
만해가 『님의 침묵』에서 임진왜란 때 왜장을 보듬고 산화한 논개와 계월향의 의로운 죽음을 찬양한 것도 시를 통해 국민들에게 열사와 의녀의 충절을 격동시켜 잃어버린 님을 되찾자는 다짐이다.
만해가 잃어버린 님(조국)을 찾는 길을 「무제(無題)」란 시조에서 “이순신 사공 삼고 을지문덕 마부 삼아 파사검(破邪劍) 높이 들고 남선북마(南船北馬)하야 볼까 아마도 님을 찾는 길은 그뿐인가 하노라”고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 「남아(男兒)」의 시조에서도 “사나이 되얏으니 무슨 일을 하야 볼까 밭을 팔아 책을 살까 책을 덮고 칼을 갈까 아마도 칼 차고 글을 읽는 것이 대장분가 하노라”고 조선의 백성이 가야할 이상적일 구국의 방향을 설파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와 서산대사의 호국 불교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⓸ 교우 수증시에 나타난 주체적 생활선 사상
만해가 지은 한시 165수 가운데 다른 사람과 수증한 차운시(次韻詩)가 21수가 있는데, 스승 같은 영호(映湖) 박한영(朴漢永, 1870~1948, 불교전문학교 교장) 스님과 주고 받은 시가 10수가 있다.
‘양진암을 떠나면서 학명선사에게 준 2수(養眞庵臨發贈鶴鳴禪伯 二首)’의 시가 출가 대장부의 호연지기가 풍기는 선가시의 가풍이 있어 살펴보자.
“世外天堂少 이 세상 밖에 천당이 없고
人間地獄多 이 인간 세상에는 지옥이 많네
佇立竿頭勢 장대 끝에 멈춰서
不進一步何 어찌하여 한 걸음 더 내딛지 않는가
臨事多艱劇 일에 다다르면 고생이 많고
逢人足別離 사람을 만나면 이별이 많네
世道固如此 원래 세상의 이치가 이러하거니
男兒任所之 남자라면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살게나”
학명(鶴鳴, 1867~1929) 선사는 내장사 스님으로 만해보다 12세가 많은 선배 스님이다. 내장사 벽산 금타(관음문자 창작, 백양사 청화 스님의 은사) 선사가 심우장 집터를 기증하였으니 내장사 스님들과 인연이 좋았던 것 같다.
첫째 시 1·2구 “世外天堂少 人間地獄多(이 세상 밖에 천당이 없고 이 인간 세상에는 지옥이 많네)”는 만해의 불교관을 나타내는 깨달음의 경계이다. 이 세상을 떠나서 극락과 천당이 어디에 있겠는가.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 인간의 일들은 이별이 있고 갈등이 다반사이다.
보조 지눌은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나라.”고 하였고, 『육조단경』에는 “불법은 세간(世間) 가운데 있으니, 세간을 떠나서 불법을 구한다면 마치 토끼에게서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만해가 조사어록에 나오는 이런 문구를 용사(用事)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표현한 것은 그의 경계가 옛 조사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3·4구에서 “佇立竿頭勢 不進一步何 (장대 끝에 멈춰서 어찌하여 한 걸음 더 내딛지 않는가)”는 선가의 화두인 “백척간두갱진일보; 백 척의 장대 꼭대기 위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라”를 환골탈태시킨 것이다. 장대타기 장인이 일단 발을 떼어야 더 높이 뛸 수 있듯이 용기와 결단력을 강조한다.
둘째 시 1·2구 “臨事多艱劇 逢人足別離(일에 다다르면 고생이 많고 사람을 만나면 이별이 많네)” 역시 현실 세계의 일상사의 원리를 과장하거나 고상한 고사(故事)나 문자를 쓰지 않고 진솔하게 묘사했다. 작가가 표현하려는 의미를 현상의 일이나 모습에서 찾아 쉽게 표현하는 실학주의 문학 표현기법이다.
3·4구 “世道固如此 男兒任所之(원래 세상의 이치가 이러하거니 남자라면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살게나)”는 선사의 최고 경계라 할 수 있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무장무애한 자유인이다. 반야 공을 깨달아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아라한 이다. 만해는 상찰선사의 『십현담』의 “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를 찌를 듯한 뜻이 있으니 부처가 가는 길을 따라 가지 않는다.”를 『십현담 주해』에서 “대장부는 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기세가 등등하여 외부의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가신 곳은 이미 묵은 자취이니, 다시 다른 곳을 찾아서 가야만 바야흐로 묘경(妙境)이 나타난다.”고 갈파했다.
⓹ 오도송과 『십현담 주해』의 상관관계
만해의 시 가운데 최초로 시라 할 수 있는 오도송은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진리를 깨달아 이내 칠언절구를 읊었다.
“男兒到處是故鄕 사나이 가는 곳이 바로 고향인 것을
幾人長在客愁中 나그네 인생 시름 속에 길게 헤매이네
一聲喝破三千界 깨달음의 고함 악! 하고 외치니 삼천세계 깨지고
雪裡桃花片片紅 눈 속에 붉은 복사꽃은 조각조각 흩날리네”
이 오도시는 정형적인 선시다. ‘고향’과 ‘객수(客愁)’, ‘일성할(一聲喝)’과 ‘편편홍(片片紅)’이 소리와 색깔이 대구를 이루는 색성오도(色聲悟道)의 선시 이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향(鄕)’․‘중(中)’․‘홍(紅)’의 운(韻)도 정확하고 언어문자로써 나타낼 수 없는 깨달음의 세계를 격외언어인 ‘설리도화(雪裡桃花: 눈 속에 핀 복사꽃)’로 멋지게 표현한 격조 높은 시이다.
깨달음을 얻은 남아 대장부는 산천초목 두두물물이 부처가 아님이 없고, 온 세상이 정토다. 칠언절구의 이 시는 전형적인 근체시의 형식인 압운(押韻: 鄕, 中, 紅)과 대구(對句)가 잘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시의 내용도 탁월한 선시이다.
『십현담 주해』 속에 만해가 깨달은 오도 게송의 내용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오도한 만해의 눈으로 당나라 상찰선사의 선서(禪書)인 『십현담』이 비평(批評)되고 주석(註釋)된 것이다. 『십현담 주해』는 1925년(47세)에 완성된 저술이고, 만해가 백담사 오세암에서 오도한 때는 1917년(39세)이니 8년 세월이 지났다. 장소는 둘 다 오세암이다. 400년 전 생육신 김시습이 이곳 같은 방에서 『십현담 요해』를 저술하였다.
만해의 오도 게송 가운데 1구 “男兒到處是故鄕 사나이 가는 곳이 바로 고향인 것을”의 내용이 『십현담 주해』의 ⓽회기(廻機)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열반은 곧 윤회 속에 있으니, 남아가 이르는 곳이 고향의 풍광이다.(涅槃卽在輪回 男兒到處 本地風光)” 김광원, 님의 침묵과 선의 세계, 세문사, 2008, 304쪽.
또 『십현담 주해』의 ⓻파환향(破還鄕)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어느 곳인들 고향이 아니겠는가.(何地非故鄕)” 김광원, 님의 침묵과 선의 세계, 세문사, 2008, 295쪽.
2구 “幾人長在客愁中 나그네 인생 시름 속에 길게 헤매이네”의 뜻이 통하는 내용이 『십현담 주해』의 ⓹연교(演敎)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한 티끌이 눈에 들어가면 허공의 꽃 즉, 공화(空華)가 어지러 떨어진다.(一翳在眼 空華亂墜)” 김광원, 님의 침묵과 선의 세계, 세문사, 2008, 292쪽.
3구 “ 一聲喝破三千界 깨달음의 고함 악! 하고 외치니 삼천세계 깨지고”의 내용이 『십현담 주해』의 ⓽회기(廻機)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부처와 조사들이 한 번 소리치는 할(喝)이 능히 검수도산의 지옥을 꺾어버린다.(佛祖一喝 能摧劍樹刀山之地獄)” 김광원, 님의 침묵과 선의 세계, 세문사, 2008, 303쪽.
4구 “雪裡桃花片片紅 눈 속에 붉은 복사꽃은 조각조각 흩날리네”의 내용의 내용이 통하는 내용이 『십현담 주해』의 ⓽회기(廻機)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우담발화 꽃이 불 속에서 피었다.(優鉢羅花火裡開)” 김광원, 님의 침묵과 선의 세계, 세문사, 2008, 302쪽.
눈 속에 복숭아꽃이 피는 것이나 불 속에서 우담발화가 피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 다 선가의 약속된 언어문자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깨달음을 상징하는 언어도단적 이언문자(離言文字)이다. 무릉도원은 이상향 즉, 깨달음의 세계인 불국정토이다. 겨울에 계곡물에 붉은 복숭아꽃잎이 떠내려 와서 따라 올라가니 큰 동굴이 나왔고, 그곳은 복숭아꽃이 핀 별천지였다. 깨달음을 얻어서 어리석은 생각이 바뀌어 인식의 전환 즉, 전미개오(轉迷開悟)하면 만해가 경험한 감옥이 극락으로 변화한다. 중생이 부처가 되고, 물고기가 용이 되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이다.
인간들은 미몽과 망상, 집착 속에서 헤맨다. 그래서 승구에서 “나그네 인생 시름 속에 길게 헤매이네”라고 읊었다. 진리를 모르면 인생의 밤길이 멀고 길다. 잡념망상과 집착심은 말끔히 사라지고 생각마다 연꽃이 피어나고 눈 속에서도 붉은 복사꽃이 피어난다.
서정주의 『만해 한용운 한시선』에서는 ‘설리도화편편비(雪裡桃花片片飛)’라고 되어 있고, 만해가 친필로 쓴 서예작품에도 ‘비(飛)’로 되어 있다. 뜻으로 보면 ‘비(飛)’가 좋으나 한시의 운으로 보면 ‘홍(紅)’이 압운자(押韻字)로서 적합하다. 만해가 운(韻)을 몰라서 그렇게 했겠는가? 선시에서는 시의 형식이나 운율을 파격하는 것을 허락하기 때문에 ‘홍’이나 ‘비’ 어느 것이나 상관없다. 당나라 방거사(龐居士)는 “아름다운 눈송이가 송이송이 떨어지는구나(好雪片片 不落別處)”라고 노래했다.
김광원은 『만해의 시와 십현담 주해』에서 “『님의 침묵』은 『십현담 주해』 의 순서와 대응하여 창작된 것이나 이들의 연구는 한결같이 이러한 순서에 의한 창작원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들 논문은 『님의 침묵』의 작품 전체와 『십현담 주해』의 전체 내용 사이에서, 단지 어구가 비슷한 것들을 골라 연결시키는 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광원, 만해의 시와 십현담 주해, 바보새, 2005, 202쪽. 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예시를 제시하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십현담 주해』의 선사상과 현담시의 영향이 만해의 자유시, 시조, 한시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4. 결론
만해의 『님의 침묵』에 「타고르의 시를 읽고」가 있다. 타고르는 1913년 동양인으로 처음 노벨상을 받은 인도의 시성이다. 만해가 『불교』 잡지에 타고르의 글을 번역해서 싣고, 타고르의 시집 『키탄잘리』를 읽었다. 그의 시를 읽고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만해는 타고르가 하늘나라 피안을 노래한 시를 읽고 날카로운 비평을 한다. 인도나 조선이 다른 나라의 식민지 아래서 국민들이 현실 생활이 눈앞에서 자유를 잃고 억압받고 있는데 그것을 외면하고 천국을 노래하는 것은 타고르의 시가 아름다울지는 몰라도 향기가 없다는 비평한다.
“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白骨)의 향기입니다.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 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서요.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서요.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만해는 「나의 노래」에서 자신의 시가 다른 일반 시와 다른 특성을 지닌 시라고 자신의 시론을 읊고 있다.
“나의 노랫가락의 고저장단은 대중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속의 노래 곡조와는 조금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노래가 세속 곡조에 맞지 않는 것을 조금도 애달아하지 않습니다. 나의 노래는 세속의 노래와 다르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까닭입니다.”
「나의 노래」는 만해 선시의 시론이다. 선가에서 “출격대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를 기상을 지니고 있으니 부처님의 지나온 자취를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만해의 시와 글이 살불살조(殺佛殺祖)하는 기상이 있다. 만해의 시는 타고르의 시를 능가한다. 망해가는 조국을 보듬고 시로써 문장보국하는 시대정신이 잘 표현되어 있다.
권영민 교수는 미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핀스키는 만해의 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고 한다. “만해의 시를 보면 1920년~1930년 때에 동양에 이렇게 심오한 사상을 가진 시인이 존재했다는 것이, 그것도 식민지 조선에 있었다는 것은 정말로 상상하기 어렵다. 아주 높은 경지에 이른 시를 발표했다.”
송욱이 『님의 침묵 전편 해설』에서 만해의 시를 평하기를 “나는 20세기에 중국과 일본에 만해와 같은 대선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하물며 현대의 모국어로서 하나의 시집을 증도가로 채운 대선사에 있어서랴! ” 라고 하였다.
박노준․인권환도 『만해 한용운 연구』에서 “만해의 한국 시문학 상의 위치는 최남선의 신체시(新體詩)로부터 주요한의 신시(新詩)에의 교량적 역할을 담당한데 그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시사적(詩史的) 위치는 시어(詩語)에 있어서 내적이요, 동양적이며 사고적인 경지를 개척한 시사상의 사적 가치를 발휘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여 만해의 문학사적 위상을 평가하였다.
김재홍은 『한용운 문학 연구』에서 만해 문학의 문학사적 위치를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만해는 오히려 향가를 비롯한 여요(麗謠), 조선조의 한시‧시조‧가사 등 전통시의 정신과 방법을 바탕으로 하면서 외래시의 구성 방법이나 스타일상의 장점을 충분히 수용하여 창조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시세계를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권환은 「한용운 소설연구의 문제점과 그 방향」에서 “한용운은 불교에 뿌리를 둔 사상가이다. 소설 「박명(薄命)」이 한국 불교 문학사상 보살의 자비행을 훌륭히 작품화한 종교문학의 명작으로 필자는 보고 있는 터이지만, 아직 이런 면에서의 본격적인 고찰이 없다. 또 「죽음」의 경우나 「흑풍(黑風)」의 경우에 있어서도 불교적 유형의 인물들을 많이 볼 수 있는바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만해의 소설이 종교소설로서 새로운 평가를 기대하고 있다.”고 하며 만해의 소설에 대한 연구 방향을 제시하였다.
필자는 만해의 문학 장르 중에서 가장 연구가 미진한 소설에 대한 소설 평론의 전문적인 연구와 그의 소설 속에 나타난 불교사상과 불교 사회주의적 요소에 대한 논의와 연구를 제안한다.
만해는 한국문학사에서 전통적인 한시의 형식에서 한글로 쓰는 자유시로 건너오는 교량적인 시기에 한시와 한글시, 시조 모두를 잘 구사할 수 있었다. 『님의 침묵』을 통하여 당시 서정시 수준을 구사하던 황무지였던 시단에 심오한 사상과 철학을 지닌 관념적인 시를 선사할 수 있었다.
필자가 만해 선사를 그리워하면서 쓴 시 「광복불, 만해선사」를 소개하며 본 논문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뼈 오그라들게 추운 선방(禪房)
하늘이 준 보배 얼싸 보듬으며
빈도(貧道) 이겨낸 외로운 선사시여!
님은 뺏긴 나라 서러운 백성으로
시름 애오라지 만 섬 짊어진
고집 센 주장자(拄杖子) 우국 시인이시지요
슬퍼 눈물 흘리지 못해
옥중(獄中) 희망 부여잡고
님은 절로 눈 속 피어난 홍매화이시지요
그 사랑과 절조로
설악 백담 달 비친 골물 속에
박잠긴 황금 줏으며 님의 노래 불렀던 님은 진인(眞人)이시지요
님 부르다 스싀곰 님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 광복불(光復佛), 큰 바위 얼굴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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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형중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중·고등학교 교장, 전국교법사단 단장 역임.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시인. 저서: 휴정의 선시 연구, 한용운의 선시 연구, 시로 읽는 불교와 인생(불교시 평론집), 아득한 성자(조오현 시조 평론집), 왕초보 한문박사, 한글세대를 위한 한자공부, 불교 교과서 밖으로 나오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