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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카페의 원형이자 최초의 커피 하우스 '카흐베하네'

정길선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4/02/19 [04:26]

▲ 터키식 커피. <출처=픽사베이>


커피는 주로 이슬람권에서 전파가 되었기 때문에 19세기까지만 해도 아라비카를 비롯하여 이슬람권의 커피가 유럽 커피의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 현대 카페의 원형이자 커피 하우스는 카흐베하네(Kahvehane)로 이 카페는 중동을 중심으로 퍼졌는데, 유럽에선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에 처음 생겼다고 한다. 1554년 시리아계 아르메니아인인 하킴과 샴스가 개업하였다. 카흐베하네는 터키어로 커피를 뜻하는 단어인 카흐베(Kahve)와 페르시아어로 집을 뜻하는 하네(Hane)의 합성어로 나타난다. 참고로 현대 터키어에 의하면 "커피가게"라는 뜻의 카흐베치(Kahveci) 혹은 책 읽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크라앗하네(Kıraathane)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는데 카흐베치와 크라앗하네를 찾은 사람들은 커피보단 차를 더 자주 마신다는 점에 있다. 터키어로 아침식사를 뜻하는 카흐발트(Kahvaltı)도 원래는 커피를 마시기 전에 가벼운 식사를 하는 것에서 유래된 단어이지만 지금은 여전히 아침식사를 카흐발트라 하면서도 커피 대신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 터키의 전통이다.

 

카흐베하네는 17세기 무렵부터 이스탄불에서 보편화되었는데, 늘어나는 카흐베하네에 대해 투르크 시민들의 불만이 생겨났다. 1611년에는 이집트의 총독이 카흐베하네에서 반 정부적인 언동이 많다고하여 커피 판매와 더불어 카흐베하네를 금지시켰다가 커피를 좋아하던 술탄 아흐메트 2세의 분노를 사서 총독에서 추방된 사건도 있었다. 특히 17세기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는 특권 계급인 예니체리와 황태후 등의 하렘 출신의 여인들이 무능한 술탄을 대신하여 정국을 주도했는데, 이들과 결탁하여 사치와 부패를 이어가던 세력이 바로 커피의 확산을 주도한 이슬람 수피들이었다. 카흐베하네는 이러한 수피들의 거점이었고, 동시에 예니체리의 군대 이외의 개인사업으로써 그들의 고(高) 수익원이었다. 당시 이스탄불의 카흐베하네는 대부분 예니체리들이 상권을 쥐고 있었고 그들의 수중에 있었다. 따라서 기강이 해이해지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개혁을 요구하고 쇄신을 노리는 이슬람 원리주의 계통인 카디자델리(Kadizadeli)파가 출현했다. 

 

카디자델리파는 커피와 커피문화, 카흐베하네를 매우 혐오하였는데 이들에게서 있어 커피와 커피문화는 악마의 음료와 문화였고 카흐베하네는 악마들과 이교도들의 집합소로 여겼다. 그들은 술탄 무라트 4세가 등극했을 때 집권 세력이 되었고, 무라트 4세는 지독한 원리주의자로 무라트 4세가 친정하며 실권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 해 1633년에는 오스만투르크 제국 내에서 1차 커피 금지령을 내리며 카흐베하네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그러나 무라트 4세 본인은 커피 자체는 매우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카흐베하네에서 벌어지는 지식인들이 세속적인 정치에 대한 담론과 비난은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무라트 4세가 지독한 원리주의자였지만 그렇다고 카디자델리파와는 달리 커피는 악마의 음료로 여길 정도로 싫어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가혹한 금주령, 금연령으로 유명했던 무라트 4세는 커피에 대해서도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을 적용해 약 3만여 명이 처형되었다고도 한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인해 무라트 4세 사후에 즉위한 술탄 이브라힘은 예니체리에 의해 폐위되었다. 

 

뒤이어 옹립된 메흐메트 4세의 시대에는 1651년 태후 쾨셈이 암살되었고 카디자델리파를 후원하던 쾨프륄뤼 가문(Köprülü ailesi)의 섭정이 시작되며 카흐베하네에 대한 탄압이 재개되었다. 1656년에 지정된 제2차 커피 금지령을 통해 쾨프륄뤼 가문(Köprülü ailesi)은 정적들을 제거하며 무소불위의 권위를 누렸다. 쾨프륄뤼 가문(Köprülü ailesi)은 17세기 후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명문가로 쾨프룰루나 쾨프뤼뤼 등으로도 불린다. 쾨프륄뤼 가문은 본래 알바니아계로 가문 이름은 이 가문의 본관인 알바니아 지방의 '퀴프릴리우(Qyprilliu)' 마을에서 유래되었는데, 지금은 북마케도니아 중부에 위치해 있으며 '벨레스(Veles)'라고 불리고 있다. 황권이 막강하여 귀족 가문이 그다지 득세하지 못하였던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기에 무려 6명의 대재상인 사드라잠(Sadrazam)을 배출한, 제국 역사상 가장 두드러지는 가문이라 할 수 있다. 비록 1차 커피 금지령과는 달리 규제가 완화되긴 했지만 정치적인 이용은 극대화된 경우였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마르세유 등지에서 커피가 보급되는 동안 실로 위대한 세기를 맞이하던 프랑스 왕실과 파리는 커피의 유행에서 약간 비켜져 있었다. 비록 스페인을 통해 1615년 코코아와 네덜란드를 통해 1636년에 홍차가 보급되어 파리에서 대유행을 탔지만 커피는 아직 유행하기 전이었다. 그러던 1669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계획하던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메흐메트 4세는 측근인 뮈테페리카 쉴레이만 아아(Müteferrika Süleyman ağa)를 파리에 보내 루이 14세에게 술탄의 친서를 전달하였으며 쉴레이만 아아는 파리에 집을 빌려 터키식으로 꾸미게 된다. 그리고 방문자들에게 커피를 아낌없이 대접했는데, 이는 엄청난 인기로 이어져 신분 차이을 막론하고 파리 시민들이 쉴레이만의 임시 거처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쉴레이만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접대를 받을 때에 루이 14세가 환영식의 소감을 묻자 터키 황궁이 훨씬 호화롭다 답하여 루이 14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으며 결국 쉴레이만이 전권대사가 아닌 일개 사절에 불과함을 파악한 루이 14세는 그에게 귀국을 명하고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 때는 중립을 지키게 된다. 

 

비록 쉴레이만 아아는 당초의 목적인 프랑스와의 동맹 강화에는 실패했지만 커피와 투르크리, 즉 터키 문화에 대한 강한 인상을 프랑스에 남겼다. 사실 루이 14세도 커피를 즐겼기 때문에 커피콩 선물 자체는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14년 후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에 나선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오스트리아 동맹군의 한 축으로 합류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정예 기병 부대인 윙드 후사르(Winged Hussar)의 활약으로 인해 대패했다. 투르크 군의 대부분은 보급품을 놓고 황급히 후퇴했는데, 그 중에는 대량의 커피 포대도 있었다. 이 때 폴란드-리투아니아 군과, 신성로마제국의 군대, 오스트리아 군은 전리품인 커피콩을 두고 쟁탈전을 벌였는데, 이에 대한 쟁탈전으로 인해 사망자까지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커피 원두를 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결국 커피콩은 공방전 도중 터키군으로 변장해 내부와 폴란드 원군 측에 소식을 전달한 폴란드 출신의 병사 콜시츠키에게 상당 부분 돌아가게 된다. 콜시츠키는 비엔나에 '파란 병 아래 집'이라는 카페를 열었다. 

 

▲ 정길선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이미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에는 1665년 비엔나에 당도한 오스만투르크 사절에 의해 커피가 전해졌고 공방전이 벌어지기 4년 전인 1685년에 이미 아르메니아인 요하네스 디오다트가 비엔나에 카페를 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최초로 초승달 모양의 빵이 만들어져 판매하게 되는데 이 빵이 바로 크로와상(Croissant)이다. 크로와상에 대한 기원설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상징하는 초승달 문양의 빵을 만들어 투르크에 승리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먹었다는 설, 오스만투르크 제국, 터키에서 만든 빵이 역수입되었다는 설, 2차 비엔나 공성전 당시 제빵사가 오스만투르크 제국 군이 땅굴을 파서 오는 걸 알아채고 서둘러 왕에게 보고해 이를 막아내 제빵사가 자신의 업적을 이어가기 위해 빵에 오스만투르크의 문장인 초승달 모양을 담아 빵을 구웠다는 설 등이 존재했다. 유럽인들은 이 때부터 오늘날까지도 크로와상을 먹으며 오스만투르크를 격파했던 당시의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lukybaby7@gmail.com

 

*필자/ 정길선. 

노바토포스 회원, 역사학자, 고고인류학자, 칼럼니스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연구소 연구교수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Since coffee mainly spread from the Islamic world, coffee from Arabica and other Muslim countries took the lead in European coffee until the 19th century. The prototype and coffee house of the modern cafe is Kahvehane, which spread around the Middle East, and it is said that the cafe was first opened in Istanbul, the capital of the Ottoman Turks in Europe. In 1554, Syrian-Armenians Hakeem and Shams opened. Kahvehane appears as a combination of Kahve, a Turkish word for coffee, and Hane, a Persian word for house. For reference, according to modern Turkish, the word Kahvech, meaning "coffee shop," or K ı, meaning a place to read books, is used in that visitors to Kahvech and Kraathane drink tea more often than coffee. Kahvalt ı, which means breakfast in Turkish, originally originated from having a light meal before drinking coffee, but it is still a Turkish tradition to drink tea instead of coffee while having breakfast as Kahvehbal.

 

Turkic citizens' dissatisfaction with the increasing number of Kahbeans arose when the Kahbehane became commonplace in Istanbul around the 17th century. In 1611, the governor-general of Egypt banned Kahbehane along with coffee sales because of his large anti-government rhetoric and behavior in Kahbehane, but was expelled from the governor-general after being enraged by the coffee-loving Sultan Ahmet II. In particular, in the Ottoman Turks of the 17th century, women from Harlem, such as the privileged class Yenicherry and the empress, led the political situation on behalf of the incompetent sultan, and the forces that continued luxury and corruption in collusion with them were the Islamic Sufi, who led the spread of coffee. Kahbehane was the base of these Sufi people and at the same time their high source of profit as a private business outside of Yenichery's army. At that time, most of the Kahbehane in Istanbul had Yenichery in the commercial district and they were in their hands. Therefore, the Kadizadeli faction, an Islamic fundamentalist system that demanded reform and sought reform of the Ottoman Turk Empire, which was losing its discipline, emerged. 

 

Coffee, coffee culture, and Kakhbehan were despised by Khadijadelites, who viewed coffee and coffee culture as devil drinks and cultures, and Kakhbehané as a gathering place of demons and infidels. They came to power when Sultan Murat IV was crowned, and Murat IV, a terrible fundamentalist, took full control of power. In 1633, the Ottoman Turks imposed the first coffee ban and began a crackdown on Kakhbehané. However, Murat IV himself is said to have been very fond of coffee. However, Murat IV was a terrible fundamentalist because intellectuals in Kakhbehan disliked the discourse and criticism of secular politics, so he did not dislike coffee enough to consider it a devil's drink, unlike Khadijadelites. Murat IV, who was famous for his harsh abstinence from drinking and smoking cessation, is said to have also applied a crackdown on intellectuals and killed about 30,000 people. As a result of this reaction, Jenicheri deposed Sultan Ibrahim, who ascended to the throne after Murat IV. 

 

The subsequent establishment of Mehmet IV saw the assassination of the queen Köprülü ailesi in 1651, and the regency of the Köprülü ailesi, who sponsored the Khadijadel faction, resumed the oppression of Köprülü ailesi. The Köprülü ailesi enjoyed an unparalleled authority, removing political opponents, through the second coffee ban designated in 1656. The Köprülü ailesi is a family of the Ottoman Turks in the late 17th century and is also known as Köprüluna Köprülü. The Köprülü family is originally Albanian, whose name originally came from the village of Qypriliu in the Albanian region, the main building of the family, and is now called the Veles, located in central North Macedonia. It can be said to be the most prominent family in the history of the empire, which produced as many as six great merchants, Sadrazam, during the Ottoman Empire, when the imperial power was so powerful that the aristocratic family did not prevail. Unlike the first coffee ban, although regulations were eased, political use was maximized.

 

During the coffee supply in Italy, the Netherlands, England, and Marseille, starting with the Ottoman Turks, the French royal family and Paris, which were indeed in their great century, were a little out of the trend of coffee. Coffee was still popular in Paris, although black tea spread through Spain in 1615 and through the Netherlands in 1636. Then, in 1669, the Ottoman Sultan Mehmet IV, who was planning a war with Austria, sent his close aide Müteferrika Süleyman ag ̆a to Paris to deliver the sultan's letter to Louis XIV. Schleiman Aa rented a house in Paris and decorated it in a Turkish way. And he served coffee generously to visitors, which became so popular that Parisians, regardless of their status, flocked to Schleiman's temporary residence. When Louis XIV asked how he felt about the welcoming ceremony when Schleiman was being entertained at the Palace of Versailles, he answered that the Turkish imperial palace was much more luxurious, hurting Louis XIV's pride. Louis XIV ordered him to return home and remained neutral during the Austrian-Turkish War, knowing that Schleiman was only an envoy, not a full-time ambassador.

 

Although Schleiman Aa failed to strengthen its original purpose of alliance with France, he left a strong impression on coffee and Turkic culture. In fact, it is said that Louis XIV loved the coffee bean gift itself because he also enjoyed coffee. 14 years later, the Ottoman Empire, which fought the Austro-Turk war, was defeated by the activities of Winged Hussar, an elite Polish-Litanian cavalry unit, who joined as one of the Austrian allies. Most of the Turkic forces hurriedly retreated over supplies, including a large number of coffee bags. At this time, the Polish-Litanian army, the Holy Roman army, and the Austrian army fought a scramble for the spoils of coffee beans, which even resulted in death. This happened because it was not easy to obtain coffee beans. Eventually, the coffee beans were largely attributed to the Polish soldier Kolszky, who disguised himself as a Turkish soldier during the siege and delivered the news to the inside and the Polish troops. Kolsky opened a cafe called "House under the Blue Bottle" in Vienna. 

 

Like France, coffee was delivered to Austria by the Ottoman Turkic envoy who arrived in Vienna in 1665, and in 1685, four years before the siege, Armenian Johannes Diodat opened a cafe in Vienna. Here, the first crescent-shaped bread was made and sold, and this bread is the Croissant. There are many theories of origin about the Croissant. There are many theories about the Croissant that they made a crescent-shaped bread symbolizing the Ottoman Turk Empire and ate it in the hope of winning the Turks, that bread made in the Ottoman Turks and Turkey was reversely imported, and during the second siege of Vienna, a baker noticed that the Ottoman Turks had dug a tunnel and hurriedly reported it to the king, preventing it, and that the baker baked the bread with the shape of a crescent, an Ottoman Turkic sentence, to continue his work. Europeans say they feel the joy of the time when they ate croissants and defeated Ottoman Turks.

노바토포스 회원, 역사학자, 고고인류학자, 칼럼니스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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